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이션 빛 외 1편 - 주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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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베케이션 빛

 

 

주하림

 

 

 

    깨진 글라스가 모래사장에 흩어져있어
    타버린 깃털 태양은 탈주하기 좋은 벌판
    넘어지면 몸은 어디에 숨길까
    다쳤어? 지옥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자고 일어나면 모르는 상처들이 생겨나 꿈속에서는 걷기만 했다
    요즘 같은 때는 호수에서 나오기 힘들어
    그의 태도 그가 떠난 후 해변으로 도시로 맴도는 패턴

 

    위험하다고 생각 안 해봤어요? 나 위험할 수도 있어요 너 정도는 이길 수 있어 그것은 다른 나를 의미하는 것이겠지 동지가 필요해지면 사랑한다는 말은 얼룩이 된다 너의 시선을 외면할 때 태어나는 장면들
    메마른 희망을 갈망으로 바꾸는 법을 가르치고
    심장을 사로잡네, 사랑이 그의 얼굴에서 근심을 치울 때마다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빅토리아 콜론나의 시를 읽어주는 그와
    백사장 말라가는 하얀 산호들 블론드 온 블론드가 흐르는 그와의 입맞춤 해변의 밤은 헬레나 스타일이나 드랙퀸으로 주말에는 화가로 지내 하루는 철제 샤워부스 안에서 우리는 잭나이프로 서로의 가슴을 찢어주었어

 

    삼일 중 이틀은 해변 맨션에서 화판을 초상화로 채웠다 아침이면 피부가 차가워진 룸메이트가 돌아왔다 누가 얼굴에 기름을 뿌렸어 장사를 망쳤어? 히스패닉계 친구가 너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나? 슬픈 눈Purple eyes…… 초상화는 그리지 않기로 했잖아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을린 우주…… 속이 비치는 해파리가 항구에 널려 있다 떠나기 전까진 그 여자가 제일 불쌍했어요 진짜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항구에서 보고 당신을 찾아다녔어 깨진 조가비 검은 숨 검은 모래가 침대에서 부서진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녹슨 다리 아래, 흐르는 물에 누우면 어떤 희미한 한 때도 내게는 행복한 한때였다 해변의 사 층짜리 맨션 빛 없는 복도
    젖은 발자국 손끝에서 타들어가는 마리화나
    몇 개의 지루한 날들
    몇 개의 펄스pulse
    마지막 여름 당신이랑 있으면 진정이 안돼요 지난 해 이별 지난 여름
    사 층짜리 아파트 발코니 밖으로 흩어지는 모래 너를 만나 태풍에 씻겨나간 모래들 네게 오는 순간들 네게 오는 순간을 두려워하면 안 돼 시간은 멈춰있지 않아* 키스보다 자꾸 얼굴을 바라보게 돼 석양에서 튀어나온 손이 모래알이 붙은 등을 쓰다듬는다 내게 오는 순간들 오지 않는 순간들

  *  영화 「While We Were Here」중에서.

 

 

 

 

 

 

 

 

 

 

 

 

스웨터 침엽수림

 

 

 

    병원이 어디야 나는 철제 침대 아래서 퍼즐 조각을 맞춘다 오지 않아도 돼 부푼 배를 붙잡고 원래 겨울에는 삼일 빼고 아프다고 답했지 병원의 소독내, 젊은 의사가 가볍게 이별하듯 흘리는 웃음 그것들을 마주칠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아일랜드 밴드의 연주, 빈혈기, 힘없이 대낮 광장을 가로지르는 새들
    겨울에 떠올리는 강의 물빛 그것을 바라보는 눈, 어떤 꿈의 차가운 암호, 유리 조각이 흩뿌려진 기타, 그 밴드는 아일랜드가 아니라 핀란드 아니 스웨덴 출신인지 모른다 고칠 수 없는 병, 선인장과 신지 않은 신발, 소화기 내과 병실에서 여자들은 매일 배가 아프다며 울고 밤마다 벽에 머리를 찧는 여자는 속옷 차림으로 달아나는 꿈을 꾼다
    새카맣게 썩어가는 꽃다발… 접힌 퍼즐 조각을 간호사가 주워준다 모두 잠든 병동은 새하얀 겨울, 울다 지친 여자의 젖은 이마가 풍기는 축축한 냄새 래글런 코트를 입고 침엽수로 빼곡한 길을 걷고 싶다 북부 지방의 병든 자들은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신을 꽝꽝 언 호숫가에 던져버리겠지 얼음판 위로 코요테가 낑낑 대겠지 하지만 여기서 즐길 수 있는 건 난동뿐이야 이 썩은 내장을 꺼내 코요테에게 던져주고 싶다 끊어진 수화기 너는 정말 올 수 있을까
    스웨터 좁은 입구, 목은 빠져나오지 못한다 스웨터 안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빙하를 생각한다 출렁이는 얼음들 아일랜드 밴드의 연주가 멈춘 동안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변해간다 반도의 밤 어딘가에서 다친 허벅지를 얼음조각으로 도려내는 천사의 가쁜 숨, 물 위에서 하염없이 쪼개지는 빙하처럼

 

 

 

 

 

 

 

 

 

 

 

 

 

 

작가소개 / 주하림

2009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이 있음.

 

   《문장웹진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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