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 김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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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미 투

 

 

김미수

 

 

 

1

 

 

 

    7월 마지막 날의 정오, 햇볕이 뜨거웠다.
    기차역에서 내린 나는 역 광장을 지나 큰 길 쪽으로 걸었다. 한참을 걷자 다리 아래로 개천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개천으로 연결된 계단을 찾아 내려갔다.
    다리 아래 그늘진 곳에서 한 남자가 원반을 던졌다. 골드리트리버가 원반을 찾아 개천을 첨벙거리고 달렸다. 개가 원반을 물고 오자 남자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또다시 원반을 허공으로 던졌다.
    이렇게 매일 한 시간씩 운동시켜야 얘가, 관절이 튼튼해져요.
    남자는 개를 ‘얘’라고 불렀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얘가 순해요. 하지만 그쪽처럼 젊은 여자 분이 소리치면 달려들지 모르죠. 얜 수컷이라서.
    남자가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끈적이는 느낌에 나는 긴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묶었다. 그리고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았다. 보라색 패랭이꽃과 자주색 부처꽃이 개천가에 지천이었다. 물칭개나물꽃들은 맑은 물속에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나는 개천가에 모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내 옆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은 젊은 부부가 있었다. 젊은 부부는 예닐곱 살 된 아이와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개천에 발을 담그고 막걸리를 마시는 세 노인도 보였다. 개천 가운데 놓인 징검다리를 오가며 연인들은 물장난을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조정당하는 인형처럼,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에 잠깐 반응하는 사람들처럼,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어느 한 군데를 짧게 쳐다보곤 했다.
    나도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곳은 개천 건너편이었다. 정오의 햇볕이 내리쬐어 강한 열기가 이글거릴 뿐 인적도 없었다. 나는 시선을 개천으로 내려떴다. 그제야 다리 밑의 약간 으슥한 곳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발견했다. 그 바위 위에는 분명 남녀가 누워 있었다. 남녀는 더위를 식힐 그늘보다 함께 누워 있을 커다란 바위가 더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남녀는 서로를 깊이 껴안고 있었다. 민소매의 셔츠와 허벅지가 드러난 반바지를 입은 남자는 두 팔과 두 다리로 여자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남자의 두 팔과 두 다리는 문신으로 시커멓게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랗게 염색한 남자의 긴 머리카락이 여자의 검고 짧은 머리카락을 뒤덮으며 말갈기처럼 날렸다.
    나는 남녀를 외면했다. 바위 위의 남녀는 사흘 전, 자정의 시간에 숲에서 목격한 ‘그 일’을 떠오르게 했다.

 

 

 

*

 

 

 

