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꾹이는 삶 외 1편 - 김안
목록

[신작시]

 

 

딸꾹이는 삶

 

 

김안

 

 

 

 

    일상을 대본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희극과 비극이 딸꾹질처럼 멎지 않고, 물 한 컵 들이켜고, 이불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선 이제 내게 닥쳐올 불행들의 목록을 생각해 보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고. 하긴 유행 지난 철학서처럼 사는 삶을, 읽지 못해 무릎께만큼 쌓인 잡지들처럼, 결국에 버려질 삶을 굳이 옮겨 적을 필요야 하다가도, 하물며 시쯤이야 하다가도, 아빠, 바람 불어, 머리가 자라는 것 같아― 가을,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서 그 앞에 앉아 있는 둥근 등의, 둥근 머리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의 소리를 아, 나는 평생 벗을 수가 없겠구나, 이 몸뚱이에 붙은 작디작은 몸뚱이의 소리를, 말에 접 붙은 아직 문법 없는 말 아닌 소리를, 하다가도, 이건 내 몫이 아닌 것도 같고, 때론 다른 이의 삶만 같아서―

 

    비겁하게 거룩하구나, 우리들의 잘 길들여진 분노와 행복처럼, 간만(干滿)처럼, 강박처럼. 그러니 삶, 저녁이면 딸꾹딸꾹, 세탁기 돌고, 보일러 돌고, 밥통 울고 살고 잘 뿐.

 

 

 

 

 

 

 

 

 

 

 

 

햇살의 노래

 

 

 

 

 

늦은 아침, 술 덜 깬 옛 애인은 늘 슬픔으로
몸이 둥글어지곤 했는데, 햇살은 그 둥긂 위에서
깨지곤 했는데, 여전히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아침, 말의 형태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말하지 못하는 비극과 말하지 않는 비겁 사이에서
그 많던 이데올로기의 우상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그 이름들이 내 기억 속에서
옛 애인의 몸뚱이를 지우며 걸어갈 때,
그 둥글었던 등에 그어지는 비극과 비겁 사이,
그 날카로운 틈을, 그것을
정의라 부를 수 있다면,
정의는 무슨, 그저 사랑이었다고 부를 수 있다면,
다행한 아침. 안온한 망각의 빛살.
이상하게 아름답고 이상하게 추악한
이 늦은 아침식탁에서
술 덜 깬 눈으로, 멸시와 극지 사이에서
달아오르는 눈으로 바라본 이 몸뚱이야,
헛된 소리만 내는 공장아,
의미 없는 소리라곤 하나도 없던 시절은 끝나고,
어느 사이에 나는 암사슴 같던 발도 없이
둥글어질 몸도 없이 우상도 없이,
그렇게 기다랗게 망각하며 망해 가고 있구나,
혀끝을 가르는 깨진 햇살의 노래를.

 

 

 

 

 

 

 

 

 

 

 

 

 

 

작가소개 / 김안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및 동 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시집으로 『오빠생각』, 『미제레레』가 있다. 제5회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17년 11월호》

 

목록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