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발견 -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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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상황의 발견

 

 

김선재

 

 

 

    종이 흔들린다. 갑자기 갈라진 틈처럼 문이 열린다. 남자는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열린 문 사이로 몇 가닥의 눈발과 남색 후드와 흰 운동화가 보이는가 싶더니 가방을 멘 누군가가 들어온다. 다가오는 낯선 방문객의 어깨와 정수리에 내려앉았던 눈이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진다. 축축하고 서늘한 냄새가 끼친다. 남자는 말없이 방문객을 바라보고 방문객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한다.
    “예약했는데요.”
    앳된 목소리이다. 뒤집어쓴 후드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방문객은 소녀가 분명하다. 남자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인다. 예약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입구에 붙여 놓은 폐업 안내 문구를 보지 못한 걸까. 남자는 문 밖을 가리키며 이미 가방을 발치에 내려놓은 소녀를 향해 더듬더듬 사정을 설명한다. 갑자기 폐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으로 소녀에게 이해와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거다.
    “사정은 알겠는데요, ……그래서 예약 손님을 안 받겠다고요?”
    한참을 듣고 있던 소녀의 목소리는 또래의 그것처럼 높고 가늘다. 아니, 좀 더 높은 것 같다. 충분히 소녀의 입장을 짐작하고도 남지만 남자로서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오후에 세무서에 들러 폐업 신고를 마친 상태이다.
    “경황이 없어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로서도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니까요. 당연히 환불은 해드리겠습니다.”
    소녀가 어느새 캄캄해진 문 밖을 가리키며 되묻는다.
    “인제 와서 다른 곳을 찾으라고요? 이 시간에?”
    할 말이 없다. 고백하자면 이럴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게 옳은지 남자는 잘 모른다. 인생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 그가 주로 상대했던 건 지도교수와 주변의 선생들, 논문이나 연구서들이었다. 가뜩이나 P시에 내려오느라 급하게 휴강한 수업 보강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일이나 거의 끝나 가는 학술 논문에 덧붙여야 할 몇 줄이 내내 꺼림칙한 중이다. 게다가 내일 안에 나머지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이 숙소를 어떻게 처분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소녀가 아니더라도 온통 복잡하고 낯선 일투성이라는 말이다. 남자는 자신이 볼펜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초조하거나 불편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습관이다. 유리는 말싸움을 하다가도 남자가 볼펜을 돌리기 시작하면 이겼다는 듯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자기는 날 못 이겨. 포커페이스가 전혀 안 되거든. 그게 매력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녀는 남자가 자신도 모르게 볼펜을 돌린다든지 다리를 떨 때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거나 손바닥으로 무릎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주의를 환기하곤 했다. 자기가 쉽게 보이는 건 싫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유리는 남자에게 한결같이 다정했고 늘 남자보다 더 남자에게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혼자 남자의 집에 머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나나 때문이라는 게 여전히 믿을 수 없다. 남자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어쩌면 그게 지금 그가 뜻대로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남자는 슬그머니 볼펜을 내려놓으며 입을 연다.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저희 쪽 상황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법을 어길 수는 없으니까요.”
    소녀는 남자가 돌리던 볼펜을 내려다보고 있을 따름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남자는 소녀의 표정이 궁금하지만 아무리 봐도 보이는 건 소녀의 옷차림이 전부이다. 만약 누군가 소녀의 인상착의를 묻는다면 남자는 아마 검정 롱 패딩에 남색 후드를 뒤집어썼다거나 드러난 발목이 몹시 추워 보였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거다. 정말이지 아무리 봐도 그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물론 솜이불 같은 패딩을 두른 소녀가 왜 양말은 신지 않은 건지 남자는 모른다. 자신이 왜 이 P시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로비에 서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계획대로라면 오랜만에 만난 유리와 TV를 보거나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이 시간에.

 