    ‘그 일’이 있기 불과 한 시간 전, 밤 11시, 펜션의 홀 안은 유쾌했다.
    k창작회의 정기총회에서 새 회장 선거가 끝난 뒤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뒤풀이를 하던 중이었다. 각지에서 산골의 펜션으로 모여든 서른 명 남짓의 회원들은 새 회장을 선출하자 축제 분위기였다. 홀 밖에서 구워오는 바비큐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흥이 오르자 총회의 진행자가 노래방 기기를 틀었다. 흥겨운 노래가 홀 안에 가득 찼다.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
    홀 밖에서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회원들도 있었다. 대체로 기존 회장이 연임되기를 바라던 회원들이었다. 그들은 새 회장의 선출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무거운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 중에 염도 있었다. 염은 기존 회장을 마음껏 부려 왔다. 신임 회장을 손아귀에 넣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는 k창작회 같은 단체 네댓 개를 쥐락펴락하는 이 바닥의 실세였다. 그럼에도 선뜻 새 회장을 축하하는 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민 때문이었다.
    나는 벽에 기대앉아 혼자 캔 맥주를 마셨다. 홀 안의 회원과 홀 밖의 회원의 행동을 구경하면서. 구경꾼으로 내 포지션을 잡은 것은 ‘이 바닥’에서 창작에만 힘쓰기 위한, 내 나름의 전략이자 처세술이었다.
    염은 점점 더 빠르게 술잔을 비웠다. 새로 술잔을 채울 때마다 민을 노려보았다. 그런 염의 긴 눈은 먹이를 낚아챌 기회를 엿보는 맹수의 눈 같았다. 길고 날카로운 눈매와 매부리코, 가느다란 입술 때문에 그는 냉혈한처럼 보였다. 차가운 인상을 가리기 위해 어깨까지 오는 부드러운 곱슬머리에 붉은 계통의 원색 셔츠를 즐겨 입고 다녔다.
    민은 염이 노려보는 줄도 모르고 무대 중앙으로 나가 자유롭게 회원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나타난 민의 주변에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민은 천성이 활기차고 거침없었다. 쇼트 커트한 머리에 레드 오렌지 염색을 하고 다녔으며 대체로 흰 남방과 찢어진 청바지 차림이었다. 작은 얼굴에 유독 큰 눈을 짙게 화장해서 가뜩이나 크고 검은 눈망울이 더욱 선명하게 반짝였다.
    민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다.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는 창작 활동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했다. 그런 민의 열망 때문인지 민은 언론 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그러던 언제부턴가 민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민이 대중에게 알려지도록 적극적으로 밀어 준 사람은 염이었다. 언론계의 마당발인 염은 여러 언론 매체에 민을 소개해 주었다. 민은 유명세를 타자 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염은 도움을 주고 그 대가를 지불받는 데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염은 민이 유명해지자 민에게 대가를 받을 일만 남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염은 회원들 앞에서 민에 대해 성토하기도 했다. 알맹이만 빼먹고 자기 창작만 하겠다는 이기적인 회원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그러나 민의 주장은 달랐다. 민은 염에게 그동안 어떤 빚도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염이 언론매체에 자신을 소개해 준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염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임원이라면 마땅히 회원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홀 안으로 염이 갑자기 들어왔다.
    나와 봐!
    염이 말했다.
    몇몇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염이 민에게 나오라고 말하는 순간,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밖에서 날아든 돌멩이에 맞아 산산조각 난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처럼 들었다. 나는 최근에 염과 민의 관계에 대해 민감해져 있었다.
    염은 분명 평소와 달랐다. 그의 입은 공식석상에서는 언제나 감정을 절제하며 다물어져 있었다. 회원들이 작품 발표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말이나 창작기금을 더 많이 타내도록 물밑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희망적인 말을 할 때만 열리던 입이었다. 쉽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나와 봐!
    염이 한 번 더 말했다. 이성을 잃은 듯, 아니면 술기운에 취한 듯, 한 마리의 늙고 노회한 수컷처럼 민의 손을 잡아끌었다. 민이 염의 몸 쪽으로 휘청, 넘어질 듯했다.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한 회원이 민의 등을 밀었다. 그러자 민은 자포자기한 듯 입술을 비틀며 웃어 보였다. 그런 뒤 염의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홀 밖으로 걸어 나갔다.

 

 

 

*

 

 

 

