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 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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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싱가포르*

 

 

김 홍

 

 

 

 

    중국은 없다, 라고 정이 말했다. 공용 공간으로 쓰는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이 있었다. 나는 한, 정, 명을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셋을 묶어 한정명이라고 불렀다. 정한명이라고도 했는데, 어쨌든 명은 뒤에 붙이는 게 자연스러웠다. 명은 언제나 마지막에 입을 열었고, 셋 중에 가장 똑똑해 보였다. 술도 제일 시원시원하게 마셨다. 맥주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네, 하면서 우리는 엄청 취해 가는 중이었다. 그때, 중국은 없다, 라고 정이 말했던 거다.
    “뭐가 없는데요?” 내가 물었다.
    “중국이요.” 정은 지그시 눈을 감고 대답했다.
    “그니까 중국에 뭐가 없냐고요.”
    “그게 아니라 중국이 없는 거예요. 중국이.”
    “중국이 없다고요?”
    “네.”
    “왜요?”
    “왜가 아니라 원래 없어요. 중국은 없습니다. 중국이라는 것 자체가 거대한 거짓말인 거죠.”
    “중국이 거짓말이라고요?”
    “네. 중국은 없거든요.”
    “중국인들은요?”
    “중국인이라는 사람들, 있죠. 저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중국인은 아니에요. 중국이 없으니까요. 모든 건 발명된 겁니다. 꿔바로우나 훠궈 같은 건 물론이고 하다못해 짜장면도요. 중국 음식이 왜 그렇게 맛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불려 나온 음식 이름 때문인지 입안에 침이 돌았다. 짜장면의 기원은 중국이 아니라 인천이라고 명이 지적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오징어는 너무 맛이 없었다. 하얗게 분이 앉은 오징어는 씹을수록 쓴맛만 나서 아예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오징어가 원래 어떤 맛인지를 기억할 수 없게 만들 정도였고, 나는 그날 이후 웬만해선 오징어를 먹지 않았다. 중국이 있네 없네 하는 이야기도 발단은 오징어였다. 나는 분명히 중국산일 거라고 했고 필리핀이나 베트남산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취객들은 도마뱀의 발가락 숫자를 놓고도 싸우는 법이라 새로울 건 없었다. 중국이 없다는 정의 말이 낯설고도 낯설 따름이었다.
    정은 누가 봐도 중국산처럼 보이는 물 빠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중국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사실은 조금 있었다. 한국에서 만든 티셔츠도 물이 빠지는 건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없다고 주장하는 정이었기 때문에 중국산 티셔츠를 입었을 것 같았고, 그는 메이드 인 차이나가 중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할 것 같았다. 포마드로 머리를 빗어 넘긴 한은 여행자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한 인상이었다. 이것도 물론 여행자에 대한 편견이다. 편견을 조금 덧붙이자면 한은 서울 사립대 부속의 한국어학당에 다니는 교포 3세의 느낌을 풍겼다. 그래서인지 중국이 있다는 한의 입장이 더 신빙성 있어 보였다. 애초에 따지고 물어야 할 이야기인지 자체에 회의가 들었지만.
    한은 코웃음을 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는 주식 투자 어플의 펀드 항목에서 ‘달리는 차이나’의 계좌를 열어 모두에게 보여줬다. 숫자가 너무 많아서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한눈에 가늠하기 힘들었다. 한은 자신보다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거라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화면을 닫았다. 열다섯 살 때부터 주식투자를 했고, 자신은 돈이 많으며, 돈 많은 사람들은 중국에 관심이 많은 데다가, 사업 아이템을 찾아 중국에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돈이 많아서 그런 건지, 한은 정이 하는 말을 찍어 누르듯 무시하며 비아냥거렸다. 체할 것 같아서 맥주를 몇 모금 더 마셨다. 한과 정이 말다툼을 시작하고서 나는 주로 명과 대화를 나눴다. 명은 오징어와 한치의 차이를 궁금해 했다. 취해서 손이 자꾸 빗나가는 그녀를 대신해 내가 검색 결과를 읽어 줬다. 오징어니 한치니 하는 건 전부 지역마다 임의로 부르는 이름이고, 분류학의 표준명에 의하면 전부 꼴뚜기의 일종이었다.
    “재밌다. 그치?” 하면서 명이 새 맥주병에 손을 가져갔다. 테이블 위에 있던 병따개가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 밑에도 없었고, 혹시나 해서 뒤져 본 주머니에도 없었다. 나는 쓸모없어진 맥주병을 가만히 바라보며 병따개 없이 맥주를 마시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명이 젓가락을 지렛대처럼 써서 병뚜껑을 땄다. 우리는 조금 더 마시다 졸았고, 졸다 깨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한과 정이 엉겨 붙어 싸우는 통에 상이 엎어져 행주를 들고 왔다 갔다 했다. 그날은 확실히 좀 이상했고 정신이 없었다. 중국도 오징어도 제멋대로였다.

