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모임 – 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 김주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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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문장 웹진 독자 모임

– 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김주선(사회, 문학평론가), 김영삼, 송민우, 이다희, 이서영

 

 

 

김연수 「그 밤과 마음」
《현대문학》 2018년 1월호
최정화 「거실장 한가운데」
《문장 웹진》 2018년 1월호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2017년

 

김주선 : 지금부터 《문장 웹진》 독자모임 좌담회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1회 모임인만큼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평론가 김주선이라고 합니다.

 

송민우 : 저는 이번에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등단했고 조선대 석사 졸업 예정인 송민우입니다.

 

김영삼 : 저는 전남대에서 강의하는 보따리 장사이고 문학을 좋아하는 서생입니다. 김영삼이라고 합니다.

 

이다희 : 저는 201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시를 쓰고 있는 이다희입니다. 조선대 석사를 수료했습니다.

 

이서영 : 안녕하세요. 저도 조선대학교 문창과 대학원 진학 예정인 이서영입니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서 함께하게 됐습니다.

 

김주선 : 지난 독자모임에서는 소설을 중심으로 좌담이 진행되었는데 이번에는 시와 소설을 동시에 다루기로 했습니다. 오늘 좌담에서 이야기할 작품은 김연수의 「그 밤과 마음」(《현대문학》 1월호), 최정화의 「거실장 한가운데」(《문장 웹진》 1월호), 신철규의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 2017)입니다. 먼저 김연수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송민우 : 저는 이 작품이 북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서 생소하기도 했고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겨울이라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백석의 본명이 기행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었고요.

 

김주선 : 자유롭게 이야기해 달라고 했는데 중간에 개입해서 어색하게 됐습니다만 이렇게 실존 인물을 다루는 것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도 김연수 작가는 『꾿빠이, 이상』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 김연수 작가가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팩트를 거점으로 상상과 추리력을 가미해서 아주 감각적인 문장으로 픽션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 뒤에 다룰 최정화의 작품과 굳이 비교하자면 김연수의 이번 작품은 거짓의 세계에서 사실임직함이 정말 사실적으로 건설되는 작품이고 최정화의 작품은 사실이 거짓의 세계에서 파괴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주선 :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서영 : 저는 김연수 작가가 자기만의 시간화나 구조화를 통해서 인물의 생애를 간파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에 능숙한 작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아름답고 외로운 시편들 너머에서 일렁거리며 닿을 듯 말 듯 느껴지던 시인이, 기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다시 되돌아올 수 있었던 이야기의 장이 마련됐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감동이었습니다. 더불어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의 흘러가 버린 시간을 상상력으로 복원시켜 낼 때 가져야 할 윤리란 무엇인가 고민을 해볼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손수 일궈낸 에피소드를 통해 되살아나는 인물의 생애와, 그 생애를 기꺼이 책임져 내는 작가로서의 복무란 무엇인가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이 소설 속 기행의 시선과 몸짓, 행보를 고스란히 따라가며 읽다 보니 마음이 매우 서늘해지면서도 동시에 뜨거워진 것 같습니다.

 

이다희 : 저는 일단 문장 간의 호흡이 좋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또 김연수 작가가 시에 관한 애정과 좋은 감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와 관련해 특히 눈길이 가는 장면이 몇 개 있는데 대표적으로 기행(백석)을 좋아하는 젊은 여선생(진서희)이 자신의 예전 시(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낭독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어요. 여기서 기행이 자신의 머리가 쪼개지는 경험을 하잖아요. 갑자기 모든 게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고. 그런데 시가 바로 그런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시는 사람을 꿰뚫고 지나가는 힘이 있는데요. 비록 자기가 쓴 시이지만 지금 기행은 유배당한 것 같은 상태이고, 그런 아름다운 시기는 추억으로나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인데, 진서희 씨는 더러운 세상은 버린다는 시의 구절 때문에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까 기행이 그 여자와 시 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 같아요.

