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마을 외 1편 - 한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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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썰매마을

 

 

한연희

 

 

 

 

    폭설이 내린 마을엔 인기척이 없다
    운전사를 태운 버스만 간신히 지나다닌다

 

    모두들 쥐떼처럼 처박혀서는 때를 기다린다

 

    눈사람이 앞마당에 자라나기를 기다린다
    발밑에 놓인 작은 썰매 안에서

 

    숨소리 없이 너는 태어나고
    말을 배우고 손짓을 한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나의 작은 쥐새끼, 하얗고 커다란 눈망울을 간직한 너는 이 앞마당에도 저 앞마당에도 태어난다 한껏 웅크린다 그러다 눈덩이처럼 굴러가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불어난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밭을 가로지른다

 

    납작한 썰매들이 함께 겨울을 이끌고 간다
    겨울과 오래도록 함께 있기 위해서 나아간다

 

    눈사람이 죽은 쥐를 품고 가듯이
    둔덕을 미끄러져간다

 

    우리 마을엔 대장이 없단다
    우리 마을엔 전설만이 있단다
    우리 마을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우리는 마을처럼 애초에 없었던 거잖아요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태어나고 죽는 거잖아요

 

    우리는 집안 전등이 꺼질 듯 깜빡거리는 걸 본다
    골목 어귀가 발자국으로 더러워지는 걸
    하얀 지붕이 어둠에 서서히 묻혀 가는 걸
    보고 보고 또 본다

 

    누군가 목을 매 죽었다던 나무는 밑동만이 남아 있다
    그 자리에 슬픔이 그대로 자라서는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

 

    담벼락이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디론가 향해 가는 발자국을 하나하나 지우는 동안

 

    슬픈 마음들이 자꾸 썰매로 태어나 집 앞에 쌓여간다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술래잡기

 

 

 

 

 

    과수원에서 놀았지. 정신없이 놀다가도 사과! 복숭아! 자두! 와르르 달려가 나무 뒤에 숨는다. 나는 술래가 된다. 밤이 됐는데 아무도 찾지 못한다. 멍이 든 사과를 줍는다. 못 찾겠다 못 찾겠다 꾀꼬리. 빼곡한 가시덩굴 안에서. 어둠뿐인 그때부터 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나무껍질 속에 숨었나 아니면 바위 틈. 도망가는 개구리를 잡아 입을 벌리지. 너희는 어디에도 없구나. 밑창이 닳아빠진 운동화가 보인다. 도둑고양이의 뻣뻣해진 다리는 세 개. 다른 하나는 어디로 갔을까. 이상한 소리들이 들린다. 자두야, 사과야, 복숭아야, 저들은 대체 누굴 부르는 중일까.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바스락 바스락 술래가 오는 모양이다. 나는 뿌리처럼 구부려 내내 울고만 있고. 다른 친구들은 원래부터 없었던 거야. 꼭 꼭 숨어라. 얘들아 나는 나뭇잎이고, 돌멩이고, 솔방울이지. 너희들은 언제부터 내 꿈속에 숨어든 거니?

 

    여기엔 비밀이 묻혀있지. 집단구타가 있었다는 대. 술래를 못 찾았다는 대. 피투성이 쥐들이 옷을 갉아먹었다는 대. 사과나무는 죽어버리고. 소문은 잡초처럼 자라나 자리를 메꾸었고. 혼자 남아 팽이를 돌리고 썩은 복숭아를 먹고. 나는 빙글빙글 돈다. 못 찾겠다, 못 찾겠다 꾀꼬리.

 

    문드러진 과일에서 냄새가 진동한다. 울고 있는 나는 어디 있었더라. 까만 점이 어디 있었더라. 고개를 돌려봐도 나는 없지. 나는 없지. 개구리가 빠져죽는 늪 앞에 누워 숨을 내쉰다. 아직은 살아 있단 생각에 술래가 다시 돼보려 한다. 꼭꼭 숨어라. 꼭 꼭.

 

 

 

 

 

 

 

 

 

 

 

 

 

 

작가소개 / 한연희

2016년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등단.

 

   《문장웹진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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