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곡선 - 최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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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가을의 곡선

 

 

최민우

 

 

 

    회색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에 나타난 피아니스트의 검은색 고수머리와 녹색 눈동자에서 술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그는 진송이 건넨 명함을 보며 두세 번 더듬거리더니 송, 송, 송, 이라고 노래하듯 중얼거리고는 자기를 크리스티안이라 불러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송.”
    진송이 크리스티안과 악수하며 여행은 어땠는지 물었다. 그는 주사위처럼 각진 억양의 영어로 좋았다고, 한국 항공사 승무원들이 무척 친절했다고 대답했다.
    크리스티안은 40대 중반의 여위고 껑충한 남자로, 에이전시를 통해 진송이 받은 프로필 사진을 한 번 세게 구겼다 도로 편 인상을 줬다. 표지판을 앞에 두고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수염이 덥수룩한 턱 위로는 순진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이 보통 그러듯 여기 무사히 당도한 게 새삼 놀랍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 뒤 하늘을 흘끗 올려다보고 진송에게 말했다.
    “비가 오기 전에 얼른 출발하는 게 좋겠어요.”
    비? 진송은 크리스티안과 같이 걸으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화창한 가을하늘에 구름이 몇 조각 걸려 있었다.
    주차장에서 진송은 대표에게 아티스트를 픽업했고 호텔에 도착하면 연락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 소유의 아반떼 승용차가 인천공항을 빠져나가는 동안 크리스티안은 뒷좌석에서 공항이 정말 넓고 멋지고 모던하다고 감탄하다가 도로로 접어들자마자 부드럽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숙취의 결과로 짐작되는 시큼털털한 냄새가 차 안에 번졌다. 진송은 차창을 조심스럽게 열었다가 닫았다.
    다리를 건너는데 거치대에 올려 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진송은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는 전화기가 그대로 떨리도록 내버려뒀다. 요즘 그녀는 회사 일을 제외하고는 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부터는 그랬다.
    다만 지금 이 전화는 일종의 회색 지대에 놓인 것이었다. 혜진은 지난주부터 출근하지 않았지만 아직 정식으로 퇴사 처리는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진동이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진송이 룸미러로 크리스티안을 보았다. 그가 몸을 움찔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진동이 계속되었다. 피아니스트의 눈꺼풀이 그에 반응하듯 떨렸다. 그녀는 문득 지금 이 상황이 자기와 자기 전화기가 아니라 전화기와 크리스티안의 수면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진송의 인생이 종종 본인을 제외한 채로, 마치 그녀 자신이 자기 인생의 부산물인 양 흘러가곤 하는 것처럼.
    그녀는 기다렸다. 이윽고 진동이 멈추더니 액정 위로 메시지가 떴다. 팀장님 지금 일하고 계시는 중인가 봐요? 시간 나면 전화 주세요!
    “여기가 서울인가요?”
    진송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크리스티안은 잠에서 깨어나 차창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아직 인천이거든요. 좀 더 가야 돼요. 서울은 처음이시죠?”
    “그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무슨 뜻인가요?”
    “홍콩으로 가던 중에 비행기 스케줄 문제로 공항 옆 호텔에서 하룻밤 잔 적이 있어요. 오래전인데, 아까 그 공항은 아니고요.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요.”
    “그럼 김포공항이었나 보네요.”
    “그런가요? 아무튼 그래서 겪어 봤다고는 못하겠지만 모른다고도 못하겠어요. 인생이 그렇듯이.”
    진송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티안이 덧붙였다.
    “눈이 많이 내렸어요. 그건 기억이 납니다. 활주로에서 공항 직원들이 눈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교차로를 지나면서 차들이 속도를 늦췄다. 누가 뒤에서 짧고 날카롭게 경적을 울렸다. 그 소리에 진송의 신경이 곤두섰다. 운전대를 탁탁 두드리기 직전에 겨우 손을 거뒀다. 최근 그녀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참을성이 말라붙었다는 걸 느끼곤 했다. 누군가 그녀 몫의 인내심을 강탈한 다음 옥상에서 지폐를 뿌리듯 허공에 날려버린 것 같았다.
    진송은 천천히 차를 몰았다. 차창 밖으로 배수관 공사 현장이 보였다. 안전모를 쓰고 조끼를 입은 인부가 맨홀로 들어갔다. 동료 인부들 중 하나가 아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 차창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내의 레지던스 호텔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여댔다. 진송이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는 동안 크리스티안은 밖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구경했다. 객실 카드키를 건네받고 고개를 들었을 때, 진송은 그가 코트 주머니에서 은빛 플라스크 술병을 꺼내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넘기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녀는 연못을 향해 굴러가는 유모차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피아니스트의 등을 바라보았다.

