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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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참외

 

 

이승주

 

 

 

    고모가 또 집을 옮겼다. 이번엔 분당이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바로 오기로 했고, 나는 미용실에서 차를 몰고 갔다. 주소를 확인하고 내비게이션을 따라갔는데도 두 번이나 골목 입구를 지나쳤다. 고모부가 골목 앞까지 나와 표지판처럼 서 있는 걸 보고 나서야 겨우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헤맸다면서?
    고모는 주차장 앞에 서 있었다. 나를 마중 나온 줄 알았더니 마침 그때 집에 들어오는 길이었다. 고모 뒤로 사촌동생들이 터덜터덜 걸어왔다. 첫째 니나, 둘째 윤하. 둘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양 볼이 부루퉁했다. 고모부가 심란한 얼굴로 고모와 두 딸을 바라보았다. 나는 참외 상자를 들고 있었다. 열 개짜리 황금빛 성주 참외였다. 십이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아무도 그 상자를 들어 주지 않았다. 상자를 묶은 끈에 눌려 손가락 끝으로 피가 몰렸다.
    고모가 이사한 오피스텔은 복층 원룸이었다. 안에 들어서자 낯익은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반포 아파트에서부터 쓰던, 고모가 파리 미용대회에 참가했을 때 사온 마호가니 원목 탁자였다. 이사할 때마다 끌고 다녀서인지 프랑스 가구 장인이 만든 최고급 탁자의 위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곡선으로 굽은 모서리는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고, 가장자리는 사포로 문지른 것처럼 흠집이 많았으며, 고양이 발 모양의 다리는 생채기가 심해 보기가 안쓰러웠다. 집 안을 둘러보는 척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탁자 앞에 놓인 의자가 네 개뿐이기도 했지만,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감지한 고모의 불편한 심기 때문이었다. 위층은 말이 복층이지 다락방 같았다. 천장이 낮아서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고, 공간도 협소했다.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와 그 위에 정갈하게 개어 놓은 침구, 천장에 닿을 듯 차곡차곡 쌓인 건강보조식품과 택배 상자들. 다리를 쭉 뻗고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고모와 고모부, 니나와 윤하가 탁자 주위에 모여 앉았다. 집들이는 무슨, 이럴 거면 뭐 하러 불렀나, 괜히 왔다 싶을 만큼 네 사람의 표정이 어두웠다.
    엄마, 하던 얘기.
    윤하가 말문을 열었다.
    다음에 하자니깐. 지혜도 왔는데, 좀 있으면 김 서방도 올 테고.
    고모가 나무라듯 쳐다보았지만 윤하는 고개를 들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언니, 내가 오늘밖에 엄마 볼 시간이 없어요. 형부 언제 와요?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고모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그 얘기 계속할 거면 가라, 너희 둘 다.
    고모가 한 손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 니나와 윤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고모부가 일어났다.
    당신, 가만있어요.
    고모부는 자리에 앉지 않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고모부는 현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주춤거렸다. 나가라는 두 딸은 못 나간다고 뻗대고, 나가지 말라는 고모부는 나가겠다는 공교한 풍경이었다. 고모부는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참외 상자의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걸 보자 손님으로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고모부를 거들었다.
    난, 안 간다. 그 결혼식.
    어조는 담담했지만 고모의 표정은 침울했다.
    엄마가 바라는 게 그거야?
    쏘아붙이듯 윤하가 물었다. 나는 개수대에 물을 받아 참외를 씻었다. 참외 닦는 소리에 말들이 묻혔다. 고모부가 싱크대에 달린 문을 여기저기 여닫더니 접시와 쟁반, 칼과 포크를 꺼냈다.
    니 아빠를 부르고 싶다면, 엄마 자리는 빈자리가 맞지. 니들 아빠랑 나는 벌써 오래전에 남남이 됐는데, 이제 와서 부모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순 없다.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나를 위해서…… 해줘.
    아니, 그건 지금 아빠한테 할 짓이 아니야.
    고모부와 나는 손바닥보다 큰 참외를 붙들고 껍질을 깎는 데 열중했다. 고개만 들면 탁자 앞에 마주 앉은 세 사람의 표정까지 읽을 수 있는 거리였다. 목소리는 더 가깝게 들렸다.
    지금 아빠는 괜찮다고, 엄마도 같이 들었잖아. 다 된다는데, 엄마 혼자만 안 된다는 거잖아. 왜 안 되냐고? 왜에?
    말끝이 갈라지더니 윤하가 울음을 터뜨렸다. 니나는 윤하를 다독이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두 딸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고모는 멈칫했다. 아무도 고모부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고모부를 곁눈질하며 슬며시 휴대폰을 꺼냈다.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빨리 와. 나는 도착했어.
    휴대폰을 내려놓자 액정 화면에 남편의 메시지가 떴다.
    내가 꼭 가야 돼?
    툭, 참외 껍질이 바닥에 떨어졌다.

