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방향 -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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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단정한 방향

 

 

김애란

 

 

 

 

    어젯밤 동네 근린공원 화단에 나무를 버렸다. 내가 자주 이름 불러준 나무였다. 살아 있는 식물을 쓰레기장에 두기 뭣해 차에 실었다. 오년 전, 오피스텔에 처음 들일 때보다 잎이 무성해 주차장까지 옮기기 쉽지 않았다. 묵직한 회색 제라늄 화기를 두 팔로 안아 조심스레 뒷좌석 바닥에 앉혔다. 가지 끝이 천장에 닿아 시든 이파리 몇 개가 낡은 가죽 의자 위로 떨어졌다. 나무 전체에 퍼진 깍지벌레 알이며 배설물이 차 안을 더럽히지 않을까 걱정됐다. 승용차 문을 닫고, 끈끈해진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운전석으로 향했다. 운전대 옆 서랍에서 휴대용물티슈를 꺼내 손마디를 꼼꼼히 닦다 문득 불길한 기분이 들어 고개 돌렸다. 비상등 켜진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내 앞까지 검푸른 잎 몇 장이 누군가의 발자국인양 점점(點點) 이어진 게 보였다.

 

    같은 날 오후,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동생 세정을 만났다. 커피 맛도, 인테리어도, 음악 선곡도 별로인 대형 커피숍이었다. 사람 만나는 게 직업인 내가 빨리 헤어지고 싶은 상대를 데려가는 곳. 스피커 볼륨을 비롯해 의자와 탁자 높이 모두 불편한 데였다. 동생은 여느 때처럼 좀 과하게 밝아 보였다. 올봄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 후 반년 만에 보는 거였다. 부담스러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무심히 메뉴판을 훑었다. 동생은 전부터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다 했다가, 플로리스트 과정 수강료를 빌려달라고 했다, 네일 아티스트로 일한 뒤 금방 관뒀다. 그러곤 언제부턴가 돈이 필요하거나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찾았다. 동생에게 의지할 만한 가족이 나밖에 없어서였다. 돌이켜 보면 세정이 초등학생,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그랬다. 우리에게 부모란 그저 문제를 일으키고 자식에게 불편을 떠넘기는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세정과 나는 한때 친척집을 전전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소송에, 입원에 거추장스러운 절차를 밟을 즈음 각각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댁에 반년 간 머문 까닭이었다. 기숙. 말 그대로 얹혀사는 것. 말이 반년이지 한창 사춘기인 내겐 무척 불편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배변 후 손바닥에 휴지를 둘둘 말다가도 여기가 남의 집이란 걸 깨닫고 문득 마음이 어둑해져 다만 휴지 몇 장이라도 아껴 쓰려 노력하던 때. 하교 후 밥통에 밥이 딱 한 그릇 남아 있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손대지 않던 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부모님을 탓할 때마다 동생은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를 온건한 말투로 진지하게 답했다.
    -그래도 가족이잖아.
    가족을 경험한 적 없으면서, 가족이 뭔지 모르고 하는 말 같았다. 같은 변기를 쓰고, 같은 찌개그릇에 침 묻은 숟가락을 담근다고 가족인가. 지금까지 내게 조금이라도 무언가 베푼 사람은 모두 남이었던 것 같은데.
    -오빠, 나 결혼해.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화제에 말을 잇지 못하다 누가 대신 써준 것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어, 그래 축하해.
    동생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누구랑 하는지도 안 물어봐?

 

    퇴근길, 오피스텔 앞 편의점에서 캔 맥주를 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에어컨을 켜고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몸을 씻었다. 전 여자 친구가 선물해준 고가의 탈모샴푸로 머리를 감다, 아까부터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좋아하는 라디오프로그램 오프닝 곡이었다. 동생은 곧 배우자 될 사람과 싱가포르로 떠난다 했다. 결혼식도 그쪽에서 올리고 새 삶을 꾸릴 거라고. 이곳에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단 말도 빼놓지 않았다. 동생이 사년 넘게 동거한, 누구였더라, 그 헬스트레이너 친구와 헤어지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와 국제결혼을 한단 사실이 놀라웠지만…… 고마웠다. 평생 보호자 노릇 않던 아버지가 말년에 긴 투병 생활 없이 갑자기 돌아가신 게 너무 고마웠던 것처럼. 지금껏 누구에게 말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고마웠다. 동생은 대화 말미에 조심스레 덧붙였다. 결혼식에 올 거지?

