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탈출 - 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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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옥상탈출

 

 

김봄

 

 

 

 

    박하의 귀환은 순례 씨가 뜻밖의 말을 꺼내면서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불러들여야 할까 봐.”
    “뭐시?”
    “보일러도 안 틀고, 한겨울에 침대 위에다 텐트를 치고 삽디다. 가스 요금은 죄다 연체고.”
   이보게 임자, 난 더한 것도 봤어,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지성 씨는 아래턱에 힘을 주고 입을 꽉 다물었다.
   반찬을 해 나르던 순례 씨와 다르게 지성 씨는 단 한 번도 박하의 원룸에 찾아간 적이 없었다. 아주 가끔 원룸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을 산책하듯 다녀갈 뿐이었다. 그러다 편의점 파라솔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박하를 보았고 편의점을 다녀오는 주기는 하루 주기로 바뀌게 되었다.
   지성 씨는 편의점 맞은편 골목 어귀에 얼굴 반쪽만 내놓고 박하를 훔쳐보았다. 박하가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필라치면 지성 씨는 축구선수 박지성보다 빠른 양발재간으로 제 몸을 좌나 우로 숨기곤 했는데 그건 너무도 부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왜 숨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술 마시는 박하와 마주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지성 씨와 박하 사이에 자연스러웠던 순간들이 있었나 생각하는 것 자체도 어색했지만 그걸 연원을 따져 들어가다 보면 박하를 처음 만나는 순간까지 이르게 되었다. 순례 씨가 박하를 낳아 처음 얼굴을 보여주던 날에도 지성 씨는 박하가 어려웠다. 박하가 말을 못 할 때도, 한두 마디 말을 배워 갈 때도, 지성 씨는 홀로 무안해졌던 적이 많았더랬다. 뭐랄까, 박하는 눈으로 말을 다하는 그런 아이였다. 대충 얼러 눙치려 해도 아무 말 없이 있다가 한 마디 툭 던지고 가만히 지성 씨를 응시했다. 그럴 때마다 지성 씨는 대거리할 것을 찾느라 진땀을 뺐었다. 아무 능력 없는 신을 모시는 기분이었다.
   비오는 날만 제외하면 박하는 거의 매일 혼자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사가지고 집으로 올라갈 때도 더러 있었지만, 영하의 날씨에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 거의 대부분 파라솔 아래 파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맥주를 마셨다. 발뒤꿈치가 하얗게 일어난 건지 언 건지, 하얗고 울긋불긋한 것이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지성 씨는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붙은 박하의 엉덩이가 파랗게 얼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살이 틀까 싶어 온몸 구석구석 로션을 꼼꼼하게 발라 키웠는데 한겨울에 제 살이 트는 줄도 모르고 저렇게 맥주 캔을 상대로 파이팅을 하면서 앉아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한다고 했는데 진짜 일은 다니는 것인지, 뭘 하고 있기는 한 건지, 지성 씨는 아는 게 없었다. 박하는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과 차들, 꼬리를 바짝 세우고 걷는 고양이들에 시선을 던졌다 거뒀다. 자신의 눈앞의 풍경이 시시각각 변주되는 것에 넋을 놓고 있기도 했고 그러다가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낄낄대기도 했다.
   지성 씨 품에서 자랄 때나 지금이나 박하는 여전히 아무 능력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보면 뭔가 퇴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성 씨는 박하와 함께했던, 즐겁지 않은 날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니 그렇게 살았는데, 지성 씨는 여전히 박하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버겁고 불편했다. 특히나 자신은 입도 대지 않는 술을 혼자서 저렇게 먹어대는 박하를 볼 때는 더했다. 지성 씨가 이런저런 생각을 보태는 동안 박하는 마시던 맥주 캔을 우그러뜨리고 식스 팩 링에 묶인 캔을 떼어내 따개를 꺾어 땄다. 노란 맥주 거품을 호로록 빨아들이는 박하의 동그랗게 오므려진 입을 보면서 지성 씨는 기저귀 갈 때 닦아 주던 박하의 여문 항문이 떠올랐다. 노랗고 시큼했던 박하의 똥내가 나는 것 같았다.
    날이 추워서인지, 술을 마시고 있어서인지, 편의점 간판 불빛을 받아서인지, 박하의 코는 유난히 빨갰다. 지성 씨가 두 다리를 서로 비벼대며 추위를 견디는 동안에도 박하는 또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훨씬 용량이 큰 맥주 네 캔을 안고 나왔다. 그러고는 전리품을 진열하듯 파라솔 탁자 위에 장렬하게 전사한 맥주 캔을 찌그러트려 쌓아 두었다. 저러다 말겠지 했던 지성 씨의 생각은 슬슬 저러다 죽겠네로 옮겨가고 있었다.
    집을 나간 몇 년 동안 박하가 어떻게 살았는지 지성 씨는 세세하게 알지 못했지만 파라솔 아래 맨발로 나와 맥주를 하염없이 들이켜는 멍한 박하의 눈자위만 보아도, 그 한순간만 보아도 어떻게 살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성 씨는 머리를 도리질해 맥주 캔을 한 손에 넣고 쭈그러뜨리는 박하를 밀어냈다.
    “오늘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집주인한테 전화가 왔는데, 보증금 다 까먹게 생겼다고 합디다. 관리비 오만 원을 여태껏 안 줬다고 지랄지랄을 해서 그건 먼저 부쳐 줬네. 그러게 월세는 그냥 내주자니까.”
    순례 씨가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지성 씨를 쳐다봤다. 박하가 집을 나갔을 때 길 건너 원룸을 얻어 준 것은 순례 씨였다. 그때 아마 전화번호를 줬을 것이었다. 박하가 보증금 오백만 원에 월세 오십만 원짜리 집을 얻었다고 했을 때, 이미 수십 명의 월세 세입자들을 겪어 본 순례 씨는 어느 부동산에서 계약을 했는지, 그 집에 근저당이나 설정은 없는지, 대출은 얼마나 안고 있는지 꼼꼼하게 알아봤다. 고작 보증금 오백만 원을 내고 세 드는 집이었지만 박하에게 얼른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오라고 시킨 것도 순례 씨였다. 물론 처음에는 월세가 너무 비싸니 좀 더 싼 집을 알아보라고 했지만 박하는 한 달에 아무리 못 벌어도 백만 원은 넘게 번다고, 월세 그까짓 거 절대 밀릴 리가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당최 다른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나이 먹도록 혼자 벌어 못 살면 들어와야지.”
    지성 씨는 그 자리에서 박하에게 전화를 걸었고, 순례 씨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아부지가 너 인자 들어와 살란다.”
    순례 씨는 그렇게 첫 마디를 떼었고, 계속 응, 응 소리만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두 사람의 통화를 지켜보던 지성 씨의 두 눈썹은 이마 끝까지 딸려갈 것처럼 치켜 올라가 있었다.
    “이사 비용이 없다네. 에이 미친년.”
    순례 씨는 지성 씨에게 전화기를 넘겨주며 혀를 찼다.
    잠시 후 순례 씨의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하였다.
    「근데 엄마, 나 고기 먹고 싶어.」

