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왕 외 1편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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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겨울의 왕

 

 

김은주

 

 

 

날이 쨍하다.
독재자의 햇빛을 성기게 찢어 공원에 버린다.

 

날이 쨍하다.
유물론자의 부스러기들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다.

 

날이 쨍하다.
녹슨 신문과 어려운 책을 눈싸움시키는 노력이 있다.

 

날이 쨍하다.
나무를 갉아먹는 곤충의 속도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날이 쨍하다.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 모래 속에서 새로 태어나는 중이다.

 

날이 쨍하다.
카페 창을 등지고 턱을 괸 저 남자는 의욕 없이도 공간을 절약할 줄 안다.

 

날이 쨍하다.
공복의 식탁에서 올리브와 사과는 실망과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다.

 

날이 쨍하다.
종말론자는 이 세계를 전도할 목적으로 성실하게 약속을 망친다.

 

날이 쨍하다.
연하장을 처음 본 우편배달부는 주머니를 꿰매두고 눈을 기다린다.

 

날이 쨍하다.
아기는 이 곳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이 되려고 울고 있다.

 

리듬을 침범하고 있다.

 

 

 

 

 

 

 

 

 

 

 

 

 

언니들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두 개인데
동물이 아니고
차고
딱딱한 물성을 가졌다

 

덜 마른 이불 속
서로의 머리통을 긁어주며
마려워진 백색의 관계

 

바꿔 달 얼굴이 남아있지 않아서
죽은 인형을 흉내 내며
서로를 초과하고 있다

 

약솜같이 하얀 속을 드러내며
히호히호 웃을 때도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결백하다는 듯이
우리 속에 너와 내가 없다는 듯이

 

일면식도 없이
한 쌍의 손과 발을 나눠가졌고
어떠한 수축이나 팽창과도 무관하게
언니는 언니를 소독한다

 

가려운 것 중에
나쁜 냄새를 풍기는 것이 많다
자꾸 가렵고 꿈틀거려
언니는 언니를 들켰다

 

이제
나를 뒤집어 쓸 차례가 왔다

 

 

 

 

 

 

 

 

 

 

 

 

 

 

 

작가소개 / 김은주

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희치희치』가 있다.

 

   《문장웹진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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