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자격 -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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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관객의 자격

 

 

이유

 

 

 

 

    나무식탁 하나가 다였다. 낮은 천장에 달려 있는 조명 서너 개와 음습한 콘크리트 벽, 그리고 시멘트 바닥. 객석인 계단에는 방석 하나 깔려 있지 않았다. 무대가 밝아 오자 젊은 남녀가 속옷 차림으로 식탁에 수저를 놓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가르칠 식탁 예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실은 아무것도 없다.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는 건 두 배우의 손짓이며 몸짓이다.
    식사 도중 이혼한 친구 부부 얘기를 하다 친구 부부 얘기가 그들의 일인 것처럼 화를 내며 싸우고 다시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릇을 치우고 술을 한잔 마시고, 밤. 식탁 위에 한 무리의 빛이 떠 있고 어둠이 무대에 배를 깔고 누워 있다. 나는……
    그런데……
    뭐가 이렇게 불편한 거지?
    건주는 연극에 집중하지 못한다. 무대 바닥에 붙어 있는 형광 띠가 줄곧 눈에 거슬린다. 하필 그것도 무대 한가운데서 한 번씩 번득거리며 몰입을 방해했다. 굳이 따지자면 식탁이 놓여 있는 위치도 맘에 안 든다. 식탁은 무대 중앙에서 밀려난 듯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그래서인지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는 부부의 모습은 아기자기하기보다 궁상맞아 보인다. 식탁 위에서의 섹스조차 그 짜릿한 느낌이 무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다. 어딘가 조금 부족하고 가난하고 쓸쓸해 보인다.

 

    시간이 흘렀다. 부부에게는 어느덧 18개월 된 아들이 있다. 아이는 전혀 부모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아니 지나치게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부부를 불안하게 만든다. 아이는 불러도 반응이 없다. 옹알이도 하지 않는다. 안아 줘도 반기는 기색이 없다. 그냥 쳐다만 본다.
    아내는 막 퇴근해 돌아온 남편을 식탁에 앉힌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 그녀는 회사에 하루 월차를 내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아내는 자신이 들었던 말 그대로 전해 보려 애쓴다. 그러나 의사가 내린 정확한 진단에 대해서는 말하려들지 않는다. 뇌에 깔려 있다는 어떤 회로에 대해서만 한참 설명하다 그녀는 무심코 말한다. “사람 마음을 읽지 못한대.”
    남편은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 그들의 아이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다. 그것은 평생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출산도 순조로웠고 첫돌이 될 때까지도 탈 없이 잘 자랐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아내는 감정이 북받친 듯 흐느낀다.
    “요란 떨지 마.”
    남편은 화를 냈고 자신이 화를 냈다는 것에 당황한다. 순간 건주는 몸이 얼어붙는다. 당장 나가야 해. 머릿속에서 누군가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배우의 코털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이다. 무대에서 두 번째 계단이고 앞뒤로 관객도 없다. 열띤 음성과 거친 숨소리, 빨개진 배우의 귓불까지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객석에서 일어나 버리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건주는 호흡을 한 번 길게 한 뒤 다리를 죽 뻗는다. 다리가 퉁퉁 붓는 느낌이다. 발끝에 힘을 준다. 겁먹을 거 없어. 부부는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갈 테니까. 식탁에 마주 앉아 다시 웃게 될 테니까.
    건주는 부부를 응원하기로 한다. 두 손을 모으고 짧게 기도도 한다. 잘 될 거야. 그니까 제발 힘들 내.
    그러나 그녀의 응원은 너무 미미하고 보잘것없다. 남편은 아이의 상태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조금 늦는 것뿐이라는 말만 고집스럽게 되풀이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실망한 듯 고개를 젓는다.
    “당신도 분명 느끼고 있잖아.”
    식탁에서 홀로 밤을 샌 남편의 얼굴이 지나치게 창백하고 어둡다.
    저러다 죽겠는데…….
    건주는 숨을 삼킨다. 그녀가 숨을 삼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뒤쪽 스피커에서 무시무시한 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처음엔 브레이크 소리였고 다음은 앰뷸런스 소리였으며 가장 오래 계속된 것은 아내의 처절한 비명소리였다.

