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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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파도

 

 

김유진

 

 

 

    연정은 재래시장에서 삶은 유채 나물과 연근, 두부 한 모를 샀다. 갓 튀긴 방울 어묵도 조금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연정은 어묵을 에워싼 채 자글대는 누런 기름을 멍하니 바라보다 뒤를 돌았다. 기껏해야 삼천 원인데. 연정은 스마트폰의 메모장 애플리케이션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장을 보러 가기 전에 필요한 물품을 적어 두고 그 외의 충동구매는 자제하고 있었다. 연정의 머리에 이제 막 갚기 시작한 아파트 대출 이자와 차 할부금이 떠올랐다. 연정의 남편은 두 달 전 연정을 설득해 제네시스로 차를 바꿨다. 영업사원한테 차는 백그라운드 같은 거야. 좋은 차를 타야 뭐라도 있는 줄 안다니까? 연정은 영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 말이 옳겠거니 했다. 의료보험료도 3개월이나 밀렸다. 의료보험료는 돈이 없어서 밀린 것은 아니었지만 3개월 치가 쌓이니 목돈이 되었다.
    연정은 시장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생선 비린내가 훅 끼쳤다가 사라지는 동안, 갓 튀긴 어묵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한 알씩 입에 넣는 상상을 했다. 입안에 퍼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쫄깃한 식감, 그리고 기름으로 뒤범벅된 손가락을 차례로 입에 넣어 혀로 샅샅이 핥는 자신을 떠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양팔에 힘이 쭉 빠졌다. 팔에도 영혼이 있어서 지금 막 육체를 버리고 홀연히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러자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손에 들린 시장 가방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연정은 허리를 깊게 숙이고 네발짐승처럼 두 팔을 질질 끌며 시장 입구를 향해 걸었다. 골목이 좁아 사람들이 자꾸만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연정은 뒤로 나자빠지려는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연정은 시장으로 들어서는 중년 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시장 가방의 무게를 더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방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여자의 눈앞에 가져가며 말했다. 이거 가지실래요? 연정의 말에 상대방이 뒷걸음질 쳤다. 네? 이거, 제가 지금 막 산 건데요, 대파랑 유채 나물이랑 두부랑 여기, 안을 보시면 밑에 연근도 있어요. 들고 가기 귀찮아서 그러는데 그냥 가지세요. 여자는 주춤댔다. 말의 진위를 가리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연정은 여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입 꼬리를 올려 의례적으로 미소 짓고는 발밑에 시장 가방을 내려놓았다. 우산이 잔뜩 그려진 연초록색 나일론 가방이 무게 중심을 잃고 대파 쪽으로 기울어지자, 여자가 어머 어머 감탄사를 내뱉으며 자신도 모르게 가방의 벌어진 입구를 추어올렸다. 연정은 시장을 빠져나왔다.

 

