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게임을 한다 – 언더테일 1 - 염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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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게임을 한다

– 언더테일 1

 

 

염성진

 

 

 

 

이야기의 체험

 

    우리가 게임을 평가할 때 꼽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흔히 게임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굉장히 모호한 단어이다. ‘여타 게임에 비해 그래픽의 질은 떨어지지만 게임성은 뒤지지 않는다’,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의 게임이지만 한번 접하면 그 게임성에 빠져들게 된다’ 등의 평가들은 게임이 굴러가는 방식인 시스템과 장르에 대한 총체적인 의견인 경우가 많다.
    반면 서사는 어떨까. 게임의 서사, 즉 스토리도 이것에 포함될 때가 많지만, 우리는 스토리가 좋은 게임을 표현할 때 ‘한 편의 영화 같은 게임’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 말은 게임이 영화보다 한 수 아래라는 느낌을 주지만, 여기서는 게임 속의 이야기가 충분히 위력적이고 재미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영화를 보고 느꼈던 것들처럼 게임을 하고 나서도 서사에 대한 감상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토리는 게임의 재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곧 소설을 읽는 것이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게임을 하는 것도 동등한 서사의 소비라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 시장이 나날이 커져 가고 발전하는 것도 이 ‘게임 서사’가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소설과 영화와 달리 게임이 가진 독보적인 특징은 서사를 진행시키는 주체가 콘텐츠를 감상하는 사람, 즉 플레이어라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각 게임의 규칙에 따라 스토리의 핵심 인물이 되거나, 스토리 속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는 이방인 등으로 설정되어 게임을 ‘겪게’ 된다. 자신의 조작이, 즉 행동이 게임의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능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몰입시키는 장치가 게임에는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셈이다.
    때문에 나는 소설과 영화 못지않게 게임에 빠져 있다. 앞으로 내가 감명 깊게 플레이했던 게임들을 소개하면서, 그 게임이 왜 재미있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게임식 낯설게 하기

 

    언더테일은 흔히 ‘고전게임’이라고 부르는 옛날 게임들의 도트 그래픽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모험을 그린 1인 제작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에봇 산이라는 곳의 지하에 떨어진 아이를 조종하게 되며, 인간이 친 결계 속에 갇힌 괴물들이 살고 있는 지하 세계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이다. 플레이어는 간단한 인트로 영상을 본 후 귀여운(?) 우리 주인공의 모습을 처음 접하게 된다. 게임을 구매할 때 본 소개처럼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험난한 모험의 요소들 – RPG게임(롤플레잉 게임)에 꼭 등장하는 앞을 가로막는 적이나 장애물 따위의 것들 – 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플라위, 토리엘과의 만남

 

    처음 만나는 생명체인 노란 꽃은 자신을 플라위라고 소개하며, 앞으로 펼쳐질 게임의 기본적인 조작법을 설명해 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플라위는 영혼의 강함인 LV를 알려주고, 이것이 RPG게임의 레벨(Level)이라는 개념이 아닌, ‘LOVE’라는 말을 하며 ‘LOVE’를 나눠주겠다며 ‘친절 알갱이’를 뿌리는데, 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이것은 주인공을 죽이려는 ‘공격’이다. ‘세상은 죽거나 죽이거나’라는 플라위의 말에 플레이어는 게임 시작부터 당황하지만, 곧 토리엘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주인공을 구해 주게 된다. 이후 게임은 플레이어를 지켜주겠다는 토리엘을 따라 고대의 퍼즐 장치들과 괴물들이 사는 폐허를 모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언더테일은 플레이어가 가진 게임의 편견을 깨부수려 한다. 폐허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괴물들이 주인공을 덮치는데, 여기서부터 플레이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괴물들은 우연히 마주치거나,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는 등 여러 사정으로 주인공과 대면하게 되며, 플레이어는 이때마다 이들과 싸우거나 특정한 행동을 취하여 죽음을 모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괴물들이 싸움을 원치 않으면 자비를 보여 달라’고 말하는 괴물이 있기는 하나, 플레이어에게는 얼마든지 그들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괴물을 죽이지 않고 다른 행동을 취할 경우, LV는 오르지 않으며 괴물들은 만족하거나 도망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투를 끝내게 된다. 반대로 괴물을 죽이면 우리가 대부분의 게임에서 접한 ‘경험치’로 알고 있는 개념인 EXP가 오르며, LV가 올라 체력이 늘어나는 등 게임이 수월해지게 된다.