 

*

 

    윤하는 다음 달에 결혼식을 올린다. 니나는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만 들었다. 니나는 늦었고, 윤하는 빨랐다. 니나는 자기에게도 닥칠 일이었기에 고모보다는 윤하의 편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니나와 윤하는 자매의 이름치곤 거리감이 멀어서 종종 친자매가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외모라도 닮았으면 그런 질문을 덜 받았을 텐데, 니나는 고모를 닮아서 체구가 작고 호리호리했지만, 윤하는 유도선수였던 전 고모부를 닮아서 몸집이 크고 둥글둥글했다. 니나의 이름은 고모가 직접 지었다. 세계적인 헤어 디자이너의 이름에서 따온, 고모의 선망이 담긴 이름이었다. 독특하고 이국적이어서 또래들은 부러워했지만, 니나는 자신의 이름에 불만이 많았다. 무얼 하든 너무 쉽게 기억되고, 자주 호명되어 귀찮다고 했다. 윤하의 이름은 니나의 불만을 공감하여 평범하고 무난하게 전 고모부가 지었다. 고모가 마흔에 낳은 늦둥이 윤하는 니나와 딱 열 살 터울이었다.
    윤하는 울음을 멈추고 코를 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고모의 얼굴은 고단해 보였지만, 짐작건대 윤하는 고모의 고집을 꺾기 어려울 것이다. 윤하는 아직 고모의 성격을 잘 모른다. 언제나 자기편을 들어 준 엄마, 울고 떼쓰면 뭐든 해결해 준 엄마, 그렇게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았다. 미용실 말단 보조에서 서른 명이 넘는 스텝을 둔 토털 뷰티 숍의 원장이 되기까지 대차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고모의 남다른 고집 덕분이었다. 종로, 신촌, 압구정, 청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분점을 냈고, 늘어나는 손님의 수만큼 돈과 명예가 따랐다.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찾아오는 손님까지 있었으니 고모는 성공한 인생이었다. 미용사로서는.
    그럼, 신랑 신부 동시 입장해.
    차선책을 제시하는 고모의 말에 윤하가 발끈했다.
    내가 고작 신부 입장 때문에 이래? 그런 뜻이 아니잖아.
    윤하를 제지하며 니나가 입을 열었다.
    엄마, 윤하는, 아빠랑 결혼식 과정을 함께하길 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니 아빠를 정 부르고 싶으면 나를 포기하면 돼. 엄마 아빠를 기어이 한자리에 세우겠다는 건, 욕심이야. 결혼식 끝나면 사돈댁과 가족사진도 찍을 텐데.
    욕심이 아니라, 하고 윤하가 반박하려고 들자 니나가,
    엄마를 어떻게 포기해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하고 끼어들었다. 그러자 고모가 두 딸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한 명은 욕심이고, 또 한 명은 포기냐? 자매가 어쩜 이렇게 반응이 다른지. 아무튼, 이렇게 다른 니들 장래를 위해서 이혼만은, 그래 이혼만은 니들 결혼시킨 다음에 하려고 했다. 그런데 했다. 오죽했으면…….
    경련이 일어나듯 고모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했는데, 고모가 눈가를 훔쳤다.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사니, 참, 니들까지 이러면, 난 인생 헛살았다.
    고모는 오십대로 보일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흔인 아버지보다 다섯 살 아래였다. 게다가 평소 남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딸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고모부는 안절부절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아빠도 많이 미안해하고 있어. 엄마가 아빠를 못 봐서 그래. 얼마나 늙었는데, 얼마나 말랐는데, 엄마는 알아보지도 못할 거야. 엄마는 재혼도 했잖아. 지금 아빠랑 잘살고 있잖아. 아빠는 아직도 혼자야. 아무도 없다고.
    윤하는 아빠가 독거노인이 되었다며 울먹였다.
    그래서? 불쌍해 보이디?
    고모의 말투에 서운함과 노여움이 묻어났다. 끝나면 별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까지……. 나는 남편과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다 깎은 참외를 네 등분한 다음 다시 반으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니나가 탁자 위에 올린 고모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놓았다. 너무나 차분하고 고요한 인상이었다. 나는 접시를 두 사람 앞으로 밀어내며 시선을 거두었다.
    파마약 냄새 맡으며 로드 말고 가위질해서 번 돈을, 남 밑에선 죽어도 일을 못 하는 위인이, 말은 또 얼마나 번지르르하게 잘하는지, 이 사람 저 사람 죄다 끌어들여서, 다 날렸다. 알고 있지? 내가 얼마나 손님이 많았는지.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인들도 꽤 있었다. 그게 다 재산이고, 내가 쌓은 신용인데 한순간에, 손 쓸 틈도 없이 무너졌어. 왜? 그 인간 때문에!
    고모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오더니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냈다. 고모부가 식기건조대에 엎어 놓은 컵을 민첩하게 내주었다. 마치 노련한 미용실 매니저처럼. 고모부의 행동은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해서 기분이 씁쓸했다. 고모가 나를 미용실 카운터에 앉혀 놓고 매니저 역할을 맡겼을 때, 나는 왜 그 일을 단기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조카에게 용돈을 벌게 해주려는 고모의 배려라고만 생각했을까. 고모의 계획을 좀 더 일찍 알아차려야 했는데……. 만약 전 고모부의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고모의 미용실이 계속 번창했다면, 어쩌면 난 아직도 미용실 카운터를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등을 돌린 채 남편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피곤하지? 택시 타고 와.
    남편은 답이 없었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가 곧바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오기 싫으면 오지 마. 턱밑까지 올라오는 말을 간신히 억누르며 내 손은 다른 말을 적고 있었다.
    저녁 먹어야지. 어른들 기다리셔.