    연정은 단지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삶에 회의가 들었거나 일상에 환멸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그냥 몸이 좀 무거웠다. 머리도 아픈 것 같았다. 차가운 바람을 쐬면 나을 것 같았다. 연정은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걸었다. 장바구니가 없으니 팔에 조금씩 힘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굽었던 허리가 저절로 펴졌다. 뻐근한 뒷덜미를 매만지며 정수리를 곧추세워 보았다. 틀어진 뼈들이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연정은 짐승에서 인간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 생각이 재미있어서 설핏 웃음을 흘렸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하염없이 걷던 연정은 발을 멈추고는 새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광역 앞이었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깐 더덕을 파는 노인을 피해 입구 가까이 다가갔다. 계단이 낭떠러지처럼 가팔라 보였다. 연정은 손잡이를 짚으며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
    역사 안의 원형 벤치 앞에서 연정은 외투 주머니를 뒤지다 말고 벽 쪽으로 몸을 틀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검은색 모직 코트와 엉덩이를 살짝 덮는 길이의 굵은 짜임이 들어간 베이지색 스웨터, 검은색 레깅스와 민무늬 플랫 슈즈를 차례로 훑었다. 맨발의 납작한 발등 위로 도드라진 푸르스름한 혈관들이 초라해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연정은 단발머리 한쪽을 귀에 꼈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 보다가 다시 머리카락으로 귀를 덮었다. 작은 칼귀라 그런지 영 폼이 안 났다. 정전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달라붙어 풀풀 날렸다. 손바닥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전보다 더 심하게 뻗쳤다. 짜증이 난 연정은 개찰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잡히는 것은 휴대폰이 전부였다. 접이식 휴대폰 케이스 안쪽에 끼워 둔 교통카드 겸용 신용카드를 꺼냈다. 사용할 때마다 항공사 마일리지가 쌓이는 카드였는데, 결제 금액이 적어서인지 마일리지 적립률이 인색해서인지 4년 동안 쌓은 마일리지로는 제주도조차 갈 수 없었다.
    연정은 상행과 하행을 확인하지 않고 가까운 개찰구로 들어갔다. 플랫폼에 도착해 보니 하행선이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냥 바람을 좀 쐬고 싶을 뿐이니까. 언제든 되돌아가면 그만이라고, 연정은 생각했다.
    점심시간을 갓 지난 평일이라 열차 안은 한산했다. 연정은 빈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창을 열었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어차피 퇴근 전엔 들어갈 것이었다. 연정은 휴대폰 케이스 커버를 닫았다. 열차 시트 아래에서 온풍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온기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발등이 얼어 있었나 보았다. 11월 초순이었지만 제법 바람이 찼다. 곧 발 전체가 땡땡하게 부어올랐다. 플랫 슈즈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연정은 신발을 반만 벗은 뒤 발가락을 쫙 폈다가 오므리곤 다시 신발에 발을 끼워 넣었다. 경직됐던 몸이 노곤하게 풀리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연정은 무악재역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연정은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친정아버지가 침상을 지켰다. 늙은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도 창백하게 질려 있어, 연정은 죽어가면서도 그의 미약한 심신이 걱정될 정도였다. 아버지를 달래고 싶었지만, 말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전에 목구멍에서 힘없이 사그라졌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연정은 그것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인지 아버지에게서 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차피 둘 다 쇠락해 가는 중이었다. 다행히 냄새는 곧 가라앉았다. 그러나 연정은 냄새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후각이 기능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숨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잦아들어 갔다. 서서히 느려지는 호흡이, 마치 단조로운 선율의 경음악처럼 감미롭게 들렸다. 연정은 잠시 낭만적인 기분에 휩싸였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신체 말단부터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죽기 시작하는구나. 연정은 죽는 것이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아쉽지도 홀가분하지도 않았다. 죽음의 순간은 어떠한 가치 판단이나 감정도 개입하기 어려운 엄연함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순식간에 눈앞이 어두워졌다. 곧이어 조금 더 깊은 어둠이 연정의 의식 위로 내려앉았다. 그것은 연정이 경험한 가장 완벽한 암전이었다. 적막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정은 자신의 몸을 끝없이 문지르는 누군가의 손을 느꼈다. 등에 닿는 감촉이 축축하고 차갑고 미끈한 것이 마치 타일 바닥 같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 아득했다가, 차츰 크고 또렷해졌다. 연정은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쪼아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서서히 시력이 돌아왔다. 구석에 낯익은 민트색 반신욕기가 보였다. 익숙한 공간이었다. 우리 집 욕실이네. 눈이 빛에 완전히 익숙해지자 연정은 고개를 들었다. 손에 때수건을 낀 벌거벗은 여자 하나가 연정의 정강이를 밀고 있었다. 티끌 하나 없는 눈부신 나신이었다. 그런데 여자 얼굴이 낯이 익었다. 연정은 상체를 일으켜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우리 언니잖아.
    여자는 연정의 죽은 언니였다. 5년 전 미시령 톨게이트 부근에서 추돌사고로 사망했다.