    나는 염과 민을 뒤쫓아 걸었다. 희미한 달이 그들의 실루엣을 간신히 비춰 주었다. 그들은 펜션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계속 걸어갔다. 숲은 더욱 어둠 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멈춰 섰다. 나는 은행나무 뒤로 가서 몸을 숨기고 두 사람을 훔쳐보았다. 염이 민에게 무슨 말인가 떠들었다. 민이 돌아섰다. 그러자 염이 민을 안으려고 했다. 민은 거칠게 염을 밀어냈고 두 사람은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순간 민이 염의 따귀를 후려쳤다. 비명을 지른 것은 염이 아니라 민이었다. 염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민의 머리를 퍽퍽퍽 쳤다. 민의 비명이 몇 차례 더 이어졌다.
    왜 쳐! 개자식아. 왜 치냐고!
    민이 소리쳤다. 당장 달려가서 염의 폭력을 제지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마음뿐 내 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훔쳐보는 것을 그들에게 들킬까 봐 잔뜩 움츠렸다.
    염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대던 민이 바닥에 쓰러지듯 넘어졌다. 숲 어딘가에 숨어 흐르는 개울물 소리조차 민의 울음을 차단할 뿐이었다. 염이 바닥에 누운 민을 일으켜 안으려고 했다. 두 사람은 한바탕 엎치락뒤치락했다. 민은 소리치거나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나 민은 얼마 못 가서 조용해졌다.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대며 돌아섰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비릿한 냄새가 났다. 흙내, 혹은 물내, 아니라면 나무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인가 했다. 밤꽃 냄새 같기도 하고 피비린내 같기도 했다. 바람이 불지 않았지만 냄새는 어딘가에 실려서 나를 덮쳤다. 나는 눈을 떴다. 냄새가 비롯된 곳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염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민은 두 손을 바닥에 댄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네 발 달린 짐승처럼 기다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민은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염은 지나가는 행인을 보듯 움직임 없이 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민이 숲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자 염은 또 한 대의 담배를 피워 물었다. 민이 들어간 숲을 한 번 더 보고 염은 펜션을 향해 걸어갔다. 염의 담뱃불이 어둠 속에서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민을 찾아 숲 속으로 내달았다.
    민은 어둠 속에 숨었던 개울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민을 부축해서 개울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민은 일어나지 못했고 힘이 다 빠진 듯 뒤로 넘어졌다. 민의 머리가 바위에 부딪쳤다. 쿵, 하는 소리가 침묵에 빠진 자정의 숲을 울렸다.

 

 

 

*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남자가 개천의 어딘가를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손에 든 원반을 빨리 던지지 않자 개가 짖어댔다. 그제야 남자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원반을 허공으로 던졌다. 원반은 반원을 그리며 개천의 한구석으로 떨어졌다. 남자의 시선은 다시 개천 건너편으로 옮겨졌다. 남녀가 끌어안고 있는 바위 위였다.
    남자가 여자의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여자가 몸을 뒤틀 때마다 상의가 올라갔다. 그때마다 희멀건 유방이 드러나 보였다. 여자는 상의를 내리는 것을 포기한 듯 개천의 사람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남녀를 훔쳐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그러자 여자가 오히려 개천가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은 나와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여자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만 쳐다보라고 항의하는 손짓인가. 무언가 전하려는 손짓 같기도 했다. 여자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여자가 계속 내게 손짓하자 사람들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여자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여자를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여자가 내게로 보내는 무언의 손짓도 못 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만인 것 아닌가. 모른 척하면 모르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른 척하는 것과 모르는 일 사이에 어떤 진실이 내포되어 있는지, 그것을 따지는 것 역시 외면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내게 평생 강조했던 말이었다.
    어떤 일을 목격해도 모른 척해라. 무슨 일이든 각자 다 그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저질러진 일이라고 여겨라. 굳이 시비를 따져서 어느 편을 들려 하지 마라. 어느 쪽도 치우침 없이 그저 그런 일이 있구나, 하고 말아라.
    그렇게 아버지는 강조했고 간혹 여러 비유를 들기도 했다.
    물이 말라서 메마른 땅 위에 올라온 물고기들이 말라 가는 서로의 몸에 축축한 물기를 끼얹는다 치자. 혹은 서로의 몸에 물거품을 적셔 주며 서로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치자. 그래도 물이 가득한 드넓은 강이나 호수에서 물고기가 서로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또, 요 임금을 성군이라 칭찬하고 걸 임금을 폭군이라 헐뜯는다 치자. 그런 관심이, 양쪽을 다 잊고 절대의 도와 하나가 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할 수는 없겠지.
    아버지가 즐겨하던 비유는 ‘장자의 대종 편’에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가르침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기 전에 강조하던, 그야말로 ‘말’일 뿐이었다. 치매에 걸리자 아버지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을 뒤집었다. 그리고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말을 내 앞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

 

 

 

