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큐브와 뇌의 색깔 외 1편 -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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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유리큐브와 뇌의 색깔

 

 

김연아

 

 

 

그 집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내 얼굴을 삼킨 너는 차가운 낯빛을 하고
칼을 건넸다

 

유리벽
나는 너의 그림자 속에
네가 모르는 어둠 속에 있다

 

사막의 밤하늘 같은 뇌의 사진
이 잿빛 유리상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림자가 삐거덕 소리를 내자 나는 피를 내놓는다
흰 필름 위에 씌어진
홀쭉한 나의 육체

 

어떤 번개가 너의 눈을 때렸나
갈라진 말들이
불꽃처럼 내려앉는다

 

사방은 온통 귀먹었고
흙이 섞인 포도주 냄새가 났다

 

달이 우리의 피를 교환하는 동안
한 눈에는 밤이, 한 눈에는 낮이
빠져나갔고

 

나는 어두운 유리를 뚫고 그림자 속으로 날아갔다
발아래 형광빛 꽃들이
커다란 원판 시계처럼 이어졌다

 

산 채로 서로를 재 속에 묻는 동안
백야의 밤 동안

 

나는 거미이고 박쥐이고 새벽의 기다림이고

 

밤은 또 잠꼬대를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 뒷구절은 여전히 뇌의 색에 잠겨 있다

 

 

 

 

 

 

 

 

 

 

 

 

 

백합의 밤이 되러 갔다

 

 

 

한 남자가 아이 손을 잡고 얼음길을 간다
갓 다림질한 셔츠 냄새를 풍기며

 

아래는 그늘을 드리운 못이 입을 벌리고 있다
솨,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추락한다
못 속으로. 입 속으로.

 

마, 메, 미, 모, 무
끝없는 소리가
웅성이다 사라져 간다
나는 침대에 누워 듣는다
내 심장에서 사라져 가는 목소리를 듣는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울린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조금 차갑고
북구의 빛에 물들어 있다

 

흰 벽에 붙여두고 보았던 북극 지도
아버지와 함께 가보고 싶었던 곳
얼어붙은 비누거품 같은 땅

 

그는 날씨의 모습으로 나에게 오고
나는 꿈속에 울었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투명한 상자에 담겨 있다
아이의 배냇머리로 만든 붓과 함께

 

건너갈 수 없는
북해 속에서
파란 보랏빛 석양이 운다
자신의 목소리에서 물러나
그는 백합의 밤이 되러 갔다

 

 

 

 

 

 

 

 

 

 

 

 

 

 

작가소개 / 김연아

함양 출생.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200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달의 기식자』(문예중앙, 2017).

 

   《문장웹진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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