 

    진송은 올 봄에 이혼했다. 법적 절차는 까다로웠다. 결혼할 때는 혼인신고서 한 장만 작성하면 됐는데. 세상 이치가 그랬다. 구매는 쉽지만 환불은 복잡하고, 가끔은 불편한 소리도 듣는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려고 중언부언 늘어놓은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나는 너 정도면 적당한 상대라고 생각해서 결혼한 거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네 주제를 좀 파악하고 살아.’
    진송은 대표에게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대표는 메조소프라노에서 사업가로 전향한 저돌적인 50대 여성으로,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 다음으로 가성비를 숭상했다. 우리는 가성비에 목숨을 걸어야 해. 우리 같은 구멍가게는 가성비에 신경 쓰지 않으면 못 버텨. 내 섭외 기준은 딱 하나야. 가성비. 저렴하고 알찬 아티스트.
    “예를 들면 이런 애 말이야.”
    그녀가 진송의 책상에 잡지를 펼치며 말했다.
    크리스티안 콜은 독일 에센 출신이었다. 5년 전 오슬로에 있는 작은 클래식 레이블에서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메트너의 곡으로 꾸민 독주 음반을 발표했는데, 그 음반이 영국 클래식 음악 잡지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에 선정되었다. 잡지의 리뷰어는 크리스티안이 연주한 메트너의 소나타에는 비범한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기존의 명연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팸플릿 원고를 쓰는 틈틈이 이혼 문제로 가족과 의절 직전까지 다퉈 가면서 진송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리뷰가 피아니스트의 경력에서는 어두운 골목에 켜진 단 하나의 가로등 같은 광채였던 듯했다. 크리스티안은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띄엄띄엄 독주회를 가지면서 마이너 오케스트라와 이따금씩 협연을 했다. 구글에서 찾아낸 공연 기사에서는 크리스티안을 기복이 큰 연주자라고 했다. 주 레퍼토리인 메트너에서는 기교가 돋보였지만 베토벤과 브람스에서는 기교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약점을 드러냈다고 했다. 그녀는 그 기사에서 문장을 따와서 아티스트 소개글에 넣었다. ‘그는 해외의 매체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여름 크리스티안은 같은 레이블에서 베토벤과 브람스를 녹음한 음반을 발표했고, 그가 소속된 에이전시에서는 가을에 일본의 소도시 몇 곳을 방문하는 투어를 기획했다. 내한공연은 대표의 욕심이었고, 다들 쓸데없이 일이 늘었다고 투덜거렸지만 개런티를 일본의 3분의 2 수준으로 협상한 대표의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전시에서 진송에게 아티스트의 요구사항을 메일로 보냈다. 객실은 금연실로. 생수는 볼빅. 샌드위치는 토마토를 빼고. 등등.
    플라스크에 무슨 술을 넣어야 하는지는 없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은 대표가 말했다.
    “알아는 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손 떨어?”
    진송이 잠시 생각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싼 게 비지떡이 아니면 좋겠는데. 어쩐지 계약이 너무 순조롭다 했다.”
    대표가 계속 말했다.
    “나 오늘 못 갈 것 같아. 저녁 잘 대접하고, 기분 잘 맞춰 줘. 끝나면 바로 퇴근해.”
    진송은 전화를 끊은 뒤 회사에 있는 직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답장이 왔다. 예당 양 실장님 만나기로 했나 봐요. 브런치 음악회 때문에. 그리고 혜진이가 회사 사람들한테 한턱 쏜다는데 팀장님하고만 연락이 안 된다고 그러네요. 이번 주 금요일 어떠냐고 그러는데 괜찮으세요? 진송은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고, 일단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정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진송은 저녁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호텔 라운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손님은 진송과 외국인 커플이 전부였다. 혜진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들었던 것만큼 빨리 사라졌다. 금요일로 정했다는데. 그때 봐서 갈지 말지 정하면 될 일이었다.
    혜진은 문화재단 공채 최종 면접을 통과하자마자 사직서를 썼다. 진송은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합격했다고 말할 때 설명하기 어려운 당혹감에 휩싸였는데, 그녀가 진송을 포함한 회사 사람 모두에게 지원 사실을 숨겨서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에 누가 봐도 모를 수 없는 기쁨이 드러나서만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송이 전부 다 가르치다시피 하면서 점심 메뉴까지 똑같이 고르던 찰떡궁합이었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일이 힘들어 죽을 것 같다며 흐느끼다시피 하던 혜진을 위로하다 자기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서만도, 그래서 회사에서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이 되어서만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중 어떤 것도 아닐 수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진송의 입에서 맨 먼저 튀어나온 말은 “그럼 영수증 결산은 누가 해?”였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어조에 그녀 자신도 놀랐다. 뭔가 날카로운 걸 앞뒤 재지 않고 휘둘러버린 기분이었다. 그녀는 혜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알아차리고는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이제 공연 지원에 대해 문의하려고 전화할 때 네 목소리 듣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했지만 이미 무언가 어긋난 뒤였다. 마치 상영 중에 잘려버린 스크린 속 영화 화면처럼.
    통유리 밖에서 해가 저물어 갔다. 진송은 어두운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자기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 요즘 들어 늘 그래 왔듯이.