 

김영삼 : 원래 백석 시인은 정말 사랑받았던 사람이잖아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정말 눈이 푹푹 내리는 밤에 조곤조곤 낭송해 보면 그렇게 분위기가 뻑갈 수가 없어요. 김연수 작가는 그 시의 분위기를 이 작품에서 잘 살려내는 것 같아요. 삼수에 눈이 펑펑 내려서 세상과 단절될 것 같은, 그리고 고요하고 외롭고 쓸쓸한 그런 분위기를요. 그런데 김연수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런 아름다움보다 기행이 삼수라는 외지고 척박한 곳에 갑자기 툭 떨어진 현실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소설의 표현 중에 “미래나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서 사투리 쓰는 시골 사람들의 솜신에서 녹아내린 얼음물이 바닥을 검게 물들이는 이 해삼역 대합실에 떨어진 사람처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 현실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서희의 낭독을 통해 역설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다시 정리하면 아름다운 시적 분위기의 감상과, 김연수가 상상했던 현실 속의 기행의 쓸쓸함 이 두 가지가 이곳에 공존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송민우 : 기행이 삼수에 도착해서 쓴 시와 편지를 계속 난롯불에 태워버리는데 저는 그게 글쓰기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이 과정 속에서 기행이 남긴 시는 단 한 편인데, 역시 수십 편의 시가 쓰여야만 남에게 읽힐 만한 시 한 편이 탄생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닿지 못하는 마음’이란 것도 시적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 편지라는 게 굉장히 오래된 모티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김주선 : 마음이 따뜻해지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김영삼 : 저는 자꾸 다른 생각이 들어요. 예고한 대로 저는 좀 삐딱해지겠습니다.
여기서 삐딱함은 김연수가 깔아 놓은 소설적 장치의 함정에 빠지는 것에 대한 삐딱함입니다. 저도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백석 전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밤에. 이건 밤에 읽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아요. 마침 또 눈이 오더라고요. 바로 이런 서정적인 백석, 그리고 이 소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시적 분위기, 감각적인 문장들, 이런 것들이 이 소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김연수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 이면의 쓸쓸함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전의 기행에게는 시와 삶이 하나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지금 현재 기행은 시와 삶이 쪼개졌어요. ‘관평의 양’이라는 시가 탄생하긴 하지만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시죠. 그는 세상과 단절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 밤과 마음’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김연수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기행의 쪼개져 버린 마음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송민우 : 저도 말씀하신 내용에 충분히 동의합니다. 저는 단지 그 장면이 서정적인 느낌을 품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까 했던 제 말을 조금 더 보충할게요. 기행이 진서희라는 인물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건 정말 탁월한 설정인 것 같습니다. 자기 시를 낭독하는 진서희 씨를 보면서 기행은 과거 자신이 무언가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는데, 저는 원래 사랑이라는 게 잠깐 왔다가 그냥 가는 거라고…….

 

김주선 : 아, 네……. (웃음)

 

이다희 : 아, 이런……. (웃음)

 

김주선 : 이런 거 다 넣어도 되나요? (일동 웃음)

 

이다희 : 어째서……. (웃음)

 

송민우 : 나중에 검토할 때 (웃음) 그래서 어쨌든 두 사람이 다시는 못 만나서 더 쓸쓸한 아름다움이 부각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다희 : 저는 아까 송민우 평론가께서 말씀하신 난롯불 부분에서 예전에 자주 들었던 시 쓰기에 대한 하나의 태도가 연상됐어요. 시를 쓸 때 불꽃처럼 쓰지 말고 남은 재로 쓰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뜨거울 때 쓰는 것도 좋은데 결국 시는 골방에 들어와서 남은 잿더미를 뒤지면서 쓰라는 말인데, 기행이 죽음을 생각하며 쓴 글을 난롯불에 태워버리는 것에서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연상됐습니다.