 

*

 

    삶은 셈이 정확해. 나쁜 일 뒤엔 꼭 좋은 일이 따라오지.
    고모는 삶의 매정함 뒤에 너그러움이 있다고 믿었다. 불행한 일이 닥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났고, 작은 기대감이 서려 있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고모가 지금의 고모부를 만나 곁을 내준 건, 그 만남이 나쁜 일 뒤에 찾아오는 좋은 일의 시작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모에게 먼저 온 나쁜 일은 화재 사고였다. 건물 일층에서 일어난 누전 사고가 이층에 있는 미용실까지 번졌다. 소방차가 와서 화재를 진압했지만 이미 한쪽 벽이 시커멓게 탄 상태였다. 고모는 인테리어 업체에 수리를 맡겨 가게를 다시 열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인테리어 업체의 부장은 고모의 처지가 딱해 보였는지 드문드문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부장은 두 딸을 키우는 이혼남이었다. 고모도 두 딸을 데리고 고모부와 갈라선 뒤였다. 고모와 부장은 이따금 술자리를 만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모의 표현대로라면, 부장은 뻔한 이야기를 뻔뻔하게 요리하는 재주가 있었다. 고모는 부장이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어리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고모는 오십대 후반에 사십대 후반의 그 부장과 재혼했다. 지금 내 옆에서 참외를 깎고 있는 꽁지머리의 남자와 말이다.
    두 사람은 재혼 후 이사를 자주 다녔다. 서울에서 일산으로, 일산에서 평촌으로,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나는 고모의 부산 집에도 가보았다. 그때 고모는 부산에 쉬러 왔다고 말했다.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미용사가 아닌 삶을 살고 있다며 허름한 다세대주택에서 고모부가 벌어다 주는 월급만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고모부가 출근하면 혼자 점심을 먹은 뒤 바닷가를 산책했고, 고모부가 퇴근하기 전 찬거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급쟁이 남편이 생기니까 이렇게 좋구나. 고모는 해운대 밤바다에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고모부가 참외를 포크로 찍어서 내게 건넸다. 나도 포크로 참외를 찍어서 고모부에게 건넸다. 고모부는 먼저 먹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참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여생을 부산에서 보낼 것처럼 부산 예찬을 하던 고모가 지난달에 전화를 걸어왔다. 분당으로 이사했으니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고모, 갈 때 뭐 사갈까요? 부자 되시라고 세제나 휴지 사갈까요? 그냥 와. 집에 많아. 그래도 처음 가는 건데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요. 그럼 고모부 좋아하는 참외나 몇 개 사오든지. 그렇게 해서 사온 참외였다. 나는 참외의 하얀 살이 아삭거려 소리 나지 않게 입안에서 굴렸다.
    해주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남은 게 있어야지. 맨 빚뿐이니.
    고모의 말에 두 딸은 침묵했다. 미용실 사업이 번창해서 두 딸을 유모 손에 키웠지만, 고모는 딸들을 끔찍이 챙겼고 특히 늦둥이인 윤하를 애지중지했다.
    지금 아빠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죄송해요.
    윤하가 주방 쪽으로 한번 눈길을 주었다. 고모부는 탁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싱크대에 묻은 물기를 손으로 닦으며 주방을 서성거렸다.