 

    아직 비가 오고 있을까?
    건주는 문득 지상의 일들이 궁금했다. 한 시간 반 전 그녀는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유소가 있는 로터리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아름다운극장을 지나 눈빛극장이 있는 청과상 건물과 맞은편 선돌극장을 지날 즈음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벽돌 담장을 돌아 한 달 전까지 일했던 편의점 앞을 지날 때는 어깨가 축축해져 왔다. 행여 아는 얼굴을 보게 될까 봐 푹 꺼진 앞머리를 손으로 가린 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아직까지 인수한 사람이 없는지 문은 잠겨 있었다. 진열대며 냉장고 모두 텅 비어 있었다. 비로 가득한 축축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마음이 금세 무거워졌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건주는 암전되는 순간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배우들에게, 다른 관객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적당한 때가 분명 올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대는 암전되지 않는다. 노인 분장을 한 아내가 무대에 나타나서야 그녀가 기다리던 순간이 자신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음을 알았다. 아내의 머리는 하얗게 셌고 뽀얗던 얼굴은 까매지고, 잔뜩 주름이 졌다. 무대 위의 시간은 참 멀리도 가 있었다. 얼마나 험하고 비참하게 살아왔는지 알려주듯 아내는 외모도 말투도 억척같고 사나와졌다.
    “얘!”
    늙은 아내가 부르자 식탁 밑에서 내내 쪼그리고 있던 남자가 식탁 밖으로 나온다. 덩치가 제법 큰 남자이다. 말투며 표정은 예닐곱 살 아이이다. 그는 늙은 아내에게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한다. 그러고 보니 등짝에 손바닥만 한 노란 가방을 메고 있다. 늙은 아내는 고개를 젓는다. 날은 밝았지만 아직 하루를 시작하기에 이르다. 그는 무대를 빙 돌아 다시 그녀 앞으로 온다. 다시 꾸벅 인사를 한다. 어느새 늙은 아내는 식탁 한쪽 끝에 턱을 괴고 존다. 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한다. 늙은 아내가 몸을 일으킨 것은 지치고 무거운 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다. 무대에 등장한 건 남편이다.
    낡고 지저분한 점퍼 차림이지만 사지가 멀쩡했다. 무엇보다 젊은 모습 그대로이다. 늙은 아내는 벌떡 일어나 그를 맞는다.
    “아들.”
    이 골목에서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다음 장에서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가 되기도 하고, 살인자의 선처를 호소하는 변호인이 되기도 한다. 귀불이 빨간 배우에게 주어진 역할은 유복자 아들이다. 남편은 죽었다. 살아서 다시 볼 수 없다.
    아들은 작업복을 벗어 의자 위에 걸쳐 놓는다. 그는 포장 일을 한다. 밤새 재고 의류를 박스에 넣고 컨테이너로 옮긴다. 집에 돌아오면 팔다리가 다 뻣뻣해질 정도로 힘이 들었다.
    늙은 아내는 서둘러 국을 끓인다.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하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아들은 식탁 주위를 계속 돌며 정신 사납게 구는 형을 억지로 끌어다 식탁의자에 앉힌다. 의자에 앉자마자 형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는다. 자신을 괴롭히는 소리를 떨쳐내려는 듯 몸을 앞뒤로 흔든다. 급기야 머리를 식탁에 박는다.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되는 소리는 식탁을 뚫지도 바닥을 뚫지도 못한다. 객석을 더 깊은 지하로 한 층 한 층 끌어내릴 뿐이다. 최대한 불편하고 언짢게, 관객의 심장을 쿵쿵 울린다.
    “그만 해, 형.”
    참다못한 아들은 형의 머리통을 두 손으로 움켜잡는다. 머리통을 박살내려는 듯 형은 식탁에 머리를 박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동생의 손에 가해진다.
    기묘한 매치이다.
    건주는 두 배우를 번갈아 본다. 지극히 평범하던 아들의 얼굴은 제 형 옆에서는 지나치게 약하고 한없이 가벼워 보인다. 그는 어둠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나약한 짐승이다. 몸부림의 처음은 발길질이다. 형을 향한 갑작스럽고 무자비한 폭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식탁 한 귀퉁이에 주저앉은 늙은 아내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숨을 죽이고 귀를 막는다. 이 지옥 같은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녀의 눈빛이 달라진 건 두들겨 맞기만 하던 아들이 동생의 손목을 틀어쥔 순간이었다. 아들은 사지를 파닥거리는 동생을 바닥에 눕힌 뒤 목을 누른다. 늙은 아내의 비명소리를 듣고서야 멈춘다. 동생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형의 멱살을 잡고 자신의 가슴 쪽으로 힘껏 당기며 뒹군다. 무릎 아래로 커다란 덩치의 형을 뻗게 한다. 그럼에도 성에 차지 않는지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진다. “병신 같은 게, 어디서.”