 

    샤워 후 발갛게 익은 몸으로 욕실을 나왔다. 몸에서 땀이 하나도 안 나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내일부터 여름휴가였다. 젖은 머리를 말린 뒤 거실 소파에 기대 스마트폰으로 저가항공권을 알아봤다. 검색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 평소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며 ‘여행 말고 이 참에 무리해서 차를 바꿔볼까?’ 고민하다 비로소 혼자가 된 자신을 의식했다. 친(親)도 없고 족(族)도 없는, 혈(血)도 없고 연(聯)도 없는 나. 전부터 바라온 모습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가볍게 검지를 퉁기며 승용차 모델을 살피다 맥주를 한 캔 더 따려 냉장고로 향했다. 그러고 몇 걸음 못 가 발아래 이물감을 느꼈다. 힘없는 누군가가 아래서 나를 약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한손으로 벽을 잡고 발바닥을 살피자 설탕물마냥 투명하고 끈끈한 물질이 먼지와 엉겨 붙은 게 보였다. 소파 옆 화분이 있던 자리에서 묻어난 거였다. 치운다고 치웠는데 깍지벌레 배설물이 아직 남은 모양이었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깨금발로 부엌에 가 물티슈로 발바닥을 닦았다. 그러곤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나도 모르게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끈적끈적한 거 정말 질색이야.

 

 

*

 

 

    이튿날, 아침부터 채선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통화 단추를 눌렀다. 누나가 며칠 전 내 실적을 올려준 일이 있어서였다. 이번에는 본인 차가 아닌 애인 차였지만. 몇 해 전에도 누나 내외가 우리 전시장에 들러 일억 가까이 되는 차를 계약해준 적이 있었다. 친척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며 강남에서 군포까지 부러 걸음해준 거였다. 이혼 후 누나는 의왕 쪽으로 이사와 내 오피스텔과 그리 멀지 않은 대단지 아파트에 살았다. 휴대전화 속 누나 이름을 보자 계약서 쓸 당시 애인 옆에서 좀 멋쩍어하던 누나 얼굴이 떠올랐다. 삶에 대한 실망과 피로가 역력하지만 눈빛만은 단단해 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매번 제값 주고 나이 먹은 사람의 내공이랄까, 편견과 오해를 감수하며 살아온 사람의 위엄이 밴 얼굴이었다. 언뜻 까다로워 보이지만 그 꼿꼿함으로 울타리 친 분방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액정화면을 잠시 바라보다 집안 어른 중 누가 갑자기 돌아가신 건 아닐까 추측했다. 중학생 때 나를 잠시 거둬준 큰아버지 그러니까 채선누나의 아버지나 숙모에게 무슨 우환이 든 건 아닌가 하고.
    채선누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가빠 보였다. 누나는 내게 짧은 인사를 건넨 뒤 ‘그때 그 차는 그이가 무척 잘 타고 있다’며, ‘네가 유에스비에 담아준 최신가요며 따로 챙겨준 주유권도 모두 흡족해한다’ 전했다. 그러곤 넌지시 내 휴가일정을 물은 뒤 ‘그지? 내 기억이 맞지?’ 안도했다. 누나는 좀 오래 머뭇대다 자신이 오후에 직장 하계연수에 참가해야 하는데 ‘그 사이 애를 봐주기로 한 돌봄이 아주머니가 잠적해 지금 무척 당혹스럽다’고 했다. ‘평일에는 유치원 종일반에 맡기고 주말에는 내가 함께 하는데, 이렇게 급한 일이 생기거나 방학 때면 대책이 안 선다’고. 나는 왜 누나가 그런 얘기를 왜 내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인데.
    -……
    -혹시 네가 잠깐 맡아줄 수 있니?
    -어?
    생전 처음 받은 제안이 언뜻 파악 안 돼 반문했다.
    -많이 당황스럽지? 나라도 그럴 거야.
    누나는 쉬는 날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당장 떠오르는 게 너밖에 없었다고 했다. 친정은 너무 멀고 시가는…… 뭐 너도 소식 들어 알지 않느냐고. 본인도 본인 부탁이 말이 안 된단 걸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절박함이 염치를 꾸역꾸역 밀어내는 목소리. 살면서 나도 자주 구사해온 화법이었다. 실은 그때 안 된다고 해야 했는데. 난처함을 숨기려 대답을 지연시키다 나도 모르게 전혀 궁금하지 않은 걸 묻고 말았다.
    -얼마 동안…… 가는데? 연수?
    굵직한 계약 두 건을 맺었지만 사실 누나와 난 일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사이였다.

