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 강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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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강화길

 

 

 

 

    퍽, 하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나는 몸을 돌려 다시 걸었다. 대문 앞에 다가섰다. 퍽, 소리가 또 들렸다. 커다란 돌덩이 같은 것이 벽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였다. 나는 곧장 뒤로 돌았다. 무언가 있었다. 짧고 얇은 어떤 것이 골목길 뒤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산한 느낌이 가슴 안쪽을 찌르며 내려왔다. 나는 서둘러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야야, 왜 이렇게 늦게 오냐.”
    시어머니였다. 나는 말없이 마루에 올라섰다. 일찍 들어오라던 시어머니의 말이 이제야 기억났다. 오후에 마을 회의가 있다며 그녀는 아침부터 나를 채근했다. 메주 빚는 날을 받는다고 했다. 그녀는 조금 짜증을 냈다. 나는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하려다 관뒀다. 피곤했다. 오늘도 아이들은 대진이의 속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그 아이의 허리춤에 눈 뭉치를 집어넣었던 것이다. 누가 시작했느냐고 추궁하다 종례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아이들과 대치하듯 한참을 마주 보고 있는데, 용권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5학년이지만 학교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서글서글 잘생긴 소년.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 그러나 나는 알았다. 모두 저 아이의 주도로 벌어진 일이었다. 용권이는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한 번도 현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증거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분명 용권이 주도로 대진이를 괴롭혔다. 나는 담임교사였고 학생 수는 일곱이 전부였다. 그런 건 그냥 알 수 있는 거였다. 단 한 번, 용권이가 대진이를 밀어 넘어뜨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내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용권이가 먼저 말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실수였어요.” 그리고 곧장 대진이에게 말했다. “미안해 대진아. 네가 거기 있는지 몰랐어.”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용권이를 방과 후까지 남겼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며칠 후, 여자 화장실 거울에 커다란 낙서가 적혔다. “5학년 담임 김미영 미친년.”
    내가 대답이 없자 시어머니는 기분이 더 상한 것 같았다. 그녀는 아랫집 미자네는 벌써 한참 전에 출발했다며 불만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그러면 그렇지.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그녀가 오늘 더 짜증을 낸다 싶었다. 미자네는 마을 허드렛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아랫집 할머니로 일도 잘하고 야무져 찾는 사람이 많았다. 딸인 미자 부부가 형편 때문에 맡긴 손자를 홀로 돌보며 지냈는데, 하필이면 그 아이가 바로 대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자네만 보면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들었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툭하면 말했다.
    “야야, 그 여편네가 실제로 얼마나 의뭉스러운지 아냐.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거다.”
    하지만 사실은 이장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이장은 해마다 손 없는 날에 메주를 빚던 마을 풍습을 농한기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이전에도 이장은 마을 일꾼 섭외며 농산물 납품이며, 그 밖의 마을 대소사를 책임져 왔는데 메주 사업 이후로 그 신뢰는 더 깊어졌다. 그가 없으면 마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시어머니는 평판 좋고 풍채 좋은, 5년 전 혼자가 된 이 노인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장은 일거리가 생길 때면 항상 미자네를 찾았다. 이게 시어머니가 미자네를 험담하는 진짜 이유였다.
    “야야, 안 들리냐.”
    시어머니가 날카롭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유형의 시어머니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며느리였고 그녀는 뭔가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녀가 내게 혹시 일찍 들어올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반드시 일찍 들어오라고 일방적으로 말할 뿐이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말은 무시하고, 내 용건을 꺼냈다.
    “어머님, 민아는요?”
    “민아는 방에서 잔다. 어린이집에서 나올 때부터 애가 슬슬 졸더라.”
    “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분명 며칠 전에 민아의 낮잠 버릇을 고쳐 보자고 그녀와 대화했다. 언제부터인가 민아가 밤에 잠을 안 자서 왜인가 싶어 물었더니,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곧장 낮잠을 잔다는 거였다. 시어머니는 애가 피곤해하는데 그럼 어떻게 하냐며 무책임하게 대꾸했다. 아이를 그렇게 빡빡하게 키우면 안 된다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도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낮에 애를 재우고서, 이장에게 줄 마른반찬이나 말린 시래기, 고구마 말랭이 같은 걸 만들었다. 밤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깨어 있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나는 화가 났다. 시어머니가 민아를 봐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이 시골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러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오늘 또 민아를 재운 것이다. 그날 나와 약속하지 않으셨냐고 따져 물으려는데 시어머니가 말했다.