 

    박하가 집에서 나가 살겠다고 했을 때, 지성 씨와 순례 씨만큼 필도 적잖이 당황했었다. 필은 인정빌라의 계단참과 오래된 화단, 쓰레기봉투나 층간 소음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인정빌라에 들고나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싸움이 붙길 바랐고 그게 좀 더 과격한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간해서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지성 씨나 종일 방바닥을 등지고 있다가 밤에야 겨우 산책을 다니던 작가 지망생 박하에 대해서는 스프링에서 뜯겨 나가 책상 위에 나뒹구는 메모장처럼 있는지 없는지도 잊은 채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어떤 욕망이 있는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목표의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적당한 기회를 만나 성장이나 퇴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필은 『인정빌라』 첫 꼭지에서 한 번 언급했을 뿐, 사실 박하가 인정빌라 밖에서 살았던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끝끝내 다시 언급조차 되지 않고 마무리가 될 것 같았는데, 이렇게 불현듯 필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박하가 돌아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된 이상, 필도 고심을 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지성 씨가 텔레비전을 그대로 지나쳐 생전 오르지 않던 옥상으로 오르는 일이 발생했다. 수저를 들 때 빼고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놓지 않던 지성 씨였다. 인정빌라로 이사한 날부터 지금까지 혈압 핑계를 대며 한 번도 옥상에 오른 적이 없던 지성 씨였다. 싸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지성 씨는 차근차근 메모한 것들이 적힌 수첩을 꺼내들고 옥탑방 곳곳을 살폈다. 업자들이 시간을 나눠 옥상을 올랐다 내려갔고 그럴 때마다 옥탑방은 조금씩 살 만하게 꾸며졌다. 새로운 현관문이 달렸고, 싱크대가 교체됐다. 전에는 없던 세면대도 달았다. 마지막으로 싱글 침대와 세 자짜리 장롱 하나를 넣으니 옥탑방이 꽉 차버렸다. 지성 씨는 박하가 쓰던 책상을 올리고 그 위에 목재상에서 잘라온 미송합판 이십 밀리미터짜리를 양쪽 끝에 벽돌을 괴고 올려 네 칸짜리 책꽂이를 만들었다.
    지성 씨는 잠시 숨을 고르고 순례 씨가 빨래를 널 때 밟고 올라가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의자는 차가웠다. 지성 씨는 하악, 하악 하는 숨소리를 뱉어내며 제 숨으로 나온 허연 입김을 쳐다봤다. 평소에 표정 같은 걸 짓는 일이 없는 지성 씨의 얼굴에는 뭔지 모를 희열이 번져 있었다.
    박하가 오기 전날 밤, 지성 씨는 혹여 옥탑방에 보일러가 꺼지지 않았나 싶어 여러 번 옥탑방을 올랐지만 방 안은 하와이나 다름없었다. 옥탑방은 쉽게 따뜻해졌다. 문제는 한여름에도 이 온도로 유지된다는 점이었다. 여름이 되면 지성 씨는 또 다른 고민을 할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분주하게 바깥 활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심하고 표현력이 부족한 지성 씨도 뭔가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필은 잠시 생각했다.