 

    약속시간에 크리스티안을 로비에서 만났을 때 진송은 그의 손을 슬쩍 보았다. 마디지고 긴 손가락이 해먹에서 잠든 사람처럼 평온하게 늘어져 있었다.
    크리스티안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진송은 그를 호텔 근처의 한식집으로 데려갔다. 식당 안은 단체회식 때문에 소란스러웠지만 크리스티안은 상관없다고 했다. 진송은 서울식 불고기를 주문했다. 크리스티안은 젓가락을 잘 다뤘고, 불고기가 야키니쿠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했다.
    “인생의 맛이군요.”
    진송이 말하자 크리스티안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녀가 설명했다.
    “겪어 봤다고는 못하겠지만 모른다고도 못하는 맛이니까요.”
    크리스티안이 웃었다. 진송이 계속 말했다.
    “내일 공연이 기대돼요. 메트너를 실연으로 듣는 건 처음이거든요. 바깥에서 모니터로 들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오. 메트너를 좋아하나요?”
    “실은 잘 몰랐는데 이번 연주회를 계기로 좋아하게 됐어요. 공연 준비하면서 계속 당신 음반을 들었거든요.”
    “감사합니다. 보통은 다들 그렇게 시작하지요.”
    크리스티안이 빙긋 웃었다.
    “그런데 여기 맥주는 안 파나요? 불고기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진송은 잠시 망설였다. 한두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차라리 지금 약간 마시게 하고 재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진송은 국산 맥주를 한 병 주문했고, 크리스티안은 그녀가 자기 잔에 술을 따라 주는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게 한국의 음주문화라는 거죠?”
    맥주가 들어가자 그는 말이 많아졌다.
    “메트너와 라흐마니노프는 평생을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어요.”
    진송도 자료를 조사했기 때문에 대략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티안이 계속 말했다.
    “하지만 메트너는 자기 친구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했어요. 슬프지만 사실이죠. 어떤 사람들은 메트너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기억할 만한 멜로디가 없는 라흐마니노프’라고. ‘가난한 사람의 라흐마니노프’라고도 했어요. 둘 다 같은 뜻이에요. 잔인하죠. 하필이면 친구의 음악과 비교하다니. 하지만 저는 그게 정말 부당한 평가라고 생각해요. 평생을 그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싸워 왔고요. 내일도 마찬가지예요. 내일은 베토벤과 브람스도 연주할 거고, 사람들은 베토벤과 브람스에 더 익숙하겠지만, 저는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메트너의 아름다움을 들려줄 거예요.”
    “왜 그렇게 메트너를 좋아하게 됐나요?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나요?”
    단체손님이 빠져나가서 식당은 조용했다. 진송의 질문에 크리스티안이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연이라.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따르는 게 편해요.”
    그가 잔을 채우며 말했다. 테이블에 놓인 맥주는 어느새 세 병으로 늘어나 있었다. 진송은 이걸 누가 언제 주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실은 메트너는 제 선생님이 무척 싫어하는 작곡가였어요.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증오하다시피 했죠. 이유는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말을 안 했으니까. 그저 그런 음악은 연주하면 안 된다고 할 뿐이었죠. 그래서 저도 메트너를 몰래 연습하는 이유를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그러던 중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 음악의 별자리가 하늘에 그려져 있었던 거고요. 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음악가이자 교사였고, 결국 제 선택 때문에 선생님과는 사이가 멀어졌지만, 후회는 없어요.”
    “훌륭한 사연이네요.”
    “살다 보면 결국 과거를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죠. 안 그러면 거기에 매몰될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는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해요. 무대에 설 때는 더요.”
    “선생님도 결국엔 자랑스러워하셨을 거예요. 세계를 누비는 훌륭한 음악가가 됐으니.”
    “글쎄요. 지금은 돌아가셨으니까 물어볼 수가 없네요.”
    크리스티안이 잔을 비우고 진송을 보았다. 녹색 눈에 고집스런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아무튼 저는 저 자신을 믿어요. 그게 제가 믿는 전부예요.”
    진송은 화제를 돌렸다.
    “오늘 비가 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크리스티안이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진송이 계속 말했다.
    “낮에 비가 올 거라고 했잖아요. 하늘이 맑았는데.”
    “아. 그거요.”
    크리스티안이 잔을 비우며 얼버무리듯 말했다.
    “하늘에 구름이 떠 있어서 그냥 말해 본 거예요.”
    그녀는 그를 로비까지 바래다준 다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날 밤 진송은 어수선한 꿈을 꿨다. 크리스티안을 닮은 메트너가 피아노를 치다가 중간에 막히는 바람에 공연장에서 쫓겨났는데, 혜진이 빈 의자에 앉아 연주를 계속하는 꿈이었다.