    그는 조명이 미치지 않는 어둠의 벽을 그대로 통과했다가 나타난다. 번뜩이는 칼이 아들의 일그러진 얼굴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건주는 무대 한가운데에 붙어 있던 형광 띠들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한다. 아들은 무방비한 상태로 뻗어 있는 형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나가야 해. 건주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가 앉아 있는 앞쪽 계단에는 관객이 없었다. 뒤쪽 관객들 시야를 가리지 않게 상체를 최대한 낮추고 시멘트 바닥만 보며 걷는다. 통로까지만 간다면 거기서부터 출구까지 그대로 달려서 나갈 작정이다. 그녀는 통로 계단에 첫발을 내디딘다. 계단을 죽 따라 올라가서 문까지만 닿으면 끝난다, 언짢고 짜증나고 겁나고 조마조마한 감정들과도 끝이다, 생각했다. 그런데
    “화장실은……
    나가서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있어요.”
    아들의 목소리였다.
    폭주하는 감정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거친 숨소리가 이어진다. 지금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혹시 내게 하는 말일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건주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척 태연하게 나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작정대로 되지는 않는다. 건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무대를 본다. 아들이 무대 앞 시체 발치에 서 있다. 그녀를 보고 서 있었다.
    저요?
    건주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아들은 그녀가 입 모양으로 묻는 걸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식탁 뒤쪽, 시체의 머리맡에 서 있던 늙은 아내도 건주를 보고 있다.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 같다. 건주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그녀는 무대로 집중됐던 시선들을 빼앗고, 몰입했던 감정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 가장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순간에.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온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아니, 할 말이 아주 없지는 않다. 공연 중간에 나가는 게 그렇게까지 잘못이란 말인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가 자리를 뜨는 관객에게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건 문제가 없고?
    건주는 꼼짝하지 않은 채 한동안 눈만 깜빡인다. 대체 이 사람들은 내가 뭐라고, 내가 대체 뭐라고 이러는 걸까?
    아무래도 이 상황에 기가 막혀야 하는 건 그녀이다. 배우들이 아니라. 그녀는 도움을 청하듯 고개를 돌려 객석을 본다. 객석이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보려고만 하면 볼 수 있었다. 무대를 둘러싸며 내려다보고 있는 계단 위의 빈 공간들.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첫 관객이었다. 하지만 불이 꺼지기 전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뒤쪽에 분명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엄마, 생각나?”
    늙은 아내는 아들에게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아들은 건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한다.
    “내가 마음 맞는 친구들하고 극단을 만들어 보겠다고, 왜 한창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잖아.”
    “그래. 한때는, 그랬지.”
    늙은 아내는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웠다.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대관료부터 마련하고 그 뒤에 스태프를 꾸리고 연극을 올리긴 했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지.”