 

    일 년 뒤 한남동 오거리에서 우연히 명을 마주쳤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택시를 다시 몰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일은 해본 적도 없었고, 사장으로부터 꽤 진지한 사과를 받아서 뿌리치지 못했다. 그날따라 손님이 나타나는 족족 다른 기사가 한 발 먼저 차머리를 들이밀었다. 안 되는 날인가 싶어 시내로 나갈 요량이었다. 장충체육관 쪽으로 우회전을 하려는데, 익숙한 얼굴이 블루스퀘어 앞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거리가 꽤 됐지만 한눈에 명이란 걸 알아봤다. 한꺼번에 차선을 세 개나 건너뛰었다. 유턴 신호를 기다리는 내내 명이 자리를 떠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라디오에서는 김신영이 ‘정오의 희망곡’ 클로징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희망이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명을 놓치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차를 돌려 그 자리에 갔을 때 그녀는 다른 택시에 막 오르려는 참이었다.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려 명의 시선을 끌었다. 운전석 밖으로 고개를 뺀 내 얼굴을 그녀 역시 한눈에 알아봤다. 손님을 뺏긴 기사에게 욕을 먹어야 했지만 감수할 만했다.
    “경부고속도로로 가줘.”
    “멀리 가요? 요금 안 받으려고 했는데.”
    “만남의 광장 갈 거야.”
    “아. 그럼 돈 안 받을게요.”
    “택시비는 내야지.”
    “만남의 광장에는 뭐 하러 가는데요?”
    “맥반석 오징어 먹으러. 사줄래?”
    미터기를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곁눈질로 본 명의 차림은 맥반석 오징어를 먹으러 만남의 광장에 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중요한 미팅을 막 끝내고 온 무역회사 직원이나 헤드헌터를 만나러 가는 외국계 기업 재직자 같기도 했다. 명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헤어질 때 이메일 주소를 나눈 게 전부였고, 답장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물론 한의 경우는 달랐다. 이름도 들었고 나이도 확인했다. 적어도, 적어도 한의 이름은 기억해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한을 생각하면 자꾸만 답답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기사식당 앞에 차를 대고 잠깐 조는 동안 짧은 꿈에 한이 등장한 적도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튼 등판이 땀으로 축축했다.
    “어떻게 지냈어요?”
    “똑같지 뭐.”
    “똑같다는 건 어떤 거예요?”
    “아침에 집에서 나오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고.”
    “아.”
    “그러다 오징어를 먹으러 만남의 광장에 가기도 하고.”
    옆 차선에 있던 차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들었다. 나는 엄지로 클랙슨을 꾹 누르며 속도를 줄였다. 명은 놀란 기색도 없이 주섬주섬 안전벨트를 비끄러맸다. 끼어든 앞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던 꼬마가 몸을 돌려 택시 쪽을 봤다. 무서운 표정을 지어 봤지만 전혀 무섭지 않은 모양이었다. 꼬마는 무안할 만큼 냉소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의 이야기를 듣는 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국이 없다니. 그건 중국 관련 실용 서적의 제목으로나 적합해 보이는 문구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정말로 그런 책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중국은 없다』라는 제목이었는데,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도 시리즈로 나와 있었다. 『우리가 아는 일본은 없다』는 없었다.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를 의식해서 그런 건가 싶었다. 하여튼 『우리가 아는 중국은 없다』의 저자는 “자기가 아는 중국은 있”어서 책을 쓴 거라, “중국은 없다”는 정의 주장을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었다. 문제는 “중국이 있다”고 반박하는 한 역시 지나치게 진지했다는 거다. 중국이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벌이는 두 사람의 논쟁은 신의 형상을 논하는 중세 철학자들처럼 치열했다.
    그러는 사이 명과 내가 오징어(라고 부르지만 실은 꼴뚜기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만 한 건 아니었다. 여행하는 이유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건 여행자들이 만나서 하는 의례와도 같은 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보다 재밌는 이야기를 찾지 못해 남의 이야기를 대충 들었다. 그나마 내 이야기는 독특한 구석이 있어서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나는 택시를 몰다가 정신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이 없는 건데, 쓰러지거나 기절하는 것과는 달랐다. 의식이 끊긴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고, 운전한 과정을 기억하지 못했다. 돈을 버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운전만 하는 기계가 있다면 아마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도로 사정에 정확히 반응해서 이동한 만큼 돈을 받으면 되니까 말이다.
    MRI를 찍었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담당의는 해마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그런 것 같다고, 아니라고 하기도 영 그렇다고 말했다.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이 해마여서라고 했다. 왼손을 못 움직이는 사람에게 왼손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실망스러웠지만, 의사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 같아 티를 내지는 않았다. 대단한 문제가 명확히 진단된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해마가 웅크리는 건가요? 허리를 접고?”
    내 질문에 의사는 어색하게 웃었다.