 

    두 사람이 도착한 건 오후 한시가 지나서였다. 어깨에 무당벌레 모양의 가방을 맨 채 긴장한 얼굴로 현관에 선 아이를 보며 ‘저렇게 작은 인간은 처음이다’ 생각했다. 저렇게 조그마한 존재가 내 집에 발을 디딘 건 독립 후 정말 처음 있는 일이라고. 게다가 그 작은 인간은 사흘 간 나와 함께 있을 예정이었다. 하루는 흔쾌하고, 이틀은 고민스럽고, 나흘은 부담스러운 그 묘한 긴장 사이에 있는 사흘. 채선누나는 오피스텔에 들어서자마자 좁은 거실 한 가운데 대형 캐리어를 뉘이고 지퍼를 열어젖혔다. 그러곤 오랜 세월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온 사람답게 시선과 정보, 감정을 적절히 안배하며 가방 속 내용물을 설명했다.
    -이건 애 옷하고 속옷. 여름이라 넉넉히 챙겼어. 이건 비상약 파우치. 혹시 지호 열나면 이걸로 체온 잰 뒤 삼십도 넘을 경우 부루펜 먹여. 불안하면 나한테 전화하고. 애들은 어른 치약 매워서 못 쓰니까 이거 짜주고. 이 안엔 로션이랑 선크림 있어. 그리고 밥은……
    눈치 빠른 누나가 내 깔끔하고 황량한 부엌을 재빨리 훑어본 뒤 말을 이었다.
    -귀찮으면 그냥 시켜 먹고. 우리 지호 아무거나 잘 먹는데 계란 좋아하니까 달걀부침만 해줘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울 거야. 아니면 여기 뿌셔뿌셔 있으니까 햇반에 참기름 좀 넣고 간단하게 주먹밥 해줘도 되고. 그리고 애가 너무 심심해하면……
    소형 오디오세트와 평면 티브이 한 대만 달랑 놓인 거실 내부를 슥 둘러보며 누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레고 상자 꺼내줘. 여기 태블릿에 어린이용 동영상 받아놨으니까 지칠 때 가끔 틀어주고. 요새 더우니까 욕조에 물만 채워줘도 혼자 두 시간은 놀 거야.
    누나는 몇몇 주의사항과 설명을 더 보탠 뒤 내게 신용카드를 건네주곤 뭔가 빠뜨린 건 없나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 더 궁금한 거 있니?
    긍정도 부정도 아닌 뜻으로 어깨를 으쓱댔다. 내가 어린아이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들이 작다는 것뿐이었다. 인간이 언제 처음 걷는지, 그러느라 몇 번 넘어지는지, 이는 어떤 순서로 나고, 상대방 입장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몇 살 즈음 생기는지 전혀 몰랐다. 채선누나는 ‘물이라도 한 잔 하고 가’라는 내 청을 거절하고 아이 볼에 입 맞춘 뒤 ‘우리 지호 삼촌 말 잘 듣고 있어, 엄마 금방 올게’하고 서둘러 현관을 나섰다. 그러곤 승강기 문이 닫히기 전 주춤대다 새삼 진지하게 한 마디 했다.
    -세준아.
    -어?
    -고맙다.

 

    오피스텔로 돌아와 현관에 아무렇게나 놓인 유아용 크록스 샌들을 가지런히 모은 뒤 신발 앞코가 바깥을 향하도록 뒀다. 그러곤 그 옆에 내 슬리퍼를 정연히 두고 안으로 들어섰다. 텅 빈 거실 한 가운데 오도카니 앉아 있는 지호의 작고 둥근 등이 보였다. 여름 볕에 그을린 목덜미가 오전 햇빛을 받아 강아지풀처럼 여리게 빛났다. 지호는 빨간 미니카를 바닥에 굴리며 제가 만든 서사랄까, 친숙한 이야기의 세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한낮의 오피스텔이 왠지 무척 어색하고 고요하게 느껴졌다.

