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구름 - 조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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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흩어지는 구름

 

 

조해진

 

 

[문장웹진 2017년 10월호]
– 2017년 12월 5일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갑자기 로프웨이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면서 상체가 앞뒤로 흔들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곧 로프웨이 문이 열렸고 구름의 일부에 잠식된 산 정상의 평원이 나타났다. 그 산은 홋카이도에 위치한, 우스(有珠)라는 이름의 휴화산이었다. 로프웨이에서처럼 산 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파경보가 내려진 한겨울 오후에 그곳을 찾은 관광객은 나뿐이었다. 하산하는 마지막 로프웨이를 타기 전까지 십오 분 동안, 나는 그 누구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눈 쌓인 평원을 하염없이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고 내가 내뱉는 입김만이 구름 속으로 느슨히 스며들 뿐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내 머릿속에는 허공의 신전처럼 구름에 반쯤 가려진 또 하나의 우스가 생성됐고, 두말할 것도 없이 그 풍경은 내게 죽음의 이미지가 됐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로프웨이에서 떠밀리듯 내린 뒤 설원을 걸으며 조금씩 흐릿해지고 엷어지다가 마침내 구름 속에서 기화되는 것, 그것이 죽음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내 머릿속 우스로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간 사람은 공교롭게도 우재현 감독이었다.
    한 달 전, 우재현 감독은 중국 청도의 어느 여관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짧은 기사로 그 소식을 접한 호재가 내게 문자로 알려줬다. 나는 생전의 우감독을 만난 적이 없고 호재가 그에게 내 이야기를 했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오래전 그의 영화를 떠올리며 우스의 정상에서 내려온 경험이 있던 내게 그 소식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기사는 한 시간 정도 메인화면에 떠 있다가 별다른 반응 없이 사라졌다. 피곤하고 흔한 사연이었다.
    우재현 감독은 꽤 인상적인 입봉작으로 영화판에 출사표를 낸 뒤 문제적인 작품을 다수 발표했지만, 상업성이 떨어지는 그의 영화에 투자를 하는 기관이나 기업은 점점 사라져갔고 그는 영화판에서 잊힌 존재가 되어갔다. 그 세월 동안 그는 건강을 관리하지 않았을 테고, 그의 심장은 타이머가 장착된 기계처럼 아주 느린 카운트다운에 돌입했을 것이다. 그는 올해 초에 중국의 프로덕션으로부터 드라마 감독 제안을 받고 중국으로 건너갔던 모양이다. 드라마의 규모나 장르조차 알지 못한 채, 단 한 통의 이메일만 믿고 한국에서 살던 전셋집까지 정리하여 떠났다고 했다. 나도 중국 가서 드라마 연출 자리나 좀 알아볼까. 호재가 생뚱맞게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호재는 우감독의 세 번째 영화―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감독의 아버지가 생을 정리해가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한 계절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에서 조감독을 맡았고 사실상 그 경력을 계기로 감독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우감독과 사적인 연락을 하며 지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아는 거라곤 우감독이 중국에서 찍은 드라마가 없다는 것과 호텔도 아닌 여관에서 죽었다는 것, 이 두 가지뿐이었는데 그 정도의 정보는 기사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참, 근데 우재현 감독님 장례식엔 갔었어? 유해는 한국에서 매장하거나 화장했겠지?”
    나는 생각난 김에 호재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버스 등받이에 등허리를 기대고 있던 호재가 의아해하는 눈길로 내 얼굴을 쓰윽 훑어봤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궁금해서 그렇지. 다른 이유가 있겠어?”
    “감독님이랑 속초에 간 적은 있어.”
    내 질문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대답이었다.
    “당신도 내가 조감독했던 그 영화 봤다고 했지? 혹시 그 장면 기억나? 감독님이 자기 아버지한테 여행가고 싶은 곳 딱 한 곳만 알려달라니까 그 분이 속초를 언급하잖아. 선장으로 처음 배를 탄 곳이 속초라면서.”