 

김영삼 : 저는 이게 창작자와 서생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기행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느꼈습니다. 삼수로 좌천되다시피 하여 자기가 쓰고 싶은 시도 못 쓰는 기행은, 차르 체제에서 쫓겨난 백계 러시아인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게 더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관해 쓰고 있는 게 편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서생이어서 너무 분석적으로 작품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송민우 : 저도 이 소설을 관통하는 분위기가 체념이나 허무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눈이라는 것도 사실 굉장히 상징적인 거잖아요. 눈이란 건 금방 녹는 것이고 계절이 지나면 더 이상 못 보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서영 : 저는 죽음 속에서, 아니면 죽음이 지나간 이후의 자리에서 서술되는 말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적 죽음, 혹은 생체적 죽음이 지나가고 난 후에 재처럼 남는 한 줌의 말이란 무엇일까 싶었습니다. 이 작품을 진행시키는 서술자의 음성이 아주 크게 다가왔고,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상하게도 기행이 영하의 날씨에 축산반 사무실에서 옮겨 적던 「수의학 기본」의 구절들이 눈물겨웠습니다. 가축의 질병에 대한 정의를 옮겨 적는 인물의 모습을 보았을 때, 오로지 병과 방황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스스로라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주선 : 기행이 백계 러시아인들을 보면서 자살을 부러워하는 게 자유죽음이라는 유명한 글귀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어요.

 

김영삼 : 그 ‘죽음’에 대해 보충하자면, 기행의 죽음은 ‘사동적 죽음’에 가까워 보입니다. 과거 자음과 모음으로 구축된 언어의 세계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한 개인에게 가해진 정치적 해석과 판단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언어 세계를 버리게 만들었어요. 기행이 언어적 죽음을 생각하는 건 이렇게 상황에 의해 강제되었다는 점에서 사동적으로 보여요. 피동보다 가혹합니다. 그래서 김연수 작가는 자유를 상실한 문학적 언어의 쓸쓸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김주선 : 안타깝고 쓸쓸하네요. 얘기를 하면 할수록 소설을 잘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영삼 : 실제로 기행의 처지와 같은 상상을 해보면 쓸쓸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삭막함과 건조함이죠.

 

김주선 : 그런 것 같아요. 문학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어요.

 

김영삼 : 모국어를 잃어버린 세계에 산다고 상상해 보면 정말 어려운 게 아닌가 싶네요.

 

송민우 : 다른 독자 분들께서는 이 소설을 꼭 겨울에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계절감이 살아 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김주선 :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두 분도 한 마디씩 해주세요.

 

이다희 : 백석의 빈 공간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잠시나마 메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서영 : 결국 어떤 한 인간의 시간성이나 생애에 대하여 상상력을 가동하려면, 그이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나 애정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주선 : 다음은 최정화 작가의 「거실장 한가운데」입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기조는 지난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가의 특장은 그 기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에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들 어떻게 읽으셨나요.

 

송민우 :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제일 의문이 들었던 게 어머니의 행동이었습니다. 특히 고세영에게 하는 행동이 그렇습니다. 고세영이 남편을 고소하잖아요. 그런데 수십 년간 함께 살았던 남편과는 쉽게 멀어지고, 고세영이라는 인물에게는 연민을 갖고 응원도 하고 도움도 줍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이유가 뭔지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제 취향 문제일지도 모르겠는데, 제목도 그렇고, 거실장 한가운데 뭐가 있다가 없어졌는데 그게 뭔지 추측하는 장면도 나오고, 이게 노골적으로 뭔가 비어 있다는 상황을 지시하는 것 같아서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 제가 보기에는 그런 의도적인 게 이 사람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스타일이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최정화 작가의 소설은 두 개의 세계가 충돌 내지는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칠게 말해 하나는 거짓 또는 가상의 세계, 그리고 또 하나는 사실(fact) 혹은 현실의 세계입니다(아직 모든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어서 이러한 판단이 성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정화 작가의 소설은 거짓/가상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의 독백 내지는 진술을 통해서 거짓/가상의 세계가 사실(fact)/현실의 세계를 파괴하고 균열을 가하는 소설이다, 라고 정리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실장 한가운데」의 어머니는 거짓/가상의 세계를 꾸며내서 사는 인물이고, 아버지 같은 경우는 사실(fact)/현실의 세계 또는 어떤 정상의 세계를 사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뭔가 불결하고, 불편하고, 모자란 것들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어요. 이를테면 고세영 씨가 바로 그런 인물인데요. 정상 세계의 문법을 갖는 사람들은 이들을 밀어냅니다. 그런데 사실 자세히 보면 정상의 세계라고 규정된 그 세계가 도덕적으로 비윤리적입니다. 반면 어머니가 만들어낸 거짓/가상의 세계는 그러한 현실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폭력을 또 다른 폭력으로 비판하고 균열을 내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이 소설의 구도라고 생각됩니다.