    “용권이는 오늘도 공부 잘했냐? 애가 참 착하지?”
    나는 이제 시어머니와 더는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한 후,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마을에서의 첫해, 나는 시어머니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머님, 손이 뭔가요?”
    그녀가 대답했다. “악귀다, 악귀.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방해하는 년. 그년이 없는 날 귀한 해콩을 삶는 거다.”
    용권이는 이장의 친손자였다.
    어젯밤, 인도네시아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해외파견 근무 기간을 연장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마을은 지평선 끝에 있었다. 햇빛 아래 푸르게 빛나는 논밭을 양옆에 두고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감탄은 잠시였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는 금세 질렸다. 언제까지 이 땅이 계속 나올까 싶어질 즈음 지대가 낮아지며 길이 서서히 좁아졌고, 그 상태로 한참을 달리면 구색을 겨우 갖춘 낡은 상권 지역이 나타났다. 읍내였다. 그곳에서 또 얼마간 달리면 빽빽한 대나무 숲길이 나왔다. 굵은 잎들이 하늘을 덮다시피 기울어져 있었다. 때문에 도로는 무척 어두웠고, 좁은 굴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 끝에 마을이 있었다.
    산 밑에 흐르는 강을 끼고 자리 잡은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이곳은 도시보다 온도가 한층 낮았다. 시리고 깨끗한 공기가 매일 폐 속으로 파고들었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몸 안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염소야!”
    민아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어느새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하천 위 다리에 도착해 있었고, 아이 말대로 흑염소 두 마리가 다리 아래서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 다리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었다. 건너편에 시어머니가 있을 마을회관이 보였다. 처음에는 이 풍경이 무척 생경했다. 개발 시절 지어졌음이 분명한 마을회관 옆에는 일제강점기를 연상시키는 일본식 사당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메주 빚는 철이면 꼭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게다가 마을의 모든 지붕은 하나같이 모양이 똑같은 푸른색 한옥 기와였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저택 같았고,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낡고 위태로운 느낌으로 가득했다.
    “엄마, 염소가 검은색이야.”
    민아가 말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깨워서 밖에 데리고 나올 때만 해도 민아는 온갖 신경질을 다 부렸지만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 좋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새 말이 더 늘어 검은색이라는 단어를 잘도 발음했다. 민아는 또래보다 말이 빨랐다. 할머니 따라 마을 여기저기 다니며 어른들 대화를 자주 들어 그런 것 같았다. 말투도 다양했다. 나처럼 말하다 시어머니처럼 말했고, 어느 순간에는 미자네나 건넛집 송씨네처럼 말했다.
    한번은 아이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 같아 가만히 살펴봤는데, 영락없는 이장님이었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단어를 쓸 때도 있었다. 민아가 사투리 억양이 미묘하게 섞인 말투로 시골 어른들이 쓰는 단어들을 난데없이 툭, 내뱉을 때면 귀여우면서도 조금 두려웠다. 아이를 이렇게 키우는 것이 옳은 걸까. 괜찮은 걸까. 함께 있어도 이런 고민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남편은 저 먼 곳에서 혼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그를 생각하면 답답했다. 우리는 어제 결국 싸웠다. 그는 회사에 당장 인력이 없다며 이대로 돌아가면 자신이 무책임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그럼 나는? 민아는? 우리한테는 무책임한 게 아니야?”
    내가 따져 묻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자리 잡기를 원했던 건 당신이잖아.”
    사실이었다. 나는 그가 안정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 홀로 서 있다고 느꼈고,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가 돌을 막 지난 아이를 두고 해외 근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걱정 대신 응원을 보냈던 것이다. 잘 다녀오라고, 이왕 가는 거 열심히 해서 꼭 자리 잡으라고.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매사가 그랬다. 그의 해외 근무가 결정된 후, 잘해 보자고 마음은 먹었지만 나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지낼 일이 걱정이었다. 그때 시어머니가 민아를 봐주겠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이때가 아니면 아이가 언제 할머니와 살아 보겠나 싶었고, 어머니를 홀로 두고 있다는 그의 걱정도 덜어 주고 싶었다. 시골 학교라면 학생 수도 적고 잡무도 덜해서 지내기 편할 것도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나 싶다. 하지만 그때는 마땅한 일처럼 여겨졌고, 그러자 모든 면이 좋아 보였다. 나는 그와 함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결혼한 거였다.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잘할 수 있다면 잘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해 말에 나와 상의 없이 근무 기간을 연장했다.