    정년퇴직 후 아버지는 고향에 내려갔다. 그런 뒤 얼마 후 치매를 앓았다. 온종일 북쪽을 향해 돌아앉아 지낸다고 했다. 어느 날부턴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허공에 대고 자꾸 빈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러 고향에 내려가면 아버지는 나를 아예 낯선 사람 취급했다. 체포하러 왔냐고 경계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 아버지의 눈동자에는 새파란 빛이 번쩍였다. 심지어 나를 마주하고도 내 왼쪽 어깨 뒤쪽에 누군가 있기라도 한 양,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난 아무것도 못 봤다니까, 라고 반복해서 말하며 몸을 떨기도 했다.
    치매에 걸리기 전, 아버지는 고향에 내려간 내 손을 붙잡고 당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군복무를 하던 중 소대장이 상병을 쏴 죽였어. 그걸 내가 목격한 거야. 상병은 내 군 입대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였거든. 상병이 죽는 것을 봤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어. 난 끝까지 모른 척했어. 그래서 상병은 총기자살자로 처리되고 말았지.
    아버지가 비밀을 털어놓던 날, 내 손목에 염주를 감아 주었다. 고향에 내려간 뒤 늘 차고 다니던 것이었다.
    상병이 죽기 전날 밤 나한테 이 염주를 줬어.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했어. 그런데 왜 주냐고 물었지. 만약 자기가 무사히 귀대하게 된다면 사회에서 돌려 달라는 거야. 만약에, 라니? 내가 물었지만 상병은 입을 다물었어. 털어놓지 못할 비밀이 있었던 거지. 그 비밀 때문에 상병은 죽었을 거야. 이 염주를 돌려받지도 못하고.
    아버지는 내 손목에 감아 준 염주를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난 이 염주가 이제 무거워. 너무 무거워. 버릴 수도 없고. 네가 잘 간직하고 있다가…….
    아버지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마지막 문장이 무엇이었을지. 네가 잘 간직하고 있다가, 상병이 어떻게 죽었는지 언젠가는 밝혀 줘, 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 간 것은 마을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였다. 아버지를 방문한 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아버지는 불붙은 장작 하나를 높이 쳐들고 마을길을 뛰어다녔다. 활활 타는 장작은 아버지가 뛸 때마다 허공에 불꽃을 터뜨렸다.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를 뒤쫓았고 나도 아버지에게로 뛰어갔다. 아버지는 그동안 부주의하게 뱉어낸 말을, 목격한 장면을, 기억을, 모조리 태워야 한다는 듯, 불붙은 장작을 허공에 휘저어댔다.
    다 태워야 해. 다 없애버려야 해.
    아버지는 그렇게 소리치며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옷에 불이 옮겨 붙었다. 뒤따르던 누군가가 양동이의 물을 쏟아 부었다. 물벼락을 맞자 아버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버지의 손에서 장작을 빼내려 했다. 꽉 움켜쥐고 있던 장작이 아버지의 손에서 힘겹게 떨어졌다.
    아무도 몰라.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난 못 봤어. 난 못 봤다고…….
    아버지는 주저앉아 그렇게 끝도 없이 떠들었다.

 

 

 

*

 

 

 

