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면 외 1편 - 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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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계면(界面)

 

 

강성은

 

 

 

 

k는 죽은 후에도 가끔 산책을 한다
p는 죽은 후에도 가끔 시를 쓰고 담배를 핀다
L은 술을 마시고 꿈도 꾼다
어제는 오래 전 죽은 친구를 만나 강에서 수영을 했는데
죽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b는 살아있는 사람인 척 온종일 까페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 떠드는 사람들도
살아있는 척 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누가 죽은 사람인지 산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m은 아이를 낳고 나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은 잊기로 했다
생각해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h는 죽은 애인과, y는 산 애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기로 맹세했다
g는 죽었다가 일 년에 한 번씩 깨어나
자신의 개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다시 죽었다
z는 매일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죽어서도 이걸 먹을 수 있다면 죽음 따윈 문제될 게 없다고 확신했다
w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오직 완전한 죽음을 바랐다
한밤중 불 켜진 사무실
n은 매일 밤 야근을 했다
그러다 책상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면 다시 야근이 시작되었다
불 꺼진 시장에서 버려진 야채를 줍던 노파는
늘어선 천막과 전깃줄 위로 가득 내려앉은 검은 까마귀 떼를 보고
두려워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면
죽음이 무슨 소용인가요
가수는 노래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죽고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 노래하고
s는 어제 쓴 일기를 반복해 써내려가고
c는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을 매일 베껴 적는다
불행한 일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불운한 날들이 빛처럼 쏟아져 내려도
도시가 잠기도록 비가 내려도

 

 

 

 

 

 

 

 

 

 

 

 

 

 

 

장마

 

 

 

 

천사의 맨발과 악마의 장화
둘 다 갖고 싶었다

 

쏟아지는 장대비에 이리저리 떠내려갔다

 

물 위에 피로 글씨 쓰는
흩어지는 마음

 

잡동사니가 익사체처럼
강으로 흘러가는 걸 보았다

 

햇빛 속에서 나는
없는 사람이 되려고
없는 세계를 믿으며

 

 

 

 

 

 

 

 

 

 

 

 

 

작가소개 /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이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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