 

    다음날 오전 진송은 티켓 판매 현황을 점검하고 팸플릿과 리플릿을 챙기고 초대 손님과 이벤트 당첨자 명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혜진이 담당했던 여름 실내악 축제의 시 지원금 내역 정리도 진송에게 돌아왔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빠진 영수증을 받아야 해서 축제 당시 진송의 회사와 계약했던 현악 4중주단의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용건을 듣자마자 화를 벌컥 내더니 자기를 사기꾼 취급하는 거냐며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보다 일찍 점심을 먹은 뒤 차를 몰고 레지던스 호텔로 향했다. 크리스티안에게는 룸서비스를 이용하라고 말해 뒀으니 식사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크리스티안은 룸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진송은 직원에게 객실에 전화를 걸어 달라고 부탁했고, 직원은 수화기를 한참 들고 기다리다가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진송은 직원과 함께 객실로 올라갔다. 직원이 비상용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피아니스트는 전날 입었던 옷 그대로 침대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미니바에 있던 술병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실수로라도 술이 남은 병은 하나도 없었다.
    직원이 크리스티안을 일으켜 침대 가장자리에 앉혔다. 그의 녹색 눈동자에 천천히 빛이 돌아왔다. 그가 진송에게 미소를 지었다.
    “서울의 햇살은 왜 이렇게 눈이 부시죠?”
    그러더니 손으로 입을 감싸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잠시 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와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소리가 들렸다. 진송은 직원을 내보낸 다음 창가로 갔다. 알코올중독자를 얕봤다. 맥주 세 병 가지고는 간에 기별도 안 갔을 게 뻔한데. 그녀는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심호흡을 했다. 고층 건물 공사현장이 앞을 가려서 경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티안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나왔다. 그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보였고,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냉장고로 갔다. 그런 다음 생수를 컵에 따르고 발포비타민을 집어넣은 뒤 단숨에 마시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곧 준비하고 나갈게요.”
    진송은 로비로 내려가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서 케어 못 할 것 같아?”
    진송은 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연주자가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점심까지 술 말고는 아무것도 안 먹은 것 같다고 했다. 객실을 대충 둘러봤을 때 음식물은 눈에 띄지 않았고, 룸서비스를 이용한 기록도 없었다.
    “비지떡, 비지떡, 비지떡.”
    대표가 신음하듯 말했다.
    “내 그 인간들을 그냥…… 이런 문제는 미리 말을 했어야지.”
    대표는 일단 무사히 데려오라고, 우리도 일찍 출발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진송은 호텔 앞 편의점과 베이커리에서 각각 숙취해소 음료와 토마토가 없는 샌드위치를 샀다. 로비로 돌아와 보니 크리스티안은 슈트 커버와 악보가 든 가방을 들고 널찍한 바닥에 서서 평균대 위에 올라선 체조선수처럼 몸의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습니다. 새벽에 밖에 나가서 뭘 좀 먹었어요.”
    진송이 묻자 크리스티안이 대답했다.
    “새벽에요? 밖에 나갔다고요?”
    그녀는 경악에 휩싸여 크리스티안을 보았다. 피아니스트가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괜찮았어요.”
    그녀는 크리스티안이 새로 사귄 좋은 친구들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들이 술병과 함께 객실에 나자빠져 있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럼 이거라도 드세요.”
    진송이 숙취해소 음료 뚜껑을 돌려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그녀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동양의학의 정수를 모아 제작한 신비의 물약이에요. 그 좋은 친구들도 지금쯤 다 마셨을 거예요.”
    한강을 건널 때까지 진송은 입을 꾹 다문 채 운전했다. 룸미러를 흘끗 쳐다보니 피아니스트는 경찰서 벤치에서 잠이 깬 취객처럼 앉아 있었다. 이제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가 상상 속의 피아노 건반을 짚듯 무릎 위로 손을 놀리는 게 보였다. 움직임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진송이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짜증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인내심을 쥐어짜야 하는 사람은 크리스티안이 아니었다.