    속초로 가는 고속버스에서 털어놓기에 맞춤한 일화라고 여겼는지 호재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이십년 전에 본 영화였지만, 나는 그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속초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여행길인데도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잘 닦은 구두까지 챙겨 신은 감독의 아버지는 속초 해변을 한참동안 배회하다가 돌연 방파제 옆에 쭈그리고 앉더니 비닐봉지에 흙을 퍼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는 속초행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숙제였다는 듯이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그가 아들에게 남긴 유언은 자기 몫의 유골함에 속초에서 가져온 흙을 함께 담아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그 흙을 죽은 선원의 골분으로 여겼을 거라는 감독의 내레이션이 아니더라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긴 했다. 삼십년 전, 동해 먼 바다로 나갔던 그의 배가 뒤집히면서 가장 나이 어린 선원이 바다에 빠져 실종되었는데 그는 평생 그 죽음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내의 이른 죽음으로 혼자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죽은 선원의 홀어머니를 챙겼고, 그녀가 병을 앓을 때는 거의 매일 병원에 들러 살뜰히 간호를 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이정표에서 원주와 춘천이 사라지고 강릉과 양양, 속초가 빈번히 등장할 즈음 호재는 잠이 들었다. 아니, 잠을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듯 보이는 굳은 얼굴은 일부러 잠 속으로 피신한 표식 같기만 했다. 그가 언제부터 기면을 앓듯 순식간에 잠들어버리는 습관을 갖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작년 겨울부터 호르몬제 부작용으로 수면장애를 갖게 된 나로서는 기면과도 같은 잠의 밀도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계약직 교직원들 사이에 구조조정 소문이 돌고 내 계약 종료일이 1년 앞으로 다가왔던 그때, 혼자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처방받은 호르몬제였다. 재계약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최근에 신규로 채용되는 교수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어렸고, 교수들이란 나이 많은 계약직 교직원을 껄끄러워하기 마련이었다. 재계약을 거듭해오며 7년차 직원이 되었으니 계약직으로서는 버틸 만큼 버틴 셈이기도 했다. 내년엔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전화를 기다리는 실직자의 생활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실직 상태의 물질적인 결핍보다 긴장한 채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마흔여섯 살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게 나는 더 괴로웠다. 사무직 면접은 아닐 것이다. 마트 계산원이나 간병인, 공공기관의 청소 용역 같은 일자리를 나는 얻게 될 것이다. 이십년 넘게 학원 강사를 해오다가 쉰 살이 되면서부터 식당의 주방보조로 취업한 효선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껏 내 것인 줄 알았던 트랙에서 벗어나 새로운 트랙에 익숙해져가는 지난한 순례가 시작되는 것이다.
    버스는 이제 끊임없이 터널들을 지나가게 되었고, 하나의 터널을 통과한 뒤 새 터널로 진입할 때마다 나는 내 인생의 면접들을 떠올렸다. 면접의 횟수라면 스물네 살에 보았던 첫 면접 이래로 적어도 쉰 번은 될 터였다. 어느 시기엔 거의 매주 면접을 보기도 했다. 마지막 면접은 서른여덟 살 때였다. 지금 일하는 곳, 내가 졸업한 예술대학의 학력개발센터에서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리고 조건도 월등한 두 명의 지원자와 함께 면접을 봤다. 사실 그때 나는 채용이 내정되어 있었다. 나를 내정한 당시의 센터장 석 교수는 작년에 내 세 번째 계약연장 서류에 도장을 찍은 뒤 정년퇴임을 했다. 그는 내가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단편영화를 보고 유학을 권유했던 지도교수이기도 했다. 그가 연구실로 나를 불러 기대가 크다고, 한국의 빔 벤더스가 되라고 했던 날엔 수분이 많이 함유된 함박눈이 내렸는데,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물컹한 눈을 무방비로 맞으면서도 나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내가 그의 직원이 된 이후로는 그와 영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대신 비용과 영수증, 항목과 처리 같은 단어가 들어간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가 법인카드로 결제한 사적인 영수증을 업무비용 항목에 넣는 일을 했는데, 센터의 직원들뿐 아니라 호재조차 내가 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내정된 채 면접을 봤다는 것 역시 나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었다. 석교수 밑에서 일했던 6년 동안, 뉴스를 보다가 부역자나 공모자 같은 단어가 들려올 때면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잇몸에 상처가 날 때까지 오래오래 이를 닦았다. 환부나 증상 없이 나는 투병했다, 아무도 모르게…….