 

    “사람 이름이 박하가 뭐냐.”
    저녁상을 준비하던 순례 씨는 혀를 차며 잔소리를 했다.
    “저기 아랫집 개도 박하고, 우리 집 반백수도 박하니께 딱 짝꿍이구만. 멀쩡히 이쁜 이름은 왜 바꾸고 그랬다냐?”
    “작가 되는 이름이 따로 있대.”
    “옴마, 점점.”
    순례 씨가 콧방귀를 뀌었다.
    “이름을 바꾸고 나니까 막 이야기가 떠올라.”
    “이야기가 막 떠올라서 작가가 되면 세상 모든 사람이 작가여.”
    고등어를 뒤집으며 순례 씨가 맞받아쳤다.
    “맞아, 그거야, 엄마.”
    박하는 눈을 반짝이며 순례 씨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것도 잠시 있는 대로 코를 찡그렸다.
    “엄마, 문 좀 더 열고 구워. 엄마랑 아빠한테 고등어 냄새 엄청 나는 거 알아?”
    “몰러! 남이 불러 주는 이름을 개 이름마냥 막 갖다 붙이냐!”
    하지만 순례 씨도 더 갖다 붙일 말은 없었다. 박하가 태어났을 때 지성 씨는 순례 씨가 가지고 있던 이름에 얽힌 아쉬운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뭐든 순례 씨가 정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하던 순례 씨가 결정한 이름은 ‘박하린’이었다. 어디를 지나다 본 간판에 ‘여의사 박하린 산부인과’라는 글자를 보고 그대로 이름붙이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근사하게 느껴졌지 뭐야.”
    “엄마 이름도 그렇게 바꿀 수 있어.”
    박하가 씽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례 씨는 그런 박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딸이라니까, 딸이라고 하니까 그냥 지켜보고는 있는데, 뭐 저런 애가 있을까 싶었다. 박하는 기질적으로 순례 씨와는 다른 아이였다. 지성 씨와는 더 달랐다.
    자랄 때나 크고 나서도 박하는 그렇게 튀는 아이가 아니었다. 뭘 해도 중간은 했고 딱히 잘하는 것도, 딱히 뭘 못 하는 것도 없는 아이였다. 떼를 많이 썼던 것도 아니었고 욕심이 많아 그걸 해결해 주느라 힘들었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박하가 별나게 느껴졌던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박하가 고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키우는 동안 입학하고 졸업할 때 외에는 학교 근처도 안 가본 순례 씨에게 박하의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학교에 좀 나오라는 것이었다. 진학 상담 정도로 생각하고 교무실에 들어섰던 순례 씨는 그냥 듣기에도 너무 별난 소리를 듣고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린이가 수업시간에 자꾸 털을 뽑아요. 팔에 난 털을요.”
    “네?”
    지금 이 여자가 뭔 말을 하는 거여? 순례 씨는 그 말까지도 내뱉을 뻔했다.
    “아니, 저도 이 말이 너무 이상한데요. 아무것도 안 하고 학교에 와서 털만 뽑다 가니까. 그게 고등학생으로 좀 이상하기도 하고, 지적을 하고, 벌점을 주고 했는데도 계속 그러니까.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좀 난감해 하시고 해서요. 그냥 두고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말을 전하면서도 담임선생님은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난 또 뭣이라고.”
    순례 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러자 비식비식 웃음을 흘리던 담임선생님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싸악 걷혔다.
    “하린이랑 이야기를 좀 해보세요. 뭔가 스트레스가 있을지도 몰라요. 몇 번을 물어도 저한테는 도통 말을 안 해요. 친구들도 아는 게 없고요. 집에는 아무 일 없죠?”
    “암요, 암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순례 씨는 입이 짝짝 들러붙는 것 같았다. 누굴 괴롭혔다면 사과를 하면 되고, 성적이 너무 떨어졌다고 하면 학원을 보낸다고 하면 될 것인데, 이런 경우는 도대체가 뭐라고 말을 이어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순례 씨는 담임선생님과 마주한 첫 순간부터 내내 안고 있던 박카스 박스를 열고 두 병을 꺼냈다. 한 병은 담임선생님에게 건네고 다른 한 병은 따서 단숨에 목 뒤로 넘겨버렸다. 오만 원이 든 봉투가 박스 안에 있었고 그걸 뺄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순례 씨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을 나왔다.