 

 

*

 

 

    첫날 오후는 비교적 무난하게 흘러갔다. 레고 쌓기를 하며 지호는 제 앞에 상대를 조심스레 탐색했다. 처음엔 몸을 빼고 수줍어하다 차츰 경계심을 풀고 가끔 아이다운 웃음도 터트렸다. 반면 내 쪽에선 지호가 어떤 아이인가와 상관없이 금방 지쳐버리고 말았다. 아이와 함께 있으니 시간이 무척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한참 놀아준 것 같은데 삼십분밖에 안 지났다든가, 아이 말에 성실하게 호응해줬을 뿐인데 진이 빠지는 식이었다.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완전한 존재를 예의 주시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소모가 상당했다. 내 앞에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 정신적 피로도 또한 높았다. 두 시간 쯤 지나자 나는 너무너무 혼자 있고 싶어졌다. 너무너무 눕고 싶었다. 평소 낮잠을 즐기지 않는데 때 이른 졸음이 쏟아졌다.

 

    점심으론 누나가 아파트단지 내 분식집에서 사온 치즈김밥과 멸치김밥을 나눠먹었다. ‘밥 먹자’는 말에 지호는 제 가방에서 파란색 유아용 젓가락을 꺼낸 뒤 식탁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나로선 처음 보는, ‘잘못 만든 연탄집개’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집개 위론 아이들이 손가락을 넣어 고물거릴 수 있는 고리 두 개가 각각 다른 높이에 달려 있었다. 지호는 어느새 이 집에 적응했는지 김밥을 입에 넣은 채 몸을 흔들고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지호의 작은 몸에 깃든 골똘한 집념이랄까 먹을 것을 향한 순수한 집중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식당에서 자기 욕구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보면 묘한 불안이 일었는데, 애가 얌전해서 그런지 조카라서 그런지 저항감이 덜했다. 내가 식당에서 접한 불안도 실은 동물이 동물을 보며 느낀 동물적 불안이었을 거다.

 

    저녁에는 피자를 시켜 먹고 아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해가 져서 선선할 줄 알았는데 숨 막히는 습도에 놀라 인근 카페로 피신을 갔다. 아이에게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내 앞에 차가운 커피를 둔 채 스마트 폰으로 경제신문을 읽었다. 그러곤 ‘누나에게서 종일 연락이 없네?’ 갸웃댔다. 연수 총무라더니 많이 바쁜 모양이구나.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깨끗한 내의로 갈아입혔다. 아이 옷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헤어드라이기로 지호 젖은 머리를 말려주고 태블릿 피시에 저장된 짧은 애니메이션을 틀어준 뒤 나도 씻었다. 지호가 변기 주위에 흘린 오줌방울 때문에 욕실에서 고약한 지린내가 났다. 변기커버에도 노란 오줌방울이 튄 게, 스스로 용변을 본다지만 키가 작고 손이 설어 뒤처리가 엉망인 듯했다. 수납장에서 분무형 욕실세제를 꺼내 변기커버와 바닥에 뿌린 뒤 샤워기 물을 뿌렸다. 아이가 여기 머무는 동안 매일 해야 하는 일일지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매일 할 생각이었다. 나에게 정리와 청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힘든 일은 늘 따로 있었다.

 