 

*

 

    연이어지던 터널이 어느 순간 끝났다. 마지막 터널 바깥엔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이 펼쳐졌고 봉우리 위의 송신탑 주위로는 구름이 성긴 연기처럼 형태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지막 터널을 통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구름의 실루엣이 단정하여 분명한 실체처럼 보였다는 걸 나는 느리게 떠올렸다. 깨어난 호재가 내 어깨 위로 얼굴을 올려놓더니 길게 하품을 했다. 안개가 꼈나 보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여긴 산정상이니까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지, 대답하며 나는 그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서 미끄러지도록 몸을 살짝 틀었다. 마흔다섯 살 남자는 이제 잠에서 깰 때마다 쿰쿰한 입 냄새를 풍기게 됐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건 잘 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몸에서 배어나오는 냄새에 속수무책이 되어간다는 의미이고, 가족은 일종의 냄새 공동체이기도 하니까. 혼인을 증명하는 서류가 없고 함께 낳아 양육한 아이는 없지만, 나는 호재를 내 유일한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12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유사한 성분의 배설물을 만들어왔다는 건 가족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나는 믿었다. 호재는 태평하게 기지개를 켜더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화면을 클릭했다. 차창 밖으로 ‘속초 6km’라는 이정표가 방금 지나갔다.
    속초에는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그가 결혼 6년 만에 어렵게 얻은 딸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조카의 이름은 지은이라고 들었는데, 나도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지난주에 전화를 걸어온 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속초로 여행을 오지 않겠느냐고 묻더니, 자신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하며 여행하다가 토요일에 지은의 돌을 기념하는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마치 준비한 원고라도 읽듯 빠른 속도로 말했다. 그는 딸의 돌잔치에 나를 유일한 손님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동생으로선 크나큰 용기를 내어 제안한 것임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나는 바로 수락했고, 그는 나의 즉각적인 반응에 얼떨떨해했다.
    동생과 내가 서로에게 서먹한 건 유년을 함께 보내지 않은 탓이 컸다. 우리는 평소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지 않았고 단둘이 영화를 보거나 외식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는 내내 그것이 염려되었던 모양이다. 심각한 관절염으로 재작년부터 요양원 생활을 시작한 엄마는 올해 초에 불쑥 동생과 나를 호출하여 적어도 한 계절에 한 번은 만나며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니, 미래의 유언을 미리 끌어와 남매가 겪은 외로움에 지불하려 했다. 한 시절의 외로움이 회수되거나 소비될 리 없으니 미래에서 온 엄마의 유언에는 아무런 지불능력이 없었다. 게다가 동생과 내가 끈끈하게 엮이지 못한 건 다름 아닌 엄마 때문이었으므로 엄마는 차라리 우리에게 부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갑작스럽게 가장이 된 엄마는 당시 일곱 살이었던 동생을 시댁에 맡긴 뒤 서울에서 식당을 개업했다. 식당에는 고기를 떼 오고 숯불을 갈아주던 남자직원이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남자는 엄마의 방에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자기 시작했다. 엄마는 시댁에 애인이 생겼다는 걸 숨기고 싶어 했으므로 나는 조부모의 집에 전화 한 통 거는 게 어려웠고, 특히나 동생에게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동생에게 실수로라도 그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 그 애가 가능한 늦게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길 바라서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흡사 팽이 같던 시절이었다. 