일 퍼센트 -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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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스페셜 – 동화]

 

 

일 퍼센트

 

 

김태호

 

 

 

 

 

    이른 아침, 우리 가족은 지칠 대로 지쳐서 집에 돌아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은 차갑고 어두웠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대로 거실에 쓰러져 버렸다. 지친 몸은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조금씩 땅 밑으로 녹아내렸다.
    다시 깨어났을 때, 오후를 넘긴 시간이었다. 잠들기 전 어둠은 그대로 방 안에 남아 있었다. 지하방의 어둠이 익숙해지며 조금씩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누워 있는 엄마가 몸을 뒤척였다. 아빠는 아까부터 휴대전화를 들고 전파를 찾아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대었다. 휴대전화는 이미 어제부터 먹통이었다.
    아빠는 휴대전화를 들고 작은방으로 갔다. 휴대전화는 전등으로 제 역할을 대신했다. 아빠가 품에 네모난 상자 같은 것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사진으로만 보던 라디오가 우리 집에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건전지를 새것으로 바꾸자 ‘치직 치지직’ 소리가 들려왔다. 주파수를 바꿀 때마다 끊어질 듯 이어지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또렷이 잡혔다.

 

    “21일 4시간 17분 남았습니다.”

 

    라디오에서 지하철 도착역을 알리는 듯 건조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금방 1분이 줄어들었다.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날을 카운트다운 하고 있었다.
    한 달 전, 긴급뉴스로 인류의 끝을 예고했다. 종말의 원인은 운석이었다. 지름이 2km가 넘는 돌덩이가 엄청난 속도로 지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국가들이 힘을 합쳐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운석이 비켜갈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었다. 인간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가능성도 1%라고 말했다. TV로 전해들은 소식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뿐이었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기만 했다. 하늘 저 너머에서 다가오는 두려움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 주듯 앞서 날아온 작은 운석들이 먼저 세계 이곳저곳에 떨어져 내렸다. 그중에 몇 개가 서울 한강과 도심을 강타했다. 한밤중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놀란 우리 가족은 지하방에서 맨발로 도망쳐 나왔다. 골목길엔 자다가 놀라서 뛰쳐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쾅 콰광’ 땅이 흔들릴 때마다 하늘엔 하얀빛이 번쩍였다. 빛이 쏟아질 때 마다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빛이 점점 약해져 갈 때쯤 날이 밝아 왔다. 여느 날처럼 태양은 떠올랐지만, 도시의 대부분이 멈춰 섰다.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버스와 지하철은 운행하지 않았다. 전기와 가스가 나갔다. 수도도 끊겼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휴대전화를 켰지만 인터넷에 연결이 되지 않았다. 통화가 안 되는 건 물론이었다. 도시는 돌덩이 하나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조용하던 골목길은 웅성거리며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워졌다. 커다란 TV박스를 끌고 가는 사람, 컴퓨터나 라면박스, 생수통 등 각종 물건을 품에 안고 뛰었다. 말로만 듣던 약탈과 방화가 일어났다. 종말을 다룬 영화는 현실 그대로였다. 세상이 영화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에에엥’ 경고음이 울리고 대피소로 대피하라는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대었다.
    우리 가족은 신분증과 통장 등 중요한 물건을 챙겨 대피소로 달려갔다. 대피소는 땅속 깊은 곳에 있어서 조금 더 안전하다는 것과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만 빼면 우리 집보다 나을 건 없었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있고 사방이 밀폐된 탓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혔다. 먹을 물이 부족해 씻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여기저기 오물까지 뒹굴었다. 하나둘 대피소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리 가족도 그중 하나였다. 대피소에서 이틀을 못 버티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터였다.
    “밥 먹자.”
    아빠가 휴대전화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어제 점심으로 컵라면과 빵을 먹은 게 다였다.
    탁! 탁!
    아빠는 가스불과 전등 스위치를 켜보았다. 불이 안 들어올 줄 알면서도 몇 번씩 다시 확인했다. 그러다 밖으로 나가 복도 전등을 떼어서 들고 왔다. 아무도 없는 지하 집에 들어올 때 제일 먼저 나를 반겨 주던 센서 등이었다.
