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의 신 외 1편 -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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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굶주림의 신

 

 

신해욱

 

 

 

    해가 지고 있었다

 

    네가 왔었지 전날에 전전날에
    전전전날에
    굶주림의 신으로 분장을 하고
    스판덱스를 입고

 

    이마를 훔쳤다

 

    ‘이것은 무슨 연극의 한 장면인데’

 

    해가 지고 있었다

 

    나의 역할은 떠오르지 않았다

 

    ‘암담하군’

 

    팥죽이 끓어 넘쳐
    나의 겨울은 걷잡을 수 없이 더럽혀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눈이 녹은 후에도
    말라붙은 얼룩은 지워지지 않고

 

    너는 웃겠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웃을 것이다 옆구리가 터지고 톱밥과 대팻밥이 쏟아지고 거죽만 남아 의자에 늘어져서

 

    해가 진 후에

 

    캐럴과 함께 떠오르지 않는 나의 역할과 함께

 

    걸레를 들고 우두커니

 

 

 

 

 

 

 

 

 

 

 

 

 

빈교행

 

 

 

우리는 다 같이 헐벗은 마음을 추슬러
옥광산에 가기로 했다

 

교차로는 추웠다
버스 뒤에 트럭
가로수 다음의 가로수
현수막이 날렸다
옥반지를 낀 손가락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톱을 깎고 싶다
목욕을 하고 싶다
옥침대에 누워 옥마사지를 받은 다음
광천수를 마시고 싶다

 

육교를 건넜다
손가락으로 난간을 훑었다
간격이 무너지고
레미콘이 어렵게 지나가고

 

부자가 되고 싶다
정토에 들고 싶다
목장갑을 끼고
방독면을 쓰고
도끼와 곡괭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손을 녹일까
그래서 우리는 손을 섞었지
빈손을 확인하고
옛 노래에 맞추어
손등이 나오면 부름을 받은 것이다 손바닥이 나오면 유혹을 당한 것이다*

 

계절이 바뀌겠지
갱도는 깊겠지

 

살얼음을 밟았다 먼 산을 보았다

 

팔꿈치에 무릎에 멍이 들겠지
웅덩이에 발이 빠져 흙물을 뒤집어쓰겠지

 

콧등에 땀이 맺혔다

 

말라죽은 나무는 컸다

 

우리는 다 같이 손등과 손바닥을 모아
옥광산에 가기로 했다

  *  손 뒤집어 구름 만들고 다시 엎어 비를 내리네(飜手作雲覆手雨) : 두보, 빈교행(貧交行)

 

 

 

 

 

 

 

 

 

 

 

 

 

 

 

작가소개 / 신해욱

1998년 『세계일보』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낭독시집 『귤곰팡이나이트』를 냈다.

 

   《문장웹진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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