    침실로 가 매트리스 옆에 보조 요를 깔고 여름 이불을 펼쳤다. 집에 모든 불을 끄고 침대 옆 조명 하나만 켠 채 지호를 불렀다.
    -지호야, 이리 와. 자자.
    거실 창문에 고개를 박고 바깥 풍경을 보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어? 아우디다. 어? 에스엠파이브네? 오! 비엠더블유’ 반색하던 아이가 서운한 듯 고개 돌렸다.
    -아직 여덟시밖에 안 됐는데요?
    살짝 당황돼 거실 벽면에 붙은 야광시계를 바라봤다.
    -너 숫자 읽을 줄 알아?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네, 글자도 쓸 줄 아는 걸요.
    이걸 어쩌나 고민하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했다.
    -저 시계 고장 난 거야. 다른 집 것보다 두 시간 느려.
    -어? 근데 나는 만날 열한시에 자는데요?
    -열한시?
    순간 조금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호가 말 안 들을 땐 ‘게임’으로 구슬려보라던 채선누나 말이 떠올라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지호가 당근을 먹지 않으면 당근으로 비행기 놀이를 하다 아이 입에 착륙시키라는 식의 조언이었다.
    -삼촌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우리 누워서 게임하자.
    -무슨 게임이요?
    -누가 빨리 잠드나 게임. 진 사람이 내일 과자 사주기. 어때?
    지호는 제안 즉시 흥분했다.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꼭 감은 채 혹시라도 삼촌이 먼저 잠들면 어쩌나 몹시 초조해 했다. 중간에 몇 번이나 일어나 내 상태를 확인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눈꺼풀을 함부로 열어본 뒤 안심하고 도로 자리에 누웠다. 그러다 점점 숨소리가 순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정말 곯아떨어졌다. 나 역시 종일 피곤했던지라 바로 눈이 감겼다. 놀랍게도 사람 하나 더 있다고 평소보다 방이 더웠다.

 

 

*

 

 

    다음 날 지호가 내 앞에 바싹 붙어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로 상기된 얼굴이었다. 하루가 시작되는 게 저렇게 좋나? 이젠 내게 없는 감각이라 낯설었다. 딴에는 소풍이라도 온 양 새로운 환경이 두근두근한 모양이었다. 지호는 하루 사이 더 의욕적이고 활달한 아이로 변했다. 쿵쿵대는 걸음으로 무신경하게 집안을 누비고, 더러운 발로 소파 위를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가하면, 집안에 온 서랍을 열고 뒤졌다. 부운 얼굴로 시리얼 그릇에 우유를 붓다 평소 반질반질한 평면티브이 위로 아이 손자국이 여러 개 찍힌 걸 보고 비로소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실감했다. 아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축축하고 끈끈한 기운이 남아 신경 쓰이던 차였다. 지호는 아주 간단한 음식을 먹을 때조차 사방에 부스러기를 흘렸다. 처음엔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과자 부스러기와 오물을 치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지호가 잠들기만 기다렸다. 날이 좋으면 놀이터라도 데려갈 텐데.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아이와 나 둘이 답답하고 좁은 오피스텔에 종일 갇혀 있어야 했다.

 

    지호랑 자동차 놀이를 하고,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는 사이 지호에겐 뽀로로 동영상을 틀어줬다. ‘딱 한 편만 보는 거야, 떼쓰면 안 돼’ 내 편에서 먼저 제안해놓고 아이가 꼼짝 않고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달콤해 연달아 세 편을 틀어줬다. 저녁에는 냉장고에 남은 자투리 채소로 볶음밥을 만들었다. 혹 문자나 부재중 전화가 들어온 게 없나 수시로 휴대전화를 살폈지만 채선누나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저녁 여덟시 즈음 지호와 에이포지에 꽃이며 자동차 따윌 그리고 놀다 더 이상 호응할 여력이 안 돼 욕조에 물을 채웠다. 그러곤 거기 지호를 앉히고 물에 뜨는 장난감 몇 개를 넣어준 뒤 집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하고, 볼펜, 단추, 넥타이 핀, 명함 등 사방에 흐트러진 물건을 제자리에 놓으며 정신적 안정을 찾았다. 똑같은 걸 내일 다시 하게 되더라도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나 같은 성격을 가진 이들의 습성이었다. 이제 아이를 씻기고 재우기만 하면 오늘 하루가 끝난단 사실에 조금 설렜다. 그러곤 욕실 문을 열자마자 균형을 잃고 바닥에 자빠지고 말았다. 한 손으로 타일 벽면을 잡고 한동안 주저앉아 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고가 제품이라 평소 무척 아껴온 탈모샴푸가 세면대며 욕실 바닥에 잔뜩 흩뿌려져 있었다. 용기 안을 보니 샴푸 양이 반 이상 줄어 있었다. 아이가 몸 담근 욕조에서도 희멀건 물체가 수상하게 넘실대는 게 보였다. 바닥이 미끄러워 엉금엉금 기듯 다가가 보니 아까 그림 그리라고 준 에이포지였다. 종이는 물에 풀어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흐물흐물했다. 그대로 물을 빼면 배수구가 막힐 게 뻔했다.
    -야, 정지호! 이리 나와!
    살짝 위축된 채 그러나 여전히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는 얼굴로 지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심각하게 내 눈치를 보는 아이를 마주하니 속에서 더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익히 아는 얼굴, 너무 잘 아는 얼굴이라 그랬다. 아이를 물로 씻겨 내보낸 뒤 손으로 일일이 종이를 건져냈다. 종이가 완전 죽처럼 풀어져 잘 떠지지 않았다. 결국 전 여자 친구가 소면을 건지거나 된장 풀 때 쓰라며 사다놓은 스테인리스 채를 들고 와 노역을 했다. 그러고 한참 땀을 뻘뻘 흘린 뒤 밖으로 나와 보니 이번에는 거실 한 가운데 산산조각 난 유리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아이에게 소리 질러 미안하다고 했다. 삼촌이 당황해서 그랬다고. 아무리 화가 난들 그러면 안 되는데, 삼촌 마음이 삼촌 뜻대로 안 될 때가 있다고 했다. 마음은 삼촌 건데도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삼촌이 아끼는 물건이라 그랬어.
    -……
    -다신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준 거야.
    -……
    지호는 내게 등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곤 최근까지 제라늄 화기가 자리한 탓에 바닥 일부가 둥그렇게 파인 곳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욕조에 또 물 받아줄까?
    아이가 도리질했다.
    -과자 사러 같이 나갈래?
    아이가 한 번 더 고개 저었다.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삼촌이랑 놀이공원 가자. 어때?
    -놀이공원?
    그때까지 꼼짝 않던 아이가 슬며시 고개 돌렸다. 크고 둥근 두 눈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그래, 놀이 공원.