    “수족관에 있는 해마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무사고 10년에 2년을 남겨 두고 있었다. 개인택시를 모는 게 일생의 꿈은 아니지만 손쉽게 포기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택시를 계속 몰았다. 아무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운전대를 오래 잡고 있으면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뻐근했지만 어떤 일이든 나름의 고충은 있는 법이니까. 사무직은 안구건조증에 걸리고 가수는 성대결절로 고생한다. 나는 차 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고,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쇳덩어리가 싫지 않았다.
    ‘그 일’만 없었으면 계속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여행 같은 걸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정한명이든 한정명이든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사장에게 어디에도 이야기하지 말라는 엄포를 단단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도 일을 그만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 적당한 위로를 받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명과 내가 대화를 멈추지 않는 게 맘에 들지 않았는지 정이 끼어들었다.
    “중국에 가본 적 있어요?”
    “요즘 중국 한 번 못 가본 사람이 어딨냐.” 한이 대답을 가로챘다. “심지어 나는 거기서 한 달 동안 머물렀어. 너 기원전 5세기 갑골문자 본 적 있어? 나는 직접 봤어. 그거 보면 그런 소리 못 하지. 기념품도 잔뜩 사왔다고.”
    “저는…… 중국에 아직 못 가봤어요.” 나는 소심하게 대답했다. 어떤 쪽이든 기분이 별로였다. 가봤으면 정에게 죄를 짓는 것 같고, 안 가봤으면 한에게 무시를 당하는 꼴이었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운전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차로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잖아요.”
    “배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시간을 버신 겁니다. 그래 봤자 중국에 간 게 아니라 중국에 간 기억을 얻은 거니까요.”
    정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진심을 담아 설득하는 표정으로 한을 보며 말했다.
    “기억을 주입하는 게 중국을 만들어 놓는 것보다 훨씬 쉬워. 캐리어에는 네가 산 것처럼 기억하는 기념품이 잔뜩 들어 있고 말이지. 인천국제공항 어느 구역에선가 정신을 차렸겠지만, 너는 한 번도 중국에 간 적이 없어.”
    어쩐지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내 증상과 정확히 반대인 셈이었다.
    “하루 동안 중국에 드나드는 사람이 몇 만 명은 될 텐데. 그 사람들의 기억을 일일이 조작한다고? 누가, 왜 그딴 짓을 하겠어?” 한이 반박했다.
    “거기에 드는 수고보다 큰 걸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네 말대로라면 오고 가는 비행기에 같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야 하잖아. 그건 누가 봐도 이상한데? 일단 엄청나게 멍청한 소리고.”
    “비행기가 도착하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지리상 중국이어야 할 자리야. 그러니까 중국만큼 커다랄 필요는 없겠지. 거기서 사람들은 택배 상자처럼 다른 비행기로 옮겨지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옷도 갈아입혀. 일부러 상처를 내고 봉합하는 경우도 있지. 교통사고 발생률 같은 통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일단은 그게 내 이론이야.”
    “무서운 일이네요.” 내가 말했다. 명이 장난치지 말라는 듯 내 뒤통수를 때렸다. “진짜예요. 정말 무서워요. 가짜 기억이면 기억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는 동안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거고. 그것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요.”
    나는 한정명, 혹은 정한명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남에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한이 정을 몰아붙이는 걸 듣고 있기 괴로워서였던 것도 같다. 실수를 한 건 딱 한 번뿐이었다. ‘그 일’만 없었으면 무사고 9년 차로 서울 시내를 누비고 있었을 것이다. 독산동에서 취객을 태우고 일산 쪽으로 운행을 시작했는데, 의식을 잃고 도착한 곳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주차장이었다. 길이 뚫린 대로 갔으니 파주까지 갔겠지만, 왜 하필 임진각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운이 더럽게도 없었던 게, 뒤에 태운 취객이 대공 업무를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이었던 것이다. 난생처음 거짓말탐지기 검사까지 받아 가면서 국내 요원을 납북하려는 공작원이 아닌 걸 증명해야 했다. 결국에는 요금을 더 받으려고 임진각까지 밟았다는,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의 진술서를 써내고 나서야 이틀 만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사장에게 심한 욕을 들었고, 밀린 사납금을 내지 않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당장 나가야 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 내 표정이 여행 다니던 동안의 그 어떤 순간보다 진지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정이라면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보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아니면 그 나름의 어떤 이론이라도 있을 거라고.
    “그건…… 국정원이잖아요.”
    “그래, 그건. 음. 국정원이니까요.”
    안색이 바뀐 명이 잔에 남아 있는 맥주를 원샷 하고선 말했다.
    “그런 주제는 좀 그렇다. 여행 온 건데.”
    명이 오징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캐나다 오징어는 알을 낳기 위해 1,000km 넘게 헤엄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였다. 알을 낳는 것들은 자주 그러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에 정과 한이 엉겨 붙었고, 그러고서도 명과 나는 술을 몇 잔 더 마셨던 것 같다.