    엄마가 일어나 싱크대 밑에 넣어 두었던 휴대용 버너를 꺼냈다. 가끔 고기를 구워먹을 때 쓰던 버너는 어느새 붉게 녹슬어 있었다. 세 명밖에 안 되는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은 게 언제일까?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바빴다. 조금만 더 참자는 말이 반복되며 가족이 함께했던 기억은 검붉은 녹에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 ‘탁!’ 버너를 켰다.
    ‘따다다다닥’ 점처럼 작은 파란 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동그랗게 불꽃이 일어났다. 녹이 슬었어도 버너는 아직 쌩쌩했다.
    아빠는 전기밥솥을 열고 손가락으로 밥알을 집어 먹었다. 이틀 전 해놓은 밥이지만, 아직 먹을 만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다. 그새 김치에서는 신 거품이 일었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 달궈진 냄비에 넣었다.
    치이이익 치직.
    김치가 맛있게 볶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을 넣은 뒤 참치 캔 하나를 다 쏟아 넣었다. 방 안은 금세 매콤하면서 고소한 찌개 냄새로 가득 찼다.
    하얀 김이 올라오는 김치찌개 주위로 마른 반찬 몇 가지가 놓였다. 차갑게 식어서 떡처럼 뭉텅이진 밥을 쪼개어서 나누었다. 세 식구가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빠가 먼저 뜨거운 김치찌개를 찬밥 위에 한 움큼 덮어 숟가락으로 콕콕 찍었다. 밥알 사이로 빨간 물이 배어들었다. 적당히 촉촉해진 밥과 찌개를 숟가락에 가득 퍼 올려 한입에 넣었다. ‘쓰읍 후후흡’ 아빠는 입을 벌리고 뜨거운 김을 뿜어내었다. 나도 얼른 김치찌개에 숟가락을 담갔다. 맛있었다. 우리 세 식구는 쉴 새 없이 숟가락을 움직였다. 찌개 냄비는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우린 김치찌개를 끓인다.”
    아빠가 웃었다. 웃기는 말도 웃을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터졌다. 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웃고 있던 아빠가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잠시 후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었다.
    “우리 아들한테 제일 미안하네. 그동안 매일 혼자 밥 먹게 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엄마의 눈도 촉촉이 젖어 갔다.
    “남은 시간은 이제 우리끼리 잘 지내보자.”
    “정말?”
    “그래, 절대 떨어지지 말고.”
    아빠의 빨간 눈이 도장을 찍듯 내 눈과 마주쳤다.
    집에 쌀은 넉넉했다. 반찬은 몇 가지 마른 반찬과 김치로 버틸 수 있었다. 수도가 끊겼지만 그것도 걱정 없었다. 아빠가 하는 일이 생수 배달이었다. 창고가 부족해 임시로 작은방 가득 생수병을 쌓아 놨다. 우리 식구가 1년을 먹어도 남을 양이었다.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이틀을 보냈다. 아빠는 계속 라디오를 끼고 앉아 있었다. 바깥소식을 들을 수 있는 건 라디오뿐이었다. 변함없이 마지막 날을 향한 카운트다운은 계속 되고 있었다. 아빠는 라디오 채널을 돌려대었다. 가끔씩 누군가의 목소리가 잡혔고, 새로운 소식을 어렵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지직거리며 끊어져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희망적인 소식보다는 부서지고 불타는 사건사고에 대한 얘기였다. 떨어진 운석에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포함되어 물이 오염되었다는 정보도 있었다. 어차피 수돗물은 나오지도 않았다.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을 내놓는가 하면, 누군가는 모든 게 음모라며 속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모두 개인방송이었다.
    “부탄가스 좀 구해 올게.”
    시간이 지나니 부족한 게 생겼다. 불을 피울 가스가 필요했다. 아빠는 돈이 될 만한 보석을 가방 깊숙이 챙겨 넣었다. 혹시 몰라 여섯 개들이 생수병 팩도 어깨에 둘러메고 일어섰다.
    “아빠, 나도 갈래. 우리 이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라며.”
    나는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그래, 다 같이 가자. 그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떡해.”
    엄마의 말에 결국 모두 함께 집을 나섰다.
    길가로 나온 아빠는 한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이 열린 가게는 없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움직였다. 거리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까운 마트 건물에서 검은 연기가 솟고 있었다. 나는 긴장해서 엄마 옆에 달라붙었다. 가끔 지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렸다. 외양은 꾀죄죄했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지하철역 안은 물건을 파는 사람과 서성이는 사람들로 제법 북적였다. 군데군데 모여 물건을 거래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기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 우리에게 쏠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꼼짝 말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아빠는 부탄가스를 구하러 갔다. 엄마와 나는 생수병을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았다. 힐끔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우리 곁으로 모여들었다. 숫자가 금방 늘어나더니 우리를 두 겹으로 둘러쌌다. 나를 바짝 안은 엄마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거 팔 거요?”