 


전투의 방식

 

    하지만 플레이어는 이미 괴물을 죽이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자연스레 게임의 구조가 달라진다. 누구도 죽이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괴물만 죽이거나, 모든 괴물을 죽이거나. 그러나 우리, 플레이어는 오랜 시간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저 게임이니까. 플레이어는 쉽사리 게임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결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게임은 어떤 괴물을, 얼마나 죽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네가 한 일을 알고 있어

 

    폐허의 끝에서 플레이어는 토리엘의 ‘집’에 도달하게 된다. 토리엘은 지하 세계를 빠져나가려 하면 괴물들의 왕 아스고어가 주인공을 죽이려 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과 함께 폐허에서 살자고 한다. 실제로 토리엘의 집에는 주인공을 위한 빈방도 있는데, 방에는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작은 신발들이 많이 있다. 폐허의 출구와 연결된 집의 지하로 향하면 대뜸 토리엘이 길을 막아서는데, 그럼에도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끝내 토리엘은 지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함을 증명해 보라며 싸움을 건다.
    이 전투는 첫 번째로 플레이어가 맞이하는 ‘주요 캐릭터(보스)’와의 싸움이기에 언더테일의 서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폐허를 지나며 지금까지 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플레이어는 쓰러뜨려 온 괴물들과 달리 특별한 캐릭터인 토리엘이 쉽게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전투에 임한다. 이 생각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방에서 본 장난감과 신발들이다. 이전에도 아이들이 이 집에 있었다는 뜻인데 모두 어디에 간 것인가? 플라위처럼 토리엘 또한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의심이 플레이어를 싸우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토리엘이 진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고 믿는다 하더라도 플레이어는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여기에는 ‘모험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인정받기 위한 시련의 과정’이라는 RPG게임의 클리셰 중 하나가 크게 작용한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고, 보호자 내지는 스승에게 인정받아 모험을 시작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하지만 언더테일은 이러한 생각들마저도 깨끗이 무시한다. 토리엘을 죽이려 하든 안 하든, 전투는 다른 괴물들과의 싸움과 똑같아서 일정 피해를 입으면 토리엘은 죽는다. 토리엘은 아스고어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말라고 당부하며, 주저앉은 채로 이내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플레이어가 토리엘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면 이 장면은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도망치려고 해도 더 이상 게임이 진행되지 않고, 다른 괴물들처럼 빈사 상태로 몰아붙여 보아도 전투를 끝낼 수가 없다. 토리엘을 살리려면 공격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살려주기’를 선택하며 대화를 계속해야 하는데,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이 이것을 알 턱이 없다. 마치 게임이 토리엘을 한 번은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해답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전투가 끝나고 폐허의 출구에서 플레이어는 플라위를 다시 만난다. 이때 폐허에서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 플라위의 말이 달라지는데, 토리엘을 죽였을 경우 ‘죽거나 죽이거나’의 법칙을 깨려 했던 토리엘을 비웃는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폐허의 끝에 도달했을 때

 