    박하는 교무실 앞에 서 있었다. 그제야 순례 씨는 박하의 팔을 쳐다봤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두 팔에는 털 한 오라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걸 죄다 뽑았다냐?”
    박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순례 씨를 쳐다봤다. 그 순간, 순례 씨와 박하는 갑자기 웃음보가 터졌고,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복도를 돌아나갔다. 모녀의 웃음소리가 늦은 오후 교정에 사이렌처럼 들린 건 담임선생님의 기분 탓이었다.
    “왜 공부는 않고 털을 뽑았다냐?”
    인정빌라 앞 벤치에 도착했을 때 순례 씨가 물었다. 두 사람은 쌍쌍바를 나눠 먹던 중이었다. 구름이 낮게 깔린 여름날이었다.
    “이상해?”
    박하가 되물었다.
    “그럼 안 이상허냐, 생각을 혀봐. 머리는 감으라고 있는 게 아녀.”
    “거 봐. 아무도 이해 못 해. 그래서 말 안 한 거야.”
    “그니까. 뭔데? 그 이해 못 할 이유가.”
    살짝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 순간 순례 씨는 보통의 엄마들처럼 인내심을 발휘했다.
    “털 뽑을 때마다 구멍들이 자꾸 커져.”
    “뭐? 구멍?”
    듣고 보니 이건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응. 처음엔 안 보였는데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털이 나왔던 그 자리에 구멍이 보여. 그 구멍 안에 꼭 누가 사는 것 같아.”
    “지랄도 풍년인갑다.”
    “걔 이름이 김진호였어. 피부병이 심했던 1학년 때 짝꿍 말이야. 내가 걔를 얼마나 골려 먹었는지 몰라. 그래도 나한테 한 번 미운 짓 안 했는데. 그래서 자꾸 미안해. 또 어떤 때는 유치원 다닐 때 봤던 삐에로가 떠올라. 커다란 포대자루 같은 옷에 풍선을 잔뜩 집어넣고 와서 애들 앞에서 빵빵 터뜨렸거든. 별님 반 애들 중 반은 울었고 반은 꺅 소리를 질렀는데 누군가 삐에로를 밀어버렸어. 절대 안 넘어갈 것 같았는데, 근데 삐에로가 장풍을 맞은 것처럼 뒤로 나자빠졌어. 완전히 데굴데굴 굴렀지. 그때 삐에로 몸 안에 든 풍선이 막 폭죽 터지듯 빵빵빵빵 터졌다니까. 그때 나는 웃었을까, 울었을까.”
    “옴마, 점점! 시방 나한테 묻는 겨, 그걸? 어디 가서 그러들 말어. 꼭 할 이야기가 있음 나한테나 살짜기 하고.”
    순례 씨는 그 정도로 마무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듣고 앉아 있다가는 순례 씨 속이 너무 시끄러워질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로 박하는 순례 씨를 붙잡고 구멍에서 본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다. 한동안은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지만 도통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에 호응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고난이도의 집중력과 지구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순례 씨는 차분히 듣는 시늉을 하다가도 가만있자, 이번에 누가 세가 밀렸나 싶어 머릿속으로 헤아리다 보면 박하는 말을 끊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도 이야기를 안 들어준 게 약이 되었는지 박하는 더 이상 털을 뽑지 않았다. 그런대로 성적을 유지했고 대학에도 들어갔다. 더러 장학금을 받기도 했고 무난하게 졸업도 했다. 더 이상 특수한 상황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가 되겠다고 집을 나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 고등어 타잖아.”
    박하가 순례 씨를 흔들었다.
    “아고야, 내 정신.”
    순례 씨는 뒤집개로 얼른 고등어를 뒤집었다.
    “근데, 혹시 2층에 남자가 살아?”
    “무신 소리래. 202호는 비었고, 201호에 아가씨 혼자 살고 있는데. 그건 왜?”
    “202호, 진짜 야반도주 한 거야?”
    “그걸 어찌 들었어? 아부지가 그려?”
    “아니. 그럼 301호도 비어 있어?”
    “그짝도 그렇지 뭐. 근데, 그걸 다 어찌 안댜?”
    “엄마, 여기 이 사람, 혹시 우리 집에 살아?”
    박하는 순례 씨가 저녁상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던 계간지를 순례 씨 앞에 펼쳤다. 작가 사진이 있는 페이지였다.
    “너무 가까이 들이밀지 마. 잘 뵈덜 안 해. 가만 보자. 어째 낯이 익다.”
    순례 씨는 뭔가 떠올랐는지 소리 없이 입을 벌리고 박하를 쳐다봤다.
    “왜, 알겠어?”
    “그 부끄럼쟁이구만. 201호 남자 친구였지, 아마. 근데 저번에 찢어지드라. 요새 것들은 붙기도 잘 붙고 찢어지기도 참 쉬와.”
    고등어 접시를 내려놓으며 순례 씨가 말했다.