    “네. 괜찮아요. 그 동양의학…… 신비의 물약이요…….”
    그가 나무뿌리를 씹은 듯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효험이 있네요. 혹시 또 있나요?”
    “한 병이면 충분해요.”
    “그렇군요. 아무튼 저는 괜찮습니다. 송은 어떻습니까? 괜찮은가요?”
    “저요? 제가 왜요?”
    “아뇨. 별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괜찮죠, 물론. 저는 괜찮아요.”
    진송이 얼굴을 평온하게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공연 날이라 화장에 더 힘을 줬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음악의 별자리라는 둥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그녀는 돌연 돌부리에 발이 차인 듯 불쾌해졌다. 지금껏 그녀는 괜찮냐, 괜찮다 따위의 섣부른 위로가 오갈지 모를 상황을 가능한 한 철저하게 차단해 왔다. 진송의 소식을 전해 듣고 건너들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결국 혼자 남는 순간엔 어찌할 것인가? 연민이란 물처럼 아래로만 흐를 뿐이고, 마음이란 창호지만큼이나 쉽게 젖고 찢어진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송. 잘할 수 있어요.”
    “알아요.”
    그녀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정말입니다. 충분히 쉬어서 힘이 넘쳐요. 어젯밤에는 낯선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기분이 조금 들떴나 봐요. 서울은 알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운 도시더군요. 겉보기에는 도쿄와 별 차이를 못 느꼈는데 훨씬 거칠고 야생적이에요.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승무원들이 그럴 때부터 알아봤어요.”
    알겠으니까 제발 닥쳐요.
    거치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혜진이었다. 얘는 업무시간인 거 뻔히 알면서 왜 낮에 전화를 해대는 거지? 저녁에는 축하파티를 하느라 바쁘신가? 새 삶을 준비 중이라 회사일 따위 다 잊었나? 제 업무까지 몽땅 나한테 떠넘긴 다음 훨훨 날아가 버려놓고선? 그때 왼쪽 차선에 있던 SUV가 깜박이를 켜지 않은 채 그녀 앞으로 끼어들었다. 진송이 경적을 눌렀다. 손을 떼고 나서야 그녀는 자기가 10초 가까이 경적을 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SUV는 계속 움직여서 진송의 오른쪽으로 건너갔다. 진송이 속도를 내 SUV를 앞지르면서 옆을 흘끗 보았다. 선팅이 짙어 운전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대신 다른 차들의 운전자들이 진송을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뒤 SUV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서 멀어졌다.
    크리스티안이 룸미러를 통해 접시를 깬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진송을 보았다.
    “미안합니다.”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걱정시킨 거 압니다. 충분히 그럴 만해요.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믿기 때문에…….”
    “안 믿으면 어쩔 건데요? 안 믿으면 연주 안 할 거예요? 그냥 집에 갈 거냐고. 공연이 몇 시간 남았다고 아직도 징징거리고 있어요? 청중이 기다리고 있잖아. 싸운다면서요. 이제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가면 화장실에 가서 세수부터 해요. 그리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습을 하라고요. 알겠어요?”
    말을 끝내자 진송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말라붙은 참을성. 강탈당한 인내심. 결국 저질러 버렸다. 그녀의 잘못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크리스티안은 침묵했다. 갑자기 터져 나온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테니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진송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억양과 표정으로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가사 없는 음악이 리듬과 선율로 만국공통어 노릇을 하듯. 크리스티안은 뒷좌석에 기대어 앉았고,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연장은 갤러리와 함께 운영되는 실내악 전용 홀로, 어쿠스틱이 좋고 잔향도 적절히 울려서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달팽이집처럼 둥그렇게 쌓은 외벽을 따라 붙여 놓은 무지갯빛 타일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지만, 막상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붉고 노란 단풍이 홀을 둘러싸고 있었고, 옆으로 난 이차선 도로에서 헬멧을 쓰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진송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크리스티안과 함께 내렸다. 공연장으로 들어가자 대표와 직원들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송은 어쩐지 자기가 용의자를 경찰에 넘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워요. 컨디션 좋아 보이네요!”