    늙은 아내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받는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관객이 있으면 공연은 해야죠.”
    격렬한 몸싸움과 살인 뒤 찾아온 공포심이 아들의 눈빛에서 고스란히 읽힌다. 단정하던 머리는 심하게 헝클어져 있고 얼굴은 초췌했다. 건주는 아들이 힘주어 말하는 관객이, 유일하게 남은 관객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흥행은 완전 참패였죠. 금요일 밤에도 객석이 반 이상은 비어 있었으니까.”
    기록을 경신해 가며 연장 공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객석이 꽉 차고 멈추지 않는 박수소리를 듣게 되는 날이 그에게도 존재하리라는 기대조차 사치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이미 져버린 싸움이 되고 말았다고 아들은,
    아들을 연기하는 배우는 말한다.
    편의점은 번잡한 대학가에서 한 발 비껴선 평범한 주택가에 있었다. 골목은 여러 갈래로 끊임없이 갈라지고 이어져 있었다. 골목의 막다른 지하 창고마다 조명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큰길가 소극장들도 임대료가 조금이라도 싼 이 골목으로 하나둘 대피해 오면서였다. 건주가 끊임없이 부딪혀야만 했던 이 골목의 거주자들은 편의점이 식당이고, 카페고, 주점인 사람들이었으며 간혹, 어쩌면 자주, 도시락 값 대신 연극 티켓을 건네는 사람들이었다.
    늘 보던 얼굴이 인상이 확 달라져 나타날 때가 있었다. 새로운 공연에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이야기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기에 그토록 달라졌는지 호기심에라도 달려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팸플릿도 없는 이름 없는 공연에서 이름 없이 살다 죽는 배역들이 그렇게 건주를 스쳐갔다.
    귓불까지 연기를 한 배우는 무대 밖 그녀에겐 늘 위아래 삼선이 그어진 남색 트레이닝을 입고 나타나 공짜로 휴대폰만 충전해 가는, 꽤나 얼굴 두꺼운 손님일 뿐이었다. 그는 충전이 되는 동안 트레이닝 바지에 손을 넣은 채 냉장고 안이며 진열대 상품을 하나하나 뚫어져라 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캔 음료 하나쯤 꺼내들기 마련이었지만, 편의점이 충전 서비스를 하는 것도 그래서였지만, 그는 무심결에라도 뭘 집어든 적이 없었다.
   30프로 충전된 휴대폰을 받아가면서 말없이 초대권을 놓고 갈 때는 그럼 한창 꿈에 부풀어 공연을 준비 중이었던 건가?
    공연이 취소되는 날들이 이어지자 스태프들이 개인사정이 있다면서 한 명씩 빠져나갔다고 귓불이 빨간 배우는 말한다.
    누군가는 아버지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가 봐야 했고 또 누군가는 이미 계약이 되어 있는 공연의 일정이 앞당겨지기도 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안해했다. 정말 누군가는 심하게 앓아눕기도 했다. 그는 다 이해했다. 가장 먼저 사라져 버리고 싶은 건 그였으니까. 그래도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했다. 남아서 공연을 끝내야 했다.
    “뿌려 놓은 초대권도 있고 소극장을 빌린 기한도 있었으니까.”
    그는 덤덤하게 말한다.
    건주는 초대권의 날짜가 오늘까지였던 걸 떠올리고는 별 생각 없이 물었다. “오늘이 혹시 그 마지막 날?”
    침묵이 흐른다. 지금 이 공간에서 침묵을 깰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걸 그녀는 깨달아 간다. 연극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오직 그녀뿐이다. 만약 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나갔다가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배우들은 하염없이 기다릴까? 아니면 이대로 연극을 접을까? 아니면 관객 없이 계속할까? 정말 마지막 무대라면 이런 어정쩡한 상태로 끝낼 수는 없을 테니.
    그녀 때문에 시작된 공연이지만, 배우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객석에 다시 가서 앉을 수는 없었다. 건주 역시 객석을 박차고 일어선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상했다. 아주 이상하고 거슬리는 봄이었다. 하늘은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기만 했고 비가 올 것처럼 바람이 심상찮게 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비가 잠깐 뿌리고 난 뒤에는 유난히 어수선했다.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성가신 뒤처리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무수한 날들 중 어느 하루의 혼란과 건주는 다시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저…….”
    그녀는 잠시 주저했지만 결국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 모두 죽게 되는 건가요?”