    어제,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내가 나만 좋자고 이래?”
    나는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어버렸다.
    “야! 염소야! 멍청아! 여기 좀 봐라!”
    갑자기 민아가 다리 난간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큰 소리를 냈다. 얘가 왜 이래? 나는 민아를 다리에서 떨어뜨려 놓으며, 그만 하라고 엄격하게 말했다. 그러자 민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고집스럽게 앙다문 입술이 제 아빠와 똑같았다. 다시 피로가 밀려왔다. 제대로 꾸중을 해야 할까. 아니면 어떻게든 달래서 말을 알아듣게 해야 할까. 요즘 나는 자주 이런 고민에 빠졌다. 애가 말을 워낙 잘하다 보니 성인처럼 알아듣는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때도 있었지만, 전혀 모르면서 그냥 귀에 흘러 들어오는 대로 말할 때도 많았다.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낼지 몰라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등 뒤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리 위에는 민아와 나 둘뿐이었다. 찬바람이 목덜미 아래로 밀려들었다. 등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민아가 말했다.
    “왜 안돼? 저 염소 튀기잖아.”
    “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민아야, 누가 그런 말 했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하지 마.”
    “왜?”
    “나쁜 말이야.”
    “왜? 염소 튀기 아니야? 검은색이잖아.”
    “민아야, 그 말 하지 마라니까.”
    “왜?”
    나는 민아의 손을 세게 잡아당겼다. 어서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어디서 이 말을 들은 걸까. 오늘 처음 말한 걸까. 아니면 지금까지 계속 말하고 다닌 걸까. 나 말고 들은 사람이 또 있을까? 혹시 시어머니가 한 말일까.
   물론 그녀는 이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가 났다. 애를 제대로 돌보면 이런 일이 없지 않은가. 마을 여기저기를 아무렇게나 데리고 다니니, 당연히 이런 말을 주워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항상 내가 예민하다고 말했다. 부엌 싱크대를 닦은 행주로 접시와 아기 젖병을 함께 닦고, 립스틱이 묻은 입술로 아기 볼에 입을 맞추면서, 그리고 이제는 아이 입에서 이런 말까지 튀어나오도록 내버려뒀으면서 매번 나만 유난스러운 사람 취급이었다. 내게 마땅한 일들이 그녀에게는 늘 아무것도 아니었다. 손 없는 날이라고? 지난 2년 동안 내게는 그런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나는 민아를 더 세게 끌어당겼다. “집에 가자.”
   그러자 민아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염소를 더 보겠다고 했다. 바닥에 드러누울 기세였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아예 민아를 안아 들었다. 아이가 내 품에서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배웠고, 그 일을 하고 있었고, 또 내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훨씬 많았다. 민아가 내 등 뒤를 향해 말했다.
    “엄마, 저기에 튀기가 있다니까.”
    명치 아래 꽉 박혀 있는 무언가 터질 듯 움직였다. 나는 민아를 내려놓았다. 아이에게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순간, 뒤에서 섬뜩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다리 저편, 다섯 걸음도 안 되는 곳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 저곳에 와 있었던 걸까.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시선이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용권아. 이제 집에 가니?”
    “네.”
    용권이의 목소리가 유독 차갑게 들렸다. 소름이 돋았다. 우리 대화를 다 들은 걸까. 들었다면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나는 용권이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어서 들어가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앞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민아는 조용히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골목에 들어가기 전,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용권이는 여전히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나는 더 빨리 걸었다. 아이에게 속삭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마.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마.
    화장실에 낙서가 적혔던 날, 대진이가 혼자 따로 찾아왔다. 그 애는 자기가 낙서를 했다고 말했다. 수업이 너무 늦게 끝나 화가 나서 그랬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이가 돌아선 순간, 나는 대진이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걸 보았다. 나는 대진이를 불러 세웠다. 아이는 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학교 계단에서 혼자 굴렀다고. 실수였다고.
    용권이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다.