    대표가 크리스티안과 악수를 했다.
    “어제 못 가서 미안해요. 사정이 있었거든요. 숙소는 마음에 드셨어요? 한국은 처음이죠? 일정이 여유로웠으면 서울 관광을 해도 좋은데…….”
    대표가 크리스티안을 데리고 연주자 대기실로 사라졌다. 진송은 공연장 사무실로 가서 무대감독을 만나 공연 진행에 대해 상의했다. 몇 번씩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아도 현장에 가면 언제나 말이 달라졌다. 채무관계를 따지는 것도 아닌데 각자의 기억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얘기를 끝내고 사무실을 나왔을 때 로비는 눈 덮인 새벽처럼 조용했다. 통유리 밖으로 갤러리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보였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홀 밖으로 나와 산책로로 향했다. 3, 40분 정도는 여유가 있었고, 딱히 무언가를 생각할 생각은 없었다. 구부러진 산책로를 걷는 동안 홀 뒤의 작은 산에서 바람이 불었고,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단순명료한 형태의 잿빛 직사각형 건물이 있었다. 그곳이 갤러리였다. 갤러리 입구 옆 벽면에 붙어 있는 포스터가 진송의 눈에 띄었다. 팔다리가 조각조각 갈라진 남자가 인쇄된 포스터였다.
    진송은 천천히 벽까지 다가가 포스터를 유심히 살폈다. ‘연금술: I-X’라는 글자 아래 흙으로 만든 남자의 전신상 사진이 찍혀 있었다. 조각조각 갈라져 보였던 건 남자의 몸에 굵은 금빛 선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어서였다. 마치 육체라는 껍질이 갈라지면서 내부에 있던 빛이 새어 나오기라도 하듯.
    “긴쓰기에서 힌트를 얻은 거예요.”
    진송이 뒤를 돌아보자 언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는 낯선 여인이 서 있었다.
    여인이 진송에게 미소를 지었다. 진송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인상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 첫인상이었다.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늙지도 젊지도 않았고,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았다. 전체적인 인상이 하나로 모이지가 않아서,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아니냐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긴쓰키요?”
    “긴쓰기. 일본어예요. 이렇게 써요.”
    여인이 손가락으로 허공에 이리저리 선을 그었다.
    “깨진 그릇을 고칠 때 금이나 다른 반짝이는 금속으로 수선을 하는 기술이에요. 깨진 부분을 감추는 게 아니라 더 돋보이게 하는 거죠. 그러면 오히려 그릇의 가치가 처음보다 더 올라가요. 그 아이러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기법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저는 제가 구할 수 있는 가장 질 낮은 재료를 써서 긴쓰기 기법을 적용해 봤답니다.”
    여인이 계속 말했다.
    “이 사진에 있는 남자는 문구용 찰흙으로 만들었어요. 그 외에도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이나 병, 길바닥의 돌, 오물이 묻어 못 쓰게 된 골판지 상자 같은 것들을 조각낸 다음에 보수해 봤어요. 틈 사이에는 도금을 했고요.”
    “그렇군요.”
    “시련의 가치에 대해 표현해 보고 싶었거든요.”
    “시련의 가치요.”
    진송이 여인의 말을 따라했다.
    “네. 흔히들 그러잖아요.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고. 저는 긴쓰기가 그 사상에 기반을 둔 기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련의 흔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거죠. 하지만 도로 고친다 한들 더는 아무 쓸모없는 존재에게 시련이란 무얼까요? 그것 역시 가치를 갖는 걸까요? 아니면 더 엉망이 될 뿐일까요?”
    진송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인의 말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대답에 물음표를 붙인 것처럼 들렸다. 흰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새까만 두 눈이 주의 깊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에 들어와서 다른 작품도 보시겠어요?”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웠지만 냅킨에 적힌 환영인사처럼 중립적인 느낌을 주는 웃음이었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그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마른 잎이 여전히 매달려 있는 나무들에서 메마른 박수소리가 났다.
    “그러고 싶지만 공연 준비를 해야 해서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진송이 말했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진송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뒤돌아 걸었다. 등 뒤에서 뭔가가 몸을 부드럽게 누르며 앞으로 미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이내 사라졌다. 돌아보니 여인은 없었다. 갤러리 건물만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 서 있었다.