    전화벨이 울렸다. 염이었다. 염은 내가 하루 종일 전화 받지 않은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내게 최대한 친절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염의 목소리는 쫓기는 듯했다.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여행 중이라고 말했다. 염은 민의 소식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민이 오죽 또라이 같아야 말이지. 저렇게 설치다간 끝장나는 건 민이야. 경찰에 고발하고 기자들 앞에서 떠들고 다니겠다니, 이 바닥에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고. 그대로 매장이라고. 민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완전히 돌아버린 모양이야.
    나는 듣기만 했다.
    염이 내게 자주 전화하는 이유는 민이 내게 자주 전화하는 이유와 같았다. 잘 들어주고 소문을 내지 않는 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염은 민을 통해 나를 알게 되었고 그런 뒤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로 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염의 어떤 불의하고 불순한 고백들도 들어주었다. 그것이 불의하거나 불순한 일에 동조하는 일이 된다고 해도 나는 염이 털어놓는 말을 그저 듣기만 했다. 염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절대 발설하지 않는 나를 위해 보답을 해주겠다는 말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 말도 단지 ‘그가 하는 말’로 들었다.
    이 바닥 잘 알잖아. 내가 오죽 아는 기자들이 많아? 기자들이 민이 원하는 대로 기사를 내보낼 거 같아? 그대로 기사를 내보낸다고 해도, 알잖아. 마녀사냥. 민이 마녀사냥 당하는 건 시간문제야. 여자 회원들이 더 나서서 민을 성토할걸? 그러고 나면 내 손을 벗어나는 거야. 민은 아예 작살나는 거라고. 안 그래? 그러니 네가 좀 민을 말려 봐.
    나는 염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민을 말리면 그날 밤 있었던 일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말이야, 네게 좋은 일 만들어 본단 말 기억나지? 그러니 괜히 민이하고 부화뇌동해서 일 그르치지 말고. 알겠지?
    염은 언제나처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냄새나는 먹이를 던져 줘도 허겁지겁 받아먹는 개돼지로 보이냐고 대꾸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답지 않은 일이라고 자제했다. 누가 뭐라 해도 ‘그 사람의 말’일 뿐이라고 여겨라. 깊이 새겨듣지 말고, ‘그런 말’에 끼어들지 마라. 그냥 들어줘라. 그런 아버지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자칫 발끈할 뻔했다.

 

 

 

*

 

 

 

    염의 전화를 받고 나자 숲에 버려진 민을 부축하던 ‘그날’의 민이 떠올랐다.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서 아프고 어지럽다면서 민은 숲에 누워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민은 내 부축을 받고 큰 길을 찾아 걸었다. 콜택시를 불렀고 민을 집에 보낼 수 있었다. 그런 뒤 펜션으로 돌아갔다.
    홀에서 진행되던 축제는 이미 끝나 있었다. 펜션 주위의 가로등까지 소등한 채 모두 취침 상태였다. 그들 틈에 끼어 염이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터였다. 홀의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내 자리를 찾아 누웠다. 염의 손에 끌려 나간 민의 소식을 회원들이 물으면 뭐라 대답할지, 민의 귀가에 대해서 뭐라 변명할지, 민이 당한 것을 어느 정도까지 폭로할지, 내가 할 말의 수위를 조정하며 펜션에 돌아왔지만 부질없는 고민이었다. 회원들은 어둠을 덮어쓴 채 눈 감고 있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한편으로는 날이 밝으면 지난 밤 일을 회원들에게 어떻게 증언할지 고심했다. 민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폭력에 노출되고도 자신도 모르는 소문에 묻혀서 작품 활동할 힘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위계질서를 앞세우며 침묵을 강요하는 선배 회원에게 민이 도리어 삭제 당하지나 않을까. 날이 밝을 때까지 내가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거나 지우기를 반복했다.

 

 

 

*

 

 

 