 

    한밤중, 대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루로 나왔다. 우리 집은 전형적인 시골 가옥으로 마당을 가운데 두고, 철제 대문과 집이 분리되어 있었다. 밤에는 대문의 철쇄를 걸어 잠그긴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넘어올 수 있는 높이였다. 집과 대문 사이에는 조그만 전등 하나도 없어서 밤에는 오직 어둠뿐이었다. 지붕에 달린 형광등은 마루 아래를 겨우 비출 뿐, 빛은 마당까지 뻗어 나가지 못했다.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쪽에서는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대문을 향해 외쳤다.
    “누구세요?”
    철문이 다시 덜컥덜컥 흔들렸다. 문을 열고 이쪽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소리는 점점 거세졌다. 쾅쾅, 철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신고해야 할까. 하지만 경찰이 읍내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야야, 거기 왜 서 있냐?”
    시어머니였다. 그 순간, 흔들림이 멈추고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어머님, 저기서 소리 나잖아요.”
    “무슨 소리?”
    나는 어두운 저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시어머니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어서 들어가 자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곧장 거실로 들어가 탁상 서랍에서 손전등을 찾아 나왔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민아와 함께 있어 달라고 말한 후, 신발을 신었다. 왜 그러냐고 시어머니가 재차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손전등으로 대문을 비추며 천천히 걸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어차피 문에는 철쇄가 걸려 있으니 큰일은 없을 것이다. 문만 열지 않으면 될 것이다.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소리를 지르면 된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깨어나도록.
    나는 대문 앞에 섰다. 손바닥을 조심스레 대문에 가져갔다.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손바닥에 닿았다. 비릿한 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 순간이었다. 대문에 퍽, 하고 무언가 부딪히더니 거세게 흔들렸다. 나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건너편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재빨리 문틈에 손전등을 비추어 밖을 보았다. 무언가 있었다. 양옆이 잘려 나간 어둑한 풍경 가운데, 분명 무언가 보였다. 사람의 발뒤꿈치 같기도 했고, 동물의 꼬리 같기도 했다. 그것은 아랫집 미자네 집 방향 골목 바깥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숨을 몰아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문 바깥으로 흩어졌다. 이제는 아무도 없었다.
    방에 들어오니 시어머니가 민아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고 있었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창가에 섰다. 바람소리가 들렸다.
    낮에 있었던 일을 시어머니에게 말해야 할까. 나는 고민이 되었다. 그녀와 의논해도 될 이야기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시어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요즘 미자네가 이상하다.”
    “그래요?”
    나는 무심하게 반문했다. 어차피 하루 이틀 들은 험담도 아니었으니.
    낮에 본 용권이의 눈빛만 머릿속에 자꾸 떠올랐다. 나는 불안했다. 그 애가 집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지는 않을까. 그 애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선생님 딸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고. 선생님이 가르친 말이 분명하다고.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나면 어쩌지.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키며 심란했다. 민아는 대체 어디서 그 말을 들었을까. 그때 시어머니가 또 말했다.
    “미자네가 이장님 이야기를 자꾸 이상하게 한다.”
    “그래요?”
    나는 다시 그렇게 대답했다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순간,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대진이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는데요?”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이장은 미자네를 너무 자주 불렀다. 막상 가보면 이장은 일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계속 차를 권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미자네는 짜증이 났다. 바빠 죽겠는데 왜 이러나. 이 시간에 일을 하면 대진이 간식이라도 하나 더 사줄 수 있을 텐데. 그러던 지난달이었다. 이장이 미자네를 또 불렀다. 집에 가보니 식구들은 모두 일을 나가고 아무도 없었다. 이장만 있었다. 또 차를 권하기에, 미자네는 바빠서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이장이 미소를 지으며 메주 사업장에 관리자가 한 명 더 필요한데 상의하고 싶다고 했다. 미자네는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이장이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지난달 도와준 품삯인데 조금 더 넣었다고 했다. 미자네는 두 손으로 봉투를 붙잡고 이장의 반대편에 멍하니 앉았다. 이장이 이런저런 말을 했다.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미자네가 힘없이 대답하는데 이장이 좋은 과자가 있는 걸 잊고 있었다며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성큼, 미자네 등 뒤로 걸어갔다. 그녀 뒤에서 찬장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에 먼지가 섞여들며 텁텁한 내음이 콧속으로 간질간질 스며들었다. 불쑥, 이장의 손이 미자네 어깨 앞으로 밀려들었다.