    그제야 진송은 포스터에 작가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처 못 본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돌아가 확인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산책로를 나와 공연장으로 들어갔을 때 직원들이 팸플릿과 크리스티안의 CD 앞에 복사용지를 접어 만든 가격표를 놓고 있었다. 회색 옷을 입은 직원이 크리스티안의 얼굴이 인쇄된 X배너를 설치하다가 그녀를 보았다.
    “대표님이 연주자 술병을 압수했어요. 그 은색 병.”
    회색 옷의 직원이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크리스티안이 뭐라고 안 했어?”
    “공연 무사히 끝나면 거기에 조니 워커 30년산? 블루라벨? 뭐더라? 아무튼 엄청 좋은 위스키를 채워 주겠다고 하셨나 봐요.”
    “그걸로 넘어갔다고?”
    “네. 그런데 팀장님, 금요일에 오세요? 혜진이가 팀장님 오는 거냐고 자꾸 묻던데. 직접 전화해 보라고 하니까 밤에는 전화 못 해서 낮에 하는데 안 받으신다고.”
    “왜 밤에 못 하는데?”
    직원이 진송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희한테 그러셨잖아요. 밤에는 회사 일 아니면 연락 안 받는다고.”
    홀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리허설 중인 모양이었다.
    진송은 살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객석 맨 뒷줄에 조용히 앉았다. 크리스티안은 베토벤을 연주하고 있었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 그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코다까지 나아갔다. 마지막 음이 끝난 뒤 그는 물을 마시고 나서 한동안 천장을 올려다보며 앉아 있다가 보면대에 놓인 악보를 치웠다.
    피아니스트가 메트너의 회상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진송은 연주회 팸플릿에 다음과 같이 썼다. ‘회상 소나타는 ‘잊힌 멜로디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모음곡 중 첫 곡이다. 메트너는 이 작품을 1920년, 그러니까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를 떠나기 전 해에 작곡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고,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1920년의 겨울에 작곡가가 느끼고 있었을 게 분명한 망설임이, 불안한 미래와 앞으로 닥칠 향수병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시적인 예감이 이 작품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왼손이 반복하는 단순하고 뒤뚱거리는 리듬 위에 오른손으로 불러내는 부드럽고 섬세한 선율이 편안히 주저앉았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서 요람처럼 흔들리는 작은 배에 올라탄 것 같았다. 이윽고 싸늘하고 냉소적인 느낌을 주는 또 다른 주제가 나타나면서 음악이 복잡해졌다. 리듬이 쪼개지고 주제 선율이 다채롭게 모습을 바꾸면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피아니스트의 양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크리스티안은 고개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땅에 떨어진 빵조각을 따라 미로의 출구를 찾는 것처럼 음악에 몰두했다. 마치 음악은 손끝에서 태어나 사라지는 단 한순간에 존재하며, 이런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듯.
    그는 아직은 자기의 별자리를 제대로 따라가며 음악을 항해하고 있었다. 알코올은 손가락까지 퍼지지 않았다. 그녀가 듣기로는 그랬다. 진송은 눈을 감고 그녀와 연주자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공간을 떠도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늦게 도착한 초대관객 한 명이 곡이 끝나기 전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쓴 걸 제외하면 연주회는 전반적으로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진송은 일하는 틈틈이 로비에 설치된 TV로 크리스티안의 연주 모습을 보았다. 연주회가 끝난 뒤 일곱 명이 크리스티안의 베토벤과 브람스 CD를 샀다. 메트너의 CD를 구입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크리스티안은 성실하게 사인을 하고 기분 좋게 촬영에 응했다.
    “내일은 제가 바래다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크리스티안을 태우고 호텔로 돌아가면서 진송이 말했다.
    “그래요?”
    “네. 제가 다른 일이 생겨서요. 다른 친구가 호텔로 올 거예요.”
    대표가 연주회 중 진송을 따로 불러내 브런치 공연 문제로 예당에 다녀와 줘야겠다고 말했다. 이제 쟤는 됐으니까,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지.
    “아쉽네요.”
    “내일 오는 친구가 훨씬 밝고 명랑해요.”
    진송이 변명하듯 덧붙였다.
    “운전도 잘하고요.”
