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모임 – 한국 소설의 다양한 목소리와 만나다 - 정홍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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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독자모임

– 한국 소설의 다양한 목소리와 만나다

 

 

참여 : 정홍수(사회, 문학평론가), 장수라, 이영순, 김보배, 김지윤

 

 

 

이승주 「리스너Listener」
《현대문학》 2017년 12월호
손원평 「4월의 눈」
창작과비평 2017 겨울호
김성중 「상속」
문학동네 2017 여름호

 

정홍수 : 벌써 마지막 좌담이네요. ‘문장웹진’에서 이 좌담을 기획했던 이유가 한국문학을 읽는 독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데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 취지에 얼마나 부합했는지 우리 스스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작품 선정도 여러분들이 직접 했고 논의도 가급적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은 밝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일종의 조정자 역할에 그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마지막 좌담은 전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일임했으면 합니다. 편하게 이야기들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장수라 : 오늘은 『현대문학』 12월호 이승주의 「리스너」, 『창비』 겨울호 손원평의 「4월의 눈」, 『문학동네』 여름호 김성중의 「상속」, 이 세 편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승주의 「리스너」부터 이야기를 해볼까요? .

 

이영순 : 저는 이 소설을 읽고서, 나중에 같은 음악을 듣는다고 해도 이전에 그 음악을 들었던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소중함을 알았을 때는 소중한 것은 이미 떠나버린 이후라는 그런 정서가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처럼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작품 속 음악 이야기라든지 뱃노래와 연결해서 쓰인 점이 흥미로웠어요. 이력을 보니 작가가 70년생으로 올해 등단하신 분인데, 등단하기까지 꽤 오랫동안 소설에 대한 열정을 품어 오신 분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앞으로의 작품 활동이 기대됩니다.

 

장수라 : 제 경우도 CD와 카세트테이프의 차이, 스테레오의 역할 등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재이는 난관을 하나 절제를 했잖아요. 여자로서 신체적으로 균형을 잃은 건데, 이러한 상황이 소설의 상황과 맞물리는 지점이 섬세하게 느껴졌어요. 카세트테이프의 경우 냉동을 하면 음을 더욱 잘 잡아준다는 점, 스피커 역시 좌우 스피커가 각자 음을 잡아주었을 때 조화로운 음악이 나온다는 설명처럼 여자의 몸이나 부부간의 관계 역시 균형과 조화로움이 필요하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마음이 늘어지고 미세한 내부의 균열을 카세트테이프에 비유했다는 게 무척 공감이 갔어요.

 

김지윤 : 일단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음악 관련 지식들이 나온다는 것이었어요. 또 ‘음악’과 소설의 내용을 함께 연결시켜서 상징화한 것도 재미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동우와 제이, 두 사람 관계의 균형이 흔들리는 장면이 묘사가 되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뱃노래와 연결시킨 것들이 그렇죠. 소설 후반부에 제이가 동우에게 묻잖아요. 배에 누가 타고 있는 것 같냐고. 또 동우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으면서 배에 타고 있는 것 같고,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생각하잖아요. 이게 두 사람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동우의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소설의 구성이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데, ‘음악’과 연결시킨 것이 이 소설을 다르게 만든 것 같아요.

 

장수라 : 저는 삼분의 이 지점까지는 잘 읽히다가 마지막 처리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세 번 정도를 읽었던 것 같아요.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6월 뱃노래 부분이 좋았어요. 음악을 생각하면서 마무리와 연결시켜보니까 더 좋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하루키 소설도 음악을 소재로 자주 이용하는데, 음악을 찾아 음악을 듣고 읽으니까 좀더 깊이 소설에 공감하게 되더군요.

 