나는 서울의 새 집에서, 동생은 노인들뿐인 친가에서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아야 했으니까. 게다가 동생의 외로움에는 엄마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상처까지 얹어져 있는 듯했다. 새 남자와 살게 되면서, 동생을 서울로 데려오겠다는 엄마의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는 대신 동생의 용돈과 학비를 댔고 그의 입학과 졸업, 입대와 제대와 결혼식을 모두 챙겼지만 엄마 앞에서 웃는 동생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동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버스는 곧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정차했다. 작고 허름한 터미널이었다. 터미널은 모텔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대합실 맞은편에는 커피숍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봤는지 동생이 불쑥 나타나 내 캐리어가방을 가져갔다. 호재와 동생은 초면이었는데, 서로에게 처남이니 매형 같은 호칭은 쓰지 않은 채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다.
    게스트하우스는 터미널에서 십 분 정도 거리에 있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바다 근처에 살고 싶어서 속초나 강릉 같은 곳으로 틈틈이 거주지를 알아보러 다니곤 했는데 재작년에야 여건이 되어서 이곳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내가 묻기도 전에 동생은 설명했다. 쓰러져가는 2층짜리 건물을 사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한 뒤 1층은 가족이 쓰고 2층에는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지방의 낡은 건물이라지만 동생의 나이를 생각하면 평균 이상의 성공으로 여겨졌다. 호재도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다 빚이에요. 지은이 결혼할 때까지 갚아야 할 거예요, 아마.”
    호재가 대단하다고 한껏 추켜세우자 동생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게스트하우스 외벽은 노란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어서 동화 속 집처럼 충분히 신비로워 보였다. 동생은 일단 짐을 내려놓으라며 2층으로 호재와 나를 데려갔다. 2층에는 싱글룸과 더블룸, 그리고 여성 전용 6인실이 있었는데 그 중 더블룸이 우리에게 배당된 방이었다. 방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1층으로 내려간 순간, 순한 분유 냄새가 동심원처럼 번져왔다. 결혼식 이후로 처음 보는 올케가 지은을 안은 채 소파 옆에 서 있었다. 지은이 잠들었는지 올케는 목소리를 낮춰 인사했고, 나는 걸음에 소리가 묻어나지 않도록 조심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담요 안에서 잠이 든 지은을 보자 저절로 입이 벌어지면서 가슴 한쪽이 설명할 길 없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 건조하고 탁한 목소리가 체인에 감싸인 바퀴처럼 껄끄럽게 귓가를 맴돌았는데, 내 호르몬 수치가 적힌 차트를 유심히 내려다보며 앞으로 자연적인 임신은 힘들 거라고 일러준 산부인과 의사의 목소리였다. 잊어버리기 위해 몹시도 애썼지만 망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쉬운 건 없었다. 호재도 어서 지은에게 인사를 해야 할 텐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1층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눈치도 없이 방에 누워 있는 건가, 이 여행의 주인공은 지은이란 걸 모르나, 중얼거리며 그를 데리러 2층으로 올라가자 뜻밖에도 호재는 동생과 함께 창가에 나란히 서 있었다. 창문 구조를 살피는 호재에게 동생은 여름 한철 장사라 비수기엔 적자가 나기도 한다고 일러주고 있었는데, 호재가 수입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본 탓에 어쩔 수 없이 답변하는 모양새였다. 내 기척을 느꼈는지 언뜻 뒤를 돌아보는 동생의 얼굴은 이미 지쳐 보였다.
    “그래도 참 부럽네. 얼마나 좋아, 내 꿈이 바닷가에 작업실 하나 갖는 거였거든.”
    말하며, 호재는 동생을 향해 이를 드러내어 웃었다. 그 순간 동생과 나의 시선은 허공에서 한 번 얽혔다가 어색하게 엇갈렸다. 시선을 먼저 피한 쪽은, 아마도 나였을 것이다.