 

    이 대목에서 필은 헛웃음이 날 정도로 어이가 없었지만 박하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제자리에 앉아서 숟가락을 들고 있던 지성 씨는 맨 입술을 다시며 한 번씩 숟가락을 빨았다 뺐다.
    “시장하쥬? 잠깐만 기다리슈.”
    순례 씨는 조리대에서 음식을 날랐다. 버섯이 들어간 된장국과 밥도 퍼 옮겼다.
    “고기는 없어?”
    박하가 물었다.
    “이짝에 물고기 있잖아.”
    순례 씨는 푸른 등이 새카맣게 타버린 고등어를 가리켰다.
    “앞으로 네 건 네가 찾아 먹어. 네 밑으로 들어간 돈 한 번도 뽑아먹지도 못하고 내가 이렇게 죽을라나 부다. 청춘을 자식새끼 하나 때문에 다 날라삐렸어.”
    고등어 뼈를 발라내며 순례 씨가 말했다.
    “얼마나 고등어를 구워 먹었으면 고등어 성애자래.”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하가 쭈뼛거렸다.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냄비에 버섯과 소고기가 들어간 불고기 전골이 담겨 있었다. 박하는 국그릇에 고기만 건져 덜었다.
    지성 씨는 어느새 고등어 한 마리를 다 먹고 있었다.
    “식욕이 이렇게도 성하니께, 뭘 해도 하겄쥬? 따님?”
    순례 씨는 박하가 고기를 담아온 국그릇을 젓가락으로 팅 소리가 나게 치면서 말했다.
    “엄마, 내가 다른 집 자식들처럼 재산 달라고 안 하잖아. 좀 원만하게 가자.”
    “옴마, 말하는 것 봐. 이 집은 아부지랑 나랑 노후자금이야. 꿈일랑 깨.”
    순례 씨는 박하가 살점을 떼어내려는 고등어를 잡고 그대로 뒤집었다.
    지성 씨는 밥을 다 먹고 일어나 소파로 옮겨갔다. 오른손에 리모컨을 들고 채널 몇 개를 돌리는가 싶었는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깜빡깜빡 졸기 시작했다.
    밥그릇에 바닥이 보일 때 즈음, 박하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박하는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입력되지 않은 번호가 액정에 떠 있었다.
    “박하 작가님 전화 맞죠?”
    문화부 기자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였다. 몇 마디 말을 나눴지만 박하의 머릿속에는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자가 제일 먼저 꺼낸 ‘박하 작가님 전화 맞죠?’란 말만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박하는 몇 번 숨을 골랐고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는 걸 확인했다. 수상 소감과 당선된 원고를 보낼 이메일 주소였다.
    “누구래니?”
    쫍쫍 소리가 나게 빨아먹던 고등어 등뼈를 내려놓으며 순례 씨가 물었다.
    “엄마, 나 당선됐대.”
    “어구어구, 장하네, 내 새끼.”
    순례 씨가 박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머리칼을 헝클어지게 쓰다듬었다.
    “진짜 고등어 냄새 난다니까.”
    박하는 순례 씨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고생했다.”
    소파에서 어느새 식탁 앞까지 걸어온 지성 씨가 엉거주춤 서서 말했다.
    “상금도 있어, 오백.”
    “또 나갈 궁리하겠구만.”
    순례 씨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제 방으로 올라간 박하는 학교 다닐 때 알던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고 번호가 남아 있는 동기 몇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동기들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박하는 수상소감에 거론할 이름들을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다음날에도 박하는 순례 씨가 차려 주는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종일 방 안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하루를 거의 다 보냈다. 작가가 되었지만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어스름 저녁이 되었을 때 박하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서 신반포에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필은 박하가 다른 일을 하길 바랐다. 과외나 학원으로 일을 나가는 동안에는 새롭다 할 일이 생길 가능성이 적었다. 학생과 학부형, 동료 강사들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한계가 있었다. 또래를 내 집단에 많이 배치한 인물들은 사건 사고가 잦았다. 그래야 감정의 격랑도 일어나고 질투와 시기도 뿜어져 나올 텐데, 가뜩이나 파고가 작은 박하의 성격에 만나는 사람들의 범주마저도 이렇게 제한적이면 더 이상 나올 게 없었다.

 

