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조련사 루티노 외 1편 - 박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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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언어조련사 루티노*

 

 

박헌규

 

 

 

 

    나는 날 세워 놓았네. 이 희디흰 공간에 종이에? 가격하는 날 가격당하는 나로 세워지지 않은 채 세워지는 나로 나는 날 세워 놓았네. 새하얀 깜둥이인 날 새까만 흰둥이인 나로 샛노란 깜둥이인 날 새빨간 흰둥이인 나이자 앵무인류, 그 의미 없는 번식을 기하급수적으로 소진시키는 나로 세워 놓고 세워 놓았네. 세계라는 것. 내가 쓰는 시: 야만(野蠻)의 윙컷**놀이라는 것. 앵무인류라는 것. 주황 머리의 날 노랑 머리 흰 머리 푸른 머리의 나로 비빌 무덤처럼 푸른 머리의 날 빈손의 모자로 모자로 세워 놓았네. 모자가 벗은 허물에 빈손 걸어 놓는 나로 모자가 말의 회로로 직조된 허물이라는 듯 빈손 벗기 시작하는 프로그래밍대로 루티노를 그리워하거나 쓸쓸해하는 나로 세워 놓았네. ‘그리움’ ‘쓸쓸함’이 무엇이지? 야만의 윙컷놀이로 달래는 야만의 루티노들 그 몸뚱어리가 한 몸뚱어리라는 듯 붙였다 오므렸다 뭉개버렸다 형태를 만들었다 쩍쩍 갈라지는 시피조물 「언어조련사 루티노」에게 바라는 게 무엇이지?

 

    연을 나누고 행을 세고 맞추고 흥정하고 거래하는 나로 그렇게 가격당하는 날 가격해야 세워지는 나와 가격할 준비를 마친 나로 은밀히 세워 놓았네. 동혈(同血)이라는 것. 핏줄새장의 떨림이라는 것. 잘린 날개깃으로 훠이 훠이 꿈꾸는 듯 루티노가 가격당하는 한줌 깃털 인형이라는 듯 훠이 훠이 놓아 주었네. 그렇게 가격당한 가슴 속에서 부리를 가격하고 모가지에 묻은 머리를 가격하고 새빨간 새하얀 깃을 베게 하도록, 나는 그렇게 하도록, 내가 가격당하는 한 마리 ‘루티노’로 파닥거리도록, 가격하도록, 명중시키도록, 기하급수적으로 세워 놓았네. 내가 없어질 때까지, 그 부재마저 기하급수적으로 석방될 때까지, 가격당하는 자와 세워 놓는 자를 세워지는 자와 가격하는 자로 세워 놓고 세워 놓았네.

 

    중력 새끼가 중력 새끼를 때려눕힐 때까지. 중력 새끼를 무너뜨리는 중력 새끼, 그 중력 새끼가 다시 태어날 때까지. 이 종이 이 적요 이 소요(騷擾) 속에서 우리는 똑똑히 망각해야 돼. 붉은 볼 쓰다듬는 언어조련사 루티노를. 붉은 깃펜 그 까만 눈동잘 훈련시키는 핏줄새장 (을/를)을. 팔이 되고 어깨와 목이 되고 머리가 되는 몸뚱어리 횃대를. 기관 뼈 피 살 순으로 허물어지는 폭포와 같이 어느 공간에선가 허물어지고 있을 몸뚱어리 횃대를. 그 공간이 나일 수 있고 당신일 수 있다. 당신이 떨어뜨린 유전자일 수 있고 내가 흘린 눈물일 수 있다. 유전자의 유전자로 부서져 더 작은 유전자, 그 유전자로 배때기 채운 책갈피 벌레일 수 있고 온 몸뚱어리로 바라보는 그 벌레의 눈일 수 있다. 하느님일 수 있고 하느님을 바라보는 벌레일 수 있다. 그 벌레가 일그러트리는 하느님일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도수(度數) 높은 눈물안경일 수 있다.

 

    어느 공간에선가 (을/를)로 허물어지는 우리일 수 있다. 우리가 축양장이라 하지 마시라. 물 위에 띄운 빵빵한 비닐봉지, 그 안에 담겨 온 언어라 하지 마시라. 우리가 눈물인가. 바라보는 눈인가. 바깥으로 갇혀 바깥으로 배때기 채운 언어인가. 우리가 죽은 듯 죽지 않은 그러나, 죽은 ‘비파’라 ‘코리도라스’라 ‘알지이터’라 ‘오토싱’이라 ‘보티아’라 하지 마시라. ‘애플 스네일’이라 ‘야마토 새우’라 ‘체리 새우’라…*** 그 상실의 부재마저 목적을 잃어버린 목적으로서 청소할 언어 없는 세계로서 살 피 뼈 순으로 허물어지는 횃대의 기관 그 흐느적거리는 몸뚱어리일 수 있다… 하지 마시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오른 어깨에서 등줄기로 목으로 머리로 90도로 인사하는 축양장닦이 루티노라… 손에서 팔로 팔에서 손으로 다시 팔에서 손으로 갸우뚱 건너 뛰어다니는 핏빛 날갯짓이라… ‘나이트 플라이트’라 하지 마시라. 바깥이 없는데 도무지 바깥이 없는데 부딪치고 부딪치는 핏줄새장, 그 경계를 우리는 피가 맨 바깥이든 뼈가 기관이 맨 바깥이든 우리는 그 마지막을 살이라 하지 마시라. 살은 실은 맨 마지막 꿈. 그 몸을 뒤덮은 살의 기관 뼈 피를 실은 살이라 하지 마시라. 꿈이라 끝이라… 기관도 뼈도 피도 아닌 몸이라 하지 마시라. 기관이 살갗인 몸이라… 루티노가 우리라… 핏줄새장이라 하지 마시라. 그 까맣고 붉은 부재의 날갯짓이 부메랑에 돋은 부메랑일 수 있다… 몸뚱어리 횃대일 수 있다… 무한정 갈라지는 세계일 수 있다… 축양장일 수 있다… 말을 따라하고 말을 까먹고 말을 배우는 「언어조련사 루티노」의 갸우뚱 기운 까만 눈동자일 수 있다…

 

    우리는 언어감옥에 갇힌 언어감옥. 말고는 다른 말을 찾을 수 없다. 비루하고 무료하지만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언어감옥, 언어감옥 말고는… 흐느적거리는 횃대의 기관에서 횃대의 기관으로 건너 뛰어다니는 루티노들 말고는… 비루하고 무료하지만 가격당하는 자와 가격하는 자 앵무? 인류? 유리? 세계?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바깥으로 차오르는 피, 그 위로 매달린 뇌(腦)가 심해의 (을/를) 그 핏줄새장이라 생각하면 구토가 나온다. 비루하고 무료하지만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기관 뼈 피 살 순으로 세워진 언어조련사 루티노라 생각하면… 구토가 구토가 나온다. 중력 새끼로 덧칠된 중력 새끼, 그 기관을 상실한 핏줄새장이 침몰하는 틀이라 생각하면… 피 밑으로 돌아가던 기관이 피 바깥에서 피 바깥으로 떠다니는 루티노, 루티노의 유골로 붙은 입 없는 말이라 생각하면…

 

 

  *  왕관앵무 품종.
  **  애완조 날개 자르기.
  ***  이끼 먹는 수중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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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 박헌규

2007년 《현대시》 등단.

 

   《문장웹진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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