 

    연정은 역삼동에 있는 비즈니스호텔 앞에 서 있었다. 올봄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저녁을 먹었던 뷔페 레스토랑이 이 호텔 3층에 있었다. 그날 남편은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눈으로 연정의 테이블을 찾아낸 그는 자리를 안내하는 레스토랑 매니저를 앞질러 큰 보폭으로 걸어왔다. 의자에 점을 찍듯 앉았다가 일어나더니 다짜고짜 가자, 라고 말했다. 연정은 변명도 사과도 없이 진열된 음식을 향해 돌진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양복 재킷 안감이 터진 채 바깥으로 빠져나와 너덜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연정은 재킷을 벗으라고 말하려다 관뒀다. 와이셔츠 역시 볼품없이 구겨져 있을 것이 뻔했다.
    연정이 접시에 샐러드와 냉국수, 버섯볶음과 참치 초밥 두어 개를 오밀조밀하게 담아오는 동안, 남편은 LA갈비를 산처럼 쌓아왔다. 다른 손에는 물김치가 담긴 작은 볼도 들려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서버를 불러 뷔페 메뉴에는 없던 흰밥을 한 공기 시켰다. 이게 여기서 단가가 제일 셀걸. 빠른 속도로 갈비만을 공략하는 그는 여러모로 능숙해 보였다. 너무 자주 와서 더 볼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는 듯 굴었다. 남편의 그러한 태도는 연정에 대해서도, 결혼기념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겨우 세 번째인데. 연정은 납작한 갈비뼈를 갈고리 모양으로 잡고 있는 그의 엄지와 검지를 바라보았다. 넓적한 미색 손톱과 개구리 발처럼 끝이 둥근 투박한 손끝이 육즙과 기름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 뒤로 남편은 네 번 더 LA갈비를 가져다 먹은 뒤에야 맥주 한 잔을 받아왔다.
    파스타를 담던 연정은 빈 LA갈비 트레이 앞에서 접시를 들고 서성이는 남편을 발견했다.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그녀 역시 남편처럼 물김치를 떠다 먹었는데, 남편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고 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정이 호텔 투숙을 결정한 것은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열차 안에서 잠이 깬 연정은 자신 앞에 병풍처럼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누구도 연정을 쳐다보진 않았지만, 모두가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기에 연정은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었다. 침이라도 흘렸을까 싶어 마른 입가를 닦아냈다. 열차가 멈춰 서자 연정은 역을 확인하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기라도 하듯 출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교대역이었다.
    연정은 역사를 빠져나왔다. 교대역은 친정아버지의 한약을 지어 주러 온 적이 있었다. 원장이 워낙 유명해, 예약 후 진료를 받는 데까지 3개월이나 걸렸다. 그 덕인지 친정아버지는 지금껏 연정의 유일한 혈육으로 살아남았다. 아버지는 연신내의 허름한 빌라에서 홀로 살았다. 퇴직금으로 아래층 집을 사들여 세를 놓았다. 워낙 외진 투룸 빌라여서 용돈벌이 정도밖에 안 됐다. 연정의 아버지는 월세와 연금으로 병원비와 약값을 충당하며 연정에게 손 벌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갔다. 성실한 삶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 그것은 연정에게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달리 말하면 아버지가 살아생전 연정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연정은 큰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풍경은 익숙했지만, 곳곳에 변화가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곧이어 낯선 풍경이 이어졌으나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두어 차례 지하보도를 오르내리자 번화가가 나타났다. 대형 멀티플렉스와 TV에서 명소로 소개된 햄버거집, 4층짜리 스파 브랜드의 옷가게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연령대나 옷차림도 사뭇 달랐다. 커피색 스타킹에 짧은 청미니스커트를 입고 품이 큰 야구 점퍼를 걸친 10대 무리가 지나갔다. 젊고 밝았다. 혹은 바쁘고 활기가 있었다. 강남역을 지나자 역삼역을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나타났다. 연정은 불현듯 멀지 않은 곳에 있을 비즈니스호텔이 떠올랐다. 뷔페 레스토랑의 이름도 기억났다. 레스토랑의 상호가 ‘카페’여서, 남편에게 여러 번 되물은 기억이 있었다. 레스토랑이 아니라 카페야? 거기서 밥도 팔아? 아니 멍청아, 레스토랑 이름이 카페라고.
    남편은 늘 친구처럼 편안했다. 격의도 없었다. 때로 너무 예의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부부 사이에 예의란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다. 익숙함과 설렘을 동시에 가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문득 연정의 머릿속에 기억이란 수족관의 광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스쳐 갔다. 밑바닥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것이, 뜰채로 휘저어 수면 위로 건져 올리면 생생하고도 격렬하게 팔딱거리지 않는가.
    호텔 입구에 도착한 연정은 다리가 아팠다. 플랫 슈즈의 밑창이 너무 얇아, 발바닥 근육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초고층 빌딩의 유리 마감재 위로 주황색 빛이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연정은 시간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고 싶지가 않았다. 볼이 얼얼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연정은 자연스레 로비 버튼을 눌렀다. 조금 쉬었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연정은 스탠더드 더블 베드룸을 결제했다.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 정도는 자신에게도 쓸 권리가 있었다. 객실은 9층에 있었다.