    양복을 챙겨 입은 노인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 물었다.
    “제가 살게요.”
    덩치 큰 남자와 아줌마가 노인 앞으로 끼어들었다.
    “우리가 먼저 왔다고.”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서로 먼저라고 주장하며 뒤엉켰다. 엄마와 나는 꽉 부둥켜 앉았다. 그때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아빠가 나타났다.
    “어서 집에 가 있어. 금방 따라갈게.”
    아빠가 우리를 떠밀며 말했다. 위협을 느낀 엄마는 나를 데리고 사람들 틈을 빠져나왔다.
    엄마와 나는 집에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언제쯤 아빠가 돌아올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빠의 소식은 없었다.
    쿵.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현관문이 부서질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나는 깜짝 놀라 현관 앞으로 달려갔다.
    “누…… 누구세요?”
    엄마가 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소리쳤다.
    “나야, 문 좀 열어 줘.”
    아빠가 밖을 살피다 다급한 얼굴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옷 여기저기가 뜯겨 있고 얼굴엔 피가 묻어 있었다. 엄마가 급하게 수건을 들고 수돗가로 달려가 물을 틀었다. 물이 안 나온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엄마는 생수병을 새로 따려고 했다.
    “안 돼.”
    아빠는 힘겹게 일어나 생수병을 빼앗더니 품에 안고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들릴 듯 말 듯하던 웃음은 금방 커다란 목소리로 바뀌었다.
    “다 뺏겼어.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생수병을 다 훔쳐갔다고. 하하하하.”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던 아빠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닫힌 문을 확인하고 이중문을 다시 잠갔다. 망치를 찾아 들더니 쇠문에 구멍을 내고 걸쇠를 또 만들어 철사로 문을 잠갔다. 아빠의 빨개진 눈이 번쩍거렸다.
    “지금 사람들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금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물이야, 물. 물이 없으면 운석이 떨어지기도 전에 죽을걸.”
    아빠는 집 안 가득한 생수병을 보며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웃어대었다.
    “한강물 잔뜩 있잖아!”
    내가 말했다.
    “운석에 오염된 물이야. 돈 없는 이들은 그걸 먹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내일 당장 죽어도 더러운 물을 삼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
    골목길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쉿!” 아빠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밖을 경계하며 소곤거렸다.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제일 부자라는 소리야. 세상에 제일 필요한 걸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게 부자거든.”
    아빠는 쌓여 있는 생수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다 죽을 건데 부자면 뭐 해.”
    엄마가 긴 한숨을 쏟아내었다.
    “바로 앞에 일도 모르는데 몇 주 뒤에 일을 어떻게 장담해? 정말 운석이 떨어져서 다 죽거나, 아님 그런 일이 안 일어날지도 모르지.”
    “아빠, 그 가능성은 1%도 안 된다고 TV에서 과학자들이 그랬어.”
    “TV, 과학자…… 제일 믿을 만하지만 어쩌면 또 못 믿을 존재이기도 해. 혹시 그 1%가 현실이 되어서 모두 살아남는다면? 그럼 그때는 미리 준비를 잘한 사람이 1%가 되는 거야. 상위 1% 말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건 하늘이, 아니 우주가 준 기회야. 우리 아들을 위해서.”
    아빠의 굳은 의지가 눈빛에 가득했다. 아빠는 생수병 하나를 잘 보이지 않게 수건으로 돌돌 말아 배낭에 넣었다. 생수병을 귀한 보석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아빠가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에 묻은 피를 마른수건으로 대충 닦아내었다. 핏물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엄마가 생수로 닦아 주려 했지만, 금으로 어떻게 세수를 하느냐며 아빠가 웃었다.
    “다녀올게. 좋은 소식 기다려.”
    아빠는 윗옷을 갈아입고 생수병이 든 배낭을 메었다.
    “어딜 또 가려고?”
    엄마가 아빠 앞을 막아섰다.
    “아빠, 우리 가족 이젠 절대 떨어지지 않기로 했잖아.”
    나는 아빠의 윗옷을 잡아당겼다.