이영순 : 작가의 깊은 통찰을 느꼈던 부분이, 273쪽 첫 문단에 카세트테이프에 관한 내용이 나오잖아요. 빨리 돌리기로 원하는 부분을 찾아갈 수는 있어도 건너뛸 수는 없고, 어찌되었든 그 과정을 순차적으로 경험해야한다는 것. 결국 삶도 그런 것 아닐까요. 빨리 갈 수는 있어도 어떤 과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작가의 통찰이 카세트테이프의 속성을 통해 잘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보배 : 저도 말씀하신 카세트테이프 관련 부분이 참 좋았어요. 크게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면서도 소설의 앞부분에 나오는 묘사와도 잘 연결되는 것 같았어요. 재이가 화장실을 가야 해서 버스를 자주 세우는데, 동우가 그때 ‘차라리 기차를 탈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요. 그 부분이 말씀하신 카세트테이프의 묘사와 묘하게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그 순간만큼은 동우에게 재이는 브레이크를 거는 존재인 거죠. 불편하고 짜증나는 동우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이영순 : 저는 거의 끝 부분에 롤러스케이트가 등장하는 부분에도 시선이 갔는데요. 재활용 수거함의 안내문에 작가가 수거 안 되는 품목으로 롤러스케이트를 적어두었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어요. 앞서 말했듯이 이미 지나간 순간이나 사랑과 같은 것들은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보배 : 바퀴 하나가 빠진 롤러스케이트는 재활용 수거함에 넣지 말라는 안내문이 나오잖아요. 이 부분이 의미심장했어요. 재활용이 안 되는 롤러스케이트를 동우가 재활용 수거함에 밀어 넣는 모습을 보면서 동우의 마음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롤러스케이트는 정팀장을 향하던 마음일 수도 있고, 재이와 다시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이미 바퀴 하나가 빠진 상황이고 어떤 식으로든, 그러니까 정팀장과의 관계든 재이와의 관계든 실은 재활용품으로 수거조차 되지 않을 거란 걸 암시하는 것 같았어요.

 

이영순 : 살다보면,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이 갈 수도 있는데 사실 그 마음이 진실한 마음일 수도 있지만 잠깐의 흔들림일 수도 있죠. 자신도 그 마음의 정체를 아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동우가 의류수거함 안에서 롤러스케이트가 떨어지는 소리를 기다려도 듣지 못하는 것처럼요.

 

장수라 : 작가가 제목을 통해서 전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영순 : 저는 제목 ‘리스너’가 ‘제대로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듣는 사람이라면 흘러가고 있는 세계에서 관계의 소중함을 포착해내는 사람이 아닐까요? 음악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늘 흐르고 있잖아요. 가장 좋았던 문장은 아까도 말했지만, 카세트테이프에 대한 이야기예요. “디지털 음원처럼 원하는 부분만 클릭해서 들을 수 없을 테니까. 카세트테이프 같은 선형 미디어는 빨리 돌리기로 원하는 부분을 찾아갈 수는 있어도 건너뛸 수는 없다. 그 과정을 순차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마치 열차처럼, A칸에서 Z칸까지 가려면 한 칸씩 그곳을 지나가야 한다. 뛰어가든 걸어가든, 그것이 카세트테이프가 주는 재미이자 불편한 매력이었다.” 이 부분 지금 다시 읽어도 좋네요.

 

장수라 : 무향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무향실에서는 자기 몸에서 나는 소리만 들린다고. 진짜 그래요. 몸을 움직이면 피부가 옷감에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침을 삼키면 목젖이 울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까지 느낄 수 있어요. 그런 건 평소에 잘 못 느끼잖아요. 진짜 고요하지. 마치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것처럼. 무향실에서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소음의 수치를 경험할 수 있어요. 마이너스 소음의 세계.“(280쪽)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 고통의 순간일 수 있을 듯해요. 오직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느끼는 건 편안하면서 동시에 외부의 다른 소리를 듣고 싶어 느끼는 고통이 함께하겠죠.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순간이기도 하구요.

 

린 램지 감독, 영화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년

 

김보배 : 무향실 이야기를 보면서 영화 <케빈의 대하여>의 한 장면이 생각났어요. 에바는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아들 케빈을 낳아요. 갓난아기인 케빈의 울음소리는 에바의 현실이잖아요. 그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무작정 집밖으로 나오는데, 길에서 공사장의 소음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죠. 품안에서 갓난아기인 아들은 목청 터져라 울고 있는데 말이죠. 동우와 신문사 사장이 무향실에 대해 나누는 대화에서 동우의 태도를 보면 에바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향실에서는 온전히 자신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는 신문사 사장의 말을 들으며 동우는 “불안”할 것 같다고 말해요.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소리와 대면한다는 게 불안하고 두려운 거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목인 ‘리스너’는 ‘그럼에도 들어야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윤 : 저 역시 비슷한 의견인데요. 단순히 ‘듣는다’는 것이 음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 ‘관계’의 소리,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확장시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이와 동우, 두 사람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음악을 듣는 것 외에도 자신을 둘러싼 ‘관계’가 변화하고 그것을 스스로 느끼고 인물들이 자신의 삶에 파동을 느끼고 있잖아요. ‘리스너’라는 제목은 이런 것을 포괄하고 있는 제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수라 : 70년생이면 40대 후반의 나이인데 작품의 흐름이 전체적으로 유연하고 문체 역시 거칠지 않고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작품 손원평의 「4월의 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이영순 : 손원평 작가도 올해 등단하셨는데 장편소설도 내신 걸 봐서는 오랜 기간 작품을 써오신 분 같아요. 작품을 읽으면서 탄탄하고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간을 초월해서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비슷한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묘한 위로가 되더라고요. 소설에서 부부는 파국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 깊은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 파국의 반복이 더 슬프게 느껴졌어요. 작품 후반부에서는 내내 슬픔을 삼키면서 읽었던 것 같아요.