    혹시, 니 아빠가 니 손잡고 들어가고 싶다고 애원하디?
    애당초 고모가 묻고 싶은 말은 이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니나와 윤하가 동시에 손을 내저었다. 아빠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며. 니나는 고개까지 흔들면서 부정했다.
    아빠가 그런 말을 하겠어?
    윤하는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몰지 말라며 훌쩍거렸다. 잘라 놓은 참외의 표면은 서서히 윤기를 잃어 갔고 드러난 속살은 단내를 풍기며 말라 갔다. 나는 입안에서 굴리던 참외를 휴지에 뱉었다.
    고모가 반포 아파트에 살던 시절, 나는 윤하의 손을 잡고 에버랜드에 간 적이 있었다. 고모네 가족 나들이였다. 네 명으로 예약했는데 니나에게 사정이 생겼다며 고모가 나를 끼워 넣었다. 출발 전 고모는 내가 입은 옷이 칙칙해 보인다며 니나의 옷을 꺼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입은 옷보다 훨씬 산뜻하고 예쁜,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한 고급스러운 옷이었다. 한 살 아래인 니나의 옷은 내게 꼭 맞았다. 연둣빛 체크무늬 원피스에 꽃무늬가 들어간 흰색 스타킹, 챙이 넓은 모자까지 쓰고 예약한 버스에 올라탔다. 고모와 고모부는 앞좌석에, 윤하와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윤하는 내 손을 잡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자주 웃었다.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는지 재잘재잘 묻는 것도 많았다. 친구가 없어서 저래. 니나 친구들이 와도 저렇게 좋아한단다. 윤하를 바라보는 고모의 눈빛은 다정하게 일렁였다.
    에버랜드에서 사파리를 구경하고 튤립 꽃밭을 지나갈 때였다. 앞서 걷던 고모가 뒤를 돌아보다가 일순 표정이 굳었다.
    윤하 어딨니?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윤하가 보이지 않았다. 짧은 비명을 내지르는 고모의 얼굴과 윤하를 잡고 있던 손을 번갈아 보았다. 튤립이 너무 예뻐서 잠깐 한눈을 팔았다고, 멀리 못 갔을 거라며 변명하고 싶었지만, 나는 조금 전까지 니나의 옷을 입은 내 모습에 취해 있었다. 윤하의 손을 언제 어디에서 놓쳤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봄날의 햇살 아래, 눈을 뜨면 뜰수록 초점이 흐려졌다. 고모와 고모부였던 그분과 함께 사방을 뛰어다녔다. 얼마나 헤매고 돌아다녔을까. 윤하를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식은땀이 머리칼을 적셨다. 안내방송을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몇 번씩이나 왔던 길을 되돌아 뛰고 또 뛰었다. 그때 입안에서 풍기던 단내, 침이 말라서 마른침도 넘길 수 없었던. 단내는 애가 탈수록, 윤하를 찾아 헤맬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벤치 아래 웅크린 채 훌쩍이는 윤하를 발견한 건 전 고모부였다. 이제는 얼굴도 흐릿하지만 무릎을 꿇고 윤하를 끌어안으며 잘했다, 잘했다를 외치며 눈물을 글썽거리던, 그 목소리와 흥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윤하도 기억할까. 아마 기억하겠지.
    살면서 누군가를 대신하는 자리에 가거나, 타인의 옷을 빌려 입게 되었을 때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날 내가 니나의 옷을 입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랬다면 한눈을 팔지 않았겠지, 윤하의 손을 놓치지도 않았겠지, 놓쳤어도 변명은 할 수 있었겠지, 찾았으니 봄날의 해프닝으로 끝났겠지, 고모가 니나의 옷만 입히지 않았어도…….