    “지금 밖은 위험해. 아빠 금방 다녀올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아빠는 문단속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아빠가 나가버린 집 안엔 다시 차가운 어둠이 들어앉았다.
    한참만에 아빠가 돌아왔다. 흥분한 듯 달려온 아빠는 엄마에게 나무토막처럼 빳빳한 새 돈을 내밀었다. 생수 한 병이 엄청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아빠가 말했다. 엄마는 돈을 보고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아빠는 돈을 이불 깊숙이 집어넣고 다시 한 번 현관문을 잠갔는지 확인했다. 정말 물 값이 금값이 된 것이다. 우리 집에 금이 한 방 가득 쌓여 있는 것이다.
    “19일 2시간 10분 남았습니다.”
    라디오에서 카운트다운은 계속되었다. 주파수를 돌리다 보니 들려오던 개인 방송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음모론에 관한 얘기가 또 흘러나왔다. 자꾸 말이 끊어져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제발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 두 손을 꽉 쥐었다.
    아빠가 컵라면을 후루룩 몇 젓가락 만에 삼켜 넣고 다시 가방을 메었다. 하루에 서너 번씩 집에 돌아왔다가 바로 나가길 반복했다. 생수병을 담아간 가방은 현금이나 보석, 때론 금덩이로 채워져 돌아왔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를 엄마가 막아섰다. 엄마는 모자를 눌러쓰고 배낭을 메고 있었다. 쌓이는 재물을 보고 엄마의 마음도 조금씩 바뀌었다. 내가 붙잡아도, 함께 가자는 말도 소용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닌데.
    “14일 3시간 45분 남았습니다.”
    라디오의 친절은 계속되었다. 건전지를 바꾸지 않은 전등은 깜박이다가 꺼져버린 지 오래였다. 어느새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잠깐 집에 머물다 나가며 엄마와 아빠는 조금만 참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쿵! 콰쾅!
    크고 작은 운석이 더 자주 떨어져 내렸다. 차갑고 어두운 바닥에 혼자 누워 땅이 흔들릴 때마다 몸을 덜덜 떨어대었다. 가끔씩 밖에서 사람들이 고함치거나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아빠가 사람들에게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치직 치지지직…… 정부…… 발표를 믿지…… 지직.”
    뭐라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라디오 채널을 계속 돌려대었다.
    엄마와 아빠는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 작은방의 생수병은 조금씩 줄어들고, 깊숙이 감춰 둔 현금과 금 덩어리가 방 이곳저곳에 뒹굴었다. 쌓인 현금을 세다가 엄마는 끝내 포기하고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라디오는 이제 일주일 남은 시간을 예고했다. 작은방에 가득하던 생수병은 3분의 1 정도 남았다. 밖에 나갔다 온 엄마와 아빠는 엄청난 계약을 했다며 그중 나머지 반을 트럭에 싣고 떠났다.
    다시 돌아온 엄마와 아빠는 신발도 벗지 않고 급하게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금과 보석을 챙겼다. 물도 일단 필요한 만큼만 트럭으로 옮겼다. 엄마가 당황한 나를 재촉하며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챙기라고 말했다. 나는 떠밀리듯 가방에 물건들을 찾아 담았다.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진 사람을 만났어. 그 사람은 당장 필요한 걸 가지기 위해 아파트 하나쯤 아무것도 아니라더라.”
    우리는 아빠의 배달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밤하늘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똥별이 무섭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도 불안한 듯 자꾸 차창 너머를 올려다봤다. 하늘을 바라보던 내 시선 안으로 아주 높은 건물이 들어왔다. TV에서 본 아파트. 아무나 살지 못한다는 그 아파트였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꽃문양이 고급스럽게 새겨진 문이 막아섰다. 우리의 낡은 트럭은 그 앞에 덜덜거리며 멈춰 섰다. 아빠는 윗옷 안주머니에서 카드 같은 것을 꺼내어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띠딕’ 짧은 전자음 뒤에 문이 스르르 접히며 올라갔다.
    지하주차장은 대낮처럼 환했다. 오랜만에 보는 전등 불빛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따뜻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의 벌게진 얼굴을 보니 들떠 있는 게 느껴졌다. 우리 트럭은 어울리지 않는 차들을 피해 구석에 자리 잡았다.
    “아빠, 여긴 어떻게 전기가 들어와?”