 

장수라 : 살아오면서 4월에 눈이 온 경우가 두어 번 기억나는데 정말 드문 일이지요. 어떻게 보면 정말 놀랄 일이잖아요. 우리 인생에 꽃피는 봄이 계속될 것 같지만, 갑자기 눈이나 비바람 같은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에서는 아이 사산으로 인해 상처가 잠복되어 있다가 드러나고 있지요. 아내는 남편의 양수 검사 권유가 아이를 잃은 결정적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를 잃은 엄마의 입장에서는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누군가를 탓해야만 자기 상처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거겠죠. 핀란드 로바니에미에 살고 있다는 마리라는 여자가 초대되면서 부부는 부부전선에 이상이 없음을 보이고자 어쩔 수 없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자죠. 하루는 등을 돌리고 잤다가 그다음 밤엔 손등을 토닥이게 되고, 점점 머리카락을 쓰다듬게 되는 등 조금씩 관계가 개선됩니다. 마음의 치유 과정이 필요했던 부부가 아닌가 생각해요. 부부 사이에 마리는 산타나 루돌프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고요.

 

김보배 : ‘4월의 눈’이라는 제목이 마리를 나타내는 것 같았어요. 선물 같은 마리가 부부 사이에 고여 있던 무언가를 꺼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작가님이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지윤 : ‘4월의 눈’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4월의 눈이라니, 봄에 눈이 온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뭔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4월’보다는 ‘눈’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잖아요. 그래서 작품 초반부 읽을 때는 계절적 배경이 4월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김보배 씨가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마리’가 불안전한 둘의 관계를 환기시켜주는 존재잖아요. 그렇다면 마리가 4월의 눈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장수라 : 여기서 마리는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인 산타마을이 일터잖아요. 그 마을을 묘사하는 문장이 큰 역할을 한다고 봐요. 부부가 사산 후 여행을 갔던 발리는 일 년 내내 꽃이 피는 곳이고요. 산타마을과 그런 점에서 이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김보배 : 작품에서 발리는 따뜻하지만 슬퍼 보였는데, 반대로 마리가 사는 산타마을은 추워도 행복하게 느껴졌어요. 이 부부의 4월은 발리처럼 슬프지만, 산타마을에서 날아온 마리라는 눈이 있어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4월의 눈이라는 제목과 잘 맞는 것 같아요. 4월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눈이 오지만 꽃피는 계절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장수라 : 199쪽을 보면 디미누엔도라는 그룹이 나오지요. 찾아보니까 ‘점점 여리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이게 아마 둘 사이의 갈등이 해소됨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후에도 디미누엔도의 신곡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갈등이 점차 풀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영순 : 저는 마리가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을 걸어보기 위해 아이돌 공연장에 가는 대신 그저 거리를 걸었다는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 제 자신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이 눈으로만 덮인 곳이라는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건 아쉬울 것 같았다는 말, 무작정 걸었다는 말, 그 말에서 마리의 ‘균열’이 느껴졌고, 나 아닌 다른 누군가도 균열을 경험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위로가 되더라고요. 어떤 삶이든, 사실 삶이라는 것은 균열의 연속이잖아요.

 

장수라 : 저도 그 대목에서 위로를 받았어요. 동서양을 떠나 삶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개인에겐 누구에게나 특별한 사건인 거죠. 마리의 한국행이 1월이 아닌 4월로 미뤄진 게 안 좋은 일이 생겨서 그런 거라는 암시가 있습니다. 마리도 위로받고 싶어서 여행을 선택했고, 며칠이지만 이 부부의 일상을 보고서 오래된 이웃처럼 이해하고 포용하는 인생의 선배로서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김지윤 : 소설 속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마지막 대목이었어요. 마리가 말하잖아요. ‘그런 건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런데 이게 ‘노래를 부르는 남자’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부부에게 있었던 일’을 함께 뜻하는 거잖아요. ‘4월의 눈’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어색한 지점도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사실 4월에 폭설이 내린다는 점은 상상하기 힘들잖아요. 또, 사건의 진실이 폭로되는 순간이 갑작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런 지점들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아요.