    아들은 몹시 당황한다. 늙은 아내는 그런 아들을 말없이 지켜본다. 애처롭고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눈빛이다. 건주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확신한다.
    “결국, 아들이 멈추지 못하는 거죠?”
    “네?”
    “그러니까 광기에 사로잡혀서 자신까지 죽게 만드는…….”
    두 배우는 해야 할 대사를 잃어버린 얼굴들이다. 건주 역시 더는 말을 잇지 못한다. 무대 한쪽에 식탁이 놓인 걸 봤을 때부터 들었던 불길한 예감의 정체가 이것이었나 싶다. 무대가 어둠과 절망에 삼켜지게 되리라는. 그걸 지켜보는 관객이 그녀뿐이라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지만. 문득 상가 주차장 모퉁이를 돌아 티켓박스로 걸어올 때 차양 아래 서 있던 세 명의 남자 아이들이 떠오른다.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아직 거기 서 있으려나.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아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겠죠.”
    건주는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끄덕인다. 비는 언제든 그칠 수 있지만 운명이 한번 엇갈리면 돌이킬 수 없다. 한번 시작된 비극은 주인공을 철저하게 파괴하지 않으면 이 골목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그날 호빵기계를 치웠다. 화이트데이 사탕도 처음으로 진열해서 팔기 시작했다. 카운터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을 제치고 에쎄를 찾던 남자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 평소라면 그렇게 커질 일도 아닌데 고성이 오가고 주먹질로 이어지는 바람에 경찰이 호출되어 왔다. 그리고 주말오후로부터 사장이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주말오후와 함께 조문을 간 날도 하늘이 맑다고 할 수는 없었다. 건주가 맨발에 샌들 신은 걸 보고 그녀는 혀를 찼다. 그녀는 건주보다 열 살 많았고 결혼도 했다. 문상 처음 와보냐며, 돈도 보태 주지 않을 거면서, 병원 지하매점으로 끌고 가더니 검정스타킹을 사서 신게 했다. 건주가 향을 입으로 불어 끄려 했을 때는 황급하게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껐다. 아씨, 이게 대체 뭐라고.
    건주는 짜증이 났지만 삼켰다. 상주인 어린 딸과 노모에게 맞절을 하고 돌아선 뒤에야 주말오후의 인상은 펴졌다.
    평일오후를 만난 건 빈소를 빠져나왔을 때였다. 나이는 어려도 건주보다 편의점에서 더 오래 일을 했다. 그도 사장의 소식을 전해들은 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평일오후는 카운터 밑 비상벨을 눌렀고 아들의 급식 지원카드로 술을 사려던 남자를 겨우 쫓아냈다. 그러니까 그날은 경찰이 세 번이나 출동을 한 셈이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시간을 거슬러 새벽에 가장 먼저, 한 번.
    그 새벽 노모의 전화를 받고 주말오후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장이 앰뷸런스에 실려 간 뒤였다. 매일 12시간씩 그것도 야간에 일을 하면 한창때라도 못 버티고 쓰러지지 않겠냐고 주말오후는 말했다. 약을 털어 넣은 거라던데요? 수면유도제요. 평일오후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상해. 정말 그럴 사람이 아닌데……. 주말오후는 말했다. 아무리 많이 털어 넣어도 그것만으로 죽지는 않을 텐데.
    건주는 사장 대신 야간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딸아이가 복통을 일으켰다며 사장은 편의점 문을 닫지도 못하고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손님은 없었다. 이 골목의 온갖 날벌레들이 편의점 불빛을 보고 몰려왔다. 에프킬라를 한참 뿌려댄 뒤 검은 시체들을 빗자루로 쓸어냈다. 그 짓을 스무 번쯤 하고 나니까 입을 열 때마다 나오는 게 욕이었다. 건주는 그날 밤 에프킬라를 뿌리는 동안 손목에 가해졌던 압박감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건주가 마지막으로 본 사장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웃는 얼굴이었다.
    편의점 사장도 참 별거 아니네요.
    그 말을 남기기 위해 조문 온 사람처럼, 시급을 다 받지도 못했으면서 꽤나 가벼운 걸음으로 먼저 온 버스를 타고 가버렸던 평일오후의 등짝이 문득 떠올랐다.
    건주는 양손으로 허벅지를 쓸어내리며 청바지 주름을 편다. 그러고는 배우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출입문 쪽을 본다.
    “어쩌면 결말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은 건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한다.
    “마지막이니까, 한 번쯤은.”
    펄쩍 뛸 줄 알았던 늙은 아내는 말이 없다.
    “방법이 있어요?”
    근주는 무심결에 물었다.
    “이제 찾아봐야지.”
