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과 새와 사자 외 1편 -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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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성냥과 새와 사자

 

 

이문숙

 

 

 

창살에 바짝 붙어, 살짝 코 빠진 스웨터 같은 목소리로 홍알홍알 우는 '붉은머리성냥새'.

 

내가 최초로 불꽃을 켜본 때는 언제였을까. 

 

존 버거John berger의 '로자를 위한 선물', 성냥 상자에 새겨져 있는 '목도리딱새'. 목도리딱새는 '딱' 성냥이 켜지는 순간, 그 목소리로 울까. 

 

그 아래 적혀 있는 러시아 키릴 문자로 '노래하는 새들'.

 

그 안에는 성냥갑 18개가 열여덟 종의 명금과 함께 세 줄로 나란히, 머리가 녹색인 성냥이 각기 60개씩 들어 있다는데. 

 

기억은 믿을 수 없는 금속 창살의 아라베스크. 나는 아홉 살의 60분 60초로 달아나네. 

 

기억의 표면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자유로운 시선을 간섭하는 사사로운 감정의 장식 취향.

 

그러나 기억의 푸른 급류는 한달음에 뛰어가, 내가 피웠던 최초의 불꽃을 데려오지. 

 

수없이 그렇게 무섭도록 '치익 칙' 그어댔지만, 성냥은 기억의 털실처럼 허약하여, 수차례의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네. 

 

붉은 성냥 머리는 불꽃도 일으키지 못한 채, 까맣게 좌초되었네. 발아래 쌓여 있던 작은 불꽃의 통통배들. 

 

그 최초의 성냥은 그토록 선명한 '비사표' 성냥. 날개를 가진 사자가 그려진 팔각형의.

 

그것은 아궁이로부터 가장 먼 찬장 구석에 숨겨져 있었네. 누가 보았던 것인지 알 수없는 '렌의 애가' 같은 오래된 책과 함께.

 

로자는 감옥에서 새와 담소했네. 성냥의 두 번째 줄에는 로자가 감옥에서 보았던 '붉은가슴방울새'. 

 

1917년 로자는 포즈난 감옥 속에서 '흉내지바뀌'가 연설가 같다고 생각했네. 빠른 전개와 고양된 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치는 괴짜새. 그리고 그런 명금의 울음이 담긴 성냥알들. 

 

나는 그 성냥을 켜고 싶은 호기심이 늘 꼬르락거려서, 빈집에 혼자 있는 응축의 순간을 기다렸네.

 

마당에 흐시르 피었던 샐비어의 열꽃이 뺨 위로 어른대면서, 성냥통의 사자는 나를 부추겼네. 

 

이 성냥통이 '붉은 감옥' 같다고. 어서 내게 날개를 달아 달라고. 이 감옥 속의 무력하고 확신 없는 반복적인 '연설의 포효'를 멈춰달라고. 

 

나는 긋고 또 그었네. 부러지고 꺾이고 유황에는 직선이 그어지고 겹치고 더 이상 그을 자리가 없어질 즈음. 

 

'성냥갑 하나에는 60개의 성냥, 일 분에 육십 초, 한 시간에 육십 분이 있는 것.'

 

깜박 사자가 날개를 폈네. 그 순간, 나는 찬장 속의 오래된 책 한 장을 북 찢어, 불을 붙였네. 손바닥이 화안해지면서, 불꽃은 '치익 칙' 명금처럼 울었네. 

 

비사표 성냥 속에 깜박 잠든 불꽃. 날개의 문양이 미세하여 지금도 그 불꽃은 나를 붙들고 으르렁대는 사자. 사자의 번쩍거리는 갈기. 

 

어떤 문장이든 어떤 시절이든 파국은 오지. 그 파국은 부침하다가 고양되고, 미약하지만 전진하기 마련. 수치감이 나를 붙들어 흔들 때, 그때 켰던 최초의 불꽃은 오지. 

 

로자가 보았던 파란 박새가 지저귀며, 파란 불꽃의 심연을 보여주네. 

 

나는 존 버거가 그의 배관공 친구와 했던 '얼간이'라는 카드놀이를 하고 싶네. 자신이 가진 모든 카드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 

 

'비사표 성냥' 한 통을 다 버리고 간신히 켠 '얼간이 불꽃' 하나 놓지 않고 지키는 놀이. 