 

이다희 : 저는 일단 최정화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진 못했는데요. 저는 어머니의 행위나 마음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어요. 아마 그래서 소설에 진입하기가 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거실장 한가운데」에 등장하는 어머니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김영삼 선생님의 생각과 약간 비슷한데요. 여기서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을 너무 스트레스 받게 하는 사람인 것 같고 타인을 볼 때 자기보다 강한지 약한지를 잘 파악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고세영 씨는 이런 아버지에게 걸려든 거죠. 이런 사람이 가족의 가장이라면 어머니가 히스테릭하지 않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척을 두고 고세영 씨를 응원하는 게 너무 이해가 되고, 어머니가 고세영 씨를 연민으로 대하다가 어느 순간 동조하고 추종하는 태도로 변화하면서 아버지의 세계와 아버지가 맺는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서영 : 저는 『지극히 내성적인』이라는 단편집에서 최정화의 소설을 처음으로 만났고, 그 이후의 작품을 계속 관심 있게 기다리고 있었던 터였기에 반가운 마음이 컸습니다. 최정화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우리가 안전하게 발 딛고 살아간다고 믿는 일상이라는 터전, 그래서 언뜻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이곳이 사실 그렇게 안전하게 고정되어 있는 터전이 아니라는 것, 언제나 변화무쌍한 것이라는 것, 어쩌면 균열이 가 있는 살얼음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할 수 있었기에 좋았어요. 또 사람과 사람의 간극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상상력이 흥미로웠습니다. 무던한 종류의 것이라고 쉽게 치부해 버리거나 판단하는 감정 깊은 곳에 도사린 채 칼을 쥐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음성은 매우 덤덤하게 진술해 내듯 사건들을 진행시켜 내는데, 매복되어 있던 것들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는 과정이 신기했던 것 같아요.

 

김주선 : 네, 지금까지 말씀해 주신 것들이 최정화 작가의 스타일 혹은 지금 다루는 작품이 갖는 특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 됐든 이 소설 속에서는 많은 것들이 또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고 생각할 독자도 많을 것 같습니다. 가령 어머니가 고세영 씨로 하여금 아버지를 고소하게 만든 진짜 이유가 뭘까, 라는 생각을 할 때, 그렇게 하게 만든 어머니의 ‘근본적인’ 성격이나 어떤 계기가 자세하게 씌어 있지 않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어떤 생각이 때론 자기를 무너뜨리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사람이었다”. 이런 문장도 있고, 또 고세영 씨에게 막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건 ‘현상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모호함은 작가의 의도일 텐데, 덧붙여 이런 장면도 있죠. 고세영 씨와 가족이 따로 또 같이 산에 올라갔다 내려올 때 어머니만 유독 소변이 마렵다며 다들 먼저 내려가라고 합니다. 그때 고세영 씨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데요. 여기서 어머니가 20분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아들이 다시 올라가는데 아들은 어머니의 입술에 루주가 새로 발라져 있고 운동화의 일부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 장면에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독자가 생각했을 때 ‘어쩌자는 거지? 허술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여지를 줍니다. 이런 지점은 아까 송민우 평론가가 지적했다시피 너무 의뭉스러워서 오히려 별로인 것 같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일부러 숨겨 놓는 소설적 장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송민우 : 제 생각엔 확실히 이 소설에 단서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독자에게 알쏭달쏭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소설이 수수께끼 풀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김영삼 : 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 어머니가 고세영 씨에게 보내는 어떤 연민이나 공감의 정체가 잘 씌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소설을 뜯어보면 혼밥 하는 사람들에게 배려 없는 식당에 대한 분노나, 특정 리조트를 할인 받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회사 직원뿐이라는 것에 대한 분노, 산에 올라가는데 매표소에 또 직원 할인이라고 씌어 있는 것에 대한 분노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에는 이 사회에서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또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고세영 씨는 바로 그런 밀려난 사람, 약자, 내몰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어머니가 고세영 씨에게 보내는 호의나 연민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로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송민우 평론가가 제기한 의문 – 몇 십 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을 그렇게 간단히 버리는 것에 대해 자세히 씌어 있지 않다는 것 – 에 관해서는 정확히 답을 하긴 어렵지만, 어머니의 고세영에 대한 태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지점에서 개인적인 서사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석되길 바라고 있다고, 저는 느낍니다.