 

*

 

    남동생의 전화를 받은 날 저녁, 호재에게 속초행에 대해 물은 건 단지 예의의 차원이었을 뿐, 나는 처음부터 그의 거절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가 사람과의 접촉 자체를 최소화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는 조조나 심야 시간을 택했고 먼발치로 아는 사람을 발견하면 길을 에돌아서라도 그 마주침을 피했다. 그 은둔의 습관은 그가 새 영화를 찍어야 사라질 터였지만 전망은 밝지 않았다. 실패한 두 번째 영화 이후 7년 만에 준비하던 세 번째 영화는 기획단계에서 무산됐고, 간혹 영화 제작사에 보내는 시나리오는 번번이 반려되는 눈치였다.
    영상은 자신이 찍겠다고, 동행 의사를 밝힌 호재가 갑자기 톤이 높아진 목소리로 쾌활하게 덧붙여 말했다. 옷장 속에 처박아두었던 캠코더를 꺼내와 먼지를 털어내고 렌즈를 닦기도 했다. 그 캠코더는 호재의 두 번째 영화가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을 때 내가 선물한 거였다.
    “그래도 그때가 내 전성기였지.”
    두 번째 영화가 화제에 오르자 호재의 얼굴은 흡족함에 젖어들었다. 동생 부부가 내일 돌잔치로 분주해 보였으므로 호재를 데리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속초 거리를 걷던 중이었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 영화의 시나리오로 기금을 받게 되었는데, 호재는 통장으로 기금이 들어오자마자 배우와 스태프의 인건비부터 정산한 뒤 남은 돈으로 크랭크인을 했다.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인건비를 지급하는 건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아니, 어떤 감독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이유를 묻자, 촬영 중간에 분명 기금이 바닥날 텐데 그때 가서 나쁜 궁리를 할까봐 두려웠다고, 삼십대 중반의 호재는 고백했었다. 그 말을 듣고 다음날, 나는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그 캠코더를 구매했던 것이다. 영화를 찍기엔 기능이 부족한 캠코더였고, 나는 그저 촬영을 쉴 때 방심해 있는 배우나 스태프를 기념으로 찍어두라는 의미에서 그 모델을 선택했다. 호재가 남해로 촬영을 갔을 때도 뒤이어 떠올랐다. 호재는 비교적 깨끗한 모텔을 통째로 빌려 배우와 스태프가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놓은 뒤 자신은 하룻밤에 만 원짜리인 여인숙에 묵었다. 근처에 사는 친척 집에 신세를 진다는 호재의 거짓말을 사람들은 믿었다. 그가 남해로 내려가고 사흘째, 그 여인숙을 나는 찾아갔다. 자정이 지나자 난방이 끊겼으므로 우리는 동이 틀 때가지 이불 속에서 알몸으로 서로를 껴안고 있어야 했다. 하룻밤만 그 여인숙에 머물 계획이었지만, 결국 나는 직장에 닷새간 휴가신청을 낸 뒤 남해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다. 순도 높은 열정의 시절이었다. 악의 없이 깨끗했으나 빚으로, 악평으로, 기회의 박탈로 되돌아왔던 이상한 열정……. 가까스로 촬영은 마무리됐지만, 촬영 뒤 후반작업을 할 때는 여기저기서 빌린 돈마저 다 써버렸으므로 편집에 공을 들이지 못했고 그 탓에 완성된 영화의 사운드는 처참한 수준이 되고 말았다. 영화는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공평하게 외면 받았다. 우리는 빚더미에 앉았고, 짧은 커튼콜이 끝난 뒤 우리의 손에 남은 건 캠코더 한 대뿐이었다. 그 빚을 갚아나가던 5년 동안, 나는 퇴근 뒤에도 거의 매일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고 호재는 시나리오 한 줄 쓰지 못한 채 물류센터와 공사장 같은 곳을 전전했다. 날마다 만성피로에 시달렸으며, 밤에는 우리 둘 다 짐승의 앓는 소리를 내며 잠들곤 했다. 전성기라고 하기엔, 실패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긴 시간의 노동이 내게는 너무도 구체적이었다.
    비수기의 관광지 거리는 조용했다.
    행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문 닫은 상점과 창문이 뜯겨진 빈집, 임차인을 구하는 건물은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번갈아가며 나타났다.버스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던 뚱뚱하거나 비쩍 마른 소년과 소녀들이 암호처럼 웃으며 우리를 흘끗거렸다. 반대 방향에서는 허리가 굽은 노파가 막걸리 병이 삐죽 나와 있는 비닐봉지를 든 채 위태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호재와 내가 길을 터주자, 노파는 우리를 지나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방과 바로 이어지는 허술한 쪽문 안으로 들어갔다. 노파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내 쪽을 돌아보는 호재의 얼굴이 차가웠다.