 

    욕조에 물을 받는 동안 연정은 세면대에서 브래지어와 팬티를 빨았다. 오래 입은 속옷은 이염과 마모로 원래 색을 알기 어려웠다. 물에 젖은 브래지어의 레이스가 너덜너덜했다. 훅 주위로 잦은 마찰에 일어난 보풀들을 잡아 뜯었다. 패드의 물기를 쥐어짜며 고개를 들자, 나체로 속옷을 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 보였다.
    세면대 아래 수건걸이에 속옷을 널어 둔 연정은 발끝부터 조심스레 욕조에 담갔다. 물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렇다고 찬물을 섞고 싶진 않았다. 수만 개의 세침에 찔린 듯 물에 잠긴 피부가 따끔거렸다. 연정은 손가락 지문이 허옇게 불어날 때까지 욕실에 머물렀다.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몸을 닦았다.

 

    너 어디야? 아, 내가 말 안 했나? 무슨 말을 해, 니가? 나 대학 동기 모임 왔어. 저녁 먹고 갈 거야. 무슨 대학 동기 모임을 해, 너 친구 없잖아? 왜 이래, 나 친구 있어. 너 친구 만나는 거 본 적 없는데? 친구 없는 사람이 어딨어? 아 몰라, 언제 와? 저녁만 먹고 갈게.

 

    침대에 누워 TV 채널을 돌리던 연정은 남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연정은 리모컨으로 소리를 줄이고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미리 생각해 둔 것은 아니었지만 거짓말도 자연스레 나왔다. 남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남편은 원래 무신경했다. 연정은 살면서 그것이 그의 성격 중 대단히 훌륭한 덕목으로 여겨질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연정은 남편을 좋아했다. 남편은 장점이 많았다. 생활력이 강했고 자신에게 맞벌이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가족계획에 대해서도 느긋한 편이었다. 자기 과시적이고 속물적인 경향이 있었지만, 그것을 위선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은 단점을 상쇄할 만한 장점이었다. 남편은 거래처로 보내는 명절 선물 중 가격이 저렴해 티가 덜 나는 것들을 빼돌려 연정의 아버지에게 보내곤 했다. 아버지는 때마다 화과자나 녹차 티백 세트, 생강청 등을 받았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는 그것들을 받는 족족 세입자에게 나누어주곤 했지만, 마음만은 고맙게 여긴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연정은 매번 ‘마음만은’을 발음하는 아버지의 목소리 끝자락에서 아쉬움을 느꼈지만, 모른 척했다.
    언니의 죽음 이후 연정은 도망치듯 결혼을 서둘렀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모두가 상처받았기에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었던 탓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함께 치유해 나가는 서사는 그야말로 전래동화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구성원 중 누군가는 덜 상처받아야 가능한 것이었다. 덜 고통 받는다거나, 다른 이들보다 상처를 빨리 극복한 누군가가 있을 때, 이를테면 의사 선생님 같은. 그런데, 그런 것이 가능한 걸까?
    그날 이후 연정에게 집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연정은 결혼 전까지 마지못해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가 언니에게 저질렀던 사소한 악행들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저지른 일상적인 잘못들이 쌓여 언니를 사고가 일어난 그곳으로 밀어 넣은 것 같았다. 대학 시절 용돈을 끊어 무리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게 만들었던 것이며, 학자금 대출을 갚아 주지 않아 죽기 직전까지 빚에 허덕이게 한 것 등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자립심을 키워 준다는 명목으로 악착같이 자신의 노후를 챙기는 아버지가 신물이 났다. 아버지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그때 왜 언니가 만나던 남자를 탐탁스럽지 않아 했는지, 그래서 언니가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가기 위해 가족 모두에게 숨기고 새벽에 몰래 집을 빠져나가게 했는지, 그래서 한 번 더 볼 수 있었던 그 얼굴을 못 보게 했는지, 이른 아침 살얼음 낀 고속도로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어째서 아버지는 매번 나쁜 결정을 내리는지, 왜?

