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없는 그림자 외 1편 - 박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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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목 없는 그림자

 

 

박시하

 

 

 

 

여름이 갔어.
롤로는 눈앞에 바다를 보고 있었다.
망각은 없었다.
파도가 밀려오듯 메이는 다가오고
밀려가듯 다시 멀어진다.

 

몇 번째의 여름일까?
여름을 꺼내어 들며 메이가 말한 적이 있었지.
구겨지고 상한 그 여름은
삶보다 더 필요한 것이었다.
죽음보다 지독했지.

 

목이 없었다.
얼굴을 기억했다.
그늘이 선명한 얼굴에 모든 걸 걸었다.
그런데 누군가 목을 잘랐다고
내 목을 자른 건 누구지?
여름이 중얼거렸다.

 

여름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

 

꽃병을 부수고
가을이 태어났다.
매번 첫 번째인 가을이.

 

 

 

 

 

 

 

 

 

 

 

사라지는 입술

 

 

 

 

 

어느 날 롤로는 입이 없어졌다
노래를 부를 수 없자
메이를 그리워할 수 없었다
자신이 롤로라는 것도 잊었다
밤이면 잠을 덮고 달빛을 피했다
오로라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어둠뿐이었다

 

별을 지은 적이 언제였던가
들리는 건 검은 강물의 신음소리

 

목포 앞바다를 보고 싶어
흘러간 노래를 목청껏 부르거나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고 싶다
일몰은 언제나 말하지
오늘의 끝
밤의 시작
낮고 분명한 종말이라고

 

슬픔이 그려질 수 있을까?

 

메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 낡은 운동화는 그만 신었으면 좋겠어
슬픔으로 걷고 있는 것처럼 보여
납을 녹여 먹었으면 좋겠어
쓰디쓴 독을 마시고 서서히 죽어갔으면

 

등에 번진 검푸른 무늬는
너의 발자국이겠지
별이 으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사랑이었을지
어떤 형벌이었을지는 알지 못했다
노래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롤로는 스스로에게 입을 맞추었다

 

사라지는 입술로

 

 

 

 

 

 

 

 

 

 

 

 

 

작가소개 / 박시하

2008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눈사람의 사회』,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가 있다.

 

   《문장웹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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