    아들의 얼굴에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떠오른다.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모두가 다 죽음을 맞게 되는 처참한 결말만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건주도 그들이 차례로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지 않아도 된다.
    “미리 생각해 둔 결말은 없다는 거잖아.”
    늙은 아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묻는다. 아들은 곧 의기소침해진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늙은 아내가 무릎을 꿇고 앉는다. 손을 뻗어 시체를 건드려 본다. 정말 죽었는지 확인해 보려는 듯. 식탁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늙은 아내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건주는 무대 한 단 위에서 아들을 보고 있었다. 아들 너머로 시체가 무대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뒤로 늙은 아내가 있었다. 그들은 대각선에 가깝게 서 있었다.
    “왜 그래?”
    우두커니 서 있던 아들이 묻는다. 늙은 아내는 아들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차라리 시체를 치워버리면 어떨까?”
    “어떻게?”
    아들은 진지하게 묻는다. 그녀가 선뜻 대꾸를 하지 못하자 아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억양 없이 말한다.
    “시체를 밖으로 옮길 수는 없잖아.”
    “왜요?”
    건주는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주제넘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문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차가 있다 쳐도, 우리 두 사람이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어. 토막을 내면 또 모를까.”
    “그것도 방법이겠네.”
    늙은 아내가 골똘히 생각에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통이 큰 고무다라를 사다가 시체를 넣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토막을 내서 냉장고에 넣을 수도 있고. 발목을 잘라서 주방 서랍에 넣어 두는 꿈을 꾼 적은 있는데.”
    “네?”
    건주가 묻자,
    “응?”
    아들은 되묻는다. 곧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문다.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침묵에 빠져든다. 약속된 동선대로 움직일 필요도 없고 약속된 대사도 이제는 없었다. 차가 없어도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만 하면 찾을 수 있다. 마음먹은 대로, 하려고만 하면 어떤 선택도 가능하다. 그 어떤 선택도 가능해진 상황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그런데 고작 이 정도가 우리한테는 다인 건지.”
    아들이 조명이 미치지 않는 어두운 무대 바닥을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무슨 소리야?”
    늙은 아내가 묻는다.
    “최악의 결말을 막는 길이라는 게 이런 거냔 말이지. 내 말은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고통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잖아. 당신과 나. 그런데도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잖아.”
    아들은 갑자기 킬킬대며 웃는다.
    “시체를 운 좋게 처리를 한다고 쳐도 발각될까 두려워하면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야 하잖아.”
    웃음소리는 울부짖음이 된다. 죽을 용기가 없다면 더 비참한 삶을 견뎌야 한다는 걸 그는 깨달아 가는 중이다.
    “내가 한 걸로 하자. 아니 이건 내가 한 거야. 넌 아직 퇴근 전이고.”
    늙은 아내가 몸을 일으키더니 말한다. 그녀는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며 아들의 손을 잡는다. 그의 손에 쥐어진 칼은 어느 틈엔가 그녀의 손으로 넘어갔다.
    “어차피 나야 너한테는 짐짝만 될 거야.”
    늙은 아내는 마른 몸에 지나치게 얼굴이 작고 마냥 연약해 보였다. 비록 분장 뒤의 얼굴은 생각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본 늙은 아내는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을 것 같은, 강단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럼 나는 어쩌라고? 죄책감으로 하루도 살지 못할 거야.”
    아들은 그녀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하지만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아 주지 않는다.