    유리. 백합이라는 뜻이다. 몇 년 전 동경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통역으로 참석했던 유리는 유리코라는 자신의 이름 대신 유리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4박 5일의 그 일정 중에 남자가 알게 된 것이라고는 그녀가 식민지 시대 한국 여성 작가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 문학 전공자라는 것과 이혼한 독신녀라는 사실이 전부였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습관을 가진 남자가 그녀를 다시 떠올린 건 작년 봄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문화 정책을 다룬 소논문을 준비하다가 유리에게 어렵게 전화를 걸었고 유리는 가쁜 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방해한 건 아니냐고 남자가 묻자 그녀는 경쾌하게 웃었다. 김상.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남자도 머쓱하게 웃었다. 운동을 막 끝낸 참이라고 말한 유리는 기꺼이 남자를 도왔다. 그리고 얼마 후 유리에게서 진지충이 무슨 뜻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는 정중한 메일을 받았을 때,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고 사람에게 벌레 충(蟲)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 그 후 유리는 가끔 메일을 보내 일본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국 근대 소설가들의 초판본 사본 등을 문의했고 남자도 자신에게 필요한 논문이나 자료들을 받았다. 멀리 있지만 가깝게 느껴지고 가깝지만 서로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남자와의 거리가 마음에 든다고 유리는 자주 말했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는 내 파트너가 맞지?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 유리가 남자의 등에 몸을 기댄 채로 누워 그렇게 물었을 때 남자는 창을 가득 메운 구름을 보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낮게 깔린 구름이 꿈틀거리며 새로운 구름을 만들어내고 새로 태어난 구름이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창밖의 풍경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유리와 살을 맞대고 누운 그날 오후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른 남자는 돌아누우며 중얼거렸다. 당신에게 필요한 게 그거라면.

 

    “근데, 상황이라는 말 되게 좋아하시네요.”
    소녀가 남자의 눈앞에 휴대전화를 들이대며 다시 입을 연다.
    “그럼 제가 상황을 정리해 볼까요? 지금 상황은 전적으로 업주의 과실인 상황이라고요. 저로서는 보름 전에 예약했고 어제 예약 확인 문자까지 받은 상황인데 말이죠.”
    의도적으로 상황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남자는 할 말을 떠올릴 수 없다. 모든 게 소녀의 말대로다. 어떻게 환갑이 넘은 노인네가 자동 문자 전송 서비스에 가입할 생각을 했을까. 생각할수록 열 받네. 소녀가 후드를 벗으며 뇌까린다. 둥글고 흰 이마가 밑으로 드러난 외꺼풀의 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도전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내려놓았던 볼펜을 다시 쥔다. 드디어 드러난 소녀의 긴 눈매와 앙다문 입매에서 고집스러움이 엿보인다. 평소라면 남자도 지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남자의 일상으로부터 먼 곳이다. 볼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소녀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 P시에 온 이후 어떤 것도 만만한 것은 없다.
    정오쯤 내비게이션을 따라 겨우 찾아온 이곳은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언덕에 덩그마니 서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온 남자는 오성이라는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남자가 보기에 이곳은 오성은 고사하고 이성(二星)급 숙소도 되기 어려워 보이는 곳이었다. 4인용 객실이 세 개에 공용 욕실 한 개, 주방은 없고 입구에 놓인 낡은 테이블이 로비이자 휴게실을 대신하는 내부 시설은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다 차라리 여인숙에 가까웠다. 왜 하필 이런 곳에서 이런 장사를 시작했을까. 쇠락한 항구와 다닥다닥 붙은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현관 앞에서 남자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말할 거까지는 없잖아. 통화 중에 오성이 웬 말이냐는 남자의 푸념을 들은 유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건 예의가 아니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피곤하게 들렸다. 어쩐지 유리는 유리가 아닌 것 같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이틀 후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고 남자는 내일 오후쯤 올라갈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보고 싶다고도 했다. 유리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눈싸움이라도 걸듯 자신을 여전히 쏘아보고 있는 소녀를 보며 남자는 마침내 마음을 정한다. 소녀가 이겼다. 이 시간에 소녀를 바깥으로 내몰기도 꺼림칙하거니와 더 이상 소모적인 실랑이를 이어 가고 싶지 않은 게 남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P시에 온 이후 제대로 된 잠을 잔 기억이 없다. 피로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하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쉬시고, ……내일은 다른 곳을 구하실 수 있겠죠? 물론 환불은 약속드리겠습니다.”
    오후에 둘러본 방들의 상태를 떠올리며 남자는 그렇게 말한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녀가 발치에 내려놓은 가방을 든다. 남자는 떠밀리듯 걸음을 옮긴다. 지난 사흘 동안 내내 판단이 판단을 낳고 그 판단을 숙고하기도 전에 또 다른 상황이 생겼다. 될 대로 되라지. 숙박 이외에는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을 거라는 다짐과 재차 요금 환불을 약속하는 게 이 상황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저씨, 혹시 왕따였어요?”
    갑자기 등 뒤에서 소녀가 남자에게 묻는다. 멈칫한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조카뻘로 보이는 소녀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유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걔 천재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유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더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4호실의 문을 열어 주는 남자를 향해 소녀가 그렇게 말한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고개를 숙인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4호실의 문이 닫히자 현관문에 걸어 놓은 종이 희미하게 운다. 남자가 바라던 정적이었다.