    예쁘게 포장된 일본산 과자 한 봉지가 미자네 앞에 놓였다. 그녀는 포장지의 벚꽃 그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순간, 이장이 뒤에서 미자네를 끌어안았다.
    “세상에.” 나는 중얼거렸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그러게 말이다.” 시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거들먹거리면서 말하는데 아주 볼 수가 없었다. 시간만 더 있으면 아주 온종일 말할 기세더라.”
    “네?”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 방향에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는 지금껏 뭘 들었느냐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보더니 말을 이었다. 미자네는 자신이 이장을 꽉 잡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 이야기를 꺼낸 거라고. 주제를 모르는 여편네라고 했다. 이장님이 불쌍해서 잘해 주는 건지도 모르고 어디 감히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고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어머니는 은근히 신이 나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님, 이 이야기 다른 분한테도 말씀하셨어요? 안 하셨죠?”
    시어머니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순간 나는 눈치 챘다.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미자네가 얼마나 황당한 여편네인지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다닐 생각이었다는 것을. 나는 시어머니를 달래듯 말했다. 이건 이장님 입장도 곤란해지는 이야기라고. 어머님이야 이장님을 워낙 신뢰하니까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받아들이겠느냐고. 그러자 시어머니는 펄쩍 뛰며, 내가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이겠냐고 대꾸했다. 나는 확인하듯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머님, 아주머니가 정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 건 확실해요?”
    시어머니는 결국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넌 내 말을 항상 어떻게 듣는 거냐?”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그렇게 사리분별을 못 할 것 같으냐고,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다고 쏘아붙이더니 문을 벌컥 열고 우리 방을 나가버렸다. 잠결에 놀란 민아가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나는 민아의 가슴께를 부드럽게 다독였다. 아이의 숨결이 차분해졌다.
    나는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 미자네는 항상 조심스러운 눈길로 사람들을 바라봤고, 어디서든 늘 조용히 있었다. 호의를 받는다는 걸 안다면 어떤 구설에도 오르지 않도록 눈치를 보며 조심할 사람이었다. 시어머니를 믿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아무런 감정 없이 그 이야기를 들은 건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대체 미자네는 그 이야기를 왜 굳이 시어머니에게 꺼내 놓은 걸까.
    대진이의 얼굴이 다시 어른거렸다. 그 애는 잔뜩 겁먹어 있을 때면,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 때도 그랬다. 내가 대진이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 애는 단 한 번도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자신을 넘어뜨렸는지, 옷 속에 눈 뭉치를 넣으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대진이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자주 생각했다. 저 아이는 대체 왜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자기 할머니에게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래. 할머니에게는 말했을 수 있다. 그러자 문득 많은 것들이 이해되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자네는 학교에서 대진이가 무슨 일을 겪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장을 해코지하듯 그 이야기를 꺼낸 걸지도 모른다. 그동안 참고 있던 이야기를, 혹은 순간 만들어낸 이야기를. 왜냐하면 시어머니는 미자네에 관해서라면 트집만 잡는 사람이니까. 조금이라도 험담할 거리가 있다 싶으면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소문만 난다면, 이장은 무척 곤란해질 것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나 자신이 조금 황당했다. 그러나 대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 할머니는 혼자 있을 때, 험한 말들을 중얼거렸을지 모른다. 사람은 화가 나면 무슨 말이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다. 이장을 향해. 용권이를 향해. 그러다 갑자기 아무데서나 툭, 튀기라는 단어를 내뱉고 말았을지 모른다. 무슨 말이든 따라하는 세 살짜리가 바로 옆에 있을 때도.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일부러 민아 앞에서 그 말을 꺼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얼마든지 그 말을 하라고.
    어두운 방. 나는 밀려오는 생각들을 견디며 민아를 내려다보았다. 시어머니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 덕에, 툭 튀어나온 이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를 닮은 부분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이의 옆에 누웠다. 어쨌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미자네를 한번 만나 봐야겠다 싶었다.