    만약 여기서 토리엘을 살리기 위해 전투 이전의 ‘세이브 파일’을 불러온다면? 시간은 되돌려지고 플레이어는 어떻게든 토리엘을 살릴 방법을 궁리해서 전투를 끝내겠지만, 놀랍게도 플라위는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리기 이전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 듯 말을 한다. 세이브와 로드, 게임 속에서 이것은 ‘의지(Determination)’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지하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세이브 포인트’에서 게임 상황을 저장하려 할 때마다 ‘당신은 의지로 가득 찼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은 게임의 상황을 저장하는 세이브의 과정 또한 게임의 일부임을 의미한다. 이 의지의 힘은 대부분의 괴물들이 인지하지 못하나 강한 괴물이나 플라위 같은 몇몇 캐릭터들은 이를 느끼고 있으며, 때문에 이미 플레이하여 지나왔던 시간들을 불러오면 게임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게 된다. 언더테일은 이렇게 기존의 게임에 대한 상식이나 편견을 깨는 것은 물론, 게임을 게임으로 만드는 특징적인 요소들 자체를 게임 세계의 일부로 취급하려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메타픽션처럼, 메타게임인 셈이다.
    어찌 되었든 게임의 데모 버전으로 공개된 적 있는 폐허 지역을 지나고 플레이어의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눈 덮인 마을 스노우딘, 폭포소리로 가득한 워터폴, 용암이 끓는 핫랜드를 지나 우리의 주인공은 지하 세계의 출구를 지키고 있는 괴물들의 왕 아스고어를 만나러 간다. 모험의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뼈다귀 파피루스, 왕실 근위대의 수장 언다인, 과학자 알피스, 로봇 메타톤 등 다양한 종류의 괴물들을 만나고, 점차 모든 괴물이 인간인 주인공을 해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괴물들의 삶에는 유머가 가득하며, 인간 개인의 영혼은 괴물 전체를 합친 것보다 강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플레이어는 게임을 자연스럽게 평화적인 방식으로 즐기게 된다. 이 괴물은 어떻게 해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식으로 고민하면서 말이다. 애초부터 괴물을 죽일 마음이 없었다면 더욱 그렇다. 실수로 토리엘을 죽인 적 있다면 더더욱.

 

 

 

피할 수 없어도 피해라

 

       워터폴을 지나면서 플레이어는 괴물들을 가둔 지하 세계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과 괴물의 전쟁은 죽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인간의 영혼을 취하는 능력을 가진 괴물들을 두려워한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일으켰으며, 더 강한 인간 측의 학살에 가까웠다는 것. 항복한 괴물들을 봉인한 결계는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지만 강한 영혼을 가지지 않았다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 이 결계를 부수려면 일곱 인간의 영혼과 같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 워터폴의 끝에서는 왕실 근위대를 이끄는 언다인이 싸워야 하는데, 언다인은 이미 괴물들에게 여섯 인간의 영혼이 있다면서 플레이어를 죽이려 한다. 지금까지 게임을 평화적으로 이끌어 왔다면, 여기서 한 번 진행이 막힐 수밖에 없다. 언다인은 괴물들의 자유를 위해 포기하지 않는 괴물들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는 영웅 언다인

 

    결국 언다인은 플라위가 말한 ‘무자비한 살인마’ 중 하나인 셈이다. 언다인은 전투에 돌입하기 전 주인공이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말을 하며, 때문에 언다인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것 외에 전투는 끝낼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수차례 죽어 게임 오버를 맞이하고 갈등하게 된다. 워터폴의 끝에서 펼쳐지는 이 전투에서 언다인을 죽이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언다인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쳐서 핫랜드에 도달해야 한다. 갑옷을 입은 물고기인 언다인은 핫랜드의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는데, 플레이어는 정수기에서 물을 떠 언다인에게 뿌려 줄 수 있다. 이윽고 깨어난 언다인은 말없이 주인공을 두고 물러난다.
    계속 도망쳐야 한다는 선택지는 플레이어에 따라 굉장히 찾기 힘든 정답일 수 있어서, 게임이 너무 ‘불친절한 것 아니냐’는 불만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플라위의 말을 자연스럽게 곱씹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노우딘까지의 즐거웠던 모험이, 인간과 괴물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인간이 괴물을 봉인한 이상, 게임이 마냥 유쾌하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암시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언다인에게서 도망친 플레이어는 모험의 끝을 상상해 보게 된다. 괴물들의 언급에 따르면 왕 아스고어는 마음씨 좋고 친절한 괴물이라는데, 과연 인간인 주인공에게는 어떨지. 파피루스는 왕께서 친절하게 출구까지 배웅해 줄 것이라고 하지만, 결계를 부술 일곱 번째 영혼을 가진 주인공을 그냥 보내줄 리가 없다.