 

    연정은 입고 있던 샤워 가운을 벗었다. 배가 고팠다. 오래간만에 땀을 뺐더니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간절했다. 연정은 수건걸이에 걸어 둔 팬티를 꺼냈다. 브래지어는 하지 않을 참이었다. 옷이 두꺼워 티 나지 않을 것이었다. 남편은 종종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채 티셔츠를 걸치고 외출하려는 연정을 붙잡아 세웠다. 야, 미쳤어? 다 티나. 연정은 코웃음을 쳤다. 하나도 티 안 나는데? 누가 다른 사람 가슴만 뚫어져라 보냐며 얼버무리려는 연정을, 남편은 기어코 불러 세웠다. 어떤 놈 팔에 스치기라도 하면 어쩔래? 그는 브래지어를 할 때까지 연정의 가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유두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자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연정에게는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50원짜리 동전을 찾는 더벅머리 아이처럼 보였다. 아주 적은 경우의 수에 사활을 거는 어리석음, 그 얄팍한 소유욕이 귀여웠다.
    연정은 수건으로 팬티를 감싸 물기를 대강 제거하고는 헤어드라이어로 건조했다. 나일론 재질이라 금방 말랐다.

 

    바는 2층에 있었다. 홀은 크게 두 개로 나누어 기능했다. 왼쪽엔 출입구와 프런트 데스크로 이어지는 로비가 있었다. 출입구 계단을 내려가면 호텔 뒤편의 옥외주차장이 나왔다. 그 옆엔 객실로 오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오른쪽 절반의 공간은 칵테일 라운지로 꾸며 놓았다. 간이 바가 있었는데, 비즈니스호텔이라 그런지 간단한 주류와 음료수 정도만 판매하는 것 같았다. 라운지 가장 안쪽엔 노트북 전원을 연결할 수 있는 콘센트가 설치된 대형 테이블이 있었다.
    연정은 2층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체크인을 마친 사람들의 손에 인형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여행 가방을 끄는 곰 인형이었다. 그러고 보니 프런트 데스크 한쪽에 샘플 인형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까는 왜 보지 못했지? ‘10주년 기념’이라고 적힌 작은 패널이 직립한 곰의 뒷다리에 기대어 있었다. 연정은 어째서 같은 투숙객인 자신은 인형을 받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직원이 깜박한 것일 수도 있었다. 특정한 호텔 검색 사이트와 연계된 기념품인 것도 같았다. 인형이 갖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연정은 가벼운 소외감을 느꼈다. 여자 혼자 왔기 때문이었을까? 행색이 초라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연정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폈다. 레깅스의 무릎 부근이 늘어나 쪼글쪼글했다. 플랫 슈즈 앞 코가 미세하게 닳아 있는 것을 지금 막 발견했다. 연정은 객실로 돌아가 룸서비스를 시킬까 고민하다가 칵테일 라운지 안쪽의 대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소파에 앉고 싶었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연정은 맥주를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바 담당 서버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프런트 데스크를 제외한 어디에도 호텔 직원은 없었다. 난감했다. 그리고 거북했다. 이 모든 공교롭고도 사소한 일들이, 이곳이 연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임을 증명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연정은 휴대폰을 열었다. 시계는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료했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만한 사람도 없었다. 남편 말대로 연정은 친구가 없었다. 참석할 송년회 하나 없이 집에서 연말을 보낼 때면 남편은 연정을 끊임없이 놀려대곤 했다. 그러나 진지한 태도는 아니었다. 연정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성격이 모나서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자평했다. 이제는 남편이 곁에 있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다.
    연정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상단에 링크된 신문기사를 차례로 열어 보며 직원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맥주 드실래요?