 

    ……다시 혼자가 됐다. 소녀를 들여보내고 엄마의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다시, 라니. 자신이 중얼거린 말의 의미를 곱씹는 그가 쓰게 웃는다. 그녀가 살던 곳을 방문한 건 오늘이 처음이고 아마, 마지막일 거다. 낮에 그랬던 것처럼 남자는 방 안을 둘러본다. 눕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도무지 잠이 드는 게 가능할까 싶은 방이다. 천장에 드리운 알록달록한 캐노피나 커튼이며 침대보, 벽지까지 온통 꽃무늬 일색인 데다 사방 벽에는 각기 다른 크기의 달마도나 지장보살도가 걸려 있다. 남자의 시선이 창가에 놓인 몇 개의 화분에 머문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 가는 넝쿨식물들이다. 엄마는 남자 자신을 포함해 뭔가를 거두거나 키우는 데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자가 알기로는 그게 부모가 이혼한 결정적 이유였다. 덕분에 남자가 엄마와 같이 산 시간은 남자의 출생 이후 9년이 전부였다. 그 이력을 특별히 불행하게 여긴 적은 없었다. 늘 혼자였지만 그 사실이 남자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남자는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다. 그게 스스로가 삶을 이해하는 태도인 것도 같았다. 임용 공고가 날 때마다 지원하기를 반복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기대하지 않으면 포기할 일도 없고, 행복을 바라지 않으면 불행할 일도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의 삶은 적막했지만 평화롭고 편안했다. 그런데 P시에 내려온 뒤로는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로비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거나 원내 식당에서 멀건 뭇국에 숟가락을 담갔다 내려놓을 때나 비상계단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환자 보호자들의 흐느낌이 들릴 때마다 남자는 불편하고 두려웠다가 이내 외로워지곤 했다. 그건 정말 자신답지 않았다. 두렵고 외롭다는 감정이 자신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실제로 병원에 머문 이틀하고 반나절 동안 남자는 자주 다리가 저리거나 두통에 시달렸다. 자주 예민해지고 쉽게 지쳤다. 자신도 모르게 다시, 라는 말을 내뱉은 건 그 때문일 거다. 조금만 참으면 돼. 다 끝났어. 침대에 드러누우며 남자는 스스로 타이르듯 그렇게 말한다. 화병에 꽂혀 있는 마른 꽃다발에서 꽃잎이 한 장 바닥으로 떨어진다. 문 밖에서 희미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동안 귀를 기울이던 남자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에 놀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난다. 그게 뭔지 알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다. 남자는 선 채로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내려다본다. 여전히 코끝에는 달짝지근하면서도 비릿하고 시큼한 냄새가 맴돈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냄새. 25년 만에 떠올린 엄마의 냄새는 분명 그랬다. 너무 늦었잖아요, 엄마. 남자는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엄마는 오늘 새벽에 죽었다. 오전 세 시 삼 분. 의사는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며 그렇게 선고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방은 주인이 떠나고 사취(死臭)만 남은 방인 셈이다. 남자는 벽에 걸린 채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달마를 바라보다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눕는다. 유리는 뭘 하고 있을까. 겉옷을 말아 베고 한참을 뒤척거리던 남자가 잠이 들기 직전에 떠올린 건 그거였다.

 

    나는 유리의 손을 잡고 벚꽃 그늘을 걸었다. 그녀가 멈춰 서 웃을 때마다 꽃잎이 날렸다. 웃는 유리의 이마가 잠시 어두워졌다. 구름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리가 하늘을 가리켰다. 흰 그늘 위로 천천히 날아가는 새가 보였다. 윤기가 흐르는 크고 검은 새였다. 까마귀네. 그렇게 말하는 유리의 손가락은 조금 길어진 것도 같았다. 이상한 일이군. 나는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까마귀는 봄날의 화창한 천변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저건 길조라고. 내 중얼거림을 들은 유리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천변에 어울리지 않는 새는 멀리 날아가는 대신 흰 그늘 사이에 내려앉아 우리를 바라봤다. 쉿. 유리가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려놓으며 그렇게 속삭였다. 그건 유리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내가 아는 유리는 정말 새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상한 날이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중얼거렸고 유리는 운이 좋은 날이라고 속삭였다. 까마귀는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땅을 움켜쥐며 다가오는 새의 가슴은 단단하고 캄캄했다. 이리 와. 까마귀 앞에 쪼그리고 앉은 유리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고개를 저었다. 캄캄한 쪽으로는 다가가지 않는 게 맞았다. 그러나 나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고 까마귀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자꾸 다가왔다. 닳고 닳은 주둥이 사이로 붉은 침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주저앉은 내 귓가에 붉고 길고 뜨거운 숨이 닿는다. 몸이 떨리는 게 나인지, 그인지 알지 못한다. 남자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고 나는 입을 막는다. 내가 니 에미야. 니 에미가 나라고. 뾰족하고 길고 붉은 혀가 우리의 귓바퀴를 핥으며 그렇게 말한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의 잘못일까. 귀를 막으며 그렇게 생각한다. 어둠이 쿵쿵 울린다. 귀를 막은 채 비명을 멈추지 않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느닷없이 남자와 나 사이에 돌들이 떨어진다. 돌 사이로 날아오르는 까마귀의 날개에 차인 돌이 남자의 머리를 후려친다. 아니, 이건…… 문을 두드리는 소리이다.