 

*

 

    초인종이 울렸다.
    고모와 고모부는 남편을 반갑게 맞이했고, 니나와 윤하는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고모부는 니나 자리에 앉았고, 남편은 윤하 자리에 앉았다. 나도 빈 의자에 앉았다. 니나와 윤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모부가 포크로 참외를 찍었다.
    잘 익었네. 맛있는 참외다.
    정말요? 제가 잘 골랐나요?
    고모부와 나는 쾌활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고모도 한몫 거들었다.
    자네는 더 멋있어진 것 같아.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운동해?
    남편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고모부와 나는 아삭아삭 경쾌한 소리를 내며 참외를 먹었다. 참외는 남편이 좋아하는 과일이 아니었다. 포크를 건네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고모도 마찬가지였다. 옆에서 보니 고모의 머리칼이 부산에서 봤을 때보다 더 하얗게 세었다. 염색한 머리 사이로 희끗희끗 센 머리가 도드라져 부쩍 나이 들어 보였다. 고모가 가위를 들면 고모의 커트 기술을 배우려고 스텝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머리 어디서 했니? 고모한테 오라니깐. 가위만 있으면 당장 잘라 주고 싶네. 내 머리를 볼 때마다 그렇게 말하던 고모였는데…….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편은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어서 언제나 남편 때문에 메뉴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거로 해야지. 괜찮아요. 반찬 먹으면 돼요. 손님인데 그럴 수야 있나. 육류만 빼면 다 먹어요. 아, 그런가? 그럼 해산물은 먹나? 네, 해산물은 먹어요. 우리는 두부전골, 낙지볶음, 생선구이로 메뉴를 좁혔다. 이 동네 두부전골이 괜찮아. 고모부가 은근히 선택을 권유했다. 하지만 남편은 낙지볶음도 괜찮나요, 하고 물었다. 남편이 먹고 싶은 메뉴를 대번에 알아챈 고모부는 낙지볶음이 훨씬 괜찮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나가겠다는 윤하를 니나가 팔짱을 껴서 끌고 나갔다. 낙지집으로 걸어가던 중 남편이 윤하에게 결혼 축하해요, 라고 말했다. 윤하가 건성으로 고개만 까딱하자 니나가 대신 나서서 결혼식에 꼭 오세요, 하고 인사했다. 나는 남편의 팔을 잡아끌었다.
    낙지집은 오피스텔 근처 먹자골목 안에 있었다. 남편은 음식점에 들어가자마자 코를 킁킁거렸다. 남편의 후각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올라갔다. 니나와 윤하는 홀에 있는 테이블에 따로 앉았다. 낙지볶음이 익어 가자 고모부가 커다란 주걱으로 낙지를 뒤적거렸다. 남편은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힐끔거리던 고모부가 자네도? 하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증명사진 크기만 한 병을 꺼냈다.
    이거 발라 봐. 페북에 올렸던 페퍼민트 오일. 담배 피우고 혀끝에 살짝 묻히면 냄새도 안 나지만 알레르기 비염에도 좋아.
    고모부와 남편은 페이스북 친구였다. 남편은 페퍼민트 오일을 손끝에 묻혀 코밑에 발랐다. 하지만 이내 다시 킁킁거렸다. 고모부가 잠깐만 기다려 보라며 냉면 그릇에 뜨거운 물을 받아 왔다. 그 위에 페퍼민트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남편에게 코로 흡입해 보라고 했다. 남편은 군말 없이 뜨거운 증기를 흡입했다. 페퍼민트 향이 은은하게 퍼지더니 남편의 킁킁대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고모부가 남아 있는 페퍼민트 오일을 남편에게 선물로 주었다.
    큰애가 새벽에 진통이 와서 지금 병원에 있대.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던 고모부가 고모에게 말했다. 작년에 결혼한 고모부의 큰딸 얘기였다. 고모부가 빙긋 웃으며 고모를 할머니, 라고 부르자 고모가 새치름하게 눈을 흘기며 왜 할아버지, 했다. 덕분에 다 같이 웃었다. 고모부와 남편은 소주를, 고모는 맥주를 시켰다. 첫 잔은 큰딸의 순산을 기원하며 건배했다. 나는 운전 때문에 잔만 들었는데, 대리기사를 부르라는 고모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맥주를 마셨다. 넷이 한자리에 모인 건 오랜만이었다. 고모가 부산에 내려가기 전까지 고모 부부와 우리 부부는 일 년에 한두 번 저녁을 같이 먹곤 했다.
    윤하 메이크업과 신부 머리는, 어떻게, 고모가 직접 하세요?
    웨딩플래너가 패키지로 다 알아서 한대. 너한테도 전화 안 했지?
    안 했다고 하자 고모가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에요, 무슨, 하면서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래도 마무리는 한번 봐주셔야죠, 하자 그래야지, 하며 고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니나와 윤하는 낙지전골에 소맥을 마시고 있었다. 고모부가 슬쩍슬쩍 홀에 있는 두 딸을 살폈고, 고모는 부러 외면하려는 듯 몸을 틀어 앉았다. 술기운이 도는지 고모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자세히 보니 눈썹만 그렸을 뿐 화장기가 없었다. 여자가 화장을 안 하면 흐트러져 보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고모였다. 어쩐 일이냐고 묻자 지압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내가 미용하면서 지압 선생을 얼마나 많이 만났니? 나는 이제 한 번만 받아도 그 선생 지압 실력을 알아본다. 부산 지압 선생은 별로였어. 근데 이 동네 이사 와서 이렇게 잘하는 지압 선생을 만날 줄이야.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데 가끔 바빠서 못 가면 몸이 무거워서 살 수가 없다.