    연정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연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정은 남자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인지 확신하지 못해 눈만 껌벅댔다. 저 지금 맥주 주문하러 바에 갈 건데, 같이 주문해 드릴까요? 기다리는 것 같아 보여서요. 남자는 연정을 응시하며 다시 한 번 나긋나긋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는 줄곧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몰두하고 있어서 투명한 벽으로 둘러싸인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가 연신 두리번거리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니, 일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 네. 연정은 머리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남자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바를 향해 걸었다. 바에는 내내 없던 직원이 자리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여행 작가 교실의 간사라고 소개했다. 내일 군산으로 출사를 갈 예정인데, 세부 일정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노라고, 묻지도 않은 설명을 덧붙였다. 무척이나 목이 말랐던 연정은 그가 말을 하는 동안 금세 맥주 한 잔을 비웠다. 연정이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남자는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그토록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던 직원은 그가 손을 가볍게 드는 것만으로도 먼 곳에서 알아채고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연정이 찾았을 땐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기념품과 마찬가지로, 단지 자신이 운이 없었던 것뿐이었을까?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연정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야 자연스럽게 상황이 흘러간다고 느꼈다. 의자도, 맞은편에 앉은 그도, 이 호텔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연정에게 묻지도 않고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직원은 연정의 맥주잔 옆에 놓인 객실 카드를 열어 방 번호를 적어갔다.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레 여행 작가 교실로 흘러갔다. 그는 회원 수가 만 명가량 되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오프라인 강좌도 분기별로 열리는데, 한 강좌 당 수강생 수가 50명에 이른다고 했다. 매달 명사들을 불러 특강을 열었다. 그가 대는 이름 중 반수는 연정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인문학자, 소설가, 시인, 방송국 PD 등 분야도 다양했다. 그는 그 자신이 세 권의 여행기를 낸 작가이면서 카페의 주인장이고, 여행 작가 교실의 강사이자 간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때때로 다 그만두고 싶지만, 회원들의 열정과 지속해서 배출되는 좋은 글들 덕분에 가까스로 버티고 있노라고 말했다.
    여행 에세이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깨달음입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요소를 통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여행기는 그 반대입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 경이로운 자연 관경, 인상적인 순간을 통해 인생의 보편적 진리를 깨닫고 겸허히 수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그래서 여행기 역시 흐름이 중요합니다. 소설이랑 비슷해요. 혹시 소설 써보셨나요? 작중 인물이 부푼 꿈을 안고 모험 길에 올라 성장하고 귀환하지 않습니까? 여행기 역시 이러한 전통적 서사 원리 안에 있어야, 읽는 이에게 감동을 유발한답니다. 여행 중 마주치는 어려움을 우연과 인연, 재기로 이겨내고 무사히 집으로 발길을 돌릴 때의 기쁨과 아쉬움을 진득하게 써주는 것이 좋습니다. 결정적으로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진실성이겠죠? 여행기는 꾸미면 안 돼요. 투박하더라도 내면의 진정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연정은 그가 무척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인상도 순식간에 변했다. 여행과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할 땐 청년처럼 순수하고 자긍심에 찬 눈빛을 하다가도, 은밀한 등산모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닳고 닳은 느낌이 들었다. 산에서 종종 바지 한쪽을 정강이까지 걷어붙이고 다니는 사람들 본 적 있습니까? 그게 일종의 짝짓기 표식이랍니다. 수꿩이 암컷을 향해 깃을 활짝 열어 보이는 것이랑 같은 의미라는 겁니다.
    연정은 그의 농담에 맞장구치며 웃어보였다. 곧이어 자신의 웃음소리가 묘하게 들떠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이내 자리가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직원이 연정의 방 번호를 적어갈 때 그가 힐끔 쳐다본 것도 같았다. 연정은 유리컵 바닥에 고인 물처럼 남은 맥주를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자리를 파하려는 셈이었다. 그러나 연정이 입을 열기 직전, 그가 재빠르게 말을 낚아챘다.
    우리 그만 일어날까요?