 

*

 

    마을에서 맡을 수 있는 모든 묵은 내음이 이 집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고추 말린 냄새, 메주 냄새, 시래기 말린 냄새. 미자네는 느닷없이 일요일 아침부터 찾아온 나를 일단 방에는 들여는 놨지만,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준비해 온 과자 상자를 미자네에게 건넸다. 시어머니와 민아가 아주머니 댁에 자주 놀러 오는데, 인사 한번 제대로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저야말로 대진이를 맡겨만 놓고 아무것도 못 해 미안하다고 수줍게 말했다. 부드럽고 순한 분위기가 주위를 에워쌌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대진이는 어디 갔느냐고 나는 물었다.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대진이가 학교 밖에서도 아이들을 만날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내심 안심해 버리곤 했다. 왜냐하면 아이들 대부분 읍내의 보습학원에 다녔고, 방과 후에는 집에 바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많았으니까. 나는 학교 밖에서만큼은 대진이가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설사 무슨 일이 있다 해도, 심각하거나 위험한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하지만 대진이가 아이들을 만나러 나갔다는 이야기를 막상 직접 들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선생님, 요즘은 괜찮으세요?”
    갑자기 미자네가 물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염려 가득한 얼굴로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요즘 애들이 워낙 천방지축이라고. 그제야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낙서 사건을 말하는 거였다. 그 일 이후, 마을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사과했다. 그러나 이런 식이었다. “요즘 애들이 문제가 많아요. 그래도 우리 마을 애들이 아주 착해요. 아시죠?”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화장실의 넓은 거울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던 글자들.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교실에서 걸레를 들고 나와 혼자 글자들을 지웠다. 그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이후 대진이가 내게 고백한 일에 대해 미자네는 모르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그때 미자네는 내게 따로 특별한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걱정하듯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음 한쪽이 짠하게 뭉그러졌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미자네가 내게 나긋하게 말했다.
    “다행이네요. 용권이가 공부 욕심이 많아요. 다 의욕이라고 생각하셔요.”
    나는 자리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말을 마친 미자네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는데, 그게 내 기분 탓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학기 초였다. 간단히 쪽지시험을 본 날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틀린 문제들을 짚어 주었다. 대체로 어려워하는 문제들이 비슷했다. 그래서 모두가 똑같이 틀린 문제들 위주로 해설했다. 다음날, 교감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용권이 집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내가 용권이가 틀린 문제만 계속 말했다는 거였다. 그것도 용권이의 시험지 뭉치를 들고 서서, 그 애가 틀린 문제를 하나하나 읽으며 “용권이는 이것도 틀렸네, 저것도 틀렸네, 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않는구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용권이의 시험지 한 장을 공중에 흔들어대며 이렇게 말했다고도 했다. “용권이는 특히 국어를 잘 못하는구나. 한국어 공부 좀 따로 많이 해야겠어.”
    거짓말이었다.
    정말 거짓말이었다.
    나는 두 손을 맞잡았다. 왜 미자네가 그때 일을 언급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 용권이 위해 하신 말씀인 거 다들 알아요.” 미자네가 말했다. “그래도 용권이가 참 착해요. 그렇지요?”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대진이는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요.”
    내가 오늘 그녀를 찾아온 건 돕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겪고 있을지 모를 일을 물어보고, 대진이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물론 민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내 딸이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된 원인을 알고 싶었고 막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할 일이었으니까. 그래야 마땅한 일이니까.
    진심이었다.
    정말 진심이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자세하게 말하면 미자네가 놀랄 것 같아 돌려 말했다. 대진이가 다른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어도 말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 슬쩍 조심스레 그 아이의 이름을 꺼냈다. 용권이. 미자네가 슬며시 눈을 치켜떴다. 특히 용권이와 단둘이 있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때 미자네가 내 말을 자르며 물었다.
    “선생님, 정확히 보신 게 뭐예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쩔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대진이가 내게 찾아왔다고. 아이는 자신이 낙서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믿기지 않는다. 다른 사연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날 아이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미자네가 이상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선생님, 그때 우리 대진이 다리 아파서 학교 쉬었는데요?”
    나는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대진이가 방과 후에 찾아왔다고, 정말이라고 한번 물어보라고.
    그러나 미자네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담임교사가 찾아와 손자에게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을 물어보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반응할 수 있는 걸까. 그때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장이 그녀를 자주 부른다는 말을 했다고, 그걸 자랑하듯 이야기했다고. 그리고 이렇게도 분명 말했다. 시간만 있으면 온종일 떠들 기세였다고. 어쩌면 미자네는 나를 믿지 못해 이러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애초 내 질문이 잘못된 건 아닐까. 나는 물었다.
    “아주머니, 이장님하고는 어떠세요?”
    그 순간, 대문이 끼익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 퍽,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미자네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방문은 닫혀 있었지만, 반투명한 창이 달려서 바깥에 어떤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마루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대진이가 돌아온 걸까. 하지만 아이였다면 할머니를 부르며 벌써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불투명한 창 너머에서 움직이는 어두운 형태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그것은 가늘고 짧고, 빨랐다. 저게 보이느냐고 물으려 고개를 돌리자마자 나는 미자네의 푹 꺼진 눈두덩을 마주했다. 주름진 입술을 꼭 깨물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문 바깥을 응시하는 표정을. 그녀는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었다. 어찌나 꽉 쥐었던지 혈관이 툭, 도드라져 있었다. 나는 미자네의 저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그날, 나를 찾아왔던 대진이가 바로 저 눈빛으로 계속 내 시선을 피했다. 거짓말을 했다. 무언가를 숨겨야만 하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미자네의 주먹을 꽉 잡았다. 그녀가 흠칫 놀라며 나를 봤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미자네는 내게서 손을 비틀어 뺐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렸다. 순간, 나는 바깥에서 무언가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느낌일 뿐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손 없는 날이었다. 맑고 청명하고, 누구의 해코지도 없는 날. 미자네가 방바닥을 바라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이상하시네요. 왜 자꾸 무슨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씀하시고 그러세요.”