 

이다희 : 저는 김영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너무 공감해요. 아버지의 행동을 보면 어머니가 50년 동안 같이 산 사람이어도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보여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아버지는 주변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아버지가 이해가 안 됐어요.

 

이서영 : 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정말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 같았어요. 아버지의 세속적인 면에서 능숙한 모습은 어딘가 얄밉기도 하고, 어머니가 또 왜 그렇게 고세영 씨를 응원하고 부추기는가에 대해 제가 정확히 설명해 내긴 어렵지만 묘하게 납득이 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이렇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이 어딘가 상징적이고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런 게 깔끔하게 장면의 판을 맞춰내는 작업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근력이 매우 딴딴하고 튼튼하다는 느낌 속에서 읽어 갔습니다. 또 그 특유의 의뭉스러움이 뭔가를 계속 상기시키고 감지하게 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결국 이 이야기가 제시하는 흐름을 매우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송민우 : 아버지와 고세영 씨 사이에 있었던 사건의 내막은 사실 독자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프레임을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는 가해자,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 이렇게 확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김주선 : 확실히 소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열려 있어서 각자의 관계로 인한 해석에 어떤 특정한 해석만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김영삼 : 물론 해석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사회적 메시지는 뚜렷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몫이 없는 자인 고세영 씨에게 아버지가 했던 행동들에 관해 우리는 충분히 생각해야 하고, 그런 생각의 일단을 어머니가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송민우 : 저는 약간 걸리는 지점이, 선생님께서는 선악 구도 혹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도를 만드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런 독법이 이 소설의 풍부함을 더 좁히는 것 같아서…….

 

김영삼 : 아, 저도 굳이 구분하자면 그렇다는 뜻이었습니다.

 

송민우 : 만약에 김영삼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도였다면 단서들이 더 분명하게 소설에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사회적 의도를 깊이 의식한 채 쓰인 것이라면 어떤 형상이 뚜렷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서요.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가 명쾌하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꼭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좀 더 부각시키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가정 내에서 약자라고 할 수도 있고, 고세영 씨가 약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고세영 씨의 외형만 보고 약자라고 추정을 하는데 꼭 외형이 작다고 해서 바로 약자라고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김영삼 :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도 엄격한 선악 구도를 가지고 이 소설을 보진 않습니다. 제가 보는 것은 고세영과 어머니가 만들어낸 하나의 가상의 세계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사실(fact)/현실의 세계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최정화 작가가 자꾸 이렇게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다희 : 말씀들을 듣다 보니까 아버지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웃음) 이야기하면 할수록 소설이 더 재밌어지는 것 같아요.

 

김영삼 : 그런데 도대체 거실장 한가운데 뭐가 있었을까요.

 

이다희 : 저는 ‘방 안의 코끼리’가 생각났어요. 누구나 방 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게 어느 순간 너무 자명해져서 오히려 방 안에 있던 게 무엇이었는지 망각해 버린 그런 상황?