    “유령이 따로 없네. 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면 대낮부터 술이나 퍼마시고 저런 꼴의 집에서 사는 거냐?”
    호재의 말투는 얼굴보다 더 차가웠다. 갑자기 밤의 영역으로 이주한 듯 대기에는 묽은 어둠이 스미고 있었으므로 호재가 멀어 보였다. 예전의 호재라면 대낮에 술을 받아오는 독거노인에게서 가능한 쇼트를 구상했을 것이고, 그 쇼트에서 증식되는 이야기를 내게 가장 먼저 들려주었을 것이다. 내가 비평이나 조언을 할 때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인상을 쓰며 반박도 하던 그를 지켜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한때는 호재가 아니라 그 순간들과 사귀고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차라리 바다 쪽으로 가서 회나 먹을까?”
    걷다가 멈춘 호재가 물었고,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대꾸했다. 이미 충분히 피곤했다.
    바다로 이어지는 대로를 따라 호재와 나는 간격을 두고 걸었다. 10분 정도 앞만 보며 걸으니 여객선터미널과 부둣가가 나타났다. 호재는 그곳을 지나쳐가려 했지만 나는 정박해 있는 여객선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여객선의 문과 창문은 모두 닫힌 채였지만 누군가는 저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것만 같았고, 그 상상은 오랜만에 나를 웃게 했다. 내 졸업 작품의 주인공은 유람선 선착장의 매점에서 일하는 이십대 여성 경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한강 구조대원이 커피를 마시러 그 매점에 오는데 경은 그가 도시의 천사라고 생각한다. 정작 구조대원은 죽음을 작정하고 강으로 뛰어든 사람을 구하는 것에 깊은 회의감을 품고 있지만, 경은 그의 속내까지는 알지 못한 채 그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늘 같은 음악을 틀어준다. <wings of desire>1), 경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이었다.
    “뭐 봐?”
    호재가 다가와 물었다.
    “여객선 보니까 경이 생각나서.”
    “경? 경이 누군데? 아…….”
    아, 하고 입이 벌어진 채로 호재는 어딘가를 향해 턱짓을 했다.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보았던 뚱뚱하거나 비쩍 마른 소년과 소녀들이 방파제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캔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쟤네들도 갈 데가 진짜 없나 보다.”
    호재가 나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호재는 곧 그들을 향해 목소리 없이 입만 뻥긋거려 무슨 말인가를 전했는데, 곁에 있는 나도 그 입모양을 읽을 수 없었다. 어른의 말이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새겨들을 필요가 없는 하찮은 말일 터였고, 어쩌면 저열한 농담일지도 몰랐다. 부둣가 주변의 조명이 투사된 바닷물이 그의 얼굴에서 노랗게 일렁거리는 것을 나는 낯설게 바라봤다.
    갈까, 말한 뒤 나는 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횟집식당의 간판들이 빛을 뿜어내는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경은 잘 있겠지? 우리가 막 연인이 되었을 무렵, 한동안 호재는 습관처럼 묻곤 했다. 밥을 먹다가, 낮잠에서 깨어나, 환절기의 어느 새벽에, 문득 고개를 들어 확인하듯 물었고 그렇겠지, 그때마다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마치 경이 연락은 뜸하지만 떠올릴 때마다 이유 없이 걱정이 되는 우리 모두의 조숙한 여동생이라도 되는 듯……. 호재와 석 교수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보지 않은 그 영화의 필름은 오래전에 버려졌다.