육십 개의 성냥 속에 육십 초, 육십 분의 깜박거리는 시간이 들어 있는,

 

그때 존 버거의 말처럼, '성냥은 잠재적인 불꽃입니다.' 

 

그때 내 부끄러움처럼, '깜박 사자 속에 잠든 불꽃'입니다.

 

* 존 버거의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confabulations'

 

 

 

 

 

 

 

 

 

 

 

 

 

순록과 20년

 

 

 

잔설이 얼어붙은 길, 잔뜩 웅크린 채 걷는다. 내 앞으로 순록 한 마리 지나간다. 발은 그 뿔의 미로에 걸려 나동그라진다. 

 

테스트 씨는 그런 나를 목격했다. 내 팔을 낚아채고, 그가 혼자 자주 가는 예스런 '빛의 연못'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의 서재는 20년 동안 비워졌다. 모든 종이를 불태웠다. 

 

20년간, 누워 있던 침대는 삐꺽거렸다. 그는 '널빤지' 항해를 한다. 널빤지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다. 해변에 빼곡한 묘지를 본다. 묘지의 묘비명과 생몰연대와 이름을 본다. 

 

폴 발레리는 어느 날 모든 책을 처분한다. 20년 동안 침묵한다. 텅 빈 서재에서 오직 테스트 씨와 동거한다. 

 

이십 년, 이십 년. 그 세월 동안 테스트 씨는 머릿속에서 빙빙 도는 서너 마리 금붕어들이 '멍청한 이름의 광기'로, '하찮은 생각들의 장식'으로 흰 배를 뒤집고, 마침내 '물의 침대'에 눕는 걸 목격한다. 20년이라는 시간의 와상. 

 

나는 테스트 씨의 손을 잡고, 생각의 검은 내장 같은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20년 동안 걸어, 그가 사랑하는 돌 테두리가 소매처럼 헌 연못에 간다.

 

테스트 씨와 나는 나란히 쪼그리고 앉는다. 같은 트랙을 끊임없이 돌고 있는 금붕어들을 본다. 피부병처럼 빛은 수면 위에 번진다. 

 

20년의 트랙이 수면에 오래된 길처럼 팬다. 거칠게 순환하던 바퀴는 그 홈에 끼여 꿈적하지 않는다. 

 

테스트 씨는 그 위에 널빤지 배를 띄운다. 거칠고 나른한 해풍은 '위대한 사람은 과오로 얼룩졌다.'고 소리친다. 위대한 책들이 재가 되어 연못으로 떨어진다. 

 

테스트 씨는 연못 앞 식물표본 팻말을 들여다본다. 'Sisymbrifolium'. 괴상한 이름이다. 이 '꾸밈씨들의 정원'. 바보 폴리들folly의 정원. 

 

이런 종류의 팻말을 읽으며 하루의 산책은 끝난다. 그 팻말 속의 난해한 학명들을 읽으며, 그토록 집착하고 사로잡혔던 '나'는 삭제된다. 그는 일체를 목격하는 제대로 된 테스트 씨가 된다. 가장 '불가능하고 새로운 두뇌tete’. 

 

테스트teste는 목격자testie, 과잉된 '나' 속에 연약함과 결핍과 그 결핍의 처녀들을 보는 자. 

 

20년 동안, '나와 나 사이에 있던' 나를 하얀 밤 속에 목격한 폴 발레리는 20년의 침묵 끝에 '해변의 묘지'를 이 세상의 꾸밈씨들의 정원에 내놓는다

 

20년, 20년, 20년. 미성년이 성년이 되는 성년의 밤. 그 성년의 밤을 나는 어느덧, 세 번이나 지나간다. 

 

테스트 씨, 저에게도 널빤지 하나 주세요. 

 

순록대학에 가면, 순록의 학명과 짝짓기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한다. 어느 백야의 항구에선 겨울철 별미인 대구의 혀를 자르는 칼을 네 살 아이에게 선물한다

 

대구의 긴 턱을 날카로운 송곳에 우선 꽂는다. 그러면 혀가 늘어진다. 순간 칼로 혀를 벤다.

 

20년이 지나, 성년이 된 아이는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어부가 된다. 

 

20년, 그래 20년.

 

*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

 

 

 

 

 

 

 

 

 

 

 

 

 

 

 

작가소개 / 이문숙

1958년 경기도 금촌 출생.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5년 『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다』, 2009년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2017년 『무릎이 무르팍이 되기까지』.

 

   《문장웹진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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