 

이영순 : 저는 ‘이런 일은 어디서든 일어나는 일이랍니다’–이 문장이 좋기도 했지만,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끝나지 않는 파국을 반복하면서도 마지막 무언가 하나만은 끝내 놓지 않는다는 게 좋았고, 그래서 따뜻한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4월의 눈」의 슬프면서도 따스한 서정이 아직도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장수라 : 214쪽 마지막 구절을 보면서 이게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큰 기대감도 없고, 거칠게 생채기가 나지만, 추하지만은 않은 인간의 일이라는 것. 다음은 김성중의 「상속」입니다.

 

김지윤 : 김성중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어서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제게는 ‘김성중 작가’ 하면 ‘환상’이라는 말이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르거든요. 실제로 소설집 『개그맨』이나 『국경시장』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도 그렇지요. 이번 작품은 그런 것 없이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게다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요. 김성중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또 인물들의 인생을 문학작품들과 연결시킨 게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이영순 : 저는 작가가 깊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에 작가라든지 습작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재미가 없었는데, 이 작품은 아주 재미있었어요. 저는 김성중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는데, 생각할 거리들을 굉장히 많이 만들어줬고, 깊이도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장수라 : 습작이나 창작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알려주는 그런 대목들이 꽤 있어서 공감되고 좋았어요.

 

이영순 : 특별하게 서사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아주 잘 읽혔습니다. 몰입해서 읽었고 엄청 공감했어요.

 

김보배 : 제목은 ‘상속’인데, 실은 선생과 기주와 진영이 한 사람 같았어요. 캐릭터의 성격이 겹친다는 의미는 아니고, 세 사람이 모두 ‘문학’이라는 한 가지 고민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이 곧 삶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문학’을 사는 사람들로 묶이더라고요.

 

김지윤 : 김보배 씨 말대로, 하나의 계보로 연결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책을 계속해서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잖아요. 단순히 ‘책’만을 물려주는 것이 아닌, ‘문학’을 하는 것, ‘문학’에 대한 자의식을 물려주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수라 : 진짜 친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사별한 사람의 물건을 물려받는 게 쉽지 않죠. 세 사람이 나이 차이도 좀 있는데 20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죽음을 눈앞에 둔 기주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진영에게 조금씩 우편으로 보내주는데, 기주로부터 책이 오지 않자 진영이 기주가 죽지나 않았을까 염려하는 대목에서는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고통이잖아요. 그런데도 책을 물려받고 이를 간직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겠다 싶어요.

 

김보배 : 김성중 작가를 생각하면 환상성이 떠오르곤 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요. 물론 뒤에 꿈이 나오긴 하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도 들긴 했지만요.

 

김지윤 : 작품을 읽으면서 상상을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 ‘진영’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책을 물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영은 등장하는 두 명의 인물과 다르잖아요. 죽음을 관조하는 인물이죠. 인물 간의 관계는 굉장히 친밀하지만 진영의 내면에는 양가적인 감정이 존재한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친한 사람들의 불행을 바라보면서 “나에게는 그런 불행이 없는 것 같다. 그게 나의 불행이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기주가 선생님을 간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언젠가 이것을 가지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이런 면모는 작가로서의 태도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마지막에는 ‘펜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이런 부분은 자전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글 쓰는 작가로서의 고민이 느껴졌어요.

 

김보배 : 저는 세 인물이 모두 죽음을 경험했거나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문화센터 선생님의 경우, 책을 낸 작가지만 끊임없이 문학적인 고민을 하다 돌아가셨죠. 기주의 경우엔 소설을 쓰고자 했지만 창작 생활을 제대로 시작하려니 암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고, 진영의 경우는 작가가 되었고 강의도 나가지만 작가로 살아남기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피부로 죽음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 사람 모두 창작 세계에서 죽음과 비슷한 경험을 관통하고 있거나 이미 지났다고 생각해요. 저는 항아리의 조각이 빛난다는 묘사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결국 ‘빛나는 것’은 추앙받는 작품을 써낸 작가와 작품뿐만 아니라, 계속 고민하는 보통의 작가과 습작생, 날것 같은 습작품 모두를 말한다고 생각했어요.

 

장수라 : 세상 아래 새로운 건 없듯이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작품들, 작가들의 선경험들, 지혜들이 모두 ‘항아리’가 아닐까요? 이 소설에선 기주나 선생님이 주신 책이나 인간적 유대감일 수도 있겠고요. 이런 것들은 별처럼 영원히 새겨져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의 말씀 중에 “소설을 어떻게 쓰는 건지는 잘 모릅니다. ’작가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라는 문장이 참 좋았어요. ‘속도가 아니라 작품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은 등단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본질을 보게 하는 자세인 것 같아요. 평생을 문학이라는 마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자세를 알려주는 것만 같아요.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반딧불의 잔존』, 도서출판 길, 2012년.