  1)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1993) 영어 제목

 

*

 

    식탁에 둘러앉아 동생 부부가 어제부터 준비한 음식을 배불리 먹은 뒤엔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곧 돌잡이가 시작될 터였다. 호재는 2층 방에서 캠코더를 가져왔고 동생은 그리 크지 않은 동그란 상에 연필, 실패, 장난감 청진기와 플라스틱 마이크, 오만 원짜리 지폐를 겹치지 않도록 조심히 놓았다. 그새 새 원피스로 갈아입고 고깔모자를 쓴 지은이 올케에게 안겨 거실로 나왔다. 지은은 어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골똘히 상 위를 훑어보더니 주저 없이 마이크를 집었다. 웃음과 박수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 케이크를 꺼내 하나의 초에 불을 붙이는 소리, 생일축하 노래와 한 마디씩의 덕담, 올케가 지은과 함께 볼을 부풀렸다가 후, 입안의 공기를 내뱉는 소리가 연이어졌다. 나도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덕담을 얹었지만, 눈앞의 광경이 반원 모양의 유리 속 세계처럼 나와는 완전하게 분리되었다는 느낌은 내 의지로 제어되지 않았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선 상 주변을 돌며 촬영을 하는 호재가 보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그는, 저 바깥에 있었던가.
    틈틈이 동생 쪽을 살폈지만 그는 여전히 호재뿐 아니라 호재의 캠코더에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식사를 할 때부터, 아니 호재와 내가 1층으로 내려온 뒤부터 내내 그랬다. 저마다의 케이크 접시가 비워갈 즈음, 올케는 잠투정을 하는 지은을 재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동생에게 술이 좀 있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귀찮은지 살짝 인상을 쓰는 듯했지만 곧 냉장고에서 맥주와 소주를 꺼냈다. 동생과 나, 그리고 호재는 다시 주방 식탁에 둘러앉았다.
    술자리는 마련됐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했다. 나는 지은이 귀엽다고, 선물로 사온 옷이 잘 맞으면 좋겠다고, 올케는 정말 좋은 사람 같다고 두서없이 주절거렸고 동생은 간간이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 왼편에 앉은 호재는 취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빠른 속도로 술잔을 비워가는 중이었다.
    “처남, 아까 하던 이야기 계속 해도 돼?”
    어느 순간 호재가 동생과 나 사이로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술기운으로 붉어지고 핏줄까지 선 그의 두 눈이 나는 불안했다.
    “아까? 아까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내가 여기 오기 전에 편의점에서 처남을 만났거든. 둘이 얘기를 좀 했어. 처남이 게스트하우스 오픈할 때쯤에 어머니는 식당을 정리했잖아. 그래서 혹시 어머니한테서 도움을 좀 받았느냐고 물었거든.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뭐가 되는 거야. 당신은 어머니한테 돈 한 푼 못 받고…….”
    호재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톤의 목소리로 계속 떠들어댔지만 내 귀에는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불분명한 소음으로 변질되어 들렸다. 돌멩이나 쇳덩어리가 내는 소음과 다를 것 없었고 나는 그저 두 귀를 틀어막고만 싶었다. 곁눈으로 슬쩍 바라본 동생은 서늘한 눈빛으로 호재를 쏘아보고 있었다. 호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동생은 나를 불렀다.
    “누나.”
    “…….”
    “누나, 엄마가 그러더라. 저 사람이 영화 만든답시고 누나가 월급 받는 족족 가져다가 썼다고, 정작 누나는 직장 다니느라 영화감독도 포기하고…….”
    “주완아.”
    나는 뒤늦게 정신을 수습하며 동생의 말을 잘랐다. 그제야 동생은 내게로 시선을 돌렸고 우리는 정적 속에서 잠시 서로를 마주봤다. 나와 닮은 남자, 그는 이번에도 인색한 미소조차 보이지 않았다. 실은 늘 그랬다. 동생은 날 보면서도 웃은 적이 없었고 그 이유라면 너무도 명백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그를 버렸고 혼자 크게 내버려두었으니까. 그가 아이에서 소년을 거쳐 성인 남자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주지 않았고, 혼돈과 방황의 순간에도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바다 근처에서 살고 싶었다는 그의 소망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작은 소망을 갖기까지 그가 통과한 패배의 모양과 타협의 과정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엄마처럼 그의 삶의 기념일들을 챙기지도 않았다. 내가 그를 이해한다는 건 뻔뻔한 착각이고, 이제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누나가 내 누나니까 내가 조언 하나 해도 되겠지?”
    “…….”
    “누나, 정신 똑바로 차려. 누나가 말이야, 엄마를 닮았어. 그래, 쪽팔리지만 다 말할게. 2년 전에 엄마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좀 도와달라고 하긴 했어. 엄마가 그러더라, 요양원에 들어가는 돈 제외한 나머지는 다 그 동거남한테 줬다고. 새 삶 시작하라고, 좋은 여자 만나라고 줬대. 웃기지?”
    웃기지, 라고 동생은 물었지만 우리 세 사람의 얼굴은 각자의 방식으로 일그러졌다. 잠을 못 자서야. 나는 변명하고 싶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이 떨리는 건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단지 불면 때문이라고, 고작 호르몬제의 영향이라고, 내 몸과 감정은 약품공장에서 제조된 화학 성분의 알약에 지배받고 있다고, 그렇게 하찮다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기 위해 애썼던 건지도 모른다. 동생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오래전에 영화를 포기한 건 맞지만 호재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내 영화가 선택되지 못하고 혹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외면 받게 될 날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제로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상대의 자리와 관중석마저 텅 빈 링에서 헐거운 글러브를 끼고 혼자 서 있는 후보 선수처럼…….
    의자를 뒤로 세게 밀치며 일어난 동생은 곧장 방으로 걸어갔다. 방문을 빠끔히 열고 이쪽을 건너다보는 올케의 눈빛은 멀어서 해석되지 않았고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대신 단호했다.
    영원히 열리지 않을 문이었다.
    “아까 있잖아.”
    동생이 사라진 뒤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심하게 헝클이던 호재가 다시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그렇게 노골적으로 묻지 않았어. 그냥 궁금해서, 아무 사심 없이, 이 게스트하우스의 공사비랄지 대출금 같은 것만 물었어. 근데 처남이 얼굴이 벌개져서는 자격 운운하는데……. 나도 순간 화가 나더라고.”
    억울한 듯 호재의 목소리는 다급해졌고 나는 거품이 모두 꺼진 유리잔 속 맥주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아니야.”
    “뭐?”
    “저 애는…….”
    깊이 숨을 내신 뒤, 나는 똑바로 그를 쳐다봤다.
    “당신 처남이 아니라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잔에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이제 짐을 싸서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파티는 끝났다.