    “내가 감옥에 가는 게 맞아. 그게 순리에 맞아. 당신은 나 없이도 잘살 수 있을 거야. 남편이 죽은 뒤에도 어떻게든 살아낸, 독한 여자잖아.”
    아들은 일부러 쌀쌀맞게 말한다.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때는. 네가 뱃속에 있었으니까.”
    조명 빛을 받은 늙은 아내의 표정이 복잡해 보인다. 그때 낮은 톤에, 지극히 평범한 목소리가 무대를 울린다.
    “엄마.”
    그들 사이에 정적이 찾아온다. 무대에는 두 배우만 있는 게 아니었다. 또 한 사람, 이미 죽어서 시체가 된 아들이 그들을 죽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상체를 반쯤 일으킨다.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향한다. 강렬하게 쏟아지는 조명을 받아 번들거리는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다. 뒤를 돌아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늙은 아내를 향해 죽은 아들은 팔을 뻗는다. 칼을 달라는 손짓을 해 보인다. 늙은 아내는 꼼짝하지 않는다. 그는 팔을 좀 더 뻗는다. 그녀는 잠시 갈등하지만 결국 칼을 내준다. 그는 칼을 고쳐 쥐고 자신의 몸에 찌른다. 그제야 늙은 아내도, 아들도 그가 생각하는 게 뭔지 안다. 장애가 있는 형이 먼저 칼로 자해를 했고 동생은 이를 막으려다 사고가 난 거라면…….
    죽은 아들은 몇 번이나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피 냄새가 진동한다. 언 땅을 찍는 것처럼 손목에 힘을 준다. 팔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옆구리며, 배며, 허벅지를, 허벅지만 서너 곳을. 보다 못한 늙은 아내가 그의 손목을 잡아서야 하던 행위를 멈춘다.
    늙은 아내는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어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시체로 돌아가 바닥에 뻗어 있었다. 처음 자세 그대로. 칼을 손에 꼭 쥔 채. 모두가 원하는 배역을 맡는 건 아니다.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짐만 되는 존재를 연기한다는 건……
    그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원치 않는 배역을 맡는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들이 참고 있던 숨을 쉰다. 이제 끝이구나, 하고 건주가 생각한 것처럼 그도 생각한 것이다. 만족한 결말은 아니더라도 절망적인 상황은 피해 갔다. 잘린 발목이 주방 서랍에 들어 있는 꿈을 꾸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아들이 엄마를 죽이는 악몽을, 스스로를 죽이는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 된 거라고 건주도 그도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늙은 아내는 끝내 죽은 아들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녀는 아들의 손에 들린 칼을 자신의 가슴을 향해 가져다댄다. 한 번에 힘을 주더니 몸을 쑥 밀어 넣는다. 비어있던 가슴이 꽉 채워진 듯 비로소 안심한 얼굴이 된다. 늙은 아내는 식탁 다리에 무거워진 머리를 기댔다. 아들이 뒤늦게 다가가 그녀를 깨워 보려고 애쓰지만 감은 눈을 뜨지는 않는다. 할 역할은 다 했고 더는 미련도 뭐도 없다는 듯. 늙은 아내의 가슴에 꽂혀 있는 칼이 조명을 받으며 빛난다.
    무대는 암전되지 않았다. 엔딩을 알리는 음악도 흐르지 않는다. 건주는 혼자 남은 아들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무대를 걸어 나온다.
    건주가 무대를 빠져나와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 등 뒤에서 달짝지근하면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건주는 돌아보지 않는다. 비는 그쳤겠지. 지금쯤이면. 빗물에 젖은 불빛들로 이 골목은 얼마나 반짝일까? 비갠 뒤 밤하늘은 또 얼마나 맑을까? 날벌레들은 또 어떤 불빛을 향해 날아갈까?
    그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른 결말 같은 건 없었다. 배우들은 하나뿐인 관객을 붙잡아 두기 위해, 연극을 끝내기 위해, 약간의 연기를 더했을 뿐이다.
    건주는 가느다랗게 새어 나오는 빛을 바라보며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간다. 죽은 자들이 등 뒤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끝>

 

 

 

 

 

 

 

 

 

 

 

 

 

 

 

   

   

   

   

   

작가소개 / 이유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소각의 여왕』, 소설집 『커트』가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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