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외 1편 - 안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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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허블

– 반사경의 지름

 

 

안웅선

 

 

 

나는 여전히 나를 탓하며 나를 망치고 있습니다

 

그 여름밤 내가 놓쳐버린 별똥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의 보정을 거치고야 한 장 손에 쥐게 되는 사진
한 달 이상 어둠에 버려둔 눈으로

 

시간에 속기 위해 우주를 향해 굳게 편 십자가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나선들과 서넛쯤 많은
희미한 타원들과 사라져 간 백하고도 삼십억 년 전의 빛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일은 그만 멈추려고 했지만 홀로 남은 거울 위에서
빛은 빛으로 남기 위해 온몸으로 부서지는 중이고

 

날카로운 빛의 파편들이 세계를 가득 채우는 아침

 

나는 당신이 죽은 사람들이 모두 별이 된다는 오랜 믿음을
아직 주머니 속에서 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면 다시 내 머리 위에서
가장 어두운 하늘을 숨죽여 바라볼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오래 바라본다면 여름은 항상 찾아옵니다 은하수 바깥
많은 별들이 흐르는 대기도 계절도 없는
이곳에서

 

당신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오늘
내가 잃어버린 별들의 지도가 됩니다

 

 

 

 

 

 

 

 

 

 

 

 

 

허블

– 초기 은하단 히미코

 

 

 

    우리의 세기는 이제 별자리의 이름보다는 병의 이름을 되새겨 보는 일들이 많아져 버린 것입니다 태양이 사라지자 싸움이 시작되고 태양이 나타나 새로운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새겨진 붉은 벽의 부조들 우유의 바다를 휘젓고 사람이 신이 되고 그 신을 위한 신전을 세우고 몇 개의 별을 묶어 그들의 이름을 붙여 주고 다시 별들을 더듬어 전설을 들려주는 몇 개의 세기가 지나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빛들을 모으는 세기가 왔습니다 신비로웠던 것들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고 그래서 사람조차 이제 신비롭지 않고 그러니까 사람과 별들의 이름이 더욱더 알 수 없어져 버렸을 때 처음부터 우리에게서 멀어졌던 빛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이야기들보다 더 오랜 빛들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처음에 하나였던 것이 셋이 되었고 다시 하나가 되어 간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가장 먼 곳으로 가자던 당신의 말들이 흰 포말과 함께 부서지고 깊은 물 어둠의 바다를 부유하던 최초의 세포들조차 되돌려지는 시간 속에서 존재를 잃고 다만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던 때 이전의 일들이란 거대한 폭발에 지나지 않았음을 겨우 추측할 수 있을 때 찾아옵니다

 

    둘이나 셋으로 태어나 하나가 되어 가는 당신이 오래된 나라의 오래된 여왕의 이름보다 오래된 당신이 아마도 나의 처음 같았을 당신이 그렇게 멀어져 간 당신이 같은 시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상상할 수도 없는 당신이 시간이란 무엇인지 끝내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 당신이

 

 

 

 

 

 

 

 

 

 

 

 

 

 

작가소개 / 안웅선

1984년 전남 순천 출생. 시집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

 

   《문장웹진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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