 

       남자는 번쩍 눈을 뜬다. 여전히 숨은 가쁘고 몸은 제대로 가눠지지 않는다. 누구냐고 묻는 자신의 목소리조차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다. 저 들어가요. 문 밖에 선 소녀가 소리친다. 들어갑니다. 문을 열며 소녀가 다시 말한다. 당황한 남자는 손을 내젓는다. 소녀가 똑똑한지는 모르겠지만 겁이 없는 건 분명하다. 남자가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사이 소녀는 벌써 문을 열고 들어오며 간 떨어질 뻔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꿈속에서만 비명을 질렀던 게 아닌 모양이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이 멀찍이 선 소녀와 남자 사이에 떨어진다. 남자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꿈에서 깨고 싶은 건지 소녀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싶은 건지 남자 자신도 알 수 없다. 어디선가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린다. 소녀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낮게 중얼거린다.
    “……대박.”
    그 말의 의미는 분명하다. 남자 또한 오늘 오후 이 방문을 처음 열었을 때 소녀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소녀가 괜찮으냐고 묻는다. 소녀가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남자는 꿈을 꾼 것뿐이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건 꿈일 뿐이다.
    “그럼, 아저씨.”
    남자가 고개를 든다.
    “휴게실에서 닭튀김이나 먹을래요?”
    소녀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한다. 남자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저씨라는 호칭 때문인 것 같다. 더 이상한 건 소녀가 남자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순간 정말 자신이 아저씨가 된 기분이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남자는 예민해진다. 함부로 행동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남자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소녀를 바라본다. 만약 이 상황이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30대 중반의 사내와 아직 미성년인 학생이 단둘이 한 공간에 머물렀다, 로 요약될 거다. 아직 완전히 임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남자로서는 경계해야 한다. 아는 사람도 경계하고 경계하는 사람은 더 경계해야 하는 남자가 자신의 일상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곳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아무도 남자를 몰랐고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그 세계에서 우연히 모르는 사람과 닭튀김을 먹는 것뿐이고 그런 일은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방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남자는 소녀와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닭튀김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상황을 요약한다. 소녀를 따라 방을 나선 건 그다음이다. 기다리다가 굶어 죽겠다고 투덜거리는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그간 관찰한 걸 종합해 보면 소녀는 고집이 세고,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으며 투덜거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소녀는 비닐 봉투에서 치킨 상자와 캔 맥주를 꺼낸다. 아무리 항구 근처라지만 요즘도 미성년자에게 술을 파는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 자리에서 술이 등장하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다. 술은 마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남자의 말을 들은 소녀는 뜨악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왜요?”
    “학생이면서 미성년보호법, 몰라요?”
    소녀가 웃음을 터트린다. 남자는 입을 막고 웃던 소녀가 아예 테이블 위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는 걸 본다. 소녀의 행동은 어딘가 과장된 것처럼 느껴진다. 엎드린 채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흐느끼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건 아마 기분 탓일 거다. 남자는 팔짱을 낀 채 주위를 둘러본다. 조도가 낮은 형광등 불빛 때문인지 가뜩이나 우중충한 휴게실은 낮보다 한결 더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조화나 입구에서 죽어 가는 선인장, 그리고 구석마다 엉켜 있는 먼지들을 애써 외면하며 이 풍경이 왜 이토록 익숙한 건지 생각한다. 아저씨. 남자의 생각에 끼어든 소녀가 뭔가를 내민다. 주민증이다. 961209. 앞자리는 그랬다. 고맙다는 소녀의 말을 흘려들으며 남자는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 건지 아주 잠깐 생각하다가, 또는 2017에서 1996을 빼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지 생각하다가 소녀가 ……소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녀가 보란 듯 맥주 두 개의 캔을 따서 하나는 남자의 앞에, 하나는 자신 앞에 내려놓는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꿈은 억압의 무의식이래요.”
    남자는 소녀의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대신 눈앞의 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다. 차고, 씁쓸하다. 어디선가 바람이 새어든다. 현관문이 삐걱거리고 문에 걸어 둔 종소리가 작게 흔들리고 맞은편에 앉은 소녀는 닭튀김을 본 척도 하지 않는다. 익숙하다. 이상하지만 이건 정말 익숙한 느낌이다. ……펑펑 내려라. 소녀가 맥주 캔을 쥔 채 창밖을 보며 작게 혼잣말을 한다.