    지압 선생이 남자야. 고모보다 더 나이가 많아.
    고모부는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우리에게 소곤거렸다. 나는 고모부도 받아 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딱 한 번 갔어. 고모 몸을 여기저기 만져. 이렇게, 이렇게!
    고모부가 어깨와 배를 만지는 시늉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가면 되는데, 가끔은 일주일에 두 번도 가. 그 영감탱이 만나러.
    고모가 식탁 위에 탁,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건 누르는 거지 만지는 게 아니야. 당신 계속 그러면, 한마디만 더 하면 정말 당신 인격을 의심할 거야. 그 선생은 프로야, 프로!
    고모부가 우리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고모는 프로 선생한테 그런 모욕이 어디 있느냐, 인격 모독이다, 지압 덕을 얼마나 많이 보고 사는데 직업을 무시하는 말로 들린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선생처럼, 엄마처럼, 누나처럼 고모부를 야단쳤다.
    당신은 화장 안 해도 예뻐.
    고모부가 빙그레 웃으며 고모와 잔을 부딪쳤다. 고모부와 남편은 소주를 한 병씩 마셨다. 고모와 나도 맥주를 꽤 마셨다. 고모가 불콰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며칠 전에 오 원장이 전화했더라.
    또 시작인가. 나는 컵에 남은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왜요? 뭐라는데요.
    고모는 대꾸 없이, 고모부와 남편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페친들이 많으시던데요. 댓글도 많이 달리고.
    자네는 왜 요즘 통 글을 안 올리나? 자주 올려. ‘좋아요’만 누르지 말고.
    고모부와 남편은 오랜만에 보는데도 서로의 일상을 잘 아는 듯했다. 고모부는 내가 모르는 얘기, 이를테면 남편의 점심 메뉴나 회사 주변의 풍경, 출퇴근길에 본 하늘과 유튜브와 웹툰 같은 것들을 같이 본 사람처럼 꿰고 있었다. 둘의 대화는 소탈하고 매끄러웠다. 시종일관 작은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볼 거 없어. 오 원장이 나 어떻게 사는지 떠보는 거니까.
    오 원장은 고모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오 원장한테 나를 소개한 사람은 고모였다. 오 원장 숍에 나를 보낸 것도 고모였다.
    그러니까, 어떻게 떠봤냐고요?
    언성이 높았는지 남편이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고모부도 고모를 쳐다보았다. 고모는 아직도 고모가 원하는 대로 니나가 미용사가 되고, 내가 그 미용실의 매니저가 됐다면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니나가 고모 뜻대로 안 되듯,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혜야, 넌 성실해. 감각도 있고. 그만 하면…….
    고모는 적당한 말을 고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지그시 나를 보았다. 그 눈을 들여다보다가 하마터면 고모에게 오 원장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할 뻔했다. 새로 꾸미는 메이크업 살롱에 부원장으로 추천해 달라고.
    나는, 우리 지혜가 오 원장한테 가서 메이크업을 할 줄은 정말 몰랐어. 니나랑 같이 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 말을 끝으로 고모는 화제를 돌렸다. 나도 더 이상 고모의 푸념 섞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고모는 지금도 자신이 뭔가를 바꿀 힘이 남아 있다고, 자신의 인맥이 내가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술만 마시면 비슷한 얘기를 반복한다. 내가 정말로 오 원장한테 갈 줄 몰랐다는 하소연. 빚에 쪼들려 미용실을 처분했다는 걸 뻔히 아는데, 안 그랬으면 미용실 카운터에 나를 평생 묶어 둘 생각이었으면서, 그 계획을 끝까지 숨기고 마치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처럼, 서운한 사람은 자기라는 듯 번번이 내 속을 긁는다.
    홀에 있던 니나와 윤하가 먼저 들어가겠다며 인사하러 왔다. 윤하는 고모에게 할 얘기가 남았다는 무언의 암시를 남기고 음식점을 빠져나갔다.
    지 아빠를 부를 생각이었으면 상견례 때부터 불렀어야지. 상견례는 딴 아빠한테 시키고.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싶었나 보지. 딸이니까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고모부가 고모의 잔에 술을 더 채워 넣었다.
    당신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당신이 지들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