 

    “그때 말했던 건 괜찮아졌어?” 명이 물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을 정확히 알아들었지만 일부러 못 들은 척 되물었다. “지금 하는 대화는 도착해서도 기억하는 거야?”
    “물론이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택시를 몰겠어요.”
    거짓말이었다.
    명은 시티투어 버스에 탄 관광객처럼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옆을 지나가는 차의 차종을 묻기도 하고, 송풍구에 끼워진 방향제의 다이얼을 최대로 열었다 닫기도 했다.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한 뼘씩 천천히 움직였다. 방음벽이 만든 그늘이 명의 얼굴을 가렸다. 이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만남의 광장에서 누군가를 만난 적이 없었다. 어째서 그런 이름을 지어 놓은 걸까.
    “생각해 보면 꼭 나쁜 일인 것 같지는 않아. 운전을 난폭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손님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거잖아. 너는 돈을 벌고. 모두가 애초에 원하던 걸 얻는 거야. 일산 가는 손님은 조심해야겠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게 아니면요?”
    “예를 들면?”
    “그냥 택시에 타고 싶은 거죠. 택시에 타서 기사 옆자리에 앉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하소연을 하거나. 뒷자리에 앉아서 괜히 운전석을 발로 툭툭 건드리거나. 그런 걸 하고 싶어서 택시를 잡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저한테 기만당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어?”
    “저도 가끔 택시를 타요. 일부러.”
    “나는……” 그녀는 말을 고르는 것처럼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만남의 광장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탄 거야.”
    “알아요.”
    “택시기사가 하는 얘기를 듣는 것도 싫고, 무슨 얘기를 하기도 싫어. 기사가 고르는 라디오 주파수도 싫고 틀어 놓는 노래도 싫어. 그런데도 그냥 타는 거야. 맥반석 오징어는 만남의 광장이 제일 맛있으니까.”
    “알겠어요.”
    “그렇다고 택시기사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네.”
    “직업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 물론 직업이 성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성격적인 특성이 있어서 특정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때 중요한 건 성격이지 직업이 아니니까.”
    택시는 평소보다 오래 걸려 고속도로에 진입했고, 모든 좌석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내 문구가 내비게이션에서 흘러나왔다. 주말 저녁처럼 꽉 막혀 있었다. 매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었다. 명은 나를 보고 안전벨트를 따라 풀었다가, 조금 뒤에 뭔가가 생각난 사람처럼 걸쇠를 다시 채웠다.