 

    집집마다 키우던 철쭉이나 동백은 고사하고 물만 주면 되는 콩나물도 엄마의 손을 거치면 마르거나 썩어버리기 일쑤였다. 속았나 봐. 죽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화초에 그치지 않고 물을 주거나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콩나물 통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낙심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엄마는 다시 희망에 부풀었다. 대개 1년 내내 상추를 수확하겠다거나 고추 모종을 길러 김장 때 쓰겠다는, 소박한 꿈들이었다. 두어 번 어린 남자에게 작은 금붕어가 헤엄치는 어항을 선물하기도 했다. 모두 썩거나 마르거나 물에 둥둥 떠서 생을 마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어린 남자를 옆에 앉혀 두고 엄마는 배를 드러낸 채 수면을 떠다니는 금붕어를 건져 쓰레기통에 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비밀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그때였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숨쉬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입술에 검지를 대고 몇 번이나 비밀이라고 속삭였고 어린 남자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느 새벽에 엄마가 검지를 입술에 댄 채 어린 남자를 깨웠을 때도 순순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흔들리는 버스에 나란히 앉은 엄마는 흰색 강아지를 키우자고 속삭였다. 배나무도 심고 감나무도 심을 거라고 했다. 졸음에 겨운 어린 남자는 자신의 엄마가 하는 말을 꿈처럼 들었다. 왜 집에서는 흰색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는 건지 하필이면 왜 감나무나 배나무를 심으려는 건지 궁금했지만 졸려서 물을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내내 흰 개를 쫓아다니던 어린 남자는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 흰 개는커녕 둘이 드러눕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그 방에서 지내는 동안 엄마는 맥주와 김밥을 사오거나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린 남자는 선풍기 앞에서 김밥이나 자장면을 먹었고 엄마는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오늘까지만, ……딱 오늘까지만. 그 방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그거였다. 문을 열면 옆 건물의 벽면이 보이고 먼지도 눈처럼 뭉쳐진다는 걸 알게 된 그 작은 방은, 더럽고 덥고 쓸쓸했다.

 

    거기서 끝은 아니었는데……. 남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방문을 열고 다시 나오던 날 엄마는 어린 남자에게 무슨 말인가 했다. 그게 뭐였을까. 뭔가를 물은 것도 같은데…….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순간을 재차 떠올린다. 그래도…… 그래도 언젠가는…….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소녀가 묻는다. 남자는 소녀를 바라본다. 어쩐지 소녀가 아닌 눈앞의 소녀는 한순간에 늙은 것 같다. 둥근 이마는 생기가 없고 눈 밑의 그늘이 짙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입매도 아까보다 한결 느슨하다. 소녀의 나이를 알게 된 탓일 거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슬퍼요?”
    목적어가 없는 그 물음이 뭘 의미하는지 안다. 남자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잠깐 눈을 붙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감 없는 시간의 연속이다. 소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같이 살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고 남자는 덧붙인다. 남자의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는 이내 골똘한 표정이 된다. 먼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또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다. 남자는 보이지 않는 창문 너머를 응시한다. 창문에 부딪힌 눈송이들이 이내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물방울이 맺혔다가 흘러내리는 게 보인다. 이토록 사소한 실감이 겨우 삶인 것도 같다고 남자는 생각한다. 적어도 죽음 이후에 눈이 내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도착했을 때 엄마는 이미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이동한 뒤였다. 의사는 뇌출혈과 더불어 온몸이 골절된 상태라고 했고, 경찰은 그녀가 지하철역 입구에서 뭔가를 밟고 갑자기 계단 밑으로 사라졌다는 목격자의 말을 전했다. 남자의 엄마가 밟은 건 바나나 껍질이라고 했다. CC-TV를 확인해 바나나 껍질을 버린 사람을 찾겠느냐고 묻는 경찰은 그래도 사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울 거라고 덧붙였다. 그건 누구 탓을 하기 어려운 사고라는 것이었다. 바나나 껍질이라니. 남자는 경찰 앞에서 실소를 터트렸다. 기차를 타고 P시로 내려와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그랬던 것처럼 바나나 껍질이 원인이라는 말은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남자에게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건 만화나 코미디 영화에서나 나오는 얘기였다. 그러다가 남자는 건네받은 소지품 꾸러미 속에서 구두 한 짝을 발견했다. 굽이 부러지고 코가 벗겨진 진분홍색 구두는 물론이고 비즈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머플러나 손가방도 모두 그녀의 취향 그대로였다. 외투의 흰 코사지에 묻은 검붉은 얼룩을 보며 남자는 바나나 껍질을 밟고 계단을 구르는 엄마를 상상했다. 끔찍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침대에 누워 임종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엄마에게 어울리는 결말 같았다.