 

    연정은 객실로 돌아가기 전에 편의점에 들렀다. 컵라면 한 개와 맥주 두 캔을 집어 들었다. 소시지도 하나 골랐다. 술을 좀 더 먹고 싶었다. 살짝 취기가 오르니 허기가 졌다. 편의점 창 너머로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거대한 건물의 허리께가 보였다. 계산을 마친 연정은 편의점 문을 나섰다. 테헤란로를 따라 물길을 막는 거대한 둑처럼 초고층 빌딩들이 도열해 있었다. 건물 뒤편으로 잎맥처럼 섬세하게 퍼져 나간 골목에 술집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연정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공중에 입김이 서렸다.
    남자는 헤어지기 직전, 연정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여행 작가 김경석. 연정은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발음해 보았다. 남자의 이름 아래엔 이메일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내일 군산 출사, 같이 가지 않을래요? 남자는 어느덧 한없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청년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내일은 20명 정도가 참여합니다. 사진 작가분도 참여하실 예정이라, 눈으로 보기만 해도 꽤 재미있을 겁니다. 원래 참가비가 센데, 저의 재량으로 그냥 조용히 따라오시면 됩니다. 남자는 정중했다. 크게 강요하지도, 재미를 과장하거나 부풀리지도 않았다.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믿을 만한 사람인 척하는 것인지 연정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솔깃한 제안인 것은 틀림없었다.
    연정은 책상 위에 명함을 올려 두었다.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집결이었다. 연정은 서둘러 맥주 캔을 땄다.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렸다.

 

    연정은 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협탁 위에 둔 휴대전화를 들었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새벽 6시부터 30통의 전화와 7개의 문자를 보냈다. ‘너 미쳤어?’로 시작된 메시지는 ‘무슨 일 있는 거야? 문자 보면 제발 연락 줘’라는 애절한 내용으로 변했다가, 곧 ‘집에 들어오면 가만 안 둘 줄 알아’라는 협박으로 이어졌다. 연정은 남편에게 답장하려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부리나케 욕실로 뛰어갔다. 6시 40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용산역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연정은 시간을 확인했다. 7시 26분이었다. 연정은 용산역 광장을 좌우로 가로질러 보았다.
    20여 분을 기다린 연정은 주머니에서 남자가 준 명함을 꺼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사이 남편에게서 두 통의 부재중 전화가 더 걸려와 있었다. 지금쯤 남편은 출근 중일 것이다. 남자는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자 곧장 전화를 받았다.
    김경석 씨 되시나요? 저 연정이에요. 어젯밤 바에서. 네, 좋은 아침이네요. 그런데 광장에 아무도 없어서요. 제가 시간을 착각한 것일까요? 아…… 7시 30분 열차였었군요.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살짝 취해 있어서 잘못 들었나 보네요. 아, 지금이요? 아…… 한번 알아볼게요. 네. 네에. 아…… 여보세요?

 