 

    한과 정이 뒤엉켜 주먹다짐을 한 다음날 나는 눈치를 보며 거실에 나왔다. 식빵과 삶은 달걀이 게스트하우스 거실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맥주만으로도 그렇게 취하고, 맥주만으로도 그렇게 속이 쓰린 건 처음이었다. 뭐라도 뱃속에 집어넣어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식빵을 대충 씹다 삼키니 닭가슴살처럼 퍽퍽했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시원하게 맥주라도 한잔하고 싶었다. 뒤늦게 나온 한이 중국에 가자고 말했다.
    “저는 중국이 있는 거 알아요. 굳이 중국에 가서 확인할 필요 없어요.”
    “중국이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중국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고. 중국이 없다고도 하지만 중국은 있다,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 거죠.”
    “따지고 보면 그러네요.”
    “그래서 저랑 같이 가시자고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한 중국에 가면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질 거예요.”
    “생각이란 게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제가 데려갈 곳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데가 아니에요. 세상 모든 게 중국처럼 보이게 만들어 드릴게요.”
    맥주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정이 배를 긁으며 거실로 나왔다. 그를 보자 한이 내 쪽으로 몸을 붙이더니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친근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저놈을 약 올리고 싶어요. 저 자식 지금 좀 소외감을 느끼고 있으려나요? 아, 미처 말씀 못 드렸는데 비용은 제가 다 댑니다. 가방만 들고 따라오시면 돼요.”
    “에에?”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중국인 부자에 대해서 들어 보셨죠.”
    “네 뭐…… 부자는 중국 부자들이 진짜 부자라고.”
    “제가 사실 중국인 부자예요.”
    “중국인이 아니잖아요?”
    “네. 저희 가계는 삼 대째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죠. 하지만 중국인 부자인 건 사실이에요.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를 포함해서 모든 경비를 제가 책임질게요.”
    상황을 파악한 정이 한을 보고 혀를 찼다. 돈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그래 봤자 중국은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가장 늦게 나와 이야기를 전해들은 명은 엄지를 번쩍 세웠다.
    “정말 좋잖아? 공짜 여행이라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중국이 있든 말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쓰촨 성 청두 공항으로 향하는 중국동방항공의 에어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의식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발권부터 수속까지 정신없이 진행돼서 경황이 없었다는 거다. 비행기 좌석을 채운 건 대부분 동양인이었고 드문드문 피부색이 다른 탑승객이 눈에 띄었다. 말하는 걸 듣기 전에는 국적을 판단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모국어로만 말한다는 보장 같은 건 없었다. 확실한 건 이 사람들 전부가 중국으로 향한다는 것, 그뿐이었다. 게다가 이 비행기가 향하는 중국이 사실은 중국이 아니라는 정의 말까지 떠올라서, 목적지도 없이 아무데로나 가달라고 하는 승객을 뒤에 태웠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중국에 처음 방문하는 설렘을 가득 품기 위해 내가 아는 중국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씩 떠올렸다. 천안문 광장에 인형처럼 서 있는 공안이라든가, 중화요리 셰프 이연복이 선전하는 탄탄면 같은 것들 말이다.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이 클수록 한이 좋아할 것 같았다. 어쨌든 돈을 다 내주는 사람이지 않은가. 옆자리에 앉은 한은 『척 보고 말하는 왕초보 여행 중국어』를 펴놓고 이따금 큭큭대며 책장을 넘겼다. “중국인들, 이렇게 말 안 하는데…….” 하는 혼잣말은 나를 들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 직항이 아니라 상하이 푸동 공항에 두 시간 정도 머물렀다. 조명을 켜지 않아 어두웠지만, 긴장해서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한은 좀 전까지 읽던 중국어책을 뒤에서부터 다시 읽고 있었다. 코 고는 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전해지는 중국어 발음에 집중했다. 승무원에게 맥주를 부탁했다. 아사히 두 캔을 가져온 승무원은 무척 자연스러운 한국어 발음으로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
    “이걸 보니 말인데, 저는 차라리 일본에 대해 의심하고 있어요.” 맥주 한 캔을 세 모금 만에 비운 한이 말했다. “일본은 정말 있는 걸까요?”
    나는 맥주를 혀로 굴리며 점막을 자극하는 기포를 참아내고 있었다. 한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입속에 있던 맥주를 한 번에 삼키려다 사레에 들렸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승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간 그가 일본인인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승무원이 휴지를 가져다주며 한국어로 괜찮은지 물었는데, 맥주를 가져온 쪽과 다르게 어딘지 어색한 억양이었다. 나는 휴지로 입가를 훔치고 대답했다.
    “일본은 가본 적 있어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교토에 갔거든요. 고성도 보고 신사에도 가고 했죠.”
    오랜만에 떠올리는 기억이었다. 신사 이름이 뭐였는지 말하려다가, 그 이름이 혀끝을 맴돌다가, 목구멍 뒤로 사라졌다. 구체적인 기억이 별로 없었다. 수학여행이라지만 나는 원래 아이들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장기자랑 같은 걸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뭐든 혼자 하는 게 좋았다.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돈을 내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아, 네. 그러시겠죠.”
    한은 갑자기 차갑게 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행기가 종착지를 향해 엔진을 가동했다.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눌리는 기분을 지나 기체가 안정된 이후에도 한은 계속 굳은 표정이었다. 창밖에는 비행기 아래 갯벌처럼 깔린 구름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일본에 대한 생각을 머리에서 밀어내려고 눈을 감았다.
    “일본은……” 한이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글쎄요.”