    크리스티안이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는 주머니 안에 있는 걸 만지작거리다가 룸미러에 비친 진송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호텔에 도착하면 커피라도 한잔 할까요?”
    “네. 좋아요.”
    그들은 라운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밤에는 카페가 칵테일 바를 겸하기 때문인지 손님이 절반 정도 차 있었다. 조도가 낮은 조명 아래 테이블마다 초가 켜져 있었으며, 스피커에서는 부드러운 재즈 음악이 흘렀다. 크리스티안이 메뉴판을 골똘히 들여다보다가 결국 생각을 바꾼 듯 커피를 주문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진송이 물었다.
    “네. 연주 일정이 잡힌 게 없어요.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지 모르고.”
    진송이 크리스티안을 보았다. 그가 계속 말했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했어요. 당분간은 그 일에 집중하게 될 거예요. 언제까지 하게 될지 기약은 없지만.”
    “왜요? 피아니스트로는 아직 한창인데.”
    크리스티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에이전시와 계약이 곧 만료돼요. 연장하자는 얘기는 없고, 저도 말을 꺼내지 않고 있고요. 그 정도면 우호적으로 헤어지는 거죠. 다른 에이전시를 찾기도 어려울 것 같고.”
    “술을 끊어도요?”
    진송이 말했다. 크리스티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문제는 본질적인 게 아니에요. 제가 폴리니나 치메르만이었으면 재활원에 집어넣고 제가 고쳐질 때까지 계약서를 들고 기다렸겠죠.”
    피아니스트가 커피를 홀짝였다.
    “포기하는 건 아니에요. 그만두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걸음 물러서서 잠시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어제 했던 말은 모두 진심이에요. 과거를 버려야 할 순간이 오면 자신밖에는 믿을 수 없는 거죠. 하지만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은 사과해야겠죠. 프로답지 못했습니다. 미안해요. 학교에 있는 동안 이 문제도 고칠 거예요.”
    “저도 미안해요. 화를 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으니 상관없어요.”
    둘은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진송은 피곤이 몰려오는 걸 느꼈지만 아직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전화기는 테이블 위에 얌전히, 거의 무력하다시피 한 상태로 놓여 있었다. 생각해 보면 밤에는 그랬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다. 이제는 흔한 광고문자 하나 오지 않았다. 이 세상 모두가 해가 지면 그녀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그건 반가운 일이다. 평온한 일이다. 바라마지 않던 일이다.
    “저기.”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말씀하세요.”
    “이제부터 할 얘기는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네.”
    “다음에 전화가 걸려오면 꼭 받으세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 전화를 받지 않은 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요. 후회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대 잊을 수는 없을 거예요. 돌에 새겨진 글자처럼.”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 보이던데요.”
    “제 문제가 뭔지 모르잖아요.”
    “물론 저는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에요.”
    피아니스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모른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네요.”
    둘은 다시 커피를 마셨다. 진송은 서울이 정말 이상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도 장소와도 맞지 않는, 홀연히 날아와 창가에 앉은 새처럼 찾아온 생각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을 그보다 더 잘 표현하는 건 없었다. 크리스티안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테이블에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아 다정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테이블에 있던 촛불을 입으로 불어 껐다. 두 사람의 얼굴이 아주 잠깐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금요일은 비가 올 거예요. 우산을 준비하세요.”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작가소개 / 최민우

2012년 계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단편집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이 있다.

 

   《문장웹진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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