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일> 기획의 말 - 양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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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문학과 일> 기획의 말

 

 

양 윤 의

 

 

 

 

 

    2018년 커버스토리는 <문학과 일>입니다.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혹은 직업)에 대해 말할 때, 저는 언제나 필기노동자 바틀비의 ‘일’이 떠오릅니다. 다음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김훈 역, 현대문학, 2015)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처음에 바틀비는 엄청난 양의 필사를 했다. 그는 마치 뭔가 필사한 것에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내 문서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듯 했다. 소화를 위해서 쉬지도 않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촛불을 켜고 필사를 했다. 만약 그가 즐겁게 일하기만 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을 상당히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를 계속했다.
    그런데 필사한 것을 한자씩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한 까닭에 변호사는 삼일 째 되는 날 그를 불러서 그 작업을 시킨다.
    바틀비가 자신의 구석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대답했을 때 나의 놀라움, 아니 대경실색을 상상해보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필경사로 일하던 바틀비는 어느 날인가부터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하며 일을 거부하고, 쓸쓸히 죽어갑니다. 변호사의 말 즉 법의 언어는 강제적인 말이라는 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바틀비의 말은 강제적인 법에 대한 저항에 해당합니다. 법적인 언어를 선택 가능한 것(“prefer to”)으로 만들고 상대화함으로써 법의 효력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순히 주어진 일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의 가능성(‘하지 않음’을 수행하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필경사란 변호사의 서류를 정리하는 필기노동자를 뜻합니다. 바틀비는 처음에는 법의 언어(변호사의 서류, 즉 강제성을 지니는 정언들)를 옮겨 적는 필경사 일에 충실하지만, A. 그것을 반복하는 행위(옮겨 쓴 서류를 읽으면서 검토하는 행위)를 거부하고, 급기야 B. 필경사 일 자체를 거부하기에 이릅니다. A가 법적 언어의 ‘재생산’(이중적인 생산)을 훼방하고 교란하는 일이라면 B는 법의 언어를 옮겨 적는 작업 자체를 거부하는 일, 즉 법적 언어의 ‘생산’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를 의미합니다. 바틀비의 일(work)은 일하지 ‘않음’을 통해 작동(working)합니다.
    우리는 문학의 언어가 법이나 이데올로기의 언어를 교란하고 거부하는 언어이며, 그 대신에 다른 좋음을 선택하는(prefer to) 언어이고, 그로써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꿈꾸는 언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소설가의 일(work)―그것은 작품(work)이기도 하지요―이라는 제목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다른 언어, 다른 세상에 대한 꿈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일’을 접하면서, 소설의 일(work)이 소설가의 일(work)과 어떻게 공명하는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018년 1년 동안 멋진 커버를 장식해 주실 변웅필 화가님을 소개합니다.

   

   

변웅필
1월 표지    / 변웅필

변웅필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현재 강화도에서 강아지 만득이와 살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편집위원 양윤의

 

 

 

   《문장웹진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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