 

 

*

 

 

   이튿날 즉석밥에 김가루를 섞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한 입 크기의 주먹밥을 접시에 수북 올린 뒤 아이에게 먹이고 외출할 채비를 했다. 하룻밤 새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어 소풍 가기 좋은 날이었다. 지호는 아까부터 뭐가 그리 좋은지 양 손으로 주먹밥을 먹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출발 전 채선누나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누나는 좀 호들갑스럽게 우리를 반겼다. 그동안 통화 못 한 게 미안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누나는 내게 고생이 많다고, 저녁 때 지호 찾으러 갈 테니까 한나절만 부탁한다고 얘기했다. 통화를 마치기 전 지호가 지금 놀이공원에 가는 길이라고 자랑했다. 누나에게 체면을 좀 차린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차를 몰고 지하주차장을 벗어나 근린공원 앞을 지나다 며칠 전 내다버린 나무를 봤다. 한밤중 내가 화분을 유기한 자리와 똑같은 장소에서였다. 저게 왜 아직 저기 있지? 눈살을 찌푸리며 핸들을 돌렸다. 왜 아무도 안 치우는데? 집에선 아무리 벌레를 잡고, 약 뿌리고, 가지 쳐도 소용없더니. 나무가 단지 멀리 있단 이유로 아무 이상 없는 듯 건강해 보여 심란했다.

 

    지호는 운전 중인 나를 끊임없이 방해했다. 아이를 길러본 적 없는 내게 지호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큰 스트레스였다. 기어라도 건드리면 큰일인데 운전석에 뭘 자꾸 만지려 하고, 서랍을 뒤지고, 함부로 발을 뻗어 매끄럽게 잘 닦아놓은 차체에 신발자국을 냈다. 어른들이 운전할 때 얼마나 조심하고 집중하는지 잘 모르고 하는 짓 같았다. 글씨 공부에 막 흥미를 붙인 지호가 도로에 각종 표지판이 나올 때마다 뜻을 물을 때도 신경이 곤두섰다.
    -삼촌, 저 그림은 무슨 뜻이에요?
    -어? 못 봤는데.
    -무슨 축구공 같은 게 그려진 거였어요.
    -잘 모르겠네. 어어, 지호야? 거기 그렇게 발로 차면 안 돼.
    -삼촌, 내비가 속도 줄이래요.
    -들었어.
    -속도 줄이라니까요.