    이제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벽부터 마을 사당 앞에 나왔다. 콩 삶기 전에 마을 사람들 모두 함께 제사를 올려야 해서였다. 여자들은 절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민아는 남자들 틈에서 절을 따라하며 조그만 몸뚱이로 일어났다 앉았다 반복했다. 그러다 제사상에 올라간 삶은 달걀 하나를 슬쩍 집어 들었다. 사람들이 웃었다. 괜찮다고 했다.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뭘 해도 괜찮다고.
    민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지나갈 때마다 귀엽다는 둥 예쁘다는 둥 한마디씩 해주며 놀아 줘서 그런 듯했다. 그러나 나는 민아가 언제 무슨 소리를 할지 몰라 불안했다.
    당장에라도 애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시어머니 눈치도 보였고 민아가 떼를 쓸 게 뻔해서 일단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고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것 역시 눈치가 보였다. 뭐라도 도울까 싶었는데 다들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모두 배려하듯 말했지만, 사실은 낯설고 서툰 손이 일을 망칠까 봐 그러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일찍 가 버리면 위아래 모른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한창 바빠질 즈음, 민아를 데리고 슬쩍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가라는 외침이 들렸다. 불린 메주콩이 수레에 담겨 이쪽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끝이 없어 보였다. 이제 콩 삶는 냄새가 마을에 진동할 것이다. 공기가 훈훈해지고, 물기 가득한 바람에서는 익은 냄새가 풍길 것이다. 일 년 내내 서늘하고, 겨울이면 얼음성 같은 마을이 유일하게 따뜻해지는 날이었다. 나는 민아를 데리고 회관으로 들어갔다. 원래 회관 바깥에 있는 작은 아궁이에서 콩을 삶았는데,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는 건물 안쪽을 개조해 커다란 아궁이 몇 개를 만들었다. 콩은 한두 시간 삶아서는 소용없었다. 몽글몽글한 콩이 노랗게 으깨질 정도로 온종일 불 앞에 서서 눌어붙지 않게 저어 가며 삶아야 했다. 그러다 콩이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깨끗한 고무대야에 넣고 곱게 찧은 뒤, 네모지게 빚어 볏짚 위에 말렸다. 거기까지가 오늘 할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었으니, 모두 분주해질 것이다. 슬슬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민아가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민아야!”
    돌아오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는 어른들처럼 뒷짐을 지고서 여기저기 빠르게 돌아다니며 혼자 시끄럽게 떠들었다. 등에 식은땀이 솟아올랐다. 서둘러 아이를 데려와야겠다 싶어서 걸음을 서둘렀다. 앞으로 빠르게 향하는데, 시야 저편에 시어머니와 미자네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미자네가 아궁이 앞에 서서 콩을 젓고 있었고, 시어머니는 그 옆에 서서 이장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웃는 낯으로 이장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이어졌다. 이장이 옆으로 걸어가며 미자네의 허리를 슬쩍 매만지는 것이었다. 미자네는 흠칫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웃는 건가? 아니면 찡그린 건가. 그녀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의아한 순간, 시어머니가 콩을 젓는 긴 주걱으로 미자네의 발등을 콱 쳤다. 그리고 그녀는 회관 밖으로 걸어 나갔다. 미자네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바닥에 앉았다. 그녀는 아프다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지금 미자네에게 가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밖으로 나간 시어머니를 찾아야 할까. 혼란스러운 생각을 밀어내며 나는 다시 민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열 걸음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용권이가 민아에게 다가왔다. 용권이가 고개를 숙였다. 아이에게 뭔가 속삭였다.
    나는 뛰었다.
    두 발자국. 그리고 세 번째 걸음. 나는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순식간에 시선이 천장 쪽으로 돌아갔다. 정말 찰나였다. 그랬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민아는 없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민아야!”
    다들 나를 바라보았다. 주변을 다시 빠르게 살폈다. 애가 없었다. 용권이도 없었다. 나는 정신없이 애를 찾았다. 민아를 불렀고, 용권이를 불렀다. 목소리가 굵게 갈라져 나왔다. 나는 사람들에게 용권이와 민아가 함께 서 있는 걸 봤다고, 방금까지 여기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진정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가 내게서 물러섰다. 모두 내가 이상하다는 듯 보기만 했지, 누구도 우리 애를 찾아봐 주지 않았다. 나는 시어머니를 찾았다. 그녀 역시 대답이 없었다. 혼란 속에 소리를 지르며 민아의 이름을 부르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선생님.”
    나는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 사람은 내 표정에 놀랐는지, 흠칫 몸을 뒤로 뺐다. 검은 피부의 조그만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용권이 엄마였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며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물었다.
    “용권이 어디 있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양쪽으로 저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당장 네 아들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네 새끼가 지금 내 새끼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아느냐고.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여기서 산 시간이 얼만데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느냐고 윽박지르고 싶었다. 협박이든 주먹질이든 정말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그것보다 마땅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 발짝 내딛는 순간, 건물 바깥에서 익숙한 소음이 들렸다. 퍽. 퍽. 무언가 부딪치고 터지는 소리. 두들겨 맞는 소리.
    나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회관 바깥쪽, 오래된 작은 아궁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나를 뒤따라 달려왔다. 나는 회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반대편으로 향했다. 뒤쪽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냄새가 났다. 퀴퀴하고 음습한 무언가 썩어 가는 냄새. 매캐한 연기가 밀려왔다. 흙바닥에 낡은 옷가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찢어진 종이쪼가리들. 타다 만 볏짚. 그리고 으깨어진 삶은 콩 덩어리들. 짓뭉개진 흙더미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그것들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벽면이 석탄에 까맣게 문질러져 있었다. 나는 뒤쪽에 도착했다.
    용권이와 대진이가 아궁이 앞에 앉아 있었다.
    퍽, 소리가 났다.