 

    소녀가 다시 입을 연다.
    “딱 한 번 구급차를 타본 적이 있어요. 남자 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택시와 부딪쳤거든요. 그때도 겨울이었는데 둘 다 아스팔트 위를 온몸으로 쓸면서 나가떨어졌죠. 잠깐 정신이 아득해지는가 싶더니 남자 친구가 갖고 싶어 하던 모터사이클용 바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걸 못 사주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딱 미친년인데…… 그땐 정말 그 생각밖에 안 났어요.”
    죽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니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기는 한 건지 알 도리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지를 떠올리다니. 남자는 실소를 흘린다.
    “살았으니 사줬겠네요.”
    남자는 그렇게 묻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먼저 퇴원한 남자 친구가 허벅지 안쪽을 염소 가죽으로 덧댄 그 모터사이클용 바지를 입고 병실에 나타났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고 한다. 그 남자 친구는 여전히 잘 있느냐고 물으려던 남자는 입을 다문다. 소녀는 생면부지의 사람이다. 지나친 호기심을 보이는 건 경계해야 한다. 어쩐지 앉은 자리가 불편해진다. 소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건 남자가 일어날 때를 가늠하며 맥주 한 모금을 마시려던 즈음이다.
    “나쁜 새끼.”
    놀란 남자는 기침을 한다. 식도로 넘어간 맥주가 참을 수 없이 따갑고 뜨겁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소녀가 남자 곁으로 다가와 등을 두드린다.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은 남자의 입에서 침이 떨어진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소녀가 괜찮으냐고, 몇 번이나 되묻는다. 한참만에야 겨우 바로 앉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소녀는 휴지를 건네고 등을 두드리며 부산을 떤다.
    “아저씨 말고 그 새끼 말한 거예요. 얼마 전에 내뺀 그 새끼.”
    입을 닦는 남자를 향해 소녀가 말한다. 담담한 어조이지만 그게 소녀의 진심은 아니라는 걸 안다. 남자는 눈앞의 소녀가 쥐고 있던 휴지를 잘게 찢는 것을 본다. 찢은 것을 또 찢어, 찢은 것 위에 쌓는다. 무엇인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러나 지나간 어떤 일도 없던 일이 될 수 없다는 걸 남자가 알 듯, 소녀도 알 거다. 이럴 때는 그저 누군가 가볍게 손바닥을 두드리거나 두 손을 치켜들고 괜찮다는 듯 웃어 주면 좋을 텐데. 누군가를 위로해 본 일이 거의 없는 남자가 떠올린 것이라고는 고작 그런 거다. 소녀는 자신 앞의 휴지 조각들을 그러모으며 말이 없다. 남자는 눈을 비빈다. 예의 그 검은 패딩을 걸친 눈앞의 소녀가 패딩 속에 숨은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패딩이 갑자기 커진 게 아니라면 소녀는 분명 눈에 띄게 작아진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바람이 빠져 가는 풍선 같다. 남자는 소녀의 늘어진 입매와 주름이 드러난 목과 힘줄이 도드라진 손을 차례차례 확인한다. 소녀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어깨를 움츠리고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책임지라고 한 것도 아닌데…… 누군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게…….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든 소녀가 남자에게 쏘아붙이듯 묻는다.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은 소녀의 가슴께가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바라보는 남자는 소녀의 갑작스러운 물음 앞에서도 별 할 말이 없다. 그저 없는 사람처럼, 동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걸 알게 된 경우에는 못 들은 척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한 거다. 남자는 듣고, 들은 것을 잊었다가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이라고 오래 전부터 믿으며 지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걸 알려준 건 엄마였다. 쉿.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려놓던 엄마는 그런 식으로 비밀의 의미를 알게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떠올릴 게 생겼네. 그지? 엄마는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려놓으며 분명 그렇게 말했다. 좁고 더럽고 더운 그 방을 나서자 밖에는 능소화가 한창이었다. 그게 누구의 비밀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결국 헤어져요. 잘 헤어지기도 하고, 잘 못 헤어지기도 하지만…….”
    남자는 말한다. 자신도 스스로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세상을 구하는 건 영웅이 아니라 망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내리는 동안은 세상이 평화로운 것처럼 잊고,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동안에는 모든 것이 편했다. 엄마는 남자를 두고 집을 나갔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화초나 죽이면서 잘살았다. 그게 남자가 아는 사실이다. 그녀가 왜 집을 나갔는지, 왜 평생 그토록 뭔가를 키우기를 그치지 못했는지 남자는 모른다. 남자와 엄마는 오래전에 헤어졌고 많은 것을 잊었다.
    남자는 맥주 한 모금을 천천히 삼키며 창밖을 바라본다. 성근 눈발이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창밖은 어둡고 평화롭다. 그러나 해가 뜨면 눈은 그치고 그 후에는 진흙탕으로 변한 세상이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흙탕물은 번번이 바짓단에 튀어 오를 거고 사람들은 끝없이 미끄러질 거다. 미끄러진 사람과 미끄러지려는 사람 사이에서는 어느 쪽의 손을 잡아야 할까. 어느 쪽의 손을 잡아야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남자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고작 그런 생각을 한다. 갑자기 불빛이 깜박거리는가 싶더니 주변이 어두워진다. 남자와 소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층 더 파리해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등이 하나 나갔나 봐요. 소녀가 중얼거린다. 그런가 보네요. 남자가 따라 말한다. 아저씨는 잘 헤어졌느냐고 소녀는 다시 묻는다. 남자는 쓴웃음을 짓는다. 사실, 어떻게 하면 잘 헤어질 수 있는지 남자도 모른다.

