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칭 외 1편 - 한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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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4인칭

 

 

한인준

 

 

 

 

아무도 없는 샤워를 만들어버린다 물줄기에
따뜻함을 뿌려주다가

 

깎은 손톱만을 만들어버린다
조그만 방에서

 

당신에게 지구를 건네주는 장면을 만들어버린다

 

장난감으로 만든 작은 지구를 건네주는 것처럼

 

정말로 지구를 건네주는 거야? 상황은
반전되었고

 

당신의 소매 속에는 어째서 우주가 있을까 의아했는데
알겠다

 

이제 나는 당신의 어둠을 떠올릴 수 있으니

 

외계인에게

 

머리가 크다고 말하는 상황만을 만들어버린다
외계인에게 죽게 될까 외계인을 죽일까 이런 상황이 없는
상황 속에서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지는 순간
머리카락 하나만 치우는 장면을 기억해내며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서
나의 상황이라는 것을 만들어버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상황이라는 곳에 가서

 

나는 알게 될 것이다
알게 되는 상황만을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순간에는
손가락이 먼저 반짝인다며

 

우주에 낙엽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상상이 먼저
우주에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는 조그만 방에서 우주를 만들고 있는 당신이 보일 것이다
당신을 볼 수 없어서

 

당신을 볼 수 있는 내가 보일 것이다

 

 

 

 

 

 

 

 

 

 

 

 

 

 

동심원

 

 

 

 

 

비 냄새에게 걸어간다

 

비가 온 뒤의 냄새는 비가 온 뒤에만
있을까

 

콧구멍을 맡아버린다
냄새를 맡고 있는 콧구멍보다 귀엽게

 

처음에는 빠르게, 라고 생각했지만

 

두 손이 없는 것들을 목덜미가
쓸어내린다

 

불가능하게 쓸어내리며

 

샴푸의 감아버린다
신발이 털어내는 벗어놓으며

 

하루에서 종일을 발견할 때마다 켜두었던 보일러 같은
작은 울상으로만

 

당신이 짓는다
미소가 아닌 것들을

 

풀숲에 놓인 날벌레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비가 온 뒤의 냄새에게 걸어가기도 하면서

 

갈피를 일부러 잃어버리자고

 

우리는 각자 옆으로 가며 앞장을 서는 것인지

 

비가 온 뒤의 냄새가 있기 위해서는 걸어다니던
당신이 필요했으니

 

고마운 시간을 쓸어내린다

 

 

 

 

 

 

 

 

 

 

 

 

 

 

작가소개 / 한인준

1986년 서울 출생. 2013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 『아름다운 그런데』가 있음.

 

   《문장웹진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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