 

김영삼 : 원래 거기에는 가장 일상적인 게 있었을 것 같아요. 특별한 것은 기억의 대상이 되지만, 일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사라진 물건은 가장 일상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복원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이게 어머니 행동의 소설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그 사물을 뺐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일상에 균열을 가하기로 마음을 먹은 자기 때문에 아마도 그 사물이 다시 그곳에 돌아올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는 물론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상의 균열이라는 의미가 그곳에 있지 않나 싶네요. 덧붙여 최정화의 소설에서는 가상이 현실에 균열을 가한 이후 그 인물들이 활력과 생명력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붉은 입술이라든가 고세영의 섬뜩한 웃음 등이 그렇죠. 결국 비윤리적인 일상의 세계는 균열이 가해진 채 힘을 잃어 가고 가상의 세계는 점점 힘이 세집니다. 그러니 일상은 회복될 수 없어야 하고, 기억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이서영 : 저는 최정화 작가님의 소설 속에서 온전하게 진행되던 흐름이 크게 뒤틀리는 순간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고세영 씨가 아버지에게 물을 뿌리고 도망가면서 보이던 그 미묘한 웃음이 되게 오싹하더라고요. 이런 디테일들이 지탱해 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주선 : 다음은 신철규 작가의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 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구만큼 슬펐다니. 다들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서영 : 저는 이 시인이 말을 운용하는 방식이, 결국에 이 세계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다름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해설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요. 인상 깊었던 건 시인의 재능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깊이에 대한 신뢰라는 언급과 타자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이 결국에 그 사람의 감수성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모든 시편들 속에서 공명하는 말들은, 결국에 지상에 직접 내려와 앉는 말들이자 제 피부에 직접 와 닿을 수 있는 말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요. 저는 ‘우는 사람’으로서 쓸 수 있는 시란 무엇인가, 시인으로서 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 뜨거운 눈물이 모든 것의 경계를 녹여내고 해지시키는 장면을 바라볼 수 있었기에, 그 힘이 감동스러웠어요. 또한 각 시의 기법이나 감각을 들여다보기 이전에 너무 인간적이어서 인간 같지 않은 화자에게서 오는 감동도 있었습니다. 작고 무르고 연약한 것들 속에 내재된, 함부로 가늠할 수도 없는 질량의 슬픔을 염두에 두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다희 : 시집의 제목이 지구만큼 슬펐다, 인데, 이게 잘 가늠이 안 됐어요. 도대체 얼마나 슬프면 지구만큼 슬프다는 거지?

 

김주선 : 그러게요. 나라를 잃은 슬픔도 아니고.

 