 

    남자는 늘 남겨지는 쪽이었다. 유리가 한국에 온 게 잘 돌아가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건 그래서였다. 남자는 내내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유리가 얼마 전부터 전남편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한 건 유학에서 돌아온 후배였다. 이 세계란 게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유리 얘기를 먼저 꺼낸 후배는 모처럼 관심을 보이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덧붙였다. 더 묻지 않았다. 가능하면 끝까지 모르는 게 안전했다. 통화 중에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는 유리를 막은 것도 남자였다. 엄마의 사고 소식을 듣고 역으로 달려가면서 안도하던 이유기도 했다. 유리와 마주 앉는 상황을 미룰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잠깐 눈 감았다가 뜨니까 다 끝나 있더라고요.”
    소녀가 눈을 비비며 그렇게 말한다. 남자는 눈 깜박할 사이에 끝나버린 일들을 떠올려 본다. 편도선 수술이나 첫 연애나…… 사고 같은 것들. 바나나를 밟는 순간 엄마는 알았을까. 자신이 곧 계단을 굴러 버려진 신발짝처럼 바닥에 나뒹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면회가 허락되는 시간마다 남자는 엄마를 살폈지만 점점 흙빛으로 변해 가던 그녀는 나무토막처럼 미동도 없었다. 의사가 연명치료 얘기를 꺼낸 건 어제저녁 무렵이었다. 남자는 기관지절개술로 목구멍을 뚫어 산소를 공급받거나 링거 줄을 휘장처럼 두른 채로 그녀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물었고, 의사는 그건 신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의사가 신을 언급한다는 건 불가능의 우회적 표현이었다. 더구나 남자는 신을 믿지 않았다. 남자가 연명치료 포기 각서에 서명한 지 여덟 시간 만에 엄마는 죽었다. 장례식은 치르지 않았다. 어차피 조문 올 사람도 없거니와 애도는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잘한 걸까. 남자는 중얼거린다. 그사이에도 이마가 탁해지고 볼이 움푹 꺼진 소녀가 남자를 바라본다. 어지간히 취기가 올랐는지 소녀의 눈빛이 흐리다. 그럼…… 그럼 낳아요? 생명은 소중하니까? 소녀가 묻는다. 아저씨도 치고 빠지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럼, 나는? 소녀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친다. 그럼, 나는요? 따지듯 묻는 소녀의 눈이 붉다. 나는 뭐…… 좋아서 그런 줄 알아요? 다들…… 다들 어쩌면……. 남자를 외면하며 소녀가 말끝을 흐린다. 주먹을 쥔 소녀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게 보인다. 울고 싶어도 울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주먹을 쥐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그렇듯 한번 찢어져 쏟아진 감정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나면 주먹을 쥘 수밖에 없다. 굵은 바람이 지나가는지 현관문이 오래 덜컹거린다. 소녀의 등 뒤에서 요란하게 흔들리는 종을 바라보던 남자는 창턱에 쌓인 눈의 두께를 가늠해 보거나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다가 책이라도 한 권 챙겨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좀 취했나 봐요.”
    한참만에야 겨우 그렇게 말한 소녀의 눈자위는 불그스름하고 아랫입술에는 피가 맺혀 있다. 남자는 대답 대신 입술을 가리키며 휴지를 건넨다. 피가 나요. 그렇게 소리친 날이 있다. 산발한 엄마는 어린 그가 돌아온 줄도 모르고 냉장고 앞에 멍하니 기대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피가 흘러내릴 것처럼 새빨간 눈은 초점이 없었다. 혹시 눈이 머는 것은 아닌지 더럭 겁이 난 남자는 울먹거렸다. 또 넘어진 거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가 부서지고 깨지고 나면 울음소리가 뒤따랐고 그때마다 남자는 방문을 잠그고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귀를 막고 노래를 부르거나 귀를 막고 노래를 부르다 혼자 잠들었다. 