    ‘그 일’이 있기 전 민이 내게 찾아왔다. 불과 서너 달 전의 일이었다.
    민은 그때 염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소문으로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 소문을 모르고 있던 사람은 소문의 당사자인 민, 뿐이었다. 그렇다면 소문의 진원지는 염이었을 것이다.
    그날 민은 자신의 비밀을 힘겹게 털어놓았다. 민은 한숨을 쉬었고 두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분하다고 몸을 떨었다.
    지방 행사가 끝난 뒤 염이 나를 붙잡았어. 가까운 데 들어가서 자고 가자고. 방을 두 개 잡겠다고. 허겁지겁 갈 필욘 뭐냐고. 기가 막혀서 화를 내니까,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라며 도리어 짜증을 부리고. 우린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잖아. 내가 이상한 놈이었음 널 지금까지 그냥 뒀겠어? 그런데 나를 못 믿어? 뭐가 문제지? 라고 떠드는 거야. 난 큰 길로 뛰었어. 택시를 타려고. 염이 뒤따라와서 기어이 나를 잡았어. 얼마나 집요하던지. 그러더니 좀 걷자고. 자꾸만 걷자고. 나는 걸었어. 무섭기도 했지. 그러니까 염은 자기감정에 도취해서 갈수록 내게 몸을 붙이는 거야. 난 여자 냄새가 좋아. 약간 비릿한 냄새가 더 짜릿해. 그게 비누 냄새보다 좋아. 그러더니 내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거야. 그리고 난 순식간에 골목으로 끌려갔어. 막다른 골목이었어. 아무도 없는.
    결국 당했던 거야?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민을 쳐다보기만 했다.
    며칠 뒤 용기를 내서 ‘센 선배’에게 찾아갔지. 염을 징계하는 서명운동이라도 벌여 달라고. 그 선배는 나를 나무랐어. 남으란다고 왜 남느냐고. 염은 선수라고. 너 같은 회원 하나쯤 어떻게 요리하면 되는지 너무 잘 안다고. 추문이 돌면 너만 온몸이 압정에 꽂힌 것처럼 꼼짝도 못 하게 될 거라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후배도 봤다고. 그게 자살이든 타살이든 돌이킬 수 없는 결과인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찾아오지 말고 혼자 알아서 넘어가라고. 공연히 남들까지 곤란하게 만드는 건 민폐라고.
    칼은 그런 식으로 보다 약자에게 겨누어지는 속성이 있다고. 칼은 피해를 주지 않을 상대를 찾아 겨누어지는 거라고. 그런 내 속엣 말을 삼키며 민의 말을 마저 들어주었다.
    할 수 없이 염에게 전화를 했어. 염은 그동안 해외여행 갔다가 두 주 만에 왔다고 했지. 지난번 일은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이젠 나를 놔달라고 했어. 그러자 뭐란 줄 알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쉽겠어? 그러는 거야. 소름이 끼쳤어. 정말로.
    민은 그렇게 서너 달 전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간신히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민은 ‘그날’ 또 당했던 것이다. 내가 민을 설득해서 총회에 데리고 가지 않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반드시 정기총회에 민을 데리고 참석해 달라는 염의 부탁을 내가 무시했다면…….

 

 

 

*

 

 

 

    ‘그날’, 아침이 되자 염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해장국을 먹었다. 누군가 민이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어제 술 취해서 주정을 하더니 부끄러워서 새벽 일찍 도망친 모양이라고 염이 말했다.
    ‘그날’, 염은 펜션을 나온 뒤 몇몇 회원들과 함께 창작인 행사에 참석했다. 만찬이 끝나자 남아 있던 회원들과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나는 염의 모든 일정에 동행했다. 염의 민낯을 남김없이 봐줄 참이었다.
    밤이 늦어서야 염은 회원들과 헤어졌다.
    지난밤에 민이 많이 다쳤어요. 폭행하는 건 내가 다 봤고요.
    나는 택시를 타기 전, 염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않았지?
    아직은. 나는 말했다.
    괜히 끼어들지 마.
    나는 말없이 돌아서서 택시를 탔다. 염은 민을 폭행한 무자비한 주먹이고 민의 몸을 걷어차고 짓밟은 더러운 발이고 민에게 욕설을 퍼부은 지저분한 입이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인간이며 자기 안의 폭력을 마치 고인 정자를 배출하듯 아무렇게나 배출하는 자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 다음날 민은 내게 전화를 걸어와, 염을 매장시키겠다고 큰소리치다가 침울해지곤 했다.
    맞은 건 난데 왜 내가 이렇게 못난 인간같이 느껴지지? 죽고 싶을 만큼 자존감이 무너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다가도 곧바로 감정이 격해져서 전사처럼 선언했다.
    병원에서 진단서도 떼어 놨어. 경찰에 신고해서 체포하게 한 뒤 기자들을 부르려고 해. 두고 봐. 이번엔 제대로 할 거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민에게는 연락이 없다. 민이 어떻게 행동할지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애가 탔다. 그래도 먼저 연락할 수는 없었다. 초조감 탓에 나는 무작정 기차를 탔고 지금 개천에 와 있는 것이다.