이다희 : 그죠. 그러니까 이 지구만큼이라는 게……. 어쨌든 제목이 그러니까 슬픔에 관한 시가 많겠구나, 라는 예감 속에서 시집을 읽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시어나 문장들, 배열들이 단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굳어진다는 시어가 종종 나오기도 하는데요. 시 속에서 단단해진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그 단단해진 돌을 던지며 세상에는 이런 슬픔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생각되었어요. 그리고 많은 시에서 분노가 느껴져요. 그게 슬픔으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냉정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시인들이 슬픔에 관해 말하는데 신철규 시인의 시가 다른 시인들의 슬픔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했을 때 바로 이런 지점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는 1, 2, 3부 시들이 전체적으로 좋았는데 3부에 실린 몇몇 시들은 특히 좋았어요. 「어둠을 지나」, 「검은 밤」, 「검은 숲」, 이 어둠 시리즈? 가 좋았어요. 어떤 순간을 포착하기만 한 시가 아니라는 점이 더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김영삼 : 시집의 첫 작품을 읽고 난 후의 인상은 ‘어, 이거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소행성이 등장하는 첫 번째 시에서는 사랑과 사람에 대한 불신과 균열이 아주 강하다는 생각이었고요. 다음 시인 「권총과 장미」를 보면 권총의 파괴적인 면과 장미의 아름다움이 갖는 매력이 있는데 그런 것이 결코 허용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시를 죽 읽으면서 제가 느낀 것은, 세 가지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이 시인에게는 세계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불신. 지구만큼 슬펐다는 구절이 나오는 시가 「슬픔의 자전」인데요. 네 번째 줄에 “반에서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지구만큼 슬펐다’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지구의 크기만큼 슬펐다. 두 번째는 ‘지구가 슬펐던 것만큼 슬펐다’. 그러니까 애초에 지구가 슬펐어요. 이 시의 마지막을 보면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이런 표현이 나와요. 자전을 시작했다는 것은 행성이 삶을 시작했다는 뜻인데, 그때부터 먹먹했다니까, 제가 보기에 이 시집의 많은 부분은 두 번째 해석과 조응한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철규 시인이 보고 있는 이 세계는 엄청난 불신과 슬픔으로 가득 찬 세계 같아요. 그게 대한민국의 세계 같아요. 그 몇 년간 우리가 바라본 세계.
    두 번째, 이 세계에 대한 불신이 있다면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제가 보기에 신철규 시인의 시선은 우리들이 비겁함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집의 곳곳에 등장하는 많은 표현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있으나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는 비겁한 존재들이라는 게 눈에 보여요.
    세 번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철규 시인은 이런 상황에 균열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너무나 매끄럽고 부드러워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는 비겁함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깨야 한다. 그래서 파열이나 파상을 내야 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시집에 깨진 거울, 송곳니, 주삿바늘, 찌름, 피 등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보기에 이런 태도는 대단히 진실 되어 보입니다. 자신의 경험적 서사가 시 속에 들어가 보여서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물대포, 촛불 시위 등등의 경험이요. 그래서 최근에 언어를 가지고 노는 시들만 보다가, 부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아무튼 언어를 가지고 노는 시들을 보다가 이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를 오랜만에 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송민우 : 저도 「소행성」에 주목했는데요. “우리는 녹아 가는 얼음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또 “우리는 금세 등을 맞대고 있다가도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입술이 된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게 신철규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같아요. 특히 두 번째 구절 같은 경우, 가까워졌다고 확정 서술을 했으면 신뢰가 덜 갔을 텐데, 가까워지려 한다고 해서 더 신뢰가 가는 느낌이에요. 저는 이 시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철규 시인의 의지를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태도가 이 시에 전반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설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시적 화자가 기도하기와 울기를 실천행위로써 사용한다고 하셨는데, 함께 우는 것, 함께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종교적이거나 수동적으로만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 봤으면 좋을 것 같아요.

 

김주선 : 다른 대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게 있나요.

 

송민우 : 지금으로선 저도 특별히 생각나는 답은 없습니다. 그냥 비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가 지금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입니다.

 

김주선 : 울음에 대해서는 다들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사실 시집에 등장하는 수많은 장면들이 다 눈물, 울음, 슬픔 뭐 이런 낱말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인데 ‘울음’이나 ‘눈물’ 같은 시어가 직접적으로 수없이 등장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서영 : 저는 좋았어요. 왜냐하면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지상의 모든 존재들의 슬픔을 염두에 둔 이에게서나 가능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주 힘겹게 등록시킨 말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달리 말해 왜 눈물이라는 시어를 쓸 수밖에 없냐면, 눈물, 온기, 이런 게 무언가를 녹일 수 있고 또 그 눈물이야말로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것, 영혼 속에 깊게 내재된 것들을 끌어올려 ‘물질’로서 보이게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계속해서 ‘눈물’에 대하여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김영삼 : 「눈물의 중력」을 보면 십자가가 있고, 하늘에 달이 떠 있고, 그런데 그 달이 점점 어둠에 먹히고 있죠. 뭔가 기울어 가고 있습니다. 파국의 상황이죠. 그런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이 십자가 앞에 엎드려서 울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땅속에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건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눈물은 지구만큼 슬픈 눈물이거든요. 그래서 엎드릴 수밖에 없고 간절할 수밖에 없는 눈물입니다. 그런데 이 씨발 십자가는 여기에 감응을 해주지 않아요. 그냥 신이 그의 허리에 걸터앉아 있을 뿐이죠. 신적 존재로부터 구원받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나 무거운 슬픔의 무게를 지닌 사람의 마지막 행위가 이 시에서 ‘눈물’로 응집되어 있어요. 그러니 이 시집에서 ‘눈물’은 성공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주선 : 이 시집이 재밌는 게, 1, 2, 3부와 4부가 확연히 나뉘는 것 같습니다. 이 나뉨과 4부의 스타일에 관해서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할머니 화자가 등장하고, 사투리가 나오고, 뭔가 신철규 시인의 개인적인 사연이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송민우 : 저는 이상하게 사투리가 등장하는 시, 배경이 시골인 시는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김영삼 : 「꽃 피네 꽃이 피네」를 보면 구야 너 어떻게 살아라, 라고 말하는 시입니다. 그런데 그 삶의 방식이 되게 비겁하고 부끄러운 가르침이에요. 나서지도 말고 숨지도 말고 어중간한 데 가서 살라는 말이죠. 그래서 저는 4부가 어떻게 보이는가 하면, 시적 화자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그 주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시인데, 그들이 남겨 준 유언은 너무나 부끄럽고 비겁한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게 4부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꿰어 맞춰 봤습니다.