    “얘가 준우예요.”
    4살짜리 남자 아이였다.
    “한글 선생님이 2년 동안 다녀가셨는데, 어떻게 된 게 책을 못 읽어요.”
    박하는 준우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꺼내오라고 했고, 준우는 한글 선생님과 함께 읽었던 책 하나를 꺼내왔다.
    “읽을 수 있어? 어디 읽어 볼래.”
    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박하는 준우와 눈을 맞추었다. 준우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고양이, 나비, 다람쥐, 라면, 마술, 바나나…….”
    “응, 아주 잘했어.”
    박하는 준우가 두 손으로 잡고 읽던 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고양이의 ‘고’를 검지로 가리켰다.
    “준우야, 이건 뭐라고 읽어?”
    준우는 박하의 손가락 끝에 찍힌 글자가 잘 안 보이는 것처럼 눈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이거는?”
    박하는 바나나의 ‘바’를 가리켰다. 역시나 준우는 그걸 읽지 못했다. 눈을 찡그리다 못해 손으로 긁기 시작하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이 책 페이지 하나하나를 사진 찍듯 그림과 소리로 그냥 외웠던 거예요. 낱말이나 글자로 읽은 게 아니라요.”
    그제야 준우 엄마는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준우 엄마가 나가고 박하는 양반다리를 하고 준우를 그 위에 앉혔다.
    “준우야, 이것 봐봐.”
    박하는 주먹을 제 엉덩이에 갖다 댔다. 그리고 입으로 ‘방귀 뿡!’ 하고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훔친 주먹을 준우의 코앞에서 펼쳤다. 준우는 까르륵 소리를 내며 허리가 휠 정도로 크게 웃었다. 입술이 반질거릴 정도로 침이 흘렀다. 박하는 티슈를 뽑아 준우의 침을 닦아냈다.
    “자, 이제 책 한번 읽어 볼까?”
    박하는 준우를 안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였다. 박하는 준우가 따라오기 좋게 글자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었다.
    “작은 두더지가 해가 떴나 안 떴나 보려고 땅 위로 고개를 쑥 내민 그 순간, 슈우웅! 철퍼덕! 에그, 이게 뭐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두더지가 소리쳤어요.”
    똥이란 글자가 나오자 준우는 배를 잡고 키득댔다. 키득대는 동안에도 준우의 빨간 입술을 타고 침이 흘렀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박하의 바지에 뚝 떨어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준우는 잠이 들었다. 박하는 천천히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나 눈이 나쁜 두더지는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준우는 입을 벌린 채 얕은 코골이를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준우 엄마가 놓고 간 음료수 쟁반이 보였다. 사각으로 반듯하게 접힌 석 장의 거즈 손수건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박하는 그중 하나를 들고 바지에 묻은 침을 닦았다.
    박하는 정확히 30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 준우를 침대에 눕혔다. 말을 배울 때부터 글자를 배운 준우도 측은했고 그런 준우를 가르쳐야 먹고 사는 스스로도 측은했다. 소명의식 없는 노동이 얼마나 스스로를 노예처럼 만드는지 박하는 공부방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닦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적당한 다른 일을 해볼까 싶었지만 번뜩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선생님, 고생이 많으셨어요.”
    준우 엄마는 손에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박하는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아들어 가방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현관까지 뒷걸음 반, 앞걸음 반으로 밀리듯 걸어 나갔다.
    “고맙습니다.”
    박하가 현관문을 닫으며 한 말이었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박하는 봉투를 꺼냈다. 오만 원 권 열 장이 들어 있었다. 박하는 봉투를 가방에 넣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도착한 메시지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언제부터 어울렸다고 축하주를 마시겠는가 말이다. 그때 마침 버스정류장으로 406번 버스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박하는 그대로 버스에 올라탔다.
    박하가 내린 곳은 세종문화회관 앞이었다. 박하는 총총 걸음을 옮겨 방림 꽃 화원 2층에 있는 카페 ‘봄’으로 갔다.
    바 자리에 앉자마자 순례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좀, 늦어.”
    박하는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박하 앞에 시키지도 않은 카프리 세 병이 놓여 있었다.
    “저기, 은행 아저씨들이 보냈어. 오늘 누가 승진했다고 골든 벨 울린단다.”
    손님이라고 해봤자 박하와 그 아저씨들뿐이었다.
    “골든 벨은 무슨.”
    박하는 뒤를 돌아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곧 봄 언니가 기타를 치며 ‘비와 당신’을 불렀고 뒤에 앉은 아저씨들은 분위기와 상관없이 지나치게 우렁차게 노래를 따라했다. 박하도 어울리지 않는 박수를 치며 노래했다. 봄 언니의 곡이 넘어갈 때마다 박하 앞으로 맥주병이 쌓여 갔다.
    봄 언니가 오늘은 그만 들어가야겠다고 말을 꺼내고 나서야 박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순간 속에서 뭔가 일렁이듯 했지만 토할 정도는 아니었다.
    거리로 나온 박하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그대로 도로 연석선 위에 주저앉았다. 좀처럼 택시는 오지 않았다.

 

    필은 미칠 것처럼 불안해져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쩌자고 저렇게 술을 먹은 것일까.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닌데.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한참 글을 써도 모자랄 판에 어서 집으로 안 가고 뭐 하는 것인지. 박하는 일어나서 택시를 잡을 정신이 없어 보였다. 집에라도 전화를 해. 필은 그렇게 박하에게 주문했지만 박하는 눈조차 뜨지 않고 있었다.

 

    “어머, 너 아직도 집에 안 갔어?”
   봄 언니였다. 봄 언니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불렀다.
    “아저씨, 잘 좀 부탁해요.”
   택시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대로 택시를 출발시켰다.
    “어디로 가십니까?”
    “방배동 카페 골목이요.”

