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와 이야기곳 -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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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성석제와 이야기곳

 

 

김종광

 

 

 

 

 

    성석제 하면 압도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있는가?
    성석제의 작품에 등장하거나 내포된 장소 중에 특히 생각나는 곳이 있는가?
    성석제의 작품을 소수정예로 읽은 독자라면 몇 곳을 어렵지 않게 언급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성석제의 작품을 거의 다 읽은 독자는 여러 곳이 두서없이 떠올라서 그곳 말고 없다는 식으로 어느 한 곳을 특정하기가 녹록지 않을 테다.

 

    어떤 작가의 어떤 공간 혹은 장소 혹은 곳이 떠오르는 것은 대개 제목과 연관이 깊다. 『토지』라는 제목 때문에 박경리 하면 ‘토지’가 떠오른다. 『광장』이라는 제목 때문에 최인훈 하면 ‘광장’이 떠오른다. 「무진기행」이라는 제목 때문에 김승옥 하면 비록 가상의 지명이지만 ‘무진’이 떠오른다. 그 작품이 그 작가의 대표적인 명작 혹은 역작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그 작가를 상징하거나 대변하는 지명으로 거듭난 것이다.
    성석제는 의도적이든 우연히든 장소를 내세우는 제목을 붙인 적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 나온 성석제의 책 제목들을 살펴보자.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궁전의 새』, 『첫사랑』, 『호랑이를 봤다』,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참말로 좋은 날』, 『지금 행복해』, 『이 인간이 정말』, 『믜리도 괴리도 업시』,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왕을 찾아서』, 『아름다운 날들』, 『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투명인간』,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소풍』,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이처럼 장소가 없다! 굳이 있다면 어처구니들이 사는 ‘그곳’과 은유적인 ‘궁전’과 ‘어디’ 정도.
    성석제가 사반세기 동안 출간한 여러 권의 소설집에서조차 ‘공간’을 담은 제목은 희박하다. 애써 찾아본즉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욕탕의 여인들」, 「골짜기의 백합」, 「만고강산」이 있는데, 그다지 장소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제목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특정 공간을 지향한 작품이 셋 있다.
    성석제의 소설은 한마디로 말해서 파란만장하다. 주인공들은 무수한 장소를 숨 가쁘게 넘나들며 실타래 같은 곡절을 현란한 입담으로 마구 풀어낸다. 그것이 성석제 소설에서 특정 장소, 특정 사건을 생각하기 어려운 까닭이다.『위풍당당』은 성석제의 소설 중에 한 장소에서 펼쳐진다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이다. 그런데 그 장소가 지명은 가물가물하기에 십상이고 ‘버려진 드라마세트장이 있는 궁벽한 시골 강마을’로 각인된 곳이다.
    성석제의 초창기 단편들과 『도망자 이치도〔순정〕』를 읽은 독자라면 ‘은척(銀尺)’이야말로 성석제를 대표하는 곳이라고 주장할 테다. 성석제 소설에 나오는 지명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평하는 이들이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석제 소설에 지명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독자에게 각인된 지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 은척일 테다. 은척면은 경북 상주에 실재한다. 게다가 성석제 작가의 고향으로 회자한다(정확하게는 작가가 자란 곳과 50Km 정도 떨어져 있다). 노골적으로 자기 얘기를 소설화한 적이 거의 없는 작가가 그나마 자기 어린 시절을 조금이라도 담아 놓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작품이다.
    아마도 성석제가 가장 장소에 연연한 소설은 『단 한 번의 연애』에 주인공들이 태어난 동해안 어촌마을 ‘구룡포’일 테다. 구룡포의 고래잡이 역사도 담았는데, 성석제 소설 중에서 기획의도가 가장 두드러진 소설일 테다.
    작품과 상관없이 그 작가의 유명세 때문에 그 작가와 함께 연상되는 장소도 있다. 성석제는 경기도 군포에서만 30년 가까이 살았고 2010년대 들어서는 군포시중앙도서관 창작센터에서 주로 작업하면서 ‘군포’ 하면 우선 떠오르는 작가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까 성석제 하면 떠오르는 장소는 은척이나 드라마세트장이나 구룡포나 군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네 곳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대표작이라는 말은 그다지 좋은 말이 아니다. 그것밖에 좋은 작품이 없다는 말일 수도 있잖은가. 과작의 작가에게서는 대표작 찾는 일이 쉬운 일일 수도 있겠다.
    성석제는 누구나 알다시피 다작의 작가이다. 대표작을 누가 저울질해서 뽑아 줄 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서열 메기기로부터 다작의 작가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바쁜 심판관들이 다 읽을 수가 없다. 특히 성석제처럼 다작일뿐더러 거의 모든 작품이 대표작이라 할 만큼 좋을 경우에는 특정한 대표작이 불가능하다.
    은척, 드라마세트장 강마을, 구룡포, 군포 중에 성석제를 대표하는 특정한 장소를 선택할 수 없는 까닭도 그와 비슷할 테다. 다 인상적인데 굳이 하나를 어떻게 선택하란 말인가?
    성석제는 의도적으로 장소에 무관심한 것 아닐는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이 ‘어처구니없는 그곳’일 뿐이다. 그러니 특정 장소를 기리는 시도 따위를 할 까닭이 없다.
   성석제는 저마다 진한 냄새를 풍기며 구구절절한 사연 속에서 활개 치는 인간에 천착해 왔다. 그래서 성석제의 작품 중에 ‘약전’류와 ‘일대기’류가 허다하다. 대놓고 전기의 형식을 취하지 않은 작품들에서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의 인생을 문장으로 축약해 주려는 작가의 정열이 느껴진다.
    즉 성석제는 ‘곳=꽃〔장소〕’보다 ‘사람’을 써온 작가이다.