 

이영순 :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들 하셨는데. 저 역시 작가의 문학론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165쪽의 문장들을 참고하면, 학생들의 습작은 꿈의 더미들이라는 말. 또, 소설은 이 부드러운 세계가 얼마나 파괴적인 힘을 가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말. 지금 예를 다 들 순 없지만, 작품 곳곳에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상속’이라는 제목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173쪽에 사라지지 않는 항아리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선생님과 기주의 유품을 진영이 상속받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결국은 문학작품들이 세대를 이어 계속 상속되어가는 그런 의미로 제목을 정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같은 쪽, 사금파리의 미광, 빛은 거기에서도 나왔다는 구절을 보면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이 생각나면서 좋았어요. 미광이라는 게 하찮은 것 같지만, 실은 미광의 존속이 진실의 보증이기도 하잖아요. 김성중 작가의 깊이 있는 독서력이 느껴졌어요.

 

김지윤 : 교차 시점은 어떠셨나요?

 

이영순 : 저는 좋았어요.

 

김지윤 : 저도 좋았거든요. 선생님이라는 인물을 두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잖아요. 기주의 입장도 알 수 있고 진영의 입장도 알 수 있고. 그런 부분들이 효과적으로 잘 나타난 것 같아서 좋았어요. 가장 좋았던 부분이 기주가 노인도 아니고 어린아이도 아니고 젊은이도 아닌 선생님을 간병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강렬했어요. 조금 무섭기까지 했어요. 그 정도로 아픈 사람의 모습이 잘 그려지기도 했고요.

 

장수라 : 저도 좋았습니다. “이상한 이인조였다. 어린 스승과 나이 많은 제자에서 이제는 엄마와 딸처럼 역할이 바뀌어 있었다. (…) 사라진 딸의 자리에 죽어가는 선생님이 대신 들어 있는 모습이랄까. 두 사람의 모습은 다정하지만 기괴했고, 서글프지만 아름답기도 했다”는 대목. 타인에게 이럴 수 있는 게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이영순 :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가 자연스럽게 잘 맞물려서 좋았어요. 교차시점으로 쓴 게 잘한 것 같아요.

 

김보배 : 오늘날 작가들에게는 어떤 딜레마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요. 웬만한 건 이미 다 나와 있으니까요. 그럴 때 무엇을, 어떻게 쓸 수 있나. 그런 고민들이 녹아 있다고 생각했고, 그 속에서 이상하게 위로를 받았어요.

 

정홍수 : 제가 가만있으니까 이야기가 훨씬 더 잘되네요(웃음). 이제 정리를 할까요. 육 개월 동안 좌담을 함께 하면서 느꼈던 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삼죠.

 

이영순 : 문장웹진을 포함해 여러 문예지에 발표되는 단편들을 찾아 읽으면서, 어떤 작품으로 하면 좋을까,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아주 의미 있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성격의 자리가 계속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최근 작품들을 두루 읽으면서 작가들이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고요. 그런 작품들을 읽으며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떠올린 적이 없었던 낯선 세계에 대해 상상한다는 것은 가장 큰 기쁨이었어요.

 

김보배 : 제가 한 말이 글이 되는 걸 보니 신기하더라고요. 또 한국문학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다양한 작품을 접하면서 그런 생각을 수정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기회가 된다면 이런 좌담에 또 참여하고 싶어요. 정말 좋았어요.

 

장수라 : 뜻깊은 시간이었고 시를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공부가 되고 자극이 되었어요.토론할 소설을 찾으며 계간지의 흐름도 파악하는 시간이 되었고요. 다양한 소재와 사건, 공간 속에서 창작된 소설들을 접하면서 한국 소설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들의 노력과 땀을 느낄 수 있었고,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계속 열심히 찾아 읽도록 하겠습니다.

 

김지윤 : 독서를 할 때 편식하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시중에 나와 있는 계간지들을 찾아 읽으면서 그런 버릇이 없어진 게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첫번째 좌담 때 이렇게 말했거든요. 계간지를 구독할 생각은 없다고요. 왜냐하면 다시 꺼내볼 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했었는데, 이제는 구독하고 싶더라고요. 한국 소설에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거든요. 뿐만 아니라 시, 비평, 좌담이나 한국 문학의 흐름 같은 걸 잘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어요. 저희의 좌담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하기도 했고요. 지난 육 개월 동안 정말 즐거웠습니다.

 

정홍수 :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문장웹진 2018년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