 

    뭐? 카페 골목? 집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왜 그리로 가지? 필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저씨, 잠깐만요.”
    뒷자리에 누운 건지, 기댄 건지 알 수 없는 자세로 있던 박하가 운전석 헤드를 잡고 소리쳤다. 택시 아저씨는 급브레이크를 밟고 동작대교 위에서 차를 세웠다. 다행히 노을카페 전용 주차장이었다. 박하는 뒷문을 열고 열린 틈에 머리만 내밀고 구토를 했다. 신물이 넘어왔고, 콧속이 매울 정도로 시었다.
    “다시 가주세요.”
    박하는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또다시 택시 운전석 헤드를 두드렸고 택시는 이수교차로를 지나지 못한 채 멈춰 섰다. 동작역과 현충원이 연결된 육교 아래였다. 박하는 이수교차로를 막 지났을 때도 다시 택시를 세웠다. 택시 아저씨는 주유소 앞에 돌발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박하는 온전히 내리지 못하고 뒷문을 연 채 머리를 내밀고 헛구역질을 했다. 택시 아저씨는 뒷문 앞에 서서 박하의 어깨를 잡아 박하가 내릴 수 있게 도와줬다.
    “아가씨가 뭔 술을 이렇게 마셨어, 그래.”
    “죄송합니다.”
    박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대로 보도블록으로 처박혔다. 택시 아저씨는 겨우겨우 박하를 일으켜 세우고 보도블록 위에 앉혔다. 시큼한 위액 냄새가 맡아졌지만 다행히 택시 안에는 사고를 치지 않았다. 택시 아저씨는 몇 분 동안 뒷문을 잡고 날갯짓을 하듯 여러 번 열 듯 말 듯 움직였다.
    “만 원만 내요.”
    박하는 봉투에서 2만 원을 꺼내 내밀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택시 아저씨는 네 개의 차창을 모두 내리고 다시 도로를 달렸다. 말로 할 수 없는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그대로 집으로 가고 싶었다.
    박하는 택시가 떠난 후에도 쪼그리고 앉아 헛구역질을 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고개를 들었을 때 박하는 너무도 익숙한 집 앞에 자신이 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하는 불 꺼진 2층 창문을 올려다봤다. 한참 아무 말 없이 창문을 쳐다보던 박하가 두 무릎에 고개를 묻고 울기 시작했다. 흑흑 새는 듯 소리를 내어 울더니 점점 울음소리는 커졌다. 마침 지나는 남자 하나가 박하 앞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이에요? 도와줄까요? 집이 어디예요?”
    “그냥 가세요, 괜찮아요. 제발 그냥 두세요.”
    박하는 고개도 들지 않고 울먹이며 말했다. 남자는 박하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몇 분 정도 더 지켜보다가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삼십 분이 지나고 박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콧물을 훌쩍거리면서도 2층 창을 연신 올려다보던 박하는 아쉬운 것을 놓치고 가는 아이처럼 연신 제가 섰던 자리를 뒤돌아보면서 천천히 걸음을 뗐다.
    건물 외벽을 짚으며 걷던 박하는 자신이 너무도 낯선 길을 걷고 있음을 알아챘다. 수없이 왔던 길인데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이 연립주택들이라 그 골목이 그 골목 같았다. 어쩌면 계속 한 곳을 돌고 있는지도 몰랐다. 짜부라진 두 눈에 힘을 줘서 어떻게든 떠보려고 했지만 눈이 부신 것처럼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박하는 그대로 쪼그려 앉고 말았다.

 