    나는 바쁘게 걷는 아빠 뒤를 쫓아가며 물었다. 아빠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카드에 적힌 숫자를 찾아 고개를 바쁘게 움직였다. 한참만에 엘리베이터를 찾아내었다. 문이 닫히고 아빠는 49층 버튼을 눌렀다. ‘윙!’ 작은 흔들림은 금방 사라지고 모니터의 숫자가 빠르게 바뀌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금색 장식을 한 거울이 사방을 비추었다. 밖을 헤매고 다니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엔 시커먼 때가 얼룩져 있었다. 밝은 전등아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엄마가 손등으로 얼룩을 문질러 보지만 소용없었다. 아빠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내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거울이 비치지 않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모니터에 ‘자가발전 운행 중’ 이라는 문구가 빨간색으로 반짝였다. 문이 열리자 아빠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한 발 내딛었다. 엄마와 나는 아빠 뒤에 딱 붙어서 따라 내렸다. 카드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고 아빠가 현관 앞으로 다가가자 철커덕 자동키가 저절로 열렸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던 아빠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빠는 천천히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었다.
    쿠궁!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 건물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나는 떠나온 지 얼마 안 된 지하방이 그리워졌다.
    “며칠만 살아 보고 예고된 날에는 대피소로 가자.”
    아빠가 현관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나는 망설이다가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아파트였다. 어두운 곳에만 있다 보니 대리석 바닥에 비친 조명이 더없이 화려해 보였다. 여기가 상위 1%가 산다는 그 아파트였다.
    집을 둘러본 아빠와 엄마는 거실 대리석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눈을 감고 있던 엄마가 슬그머니 소매로 눈물을 훔쳐내었다. 나는 부엌 식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가방 속에서 라디오를 꺼냈다. 급하게 담은 김치 통이 조금 샜는지 김치 냄새가 확 올라왔다.
    “엄마, 우리 밥 먹자!”
    나는 서둘러 쌀과 김치 그리고 참치 캔을 가방에서 꺼내었다. 내 말에 엄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엄마가 싱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틀어 봤다. 역시 이곳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여기도 물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겠는데!”
    아빠가 일어나 가방 속에 생수병을 챙겨 넣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빠가 또다시 바빠질까 봐 두려웠다.
    “또 어디 가려고? 여기 살게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잖아!”
    “운석이 비껴가는 1%가 정말 현실이 되고, 여기서 1% 부자로 살려면 준비가 더 필요해. 조금만 더 참…… 아니, 오늘까지만 참자.”
    엄마와 아빠는 1층 로비에 가서 분위기를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조금만 더 참자는 말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여기서도 또 혼자가 되었다. 멍하니 라디오를 품에 안고 거실 바닥에 누웠다. 라디오 주파수를 바꿔 가며 아무 생각 없이 커다란 창 너머 밤하늘을 바라봤다. 쏟아지던 별똥별들이 모두 사라졌다. 하늘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습관적으로 돌려대던 주파수에 갑자기 목소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치지직…… 정부 발표와 전혀 다른 일이…….”
    라디오는 지하방보다 훨씬 더 잘 들렸다.
    “시간을 벌기 위한 계획이었는지, 아님 수치의 오류인지…… 치지직…… 곧 운석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떨어질 것 같습니다. 지직…… 예정보다 일주일이나 빠른 시간입니다. 운석의 후폭풍은 금방 여기까지 영향을 미칠 겁니다.”
    깜짝 놀라 창가로 다가갔다. 아주 먼 하늘에 굵고 선명한 선 하나가 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던 별똥별과는 전혀 달랐다. 굵은 빛은 한순간 태양처럼 지구 반대편으로 사라져 갔다. 조금 뒤 같은 곳에서 거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빛은 하늘 전체로 환하게 번져 가며 어둠을 쫓아내었다.
    불길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와 아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행운이 함께…….”
    손에서 떨어진 라디오가 쿠당탕탕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현관문으로 달려가 문을 여는 순간 아파트가 부르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미세한 떨림은 아주 조금씩 선명해졌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1층 로비로 가야 했다.
    “19층…… 18층…… 17층.”
    엘리베이터는 더디기만 했다.
    “8…… 7…… 6…….”
    진동은 더 심해졌다.
    “3…… 2…….”
    “1…….”
    ‘땡’ 문이 열렸다.
    거기 서 있었다.
    손을 뻗었다.

 

    하얀 빛,

 

 

 

 

 

 

 

 

 

 

 

 

 

 

작가소개 / 김태호

단편 「기다려」로 2013년 창비어린이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그림책 『아빠 놀이터』, 『삐딱이를 찾아라』, 동화책 『네모 돼지』, 『제후의 선택 』, 『신호등 특공』 등.

 

   《문장웹진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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