 

    한참 뒤 지호가 차 안에 토를 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오래 이동하다보니 멀미가 난 모양이었다. 어떻게 손 쓸 새 없이 제 무릎과 발판 에 토사물을 쏟아냈다. 아직 채 소화되지 않은 밥알과 축축한 김가루가 가죽 시트에 들러붙어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창백해진 지호 얼굴에 식은땀이 맺힌 게 보였다.
    -지호야, 괜찮아? 지호야 잠깐만.
    황급히 차 세울 데를 찾는데 장소가 여의치 않았다. 갓길에 잠시 멈춘들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차 시트도 그러거니와 아이를 씻겨야 할 텐데. 주위에 그 흔한 교회나 편의점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얼핏 보이는 거라곤 화원과 비닐하우스 모텔 따위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거짓말처럼 눈앞에 낯익은 도로표지판 하나가 들어왔다.
    -영생공원묘지
    저 앞 샛길로 우회전 해 들어가면 바로 공용수도시설이 나왔던 게 떠올랐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핸들을 꺾었다.

 

    한여름, 평일 공원묘지는 한적했다. 추석도 설도 아닌 팔월 휴가철이라 방문객이 거의 없는 듯했다. 지호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수돗가로 데려가 얼굴과 손을 씻겼다. 콘크리트로 지은 무성의한 원형 구조물에 툭툭 박힌 수도꼭지에서 미지근한 지하수가 흘러나왔다. 우리 앞에 언덕 너머로 수천 개의 묘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아이를 묘지 물로 씻기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른 수건에 물을 적셔 티셔츠에 더러워진 부분을 꼼꼼히 문질렀다. 흰색 면 티 위로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육식공룡이 세모난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이대로 가면 차 안에서 계속 냄새가 날 텐데. 갈아입힐 옷을 따로 가져오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어디선가 희미한 매미소리가 들렸다. 멀리 스피커에선 연신 따분한 듯 평온한 독경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멍하니 서서 잠시 그 소리를 경청하다 아이에게 뜻밖에 말을 던졌다.
    -지호야, 우리 저기 잠깐 올라가보자.
    -어디?
    -저기. 언덕 꼭대기에.

 

    마음 같아선 당장 차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였다. 그냥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볼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드는 순간이. 십년 전 여기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서른 즈음이었나? 그날도 꽃을 들고 이 언덕길을 오른 적이 있었다. 화해라고 하긴 민망하나 내 딴에는 큰 용기랄까, 이해를 베푼 거였다. 그러다 아마 애써 들고 간 꽃을 도로 갖고 내려왔었지. 앞으로 다신 찾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눈물이 좀 났던 것도 같다. 거기 엄마 비석 위에 박힌 다른 자식들의 이름 때문에. 그리고 거기 내 이름은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지호는 방금 전 토한 일 따위 까맣게 잊고, 새로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 삼촌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끊임없이 물어댔다.

 

    어제 전국에 비가 내린 덕에 한껏 빗물을 빨아들인 초록이 통통 살이 올라 있었다. 대기에서 식물들의 살 냄새가 났다. 간만에 푸르게 갠 하늘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솔기 실밥 풀리듯 구름 테두리가 실처럼 가늘게 풀어지는 게 보였다. 어머니의 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묘비에 박힌 이름도, 봉분도 전부 그대로였다. 절을 하지도 묵념을 하지도 않은 채 한참 서있자 지호가 의아한 듯 물었다.
    -누구에요?
    -그냥 아는 사람.
    -친했어요?
    -조금.
    지호가 묘비에 붙은 스티커 속 글자를 한 자 한 자 서투르게 읽었다.
    -본 묘지는 관계 법령에 의거…… 삼촌 법령이 뭐에요?
    -……
    -연고가…… 어, 연고가, 없는 묘지로 간주…… 삼촌 간주가 뭐에요?
    -……
    -개장 처리할…… 바랍니다. 에이 재미없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언제 붙여놓은 건지 스티커에 곰팡이가 피어 얼룩덜룩했다. 오래 전 다 버리고 새 사람을 만났으면서, 자식도 둘씩이나 낳았으면서, 무연고라니 헛웃음이 났다.
    -이 사람이에요?
    지호가 새삼 차분하게 물었다.
    -뭐가?
    -어제, 다신 만날 수 없는 사람.
    -아니.

 

    -그럼 누구?
    -지호야.
    -네?
    -가자.
    -벌써요?
    -응. 더 늦기 전에 놀이공원 가야지.
    지호가 뙤약볕 아래 길게 늘어선 내리막길을 보며 한숨 쉬었다.
    -어 근데, 나 다리 아픈데.