 

    질문을 바꿔 보자. 성석제 하면 압도적으로 떠오른 ‘무엇’이 있는가?
    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마치 이야기의 대명사라도 되는 것처럼 성석제 하면 이야기가 연상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성석제와 그의 작품에 대한 기사든 인터뷰든 비평이든 리뷰든 읽어 보면 ‘이야기’라는 낱말이 수도 없이 들어 있다.
    이 시대의 진짜 이야기꾼 소리를 듣는 소설가가 아무리 없어도 여남은 명은 되겠지만, 서양냄새 풍기는 이야기 말고, 한반도 전통적 이야기라고 기준으로 한다면, 성석제를 당대 제일의 이야기꾼으로 꼽는 데 주저하는 독자대중은 드물 테다.
    십 수 년 전에 작가의 이천 작업실에 하룻밤 막걸리를 마시고 인터뷰 글을 쓴 적이 있다. 좀 의외였는데 작가는 과묵한 편이었다. 역시 진짜 이야기꾼은 이야깃주머니가 입이 아니라 가슴이나 손에 달린 모양이었다. 그때도 나는 성석제를 ‘이야기의 제’라고 표현했다. 그때는 치기 어린 높임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에서는 의심할 바 없이 ‘이야기의 제’가 적확할 테다.
    시인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이후에도 그처럼 부지런한 이야기꾼은 없었는데, 인터뷰 이후에도 그처럼 부지런한 이야기꾼은 보지 못했다.
    성석제는 『사기』의 열전처럼 당대 한국인의 열전을 써나가고 있는 것일까. 또는 옛날 프랑스의 발자크처럼 ‘인간희극’을 집필하고 있는 것일까. 소설 천인보는 이미 넘은 것 같고 만인보를 향해 대장정 중인 것일까?

 

    사실 성석제 하고 처음 장소를 떠올렸을 때, 나는 은척이나 강마을이나 구룡포나 군포가 아니라 ‘이야기’가 떠올랐다. 성석제 하니, 우리가 ‘이야기’에 포함할 수 있는 모든 것 ㅡ 당대의 재담, 우화, 열전, 설화 등등 ㅡ 이 왁자지껄 어우러진 이야기 한상차림이 생각났다. 이 땅의 전통서사로 일컬어지는 풍자와 해학과 골계의 경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성석제의 이야기는 계속될 테다.
    나는 성석제 하면 ‘이야기곳’이 떠오른다.

 

 

 

 

 

 

 

 

 

 

 

 

   

   

변웅필
11월 표지    / 변웅필

변웅필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현재 강화도에서 강아지 만득이와 살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소개 / 김종광

1971년 충남 보령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8년 《문학동네》로 데뷔.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해로가」 당선.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2000), 『처음의 아해들』(2010), 장편 『왕자 이우』(2014), 『별의별』(2015)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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