 

이다희 : 저도 비슷한데 4부는 시인의 개인 내력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앞에서는 지구 전체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4부에서는 좀 더 사적이에요. 앞의 1, 2, 3부는 굉장히 날이 서 있거든요. 단단하고, 깨고, 부수고, 분노했다가 결국에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하는데, 4부에서는 가족 이야기여서 그런지 애정이 느껴집니다. 할머니가 위험하게 살지 말고 어중간하게 살아라, 라고 말하는 부분도 시인의 투쟁심보다는 애정이 더 느껴지고요. 또 「이무기는 잠들지 않는다」가 저는 눈에 자꾸 들어오는데, 앞에서는 시인이 자기 자신을 절대 풀어 주지 않아요. 그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어떤 날카로움을 가진 것 같아요. 그런데 4부에서는 화자가 할머니로 바뀌면서 조금 편안해지는데 그 어떤 따스함이 「이무기는 잠들지 않는다」에서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내내 긴장했다가 4부에서 좀 풀어 주는 느낌을 받아서 시집의 전체적인 구성이 시인의 내적 문법에 있어서 자연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김영삼 : 말씀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앞에서는 내내 긴장됐는데. 4부에서는 할머니가 배도 좀 쓰다듬어 주고 하는 느낌이네요.

 

이서영 : 저는 이 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줄 수 있는 사람, 즉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가 할머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스란히 시로 옮겨진 말과 마음들이 너무 눈물겹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무엇인가를 녹이거나 단단하게 만들어낼 때 비장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주선 :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시는 뭐였나요?

 

김영삼 : 「다족의 천사」요. 자기에게 치열하고 자기에게 냉철한 윤리적 자세가 보여요. 여기서는 날개를 편 천사를 요청하는 게 아니라 땅 위의 천사를 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사는 위에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다족’을 통해서 여러 고통의 세계에 개입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 같아요.

 

이다희 : 저는 「눈물의 중력」이요. 이 시가 좀 짧은데, 한 사람이 엎드려 우는 자세 하나, 신이 엎드려 있는 사람 위에 걸터앉은 자세 하나를 통해 정말 아주 많은 것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서 놀랍기도 하고, 이런 게 시 읽는 재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서영 : 저는 4부에 있는 「파브르의 여름」이 좋았어요.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송민우 : 저는 시인의 등단작인 「유빙」이 좋았어요. 다른 시에서도 그렇지만 이 시에서도 나와 타자 사이의 엇갈림을 보여주는데요. 그런 엇갈림이 좋았고, 또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으깨버리는 장면이 갖는 시인 특유의 단호함이 좋았습니다.

 

김주선 : 저도 「유빙」이 제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최초의 입맞춤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구절이…… 시계탑에 총을 쏘는데 그렇잖아요. 시계에 무슨 짓을 해도, 과거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니까…….

 

김주선 : 첫 독자모임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일동 : 수고하셨습니다.

 

 

 

 

 

 

 

 

참여자 소개 / 김주선

전남 화순 출생. 2015년 문학과사회 평론부문 등단. 조선대학교 강사

 

참여자 소개 / 김영삼

전남대학교 국문과 강사

 

참여자 소개 / 송민우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등단. 조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재학

 

참여자 소개 / 이다희

대전 출생. 광주 거주. 201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

 

참여자 소개 / 이서영

조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진학 예정

 

 

   《문장웹진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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