 

    고모부가 아이스커피를 사오겠다며 길 건너 카페로 갔다. 남편이 따라갔다. 고모와 나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영양제도 종류가 참 많더라.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고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용은 이제 오래된 단골들만 해준다. 굳이 내 숍이 필요 없어. 친구들 숍에서 예약 받아서 하면 돼. 고모부랑 같이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지금 교육받는 중인데……. 나는 듣기만 했다. 어쩐지 침실 구석에 건강보조식품이 별스럽게 많다 싶었다. 교육이 끝나면 찾아오시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잘 해내실 거예요. 파이팅!’ 문자를 치듯 응원의 메시지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반포 아파트를 쫓기듯 팔고 나올 때, 애들이 태어난 집이어서 정이 많이 들었는데 나는 별로 아쉽지 않았다. 형편이 나아지면 얼마든지 또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내가 그렇게 뭘 몰랐다. 거기가 지금처럼 될지 어떻게 알았겠니?
    고모의 때 아닌 고백엔 원망도 분노도 없었다. 문득 반포 아파트 내부에 있던, 아파트 두 층을 위아래로 연결한 나무 계단이 떠올랐다. 그 계단 위층에서 바라본 한강의 경치가 또렷하게 기억났다. 고모는 위로의 말을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저 두 손으로 뺨을 두드렸다. 할 수 있는 게 말밖에 없는데 말이 무용하다면 말해 뭐 하나 싶어서, 자꾸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원룸 안은 참외 냄새로 진동했다. 깨진 접시와 포크, 뭉개진 참외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고모는 화장실 문을 열고 두 딸을 바라보았다. 구토하는 윤하의 등을 니나가 쓸어내리고 있었다. 니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윤하가 체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껍질도 까지 않은 참외가 바닥에 터져 있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자에 남아 있던 참외까지 전부 꺼내서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 같았다. 참외의 속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달큼한 냄새가 에어컨 바람에 섞여 떠다녔다.
    엄마잖아, 엄마. 딸이 원한다는데, 소원이라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윤하의 얼굴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눈가가 붉었다.
    그만 해. 그만 하라고. 좋은 날 받아 두고 얘가 왜 이래.
    니나가 윤하를 말렸다. 고모는 입을 꾹 다물고 윤하를 쳐다보았다. 버럭 소리치고 싶은 걸 애써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내 결혼식이야. 내가-
    윤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모가 윤하의 뺨을 때렸다. 니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모를 막아섰다.
    가기 전에 바닥은 꼭 치우고 가라. 아빠 곧 들어오신다.
    나는 깨진 접시를 주워서 휴지통에 버렸다. 니나는 참외를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윤하가 울먹이며 말을 더듬거렸다.
    엄마, 난, 아빠도…… 우리 아빠도…… 다 같이…… 다 같이…….
    고모가 의자에 앉아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왜 아빠와 이혼했는지 알지?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 아는데 왜, 다 알면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모르겠……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래야만…… 내가…… 아빠가…….
    윤하는 바닥에 주저앉아 모르겠다며 울기만 했다. 나는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잘했다, 잘했다, 에버랜드에서 전 고모부가 윤하에게 들려준 그 말은 여전히 유효했다. 걸레질을 끝내고 일어섰을 때 어지럼증을 느껴 윤하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윤하가 말간 얼굴과 충혈 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훌쩍거리며 울던 어린아이가 아니라 무심하게 외면하는 어른의 눈이었다. 길어야 삼십 분이야. 결혼식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다음이 문제지. 그다음 또 그다음이. 속에서 웅얼거리는 말을 삼키며 나는 윤하의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고모는 참외를 사온 나를 책망하듯 바라보았다.