 

 

 

*

 

 

 

    민에게 전화가 왔는가 싶어서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축하합니다. 올해의 젊은 창작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셨네요.
    올해의 젊은 창작인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역시 우리의 염 총장님이 운영위원장이셨네요.
    나는 액정 속에 넘쳐나는 축하 문자를 생경하게 쳐다보았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내 눈으로 기어 들어온 것 같았다. 액정 속 문자는 분명 내게 쏟아져 들어온 것들이었다. 증언하지 말고 입 다물어 달라는 뇌물인가. 내가 상을 수락할 의사가 있는지 묻지도 않고 언론에 발표부터 내보낸 것인가. 내가 수락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염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나는 염에게 크게 당한 기분이었다. 회원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민이 안다면 어떤 오해를 할 것인가. 오싹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대처할지 막막했지만 나는 일단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어쩌면 앞으로 ‘이 바닥’에서 사라지는 것은 염도 민도 아닌, 바로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다시 바위 위의 남녀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행동은 더 대담해져 있었다. 여자의 몸을 반듯하게 눕히더니 그 위에 올라탔다. 여자의 상의가 반쯤 벗겨져 있었고 남자가 움직여도 저항하지 못했다. 남자는 여자의 위에 올라탄 뒤 하체를 흔들어댔다.
    개천에서 물장난을 하던 연인이 그 장면을 보았는지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돌아섰다. 원반을 던지던 남자도, 술을 마시던 노인도 고개를 돌렸다. 대낮, 정오의 햇빛 아래서,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곳에서 이뤄지는 남녀의 행위는, 목격자가 얼마 동안 방관할 수 있는지 인내심을 시험해 보는 것처럼 더 노골적으로 변해 갔다.
    오래 전부터 저 남자는 저 곳에서 저런 짓을 상습적으로 저질러 왔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참견하지 않는다면 저 남자에게는 백 년 동안 이어질 수 있을 일상적이고 자연스런 행위인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여자를 쳐다보았다. 제발 그만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여자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필사적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는 조금 전처럼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순간 부끄러웠고 여자에게 손짓을 보내 아는 척하고 말았다. 그 순간 내 증인이 되어 달라던 민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기자회견을 해서 염을 매장시키겠다던 목소리도 들려왔다.
    내가 손을 흔들자 여자가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이제야 자신을 보고 손짓을 한 사람을 발견한 것에 감격한 듯, 아니면 이제야 제발 구해 달라고 할 사람을 만났다는 듯, 여자는 더 크게 손짓을 했다.
    나는 순간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확신했다. 분명 남자는 여자를 학대하고 있었고 여자는 당하고 있었다. 여자의 손짓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여자는 제발 아는 척해 달라고, 구원을 요청하는 손짓을 그토록 힘겹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증거를 남겨 달라고, 나중에라도 증인이 되어 달라고 손짓을 이어 갔던 것이다.
    남자가 여자의 손짓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순간 남자의 행동이 멈춘 것은 알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의식하자 남자는 굳은 듯 멈춰 있더니 이윽고 여자에게서 일어섰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남자는 자신의 옷을 추슬러 입고 바위에서 내려섰다.
    금방이라도 남자가 나에게로 뛰어올 듯했다. 그래도 사진 찍기를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스마트폰을 치우고 남자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내 얼굴을 남자가 인식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남자는 누워 있는 여자를 바위에 혼자 내버려두고 개천에서 다리로 올라가는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마치 누군가 신고해서 자신을 잡으러 뒤쫓아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자가 사라지자 여자는 바위에서 일어섰다. 그런 뒤 남자가 뛰어간 반대 방향인 개천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내 쪽을 향해 첨벙거리고 걸었다. 개천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여자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개가 짖어댔다. 원반을 든 남자가 좀처럼 원반을 던지지 않았으므로 개는 재촉하며 짖어대는 중이었다. 남자는 개천을 건너오는 여자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다가 개가 짖어대는 소리에 원반을 휘익 던졌다. 순간 상병이 쥐어 준 염주를 아버지가 허공을 향해 던지는 착각에 빠졌다. 원반은 허공을 날더니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여자에게로 떨어졌다.
    개는 원반이 떨어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여자는 개가 뛰어오는 것을 보자 놀라서 뒷걸음치며 뒤뚱거리다가 넘어졌다. 원반이 떨어진 곳 위에 여자가 엎어졌다. 개는 여자의 몸을 덮쳤다. 개는 오직 자신의 원반을 찾겠다는 의지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여자가 신음하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개 주인 남자가 개에게 달려갔다. 개는 남자가 목을 잡아 끌어낼 때까지 여자의 등에 깔린 원반만 찾고 있었다. 여자가 넘어져 누운 곳의 물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여자가 개에게 물린 것인지 아니면 넘어지면서 개천의 바위에 여자의 몸 어딘가가 찍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보던 아이가, 어서 119에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전화를 했다.
    여자가 개에게 물렸어요. 아니, 여자가 지금 피를 흘리고 있어요. 아니, 여자가 지금, 여기 개천에서, 아주 위험해요. 어서 와서, 여자를 구해 주세요.
    여자는 지금까지 속으로 수없이 준비하고 있던 말을 쏟아내듯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