 

*

 

    서울행 막차는 십오 분 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십오 분은 결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중요한 선택 하나를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버스표를 끊은 뒤 대합실 맞은편의 커피숍으로 들어가자 미리 와 있던 호재가 창가 자리에서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우리는 마주앉아 간간이 창밖을 건너다보며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커피숍은 서울행 막차 시간에 맞게 폐점하는지 음악은 이미 끊겨 있었고, 대신 찻잔을 물로 헹구거나 거품기와 티스푼 같은 것을 제자리에 놓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어제 고속버스에서 물었지, 우감독 장례식에 갔느냐고.”
    끊임없이 달그락거리는 그 소란 속에서 호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술이 깼는지 얼굴은 해쓱했고 목소리엔 힘이 빠져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때문인지 외려 주눅 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실은 갔어. 가긴 갔는데, 빈소 앞에서 발길을 돌렸어.”
    “……왜 그랬어?”
    “무서웠어.”
    “…….”
    “무섭더라, 내 미래 같을까 봐. 내가…….”
    “…….”
    “내가, 기대고 싶었나 봐. 그래, 알아, 너무 앞서갔어.”
    “…….”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은 채 가만히 호재를 건너다봤다. 지방 소도시의 커피숍에서 마주본 호재는 내 유일했던 가족이 아니라 오늘 처음으로 소개받은 사람인 듯 낯설어 보였다. 이별의 감각마저 무뎌진 어느 날에, 12년을 봐온 익숙한 얼굴이 아니라 지금의 이 낯선 얼굴이 기억난다면 억울할 것 같았다. 억울하겠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버스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십오 분을 채우기도 전에 내 선택은 이미 완료된 것이다.
    “나는 내일 출발할게. 뭐, 찜질방 같은 데서 자면 돼.”
    “그게…… 무슨 말이야?”
    호재가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그는 곧 내 말의 의미를 깨닫겠지만 그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 내 선택을 바꾸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리란 건 내가 더 잘 알았다.
    “큰 짐만 일단 빼줘. 자잘한 소지품은 호재 씨 있는 곳으로 내가 부쳐주면 되니까.”
    “…….”
    “이제 일어나서 떠나. 시간이 됐어.”
    시간…….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훗날 속초의 버스터미널 커피숍을 떠올리면 재깍거리는 가상의 초침소리가 가장 먼저 그 장면에 덧씌워질 거라고, 편집에 공을 들인 화면처럼, 그래서 호재의 모든 행동이 초 단위로 분절되어 기억될 거라고도……. 호재가 뚫어지게 버스표를 내려다보고 그것을 손에 쥔 채 의자에서 일어나 배낭을 어깨에 메고 커피숍의 문을 열고 나간 뒤 승차장에 대기중이던 버스에 오를 때가지, 나는 마음속으로 내내 초를 셌다. 287초, 12년은 287초로 다시 산출됐다. 이제 우리는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호재를 태운 서울행 막차가 터미널에서 빠져나가나는 걸 지켜보며 나는 예감했다. 그 예감은 생소했지만, 내게 남은 유일한 확실성이기도 했다. 호재와 함께 할 미래는 방금 전에 취소됐다. 이제 내 삶은 이 커피숍의 반복적인 연쇄와 같을 거라고 뒤이어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꾸부정히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는, 기차 칸처럼 연결된 수많은 밤의 커피숍들이 고독한 링을 벗어난 내 삶의 새로운 무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인지도 몰랐다.
    가령, 우스는 지난 삼백년 동안 여덟 번 분화했다는 기록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 마지막 분화는 2003년이었으니 휴지 기간의 평균을 적용해보면 우스의 다음 분화는 2040년쯤이 된다. 물론 자연재해에 평균이란 없으므로 우스는 내일이라도,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분화할 수 있었다. 그런 걱정 끝에선 늘 한 사람이 떠올랐는데, 그녀는 로프웨이의 출입문 앞에서 곧은 자세로 서 있던 젊은 여성이었다. 13년 전, 우스의 정상과 이어진 로프웨이에는 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탑승해 있었던 것이다.
    하산하는 로프웨이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일본어로 말을 건넸다. 그녀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녀가 그 무렵 스무살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로프웨이 안내원이 되었다는 건 분명하게 기억이 났다. 짧은 대화가 몇 번 오간 뒤, 나는 그녀에게 무섭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느 순간 이 산은 분화될지도 모르는데, 그럼 순식간에 화염 속에서 잿더미가 될 텐데 겁이 나지 않느냐고……. 그녀는 한 번도 우스의 분화를 가정해보지 않았는지 곰곰이 내 질문을 되새기는 듯하더니, 잠시 뒤 뜻밖에도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십오 분에 한 번씩 죽는 연습을 하는 셈 치겠다고, 로프웨이에서 내릴 때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으로 여기겠다고, 일이 무료해서 그만둘 생각밖에 안 했는데 이 직업의 매력을 일깨어주어 고맙다고도 했다. 한겨울의 숲을 가로질러 내려가는 로프웨이에서 나는 조금 웃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우스의 정상에 남으려 했다는 걸 그녀가 다 알고 대답한 것만 같아서였다. 그랬다면, 다음날 첫 로프웨이가 올라올 때까지 아무도 없는 그곳에 혼자 남게 되었다면, 아마도 나는 추위 속에서 의식을 잃어가다가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다른 선택을 했고, 그래서 아직 살아 있다.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스물다섯 살에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결국 그 장면 때문에 나는 로프웨이 승차장 쪽으로 돌아설 수 있었다. 감독의 요구가 없었는데도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한 명씩 왕년의 선장에게 다가가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었다. 죽는다면 그렇게 죽고 싶다고, 눈 쌓인 평원을 걸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열망했었다. 그중 누군가는 내 손을 잡으며 말해줄지 몰랐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누구도 그 이상을 해낼 수 없었을 거라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는 말을…….
    우스에 다녀오고 얼마 뒤 지인이 초대한 영화 시사회장에서 호재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미 그에게 반해 있었는데,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우스의 정상에서 떠올린 그의 말, 그가 감독의 아버지에게 전한 말들이 그때는 내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일부였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지금껏 호재에게 한 적이 없었다. 호재 앞에서 내 정체성은 늘 생존자였고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살아온 32년은 로프웨이 직원의 십오 분과 같았다는 이야기 역시, 나는 하지 않았다.
    빗방울 하나가 창문에 부딪혀 떨어졌다. 구름의 한 조각으로 소급되는 빗방울, 그것은 내가 사는 행성이 끊임없이 돌고 있고 모든 물질은 순환하며 나는 다만 이곳에 일시적으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나는 안심했다. 안심하고, 또 안심했다. 그때였다. 철컥, 하는 귀에 익은 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금고에 자물쇠를 걸어 잠그며 점원이 말했다.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 끝>

 

 

* 소설 속 우재현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김동원 감독의 <송환>(2004)에서 일부분 영향 받았음을 밝힙니다.

 

 

 

 

 

 

 

 

 

 

 

 

 

작가소개 /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등

 

   《문장웹진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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