    연정은 8시 36분 발 열차표를 샀다. 그가 군산항 근처의 중국집 이름을 대는 동안 전화기 전원이 꺼져버렸다. 배터리가 다 된 것이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사 안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샀다. 급하게 나오느라 일어나서 지금껏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연정은 꺼진 휴대폰 액정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남편에게 연락했어야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러지 못했다. 연정은 어제 시장에서 맡았던 어묵 냄새가 꿈결처럼 느껴졌다. 유년의 한 장면처럼 아득했다. 그로부터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서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것만 같았다. 무엇이 자신을 용산역 플랫폼에 서게 했던 것일까. 분간할 수 없었다. 마치 비죽 솟아난 새치만 뽑으려 애쓸수록 검은 머리카락이 딸려 나오듯, 자명한 진실이 안개에 가려진 듯 흐릿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했다. 남편이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지, 군산에 도착하면 그들을 만날 수는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맥이 풀렸다.
    열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잠이 쏟아졌다. 아침부터 찬바람을 맞은 탓인가 보았다. 숙취 때문인 것도 같았다. 연정은 점점 빠르게 뒷걸음질 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연정은 종종 이런 꿈을 꾸었다.
    언니의 장례식이었다. 그런데 상주인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연정은 건물을 오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다. 엘리베이터는 운행이 중지되어 있었다. 연정은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온몸이 땀에 젖었다. 상복 솔기에 겨드랑이가 쓸려 쓰라렸다. 다른 빈소를 두리번거렸으나,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연정은 언니의 빈소로 돌아왔다. 빈소 옆에 마련된 방에 들어서자, 친척들이 모여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호상도 아닌데. 연정은 그들이 야만적으로 느껴져 방문을 거칠게 닫았다. 뒤를 돌아보자, 아버지는 저곳에 있었다. 저만치서, 조문객들 틈에 끼어 밥을 먹고 있었다. 연정은 아버지에게 달려들 기세로 뛰어갔다. 육개장에 밥을 말아 훌훌 마시는 아버지의 플라스틱 밥그릇을 빼앗아 던져버렸다.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생선전을 먹었다. 가자미식해를 손으로 집었다. 연정이 아무리 그릇을 빼앗아도 계속해서 아버지의 식탁에 접시가 올라왔다. 아버지는 게걸스레 절편을 입에 욱여넣었다.
    연정은 그 꿈을 너무 자주 꿔서 이제는 꼭 실제로 있었던 일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군산항의 중국집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이미 점심을 먹고 다음 목적지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들보다 한 시간가량 뒤처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정은 그들의 다음 일정을 알지 못했으므로, 한동안 중국집 홀 가운데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주머니 속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전화기를 빌려 그에게 연락해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연정은 그만두기로 했다. 남자는 충동적으로 제안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자신이 순진하게 걸려든 것일지도 모른다. 눈치 없이 이곳까지 따라와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그의 말이 모두 거짓일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거짓이라면, 그는 어째서 그렇게 수고를 들여서 자신을 속인 것일까? 속이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 외에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연정은 가게 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미지근한 바람이 훅 들어왔다. 연정은 몸으로 바람을 밀며 바깥으로 나섰다. 따듯했다. 그래도 남쪽이라 이건가. 연정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입이 바짝 말랐다. 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은 생수병을 꺼냈을 때, 누군가 연정의 이름을 불렀다. 연정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들자, 가게 앞 주차장에 세워 둔 승합차에서 남자 하나가 내렸다. 그였다. 그가 연정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차는 해안도로를 달렸다. 회원님들을 철새 도래지에 내려주고 오는 길입니다. 엇갈리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그는 미세하게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연정은 자신에게 다가오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뒤편으로 일렁이던 햇빛을 생각했다. 그 순간 밀려오던 안도감과, 그 즉시 찾아온 가벼운 긴장감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했던 거북함을 복기했다.
    연정은 한낮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물결은 잔잔했다. 수면 위로 기름이 자글대듯 햇빛이 부서져 내렸다.
    창가에 뺨을 대고 정수리를 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맞던 연정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추억 하나를 기억해 냈다.
    연정이 일곱 살 무렵의 일이었다. 연정의 가족은 목포의 작은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갔다. 연정은 세 살 터울인 언니를 따라 바다로 갔다. 얕은 해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던 연정의 언니는 조금씩 더 깊은 곳으로 발을 디뎠다. 수영을 곧잘 했던 연정의 언니는 두려움 없이 나아갔다. 연정은 물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무서웠다. 이윽고 발이 지면에 닿지 않게 되자 연정은 덜컥 겁이 났다. 언니의 목에 매달렸다. 그만 나가자고 떼를 썼다. 그러나 언니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욱 수심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사이 물살에 휩쓸린 연정이 언니의 목을 놓쳤다. 사실 자신이 언니의 목을 놓친 것인지, 언니가 연정의 팔을 뿌리친 것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연정의 뇌리에 한 가지 생생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연정을 지켜보던 언니의 냉담한 얼굴이었다.
    연정은 마음에 파도가 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되살아난 기억 때문인지, 운전석에 앉은 남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것이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파도라는 사실이었다.

 

 

 

 

 

 

 

 

 

 

 

 

 

 

 

작가소개 / 김유진

1981년 서울 출생.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늑대의 문장』, 『여름』, 장편소설 『숨은 밤』, 산문집 『받아쓰기』가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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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파도

댓글
  1. 끝처리가 모호하네요. 모호한 결말의 장점은 다시 처음부터 읽어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보는 것이고 단점은 답답한 마음이 든다는 것. 뭔가가 해소되지 않아서. 꼭 주인공의 마음처럼. 그럼 작가는 성공한 것인가.^^

  2. 작품 감상 잘했습니다. 그런데 부부간 갈등이 특별히 도드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주인공의 일탈이 낯설고 서먹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 눈이 침침해서 읽다가 작가가 언급한 곳을 놓친 걸지도 모르지요. 혹시 그렇다면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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