 

 

 

    개천에서 빠져나온 뒤 나는 무작정 걸었다. 민에게는 여전히 전화가 오지 않았다.
    멀쩡하던 하늘이 황사가 낀 것처럼 갑자기 누렇게 변했다. 그러더니 하늘이 저녁처럼 어두워지다가 마른번개가 쳤다. 더블유자 모양의 흰 선이 순식간에 하늘에 금을 그었다. 그러자 곧 천둥이 따라붙었다. 순간 밤처럼 거리가 어두워졌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를 피하려고 상가들이 늘어선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띈 화원의 처마 밑에 섰다. 화원 안에는 장미가 유리병에 가득 꽂혀 있었다. 흑적색의 오클라호마, 산호색의 몽파르나스, 화려한 주홍색의 아메리카, 진홍색의 콘랫헹겔……. 민이 꿰고 다니던 장미의 이름들이었다. 민은 향기가 짙으며 꽃송이가 크고 짙붉은 겹겹의 꽃잎을 가진 장미를 좋아했다. 내 작품 중 단 하나라도 장미 한 송이만큼 대단할 수 있다면! 장미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다가도 민은 꼭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민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자. 그리고 민이 원한다면 기꺼이 증인이 되어 주겠다고 말하자. 이제 더 이상 목격자로 머물 것이 아니라 증인으로 직접 나서야 할 때였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민에게 내가 먼저 전화를 건 적이 있었던가. 늘 민의 전화를 받기만 했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켰다.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와 많은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문자의 내용은 거의 젊은 창작인 대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것들이었다. 보내온 많은 문자들 중에는 민과 내가 ‘센 선배’라고 부르던 선배에게 온 문자도 한 통 들어와 있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문자를 터치했다.
    ‘민이 변사체로 발견됐대. 우리가 총회 했던 펜션 부근의 숲에서.’
    뭔가 잘못 본 것 같았다.
    ‘사인은 아직 경찰이 수사 중이고. 하긴 이미 서너 달 전에, 민은 죽었던 거야. 문자 보면 빨리…….’
    내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순간 나는 손에서 휴대폰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번개가 치고 천둥이 따라붙더니 더욱 거센 빗줄기가 내 휴대폰 위로 퍼붓기 시작했다.

 

 

 

 

 

 

 

 

 

 

 

 

 

 

작가소개 / 김미수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미로」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모래인간』과 장편소설 『소설직지』, 『재이』 가 있다.

 

   《문장웹진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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