 

    비행기가 청두 공항에 도착하고 미니버스로 갈아탔다. 네 시간을 달려서 지명을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다. 거기서 택시로 한 번 더 갈아탔다. 랑춘이었나, 랑쿤이었나 하는 곳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정확한 지명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도에 나오지 않는 오지라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변은 어둡다 못해 새벽빛이 감돌고 있었다. 고개를 젖히고 얼굴이 얼얼해질 만큼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지상에 빛이 없어 하늘이 새카맸다. 별이 많았는데, 그냥 많기만 한 게 아니었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커다랗게 박혀 있는 오리온자리를 보며 고산지대라는 걸 실감했다. 원래 살던 소수민족은 마을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이제는 오지만을 전문적으로 찾아다니는 관광객들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여기마저도 중국입니다.” 이층침대 아랫칸에 짐을 푸는 한의 목소리에 벅찬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렇게 멀고 구석진 곳마저도 멀쩡히 중국인데, 중국이 없다는 소리가 얼마나 헛소린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다음날부터 한과 나는 고대문명 유적지를 탐방하기로 계획돼 있었지만, 한이 드러누워 버렸다. 열이 펄펄 끓었고, 물 한 방울이라도 입에 들어가면 곧바로 속을 게워냈다. 고산병인 것 같았다. 눈치가 보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이 고산병에 걸린 게 나 때문이거나, 한 대신 내가 고산병에 걸리지 않은 게 잘못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수건을 짜서 그의 이마를 닦아냈다. 그런데 한은 생각보다 모든 일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이것…… 이것 말입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풍토병 같은 게 아닐까요? 중국에서만 걸리는 병인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흔히 알려진 고산병 증상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후…… 정이라면 이걸 보고 뭐라고 했을까요? 이렇게 아픈 것도, 전부 꿈? 기억 조작? 대체 중국을 뭐로 보고. 저는 차라리 그 녀석이 불쌍해요. 어쩌다 그렇게 돼버렸는지 안타까울 지경이라니까요. 신기한 구석도 있네요. 어떻게 하면 사람이 그렇게까지 멍청할 수 있는지 물어봤어야 되는데. 연락 좀 해주시겠어요? 정 그 녀석한테?”
    “이메일을 보낼게요. 뭐라고 할까요.”
    “말했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 있는지 물어봐 줘요.”
    “아…… 그건…… 그런 연락은 직접 하시는 게 좋겠어요.”
    “줘 봐요 그럼.”
    한은 내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낚아채더니 정에게 뭐라고 메일을 적어 보냈다. 나는 한의 무례함이 도를 지나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픈 사람한테 예의를 따지는 건 가혹한 일인 것 같아 참았다. 비상약으로 가져간 두통약이 떨어진 뒤에는 아침저녁으로 콜라를 사다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한은 코카콜라를 마시면 더부룩한 게 덜하고 두통도 가라앉는다고 했다. 식은땀을 흘리는 그의 머리맡에서 잠들었다가 꿈속에서 코카나무가 머리를 덮치는 바람에 깼다. 갈증을 느낀 한이 빈 페트병으로 내 뒤통수를 치고 있었다.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냐면, 물론 좋았을 리는 없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많이 나쁘지는 않았다. 악의가 있어서 하는 행동 같지는 않았다. 여행비용을 댔기 때문에 봐주는 건 아니었다. 일단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그래 봤자 그거 전부 해서 돈 몇 푼이나 된다고, 굳이 돈 때문에 모든 무례를 참는 건 아니었다. 사실은 맞았다. 택시에 오르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무례해지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임진각까지 데려간 국정원 직원도 만만치 않았다. 운전하는 거 봐서 팁을 두둑하게 주겠다며, 모범택시를 타지 않은 게 몇 년 만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때도 나는 참았다. 택시를 몰다 보면…… 자기 목숨이 내 손에 쥐고 있는 핸들 한 바퀴에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걸 생각 않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다. 그런 인간이 차에 오르면 마지막으로 에어백 점검을 받은 게 언제인지 가늠해 보곤 했다. 법인택시의 안전점검이라는 게 전부 야매일 확률이 높겠지만. 결국에 팁은커녕 대공분실 구경만 하고 왔다.
