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과 볼 외 1편 - 신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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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숨과 볼

 

 

신동옥

 

 

 

 

    여기다 써
    세상에서 가장 원했던 것을
    태어나 한 번도 배우지 못한 꿈을
    그게 무언지 말하지 마
    여기 다 집어넣어.

 

    이제 병을 바다에 던지는 거야
    아니 강에 던지는 거야
    솜이불 같은 안개 속에서도
    달빛은 물결마다 아늑하니

 

    물은 결국 바다로 흐를 테고
    만일 이게 바다를 건넌다면 모든 게 이루어지는 거야.

 

    누군가에게는 꿰어 맞추어야할 우연이고
    누군가에게는 시련으로 넘어서야할 시험이
    젖어 곤죽이 되어 버려져도
    유리는 살아남아서

 

    깨지면 거울이 되고
    녹으면 빛이 될 말들이
    목구멍에서 병목으로
    자맥질한다.

 

    마치 귀신이 잡아당기기라도 한다는 듯이
    수많은 병들이 길을 잘 못 들었고
    가라앉았고
    인간은 입이 있다.

 

    편지가 젖어 곤죽이 된다 해도 애당초
    유리의 생사에 한몫 건 것.
    그 모든 사연을 삼켜
    투명한 주둥이마다

 

    이미 드러난 상처
    할 말을 잃어가는 순간순간
    기억은 두께를 더해가고

 

    애초에 바다는 없었다
    없는 바다를 건널 희망도 없었다
    써야 맞겠다.

 

    허락된 것만으로 물길을 거스르기에는
    늘 숨이 찼기에

 

    유리공은 볼이 부르텄다.
    금세 울음이 터질듯한
    숨을 옥죈
    입술로

 

    유리가 배를 부풀린다.
    유리공이 물살을 가른다.

 

 

 

 

 

 

 

 

 

 

 

 

배추흰나비 와불

 

 

 

    화순 세제골 처이모네 목탄 보일러, 증기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연통 위로, 줄기줄기 늘어진 시래기 배춧잎, 주름 사이로

 

    기어가는, 하늘 뭉게구름에도 구멍 숭숭 뚫어놓고, 잎맥만 남아 파리하니 속이 다 비치는, 헛웃음에 한 백년은 늙어버린

 

    손금에 고였다가, 솜털을 적셔 갈앉히다가 볼에 스미고, 까무룩 빛나다가 이내 날아가는, 물비린내 덜 여문 가을빛에

 

    보일 보일 끓어오르다, 고롱고롱 맺혔다 풀어지는 담배연기로, 왕겨가루 폴폴 날리는 처이모부 밭은기침에, 공연히 궁싯대는

 

    배추흰나비, 잔털 빽빽한 애벌레 물 마시러 마당에 내려서, 앉은 자리 옮기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운주사 臥佛은
    누가 파먹었나? 눈알 가득 고이는 새벽이슬.

 

 

 

 

 

 

 

 

 

 

 

 

 

 

작가소개 / 신동옥

2001년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고래가 되는 꿈』, 산문집 『서정적 게으름』 외.

 

   《문장웹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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