어린 남자는 점점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기 시작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고 머플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엄마가 새벽에 어린 남자를 깨운 건 아마 그즈음이었다. 흰 개와 감나무와 배나무를 키우자고 속삭이던 길을 되돌아오는 동안 엄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떠올릴 게 생겼네. 그지? 돌아온 집 앞에서 어린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시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남자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왜 하루가 이토록 긴지를 생각한다.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린다. 자리에서 일어난 소녀가 비척비척 창문 가로 다가간다. 왜 이렇게 어둡지.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가로등 불빛이 새어드는 창문 앞의 소녀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소녀는 정말 가늘고 흐린 곡선으로 변했다. 그 곡선이 창틀 쪽으로 흘러내릴 듯 기울어진다.
    “그래도…… 모두 잘…….”
    흐릿한 목소리가 건너온다.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사람들은 다 잘살까. 모두 잘…… 갔을까. 이제 윤곽마저 희미해진 소녀를 바라보며 남자도 허공에 대고 그런 질문들을 해본다. 자신을 문 앞에 세워 두고 한참을 망설이던 엄마가 돌아섰을 때 어린 그는 망설였다. 어느 쪽이 더 평화롭고 편안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면서 엄마의 등과 자신의 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다가 되돌아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발밑에는 으깨진 능소화투성이였다. 사방이 온통 찢어지고 짓이겨진 꽃들 천지였다. 남자는 검은 얼룩으로 더러워진 엄마의 치맛단을 보며 더럽고 덥고 쓸쓸한 방을 떠올렸다. 다시는 그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돌아서 대문을 열었다. 거기가 마지막이었다. 남자는 아무렇게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한다. 내 탓이 아니었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작고 어두운 곡선으로 변한 소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를 듣던 남자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며 휴대전화를 꺼낸다. 마지막이 마지막인 줄 알게 되는 건 언제나 모든 것이 끝난 후라는 사실을 떠올린 거다. 먹구름이 몰려와…… 잠자던 새들은……. 복도 쪽으로 향하는 남자의 등 뒤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온다. 아직은, ……아직은 아닐 거야. 남자는 휴대전화를 들고 그렇게 중얼거린다. ……새들은 떨어지고, 너도, ……나도. 신호음 너머로 가느다랗게 소녀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어쩌면 유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뒤늦은 두려움이 전신을 휘감을 뿐이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진 새 위에……. 휴대전화를 든 손이 덜덜 떨린다. 떨어진 새가…… 쌓이네. 먹구름이 몰려와……. 소녀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유리는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아무도…… 남지 않았네. 너도, 나도…… 돌아가지……. 멍하니 앉아 있던 남자는 다시 몸을 떨며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어느새 노래는 끝나고 영영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작가소개 / 김선재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 소설 부문 등단.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어디에도, 어디서도』, 장편소설 『내 이름은 술래』가 있음.

 

《문장웹진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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