    그러니까, 나는 한을 참아 주는 게 아니었다. 참을 만한 거였다. 원래 그랬듯이.
    눈을 떴을 때 앞에 한이 있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 멀끔한 모습이었다. 시계를 보니 네 시가 조금 넘었고, 창문 밖에 처음 도착한 날 본 오리온자리가 은빛 점으로 박혀 있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한을 쳐다봤는데, 그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꿈인가 싶었지만 꿈은 아니었다.
    “오늘입니다. 일출 보러 가야죠.”
    “오늘이 무슨 날인데요?”
    “중국 고유의 명절입니다. 다 같이 일출을 보는 날이죠. 이 지대가 일출을 보기에는 그만인 곳입니다.”
    “아픈 건 괜찮아요?”
    “이 날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요 뭘. 어서 가시죠.”
    한의 성화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문을 열어 보니 쉼 없이 흘러가는 인파의 강이었다. 전부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었다. 부모, 형제뿐만 아니라 일가친척 전체가 한꺼번에 나온 것 같았다. 어른이 아이에게 화내고, 노인이 다른 노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끼리 장난치며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혼이 빠질 것 같아 귀를 막았다. 한을 쳐다봤다. 그는 씽긋 웃었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중국인들입니다.”
    밤새 레고로 만든 성을 부모에게 보여주는 아이처럼 보였다. 한은 내 손을 잡아끌고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걷지 않는데 저절로 걸어질 지경이었다.
    “곧 해가 뜰 텐데, 소원은 뭐로 빌 건가요?”
    한이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나 역시 목청을 가다듬고, 한의 귀에 대고 대답했다.
    “집에 가게 해달라고요.”
    “싱겁네요. 그런 소원.”
    이제까지 본 한의 표정 중에 가장 건방졌다. 진심을 다해 중국이 없다고 설명하던 정의 선한 얼굴이 떠올랐고, 그가 입고 있던 물 빠진 티셔츠가 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 옆에 있는 한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비탈길을 따라 올라갈수록 인파가 늘어났다.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도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한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의 셔츠 끝자락을 꽉 잡았다. 마침내 도착한 정상은 화산 지형처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한가운데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세포분열 하듯 늘어났고, 가장자리에 있는 중국인 관광객은 비탈로 굴러 떨어졌다. 나 역시 밀려나고 있었다. 결국엔 한을 놓쳤다. 마지막으로 그가 뭐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중국은 있다”라고 힘차게 외친 것 같다. 비탈 끝에서 최대한 버티면서 인파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경사면을 따라 구르는데 아프지 않았다. 아팠던가? 나중에 보니 온몸에 멍이 잔뜩 들긴 했는데, 아팠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고서 눈을 떴는데, 비행기였다고?” 명은 맥반석 오징어를 막대 아이스크림처럼 빨고 있었다. 하얗던 오징어가 침에 녹아 투명해졌다. “인천국제공항?”
    “네.”
    “영험하다. 소원이 이뤄졌어.”
    “그러게요.”