 

    아이를 업고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갔다. 등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땀이 흥건 고였다. 방금 전 힘들게 올라간 길을 되짚어 똑같이 내려오다 잠깐 관리사무소에 들렀다. 아파트 경비사무소처럼 생긴 밋밋한 콘크리트 건물에 유니폼 차림의 노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저 말씀 좀 여쭙겠는데요.
    노인이 잠을 쫓듯 눈에 힘을 주며 내게 ‘무슨 일이시냐’고 했다. 조심스레 어머니 성함을 대며 묘지 연체료가 얼마냐고 묻자, 노인이 내게 가족이냐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금액을 안 가르쳐줄 것 같아 가족이라 했다.
    -출생년도가?
    노인이 구형 컴퓨터에 느릿느릿 관련 정보를 적어 넣는 걸 봤다. 지호는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지도 않고 웬일인지 주눅 든 표정을 지었다.
    -칠십오만 원이네.
    지갑이 든 바지주머니 위로 손이 갔다 잠깐 멈췄다.
    -잘 오셨네. 이거 이 달 안에 결제 안 하면 강제 이관되는데.
    -……
    -지금 결제하시게?
    -…… 아니요.
    노인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냥 얼만지 궁금했다’고 말하기 뭣해 노인이 가장 믿을 만한 말로 둘러댔다.
    -가족들과-…… 상의해보겠습니다.

 

    관리사무소를 나와 주차장 쪽으로 걷다, 오늘 밤 세정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일이 많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결혼식엔 못 가 볼 것 같다’고, ‘그렇지만 결혼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해야겠단 생각이 하필 이곳 공원묘지에서 들었다. 걸음이 자꾸 뒤처지는 지호 손을 잡았다. 우리가 차를 대놓은 곳까진 한참 걸어가야 했다. 햇볕이 따갑기도 하고 걸음이 무거워 지호에게 장난을 걸었다.
    -지호야, 우리 또 게임할까?
    아이가 기대 어린 눈으로 응했다.
    -이번에는 무슨 게임이요?
    -각자 하나씩 비밀 얘기하기.
    ‘비밀’이란 말을 들은 지호가 바로 흥분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 안 하기.
    -좋아요. 그럼 삼촌 먼저 말해요.
    아이가 너무 진지하게 호응해 새삼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까 저 무덤 말이야.
    -네.
    -실은 빈 무덤이야.
    -진짜요?
    -응. 안에 아무도 없어. 죽은 사람이 계속 막 돌아다니거든. 그러다 길을 잃고 원래 장소로 못 돌아가는 귀신들도 많대.
    지호가 어둡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지 그런 망자들이 안쓰러워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자, 이제 네 차례.
    지호가 잠시 뭔가 고민하다 목소리를 낮췄다.
    -삼촌 있잖아요.
    -응.
    -우리 엄마 연수 안 갔어요.
    -뭐?
    -지금 집에 있어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요. 비밀이에요.
    -……
    –……어? 매미다.

 

    지호가 공용수돗가 근처에 말라죽은 매미를 발견하곤 뛰어가 쪼그려 앉았다. 지호 등 뒤에 서서 나도 지호가 보는 것을 보았다. 죽은 지 꽤 오래돼 보였는데 납작 바수라진 몸통 밖으로 삐져나온 날개가 아름다웠다. 살(肉)에서 어떻게 저런 게 나오나. 껍질 안쪽 분주한 내장들이 가꾼 대칭, 비례, 수학 그런 것을 생각하다 내 시선은 곧 매미의 머리, 그 중에서도 유독 까맣게 말라붙은 두 구(球) 위에 멈추었다. 저 반질거리는 표면 위로 지나갔을 온갖 삶의 풍경을 그려봤다. 본 게 굳은 것. 본 채 굳는다는 건 어떤 걸까. 왜 어떤 살의 무게는 평생 가나.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언덕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꽤 질척였다. 마치 누군가가 약한 악력으로 아래서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중간 중간에 파인 웅덩이에 빠지지 않으려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그러곤 붉은 진흙으로 더러워진 신발 밑창을 내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끈적끈적한 거 정말 질색이야. ■

 

 

 

 

 

 

 

 

 

 

 

 

 

 

 

 

작가소개 / 김애란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과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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