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하는 일 외 1편 - 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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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거울이 하는 일

 

 

이서화

 

 

 

    옷을 입어 볼 때마다
   거울은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옷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로 외출은 늘 늦어지기 일쑤다 분명 어디선가 입어 본 옷인데 어느 생에서는 예복으로도 혹은 상복으로도 입었던 것이 분명한 고르고도 골라 입는 옷

 

    내 몸에 많은 옷이 살고 있다
    기시감을 앓고 있다

 

    옷에 몸을 맞추던 시절을 지나 다시 옷에 몸을 맞추는 이 계절의 나무들, 옷들은 그 주인의 품을 기억한다는데 내 몸에 딱 맞는, 맘에 드는 옷들이란 어떤 생의 한 벌 또는 단벌들이었을까 모르는 옷이 날마다 나무를 빠져나온다

 

    나를 오래 입지 않았던 사람들은 구겨지고
    기억하기 싫은 유행들이
    봄을 지나서 다시 거울 속으로 사라진다

 

    보이는 옷과 입어 보는 옷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거울이 하는 일이다

 

 

 

 

 

 

 

 

 

 

 

 

 

 

소유와 집착

 

 

 

후줄근하고 가벼운 남자가
지하철 바닥에 앉아 무소유를 읽고 있다
책 속에 눈을 묻고
도시의 바닥은 남자의 자유로운 도서관인 듯
집착과 소유와 덜컹거리는 속도와
레일의 간격을 행을 바꿔 가며 읽고 있다
책에 대한 집착이 지문처럼 남아 있고
책에 대한 소유로 표정은 진지하지만
소유의 겉장쯤은 버린 지 오래인 듯
저 책과 남자는 적어도 한 삼만 광년은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욕심과 집착이 없었다면
수소문 끝에 사층의 계단을 오르고
단과반 과외를 찾아
남자의 아내는 나머지 학원을 뒤지지 못했을 것이다
도시의 변두리 끝, 낡은 빌라 한 칸마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저 남자에게 욕심과 집착은
최저 생활비고 마이너스 통장이다
남자의 왼쪽으로 천천히 들어오던 전철이
오른쪽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전철 진동에 남자는 조여졌다 다시
풀어지기를 반복하지만
더 이상 소유물이 없는 저 책에서
지친 문구의 광고 한 구절이 빠져나간다

 

 

 

 

 

 

 

 

 

 

 

 

 

작가소개 / 이서화

2008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 『굴절을 읽다』가 있다.

 

   《문장웹진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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