    밖에서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모부와 남편이었다. 고모부는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들어왔다. 산모 상태는 어떤가? 그래, 그래. 축하하네. 자네가 고생 많았네. 고맙네, 고마워……. 고모부의 큰딸이 아들을 순산했다. 그 소식을 전하는 고모부의 얼굴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당신 이제 정말 할머니야. 진짜 할머니가 된 거라고. 고모부는 휴대폰으로 전송된 아기 사진을 고모에게 보여주었다. 고모는 아기의 사진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형식적이었다. 고모부는 나에게도 사진을 보여주었다. 고모는 고모부에게 무슨 말인가 꺼내려다가 그만두었다. 고모부의 행동을 바라보는 니나와 윤하의 시선은 복잡해 보였다. 낯선 이에게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해 하면서도,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듯 자신들과는 무관하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남편은 여섯 개의 아이스커피를 마호가니 탁자에 올려놓았다. 누구도 고모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
    뒤늦게 고모부는 고모와 두 딸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한차례 원룸 안을 훑어보았다. 바닥은 깨끗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쓰레기봉투가 현관 앞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가방을 챙겼다. 남편이 먼저 현관을 나섰다. 고모부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우리 부부를 따라나섰다. 남편도 나도 고모부의 쓰레기봉투를 들어주지 못했다. 나는 고모부의 손가락에 걸린 쓰레기봉투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참외의 무게와 맛을 아는 건 고모부와 나뿐이었다. 봉투 틈으로 비어져 나오는 참외 냄새가 엘리베이터 안에 퍼졌다. 남편이 킁킁 킁킁, 콧소리를 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일층에 도착하자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나는 밖으로 나갔다.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우리 부부가 떠날 때까지 고모부는 오피스텔에 올라가지 않았다. 차가 골목을 벗어나기 전, 사이드미러로 고모부를 보았다. 첫 손주를 본 할아버지이자 다음 달에 결혼하는 신부의 어머니를 부인으로 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내가 본 것을 남편도 보았을까.
    딸이 애를 낳으면 기분이 어떨까?
    남편이 물었다. 나는 우리 딸이 애를 낳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
    보고 싶겠지.
    아기?
    아니, 우리 딸. 보고 싶을 것 같아.
    남편이 양복 주머니를 더듬더니 페퍼민트 오일 병을 꺼냈다. 킁킁거리는 콧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오일을 코밑에 발랐다.
    기사님, 차 좀 돌려주세요. 출발한 곳으로요.
    남편이 다급히 외쳤다. 대리기사는 룸미러로 우리 쪽을 힐끗 보더니 유턴 지점에서 차를 돌렸다. 나는 남편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다 알 것 같은, 옅은 페퍼민트 향이 코끝에 걸렸다.
    고모부는 오피스텔 건너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당신은 나오지 마. 차 안에 있어.
    고모부는 남편이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황급히 담배를 껐다. 남편이 고모부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창문을 열었지만 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리기사가 비상등을 켜고 길가에 차를 바짝 붙여 세웠다.
    오래지 않아 차가 있는 곳으로 고모부와 남편이 걸어왔다. 아까와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고모부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했다.
    처제들 갈 때까지 밖에 계실 모양이야.
    무슨 얘기 했어?
    그냥, 별 얘기 안 했어.
    분당을 벗어날 즈음, 남편이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고모부가 갓 태어난 손자의 사진을 올렸다. 그새 ‘좋아요’와 페친들의 축하 댓글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끝내 축하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모에게도, 고모부에게도, 그리고 윤하에게도.
    고모가 이혼하기 전, 여름에 고모 집에 갈 때면 아버지는 늘 참외를 샀다. 전 고모부가 유독 참외를 좋아했다. 지금 고모부가 좋아하는 여름철 과일은 수박이었다. 새로운 고모부를 ‘고모부’라고 부를 때 나는 간혹 전 고모부를 떠올렸고, 그때마다 두 명의 고모부에게 미안해졌다. 더 많이 미안한 쪽은 언제나 전 고모부였다. 그래서였을까, 그게 다였을까. 마트에서 참외와 수박을 놓고 고민하다가 수박을 골랐지만, 다시 돌아가 수박을 내려놓고 참외를 들고 나왔다. 모르겠다. 왜 참외를 샀는지, 왜 고모의 혼동을 바로잡지 않았는지.
    건네지 못한 말들이 입안에서 단내를 풍겼다.

 

 

 

 

 

 

 

 

 

 

 

 

 

 

 

작가소개 / 이승주

2017년 《현대문학》 등단.

 

   《문장웹진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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