    아궁이에 밀어 넣은 마른 대나무 더미에서 나는 소리였다. 대나무 가지의 빈 구멍이 아궁이 속에서 폭죽처럼 터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아이들이 나를 보자마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용권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민아 어디 있니.”
    용권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 지그시 미소를 짓고서. 나는 화를 꾹 참고,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
    “지금 바닥에 이것들 다 뭐니?”
    용권이와 대진이가 서로 눈치를 봤다. 그러더니 용권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놀다 보니 어지럽혔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죄송해요. 실수였어요.”
    그 순간, 나는 용권이에게 달려들었다.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민아를 어떻게 했느냐고, 내 아이를 어디로 데려갔느냐고. 용권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몰라요, 몰라요.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더는 이 연기를 봐줄 수 없었다. 이 아이의 진짜 얼굴을 밝혀내고 싶었다. 그래야 했다.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강한 힘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뒤로 넘어지듯 밀려났다. 용권이 엄마였다. 그녀는 나를 바닥으로 넘어뜨리고는 자신의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그녀는 아이를 끌어안고서 나를 노려보았다. 옆에 선 대진이가 더듬더듬 말했다.
    “민아 할머니가 집에 데리고 갔어요. 계속 말했잖아요. 할머니랑 이장님이랑 같이 올라가는 거 봤다니까요.”
    하지만 대진이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애의 눈동자는 허공 어딘가를 향해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거짓말이었다. 정말 거짓말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애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았다. 대진이에게 손을 뻗으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저기요, 선생님. 민아가 집에 가는 거 저도 봤어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고요했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그러게 확인 좀 해보시지. 또 다른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유난스러워. 뭐 저렇게 까다로워. 나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 목소리들을 들었다. 좋은 날 다 망쳤네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왜 내게 말도 안 하고 애를 데려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기분도 밀려왔다.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용권이 엄마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잘못 본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역겨움이 밀려 올라왔다. 그때 뒤에서 민아를 찾았느냐는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아유 다행이네.” 그 목소리가 말했다. “미자네가 우는 애 달래면서 급히 올라가는 걸 내가 봤거든.”
    나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 대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누구세요?”
    그러나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표정이, 미자네의 발등을 찧고 슬며시 웃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미자네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 기억났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분명 그랬다.
    나는 달려 나갔다.
    우리 집은 마을회관에서 제법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에 있었다. 그 아랫집이 미자네였다. 다 고만고만하게 붙어 있는 집들인데, 이토록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자꾸만 무언가 발목을 잡아끌었다. 나는 땅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뛰었다. 불안감이 계속 등을 향해 내리꽂혔다. 나는 단숨에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
    미자네 집 대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외쳤다.
    “민아야!”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마자 바닥에 넘어졌다. 손바닥 아래 동그랗고 부드러운 무엇이 뭉개지는 느낌이 닿았다.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콩 덩어리들이었다. 거기서 배어 나온 물기가 내 옷 앞섶과 바지에 축축이 스며들었다. 콩 비린내가 코끝으로 밀려들었다. 나는 민아를 부르며 방 안을 둘러봤다. 전등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이 컴컴한 방에서는 오직 뭉개진 콩 냄새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벽지에 희끗희끗한 것들이 언뜻 보였다. 방 전체에 곰팡이가 피어난 것 같았다. 마치 이 집 전체가 하얀 곰팡이로 뒤덮인 썩은 메주 같았다. 그 썩은 내음은 지난번 미자네와 이야기를 나눴던 방구석 쪽에서 유독 심하게 풍기고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걸음을 뗐다. 그곳에 무언가 있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분명 볼 수 있었다.
   여자 화장실에 낙서가 적혔던 날, 거울을 닦고 교실로 돌아간 나는 아이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며칠간 그랬다. 나는 매일 아이들을 남겼다. 왜인지 말하지 않았고, 언제까지 이럴 건지도 말하지 않았다. 모두를 책상에 가만히 앉혀 놓고 아무것도 못 하게 했다.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막 빚은 메주처럼 고운 아이들은 군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서로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제발 이 상황을 끝내자고, 어떻게든 해결하자고. 무언의 대화가 교실 안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 중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무슨 방법이든 찾아내리라는 것을. 내 화를 풀기 위해, 그리하여 내 앞에 누구를 내보낼지 결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읍내의 학원 갈 시간을 빼서라도, 곧장 집에 돌아가는 걸 포기하고서라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주말에도 만나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일은 결코 대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왜냐하면 나는 담임교사였고, 학생 수는 겨우 일곱 명이었다. 그런 건 그냥 알 수 있는 거였다. 저녁까지 아이들을 남겼던 날, 학부모에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요즘 애들이 문제가 많아요. 그래도 우리 마을 애들이 아주 착해요. 아시죠?”
    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인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소리는 금세 사라졌고, 누구도 내게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무언가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 썩은 내가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 방구석의 냄새일까. 집 안 전체에 스며든 냄새일까. 마을 전체에 가라앉은 냄새일까. 아니면, 내 몸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일까. 문득 가만히 생각하니 그랬다. 손이 왜 매일같이 모두를 방해하는지, 전부를 망치고 싶어 하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나는 양손에 얼굴을 천천히 묻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 냄새를 맡았다. 이제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마땅한 일이었다.

 

 

 

 

 

 

 

 

 

 

 

 

 

 

 

 

작가소개 / 강화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괜찮은 사람』이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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