    평일 낮 만남의 광장에는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광장도 아니고 만남도 없지만 맥반석 오징어는 맛있었다. ‘국내산(동해)’라는 표시가 카운터 뒤에 붙어 있었다. 명확해서 좋았다. 북태평양 어딘가에서 태어났더라도, 동해에서 잡혔으면 동해산이 맞다.
    “인천에 내려서 제일 먼저 한을 찾았어요. 항공사에 물어봤더니 한이 티켓을 취소했다는 거예요. 전화도 안 받고,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었죠. 저는 중국에 갔다 왔어요. 여권에 분명히 도장이 찍혀 있거든요. 한은 어디로 갔을까요?”
    “내가 찾아봐 줄까? 사람 찾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아.”
    “그럴 마음까진 안 들어요. 한이 정한테 보낸 메일이 편지함에 남아 있었는데…….”
    “뭐래?”
    “일본은 없다.”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 봤는데. 책 제목 아니야?”
    “맞아요.”
    나는 오징어 몸통을 채처럼 잘게 갈랐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기분이 이상해져서, 이유 없이 손이라도 움직이고 싶었다. 명은 내게서 오징어를 뺏어갔다. 그녀는 오징어의 몸통을 두껍게 찢어내 초고추장에 푹 담갔다. 그러고는 아이스크림을 권하듯 내 앞에 내밀었다. 명에게는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사장이 신신당부를 했지만, 실은 그렇게 낯선 이야기도 아니었다.
    “국정원 직원이 저한테 사과했어요.”
    “왜?”
    “간첩 사건을 조작해서 기소됐대요. 저번 일도 없던 거로 하자고…… 회사에서 보너스 받았어요.”
    “잘 됐네.”
    “일본은 있어요?”
    “정이 지금 일본에 있어. 요코하마라던가. 차이나타운에서 주방일 한대.”
    “잘 어울리네요.”
    나는 물 빠진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싸맨 정을 상상했다. 홀에서 아사히를 시키면 주방에서 중국어로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꿈은 한국어로 꾸겠지. 중국이 없는 이유를 매일 하나씩 찾아내 노트에 적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서초 IC 좀 지나서 말야. 우리 차가 갓길에서 튀어나온 거위를 쳤어.”
    “아니잖아요.”
    “응. 이번에는 맨 정신으로 왔구나.”
    나는 명이 건네준 오징어를 껌처럼 씹다가 꿀꺽 삼켰다. 오징어는 미끄러지듯 잘 넘어갔는데 다른 것 때문에 목이 메었다. 눈이 빨개진 나를 보고 명은 무슨 일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추석에 할머니 댁에 가는데 고속도로가 꽉 막힌 거예요. 그때 아빠 차가 스텔라였어요. 레자도 아니고 솜 쿠션이라서 먼지가 엄청 났어요. 뒷좌석에서 뒹굴거리다가, 앞뒤로 꼼짝도 않는 차에서 내렸죠. 엄마랑 체조를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전부 나와서 담배 피우고, 술래잡기하고.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그냥 여기에 차 두고 다 같이 걸어가면 안 되냐고. 요즘도 가끔 그때가 생각나요. 한남대교에서 만남의 광장까지 걸어 보면 어떨까.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다 같이 걸으면 어떨까. 그럼 좀 살아 있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나는 싱가포르에서 왔어.”
    “싱가포르요? 왜 하필 싱가포른데요.”
    “하필이 아니라 내가 왔어. 나 거기서 지냈어. 아빠가 주재원이었거든. 중국이나 일본은 모르겠고, 싱가포르는 확실히 있다. 내가 잘 알아. 여기 있거든.”
    명이 오징어를 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팔을 뻗어 만들어지는 거리만큼 채워지는 공간이었다. 컴퍼스를 돌리듯, 명은 자기 몸을 축으로 한 바퀴 돌았다. 그녀가 그린 동그란 공간에 마른 먼지 향기가 흘러들었다. 세상에 없는 다른 곳처럼 보였다. 명이 말했다.
    “여기야. 싱가포르.”
    “가보고 싶네요. 싱가포르.”
    “나야 좋지. 언제나 환영이야.”

 

 

 

 

   *  9와 숫자들, ≪수렴과 발산≫, 7번 트랙, 04:51, 오름 ENT, Sony Music, 2016.

 

 

 

 

 

 

 

 

 

 

 

작가소개 / 김홍

1986년 서울 출생.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문장웹진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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