    박하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필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럴수록 의심암귀가 발동했다. 어떻게든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지만 박하는 그 길에, 좀 전에 토하던 자세 그대로 앉아 깨진 시멘트 조각들을 잡았다 던졌다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필은 박하가 있는 그곳으로 튀어 가고 싶었다. 두 공간의 분리가 주는 답답함에, 알 수 없는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필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박하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지도 앱을 켰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가까이 댔다가 멀리 뗐다가를 반복할 뿐 그 안에 드러난 이미지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에잇, 뭐가 이래!”
    박하는 제 손에 들려 있던 휴대전화를 그대로 내던졌다. 이럴 때를 대비한 것인지, 박하의 휴대전화 케이스는 충격 흡수가 잘 되는 고무 안감으로 마감된 것이었다. 다행히 액정 쪽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박하는 두 손으로 바닥을 기어 휴대전화를 주워들었다. 다시 지도 앱을 보는 듯했지만 제대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떻게든 좀 해봐. 한국이 아무리 치안이 안전하다고 해도, 이렇게 한밤중에 취한 채로 흐느적대는 여자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 너무 쉽단 말이야. 난 이런 이야기 정말 싫어. 필은 어느새 마음의 소리를 발음해 내고 있었다. 가만있자. 누구한테 전화를 걸어 볼까. 이 밤에 전화를 걸어도 될 박하의 지인들이 있을까. 친구들이 남았을까. 박하도 게슴츠레한 눈으로 휴대전화 전화번호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필도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하와 필의 결론은 같았다. 정말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박하도 필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박하는 아예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철퍼덕 앉아버렸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천천히 112를 눌렀다. 금세 화면에 EMERGENCY CALL이란 글자가 뜨고 112 상황실에 연결이 되었다.
    “길을 잃었어요.”
    박하는 차분하게, 하지만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들어도 술에 취한 느낌이 팍, 드는 그런 목소리였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지금 근처를 순찰 중이던 경찰차를 보내겠다고 했다.
    “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요.”
    “알 수 있어요. 지금 바로 휴대전화 위치 추적할 겁니다. 전화 끊고 기다리세요.”
    112 상황실과 전화를 끊자마자 메시지가 떴다.
    – 긴급 구조를 위해 귀하의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였습니다. (03:19:46) – 112 종합상황실
    – 접수완료, 출동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긴급 상황 시 112로 즉시 연락 주세요.
    경찰은 박하가 노래 한 곡을 다 부르기도 전에 도착했다.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박하를 발견하자 경찰차가 멈춰 섰다. 운전하는 경찰은 그대로 앉아 있었고 조수석에 동행한 앳된 경찰이 차에서 내려 박하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신고하셨죠?”
    친절한 목소리였다. 박하는 끌리듯 몸을 일으키고 엉덩이를 털었다. 경찰은 경찰차의 뒷문을 열어 주었다. 박하가 말하는 집주소를 내비게이터에 입력하던 경찰이 손을 멈추고 박하를 돌아봤다.
    “그런데, 왜 여기로 왔어요? 택시 타고 왔다면서요?”
    방배동 카페 골목 끝, 지구대, 지구대 건너편 골목, 그 골목으로 들어가 두 번째로 만나는 샛길 같은 골목 제일 끝집, 그 집의 2층. 불 꺼진 창문.
    “제가 착각했어요.”
    “전에 여기 사셨나 봐요.”
    “아뇨, 이사 갔는데요. 찾을 수가 없어요.”
    “네? 누가요?”
    박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중간중간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오바, 오바 하는 소리만 차 안의 적막을 깰 뿐이었다. 차에 타고 집까지 가는 동안 박하는 멀미가 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지만 이상하게도 역류해서 올라오는 것은 없었다.
    “여기가 살고 있는 집이 확실해요?”
    운전하던 경찰이 차를 세우고 물었다. 박하는 차창 건너 인정빌라를 쳐다봤다. 사방이 파랗고 빨간색으로 번쩍거리는 경찰차 경광등에 휘감겼다 풀려났다. 빌라 앞 벤치에 앉은 패딩 점퍼를 입은 남자 하나가 경찰차를 쳐다봤다. 담배 연기인지 입김인지 남자의 입에서 연신 허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뒷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당겼지만 열리지 않았다. 드륵드륵 소리가 나도록 여러 번 문고리를 잡아 흔들었지만 마찬가지였다.
    “혹시 저 공무집행방해 같은 걸로 잡혀 가나요?”
    박하는 목이 메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사이 앳된 경찰은 앞문으로 내려 뒷문을 밖에서 열어 주었다.
    “상상력이 풍부하시네. 원래 경찰차 뒷문은 밖에서만 열려요.”
    “고마워요.”
    박하는 그 말을 하면서 앳된 경찰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억세게 한 번 흔들었다. 무척이나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나 할 법한 스킨십이었다. 경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잠시 박하를 내려다봤지만 한밤 순찰을 돌면서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너무도 많이 만나 봤던지라 귀여워하거나 노여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박하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봤을 뿐이다.
    “앞으로 술 좀 어지간히 드시고.”
    “알았다, 오바.”
    박하는 코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씽긋 웃어 보였다. 술기운도 다시 오르는 것 같았다. 앳된 경찰은 그대로 경찰차에 탔고 경찰차는 후진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파랗고 빨간 경광등이 박하의 온몸에 드리워졌다. 박하는 차가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어딘가에서 드르륵 창문 열리는 소리가 났지만 박하는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박하는 인정빌라로 들어가지 않고 벤치에 앉았다.
    “혹시 맥주 더 있어요?”
    “이미 전작이 꽤 있으신 것 같은데요.”
    남자는 자기가 마시던 맥주 캔도 괜찮으냐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내밀었다. 박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걸 받아서 목 넘김 소리가 들리도록 단숨에 목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한 손으로 맥주 캔을 찌그러트렸다.
    “개인기도 있으시네.”
    “어디 사세요?”
    “인정빌라요.”
    “저도요.”
    남자는 안경테를 손등으로 밀어 올리며 박하를 쳐다봤다.
    “마침 집에 사놓은 맥주가 있는데 한 잔 더 하실래요?”
    남자의 가늘고 흰 손가락을 박하는 뭔가를 추억하듯 오래 쳐다봤다.

 

    필은 극도로 초조해졌다. 스스로가 너무도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제발 박하가 그 남자와 엮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그냥 옥탑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침대에 눕길 바랐다. 하지만 박하는 남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고 102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아침, 박하는 다시 사라졌다. 매일 아침, 출근을 준비하기 위해 일어나던 그 시간에 일어난 102호 남자는 침대 아래 펼쳐져 있던 맥주 캔들과 과자 부스러기들을 바라봤다. 박하는 언제 나갔는지 없었다. 102호 남자는 박하가 누웠던 침대 자리를 정리했다.

 

    이제 필은 진짜 박하를 찾으러 떠나야 했다.

 

 

 

 

 

 

 

 

 

 

 

 

 

 

 

작가소개 / 김봄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내 이름은 나나」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창작집으로 『아오리를 먹는 오후』 (민음사) 가 있다. 공연 기획과 스토리 창작집단인 ‘봄기획’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명지대학교, 한서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문장웹진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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