 

 

 

Show must go on

 

    핫랜드에는 왕실 과학자인 알피스의 연구소가 있다. 알피스는 감시 카메라들을 통해 주인공을 지켜보아 왔고 막으려 했지만, 자신은 ‘나쁜 녀석’이 아니라면서 주인공의 싸움과 우정을 응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핫랜드를 지나가도록 도와주겠다는 알피스 앞에 돌연 전투 기능이 폭주한 ‘로봇 TV 스타’ 메타톤이 나타나고, 목숨을 건 퀴즈 쇼가 열린다. 답을 알려주는 알피스 덕에 플레이어는 무사히 퀴즈를 맞혀 나가지만, 이 사실을 안 메타톤은 쇼가 재미없어졌다며 가버린다. 정신없는 상황이 지나간 후 알피스는 주인공의 휴대전화를 최신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며, 전화번호를 주고는 사라져 버린다.
    지금까지 핫랜드의 퍼즐들은 모두 작동을 멈춘 상태였는데, 주인공이 나타난 뒤로 갑자기 퍼즐이 작동되었다며 괴물들은 당황하고 있다. 알피스는 이 퍼즐들을 해킹하거나 힌트를 주어 주인공을 돕는다. 재미있는 점은 핫랜드를 모험하는 중 지하 최고의 SNS 서비스가 가입된 휴대전화를 통해 알피스의 ‘상태 업데이트’가 계속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 상태 업데이트로 그녀가 소위 말하는 ‘오타쿠’임을 알 수 있으며, 소심한 성격에 주인공에게 전화를 주저하는 모습들도 모두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이라며 쓰레기통 사진을 올리는 등 단순히 소심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행동들도 보인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휴대전화의 알림으로 게임의 진행이 멈추는 것과 그것이 관심을 갈구하는 듯한 SNS 게시글이라는 점에서 알피스의 행동들이 달갑지 않다고 하지만, 어쨌든 알피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쇼를 위해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는 메타톤으로부터 주인공을 구하면서 그녀 스스로도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메타톤의 ‘뮤지컬 언더테일’

 

    메타톤은 다양한 TV쇼의 형태로 주인공을 괴롭힌다. 요리 쇼, 뉴스, 뮤지컬, 전투까지. 매 순간 극적으로 알피스에게 도움을 받는 주인공을 보고 메타톤은 ‘영리한 알피스 박사의 도움’을 받았다며 분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플레이어의 의심을 살 만한 요소가 너무 많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위급상황마다 개조된 휴대전화에서 비행을 위한 제트팩이, 폭탄 해체 기능이 튀어나온다. 이외에도 말을 자꾸만 버벅대는 알피스, 대신 그것을 말해 주는 메타톤, 풀이에 실패해도 주인공을 바로 죽이지 않는 함정들 등. 플레이어는 이 ‘어색한 쇼’들을 넘어 마지막 관문인 코어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주인공을 또 한 번 가로막는 메타톤을 만나고, 핫랜드에서의 진실은 여기서 밝혀진다.
    메타톤은 자신이 오작동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이 쇼였다고 고백한다. 핫랜드에서의 일들은 알피스가 주인공의 여정에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퍼즐을 다시 작동시키고 메타톤으로 주인공을 공격한 것도 모두 알피스가 만든 난관이었고, 있지도 않은 위험에서 주인공을 구출해서 조력자의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 메타톤은 알피스가 곧 찾아와 자신을 정지시키고 주인공의 ‘영웅’이 될 것이라면서, 관중들을 위한 ‘반전 있는 쇼’를 위해 알피스가 올 문을 잠그고 전투에 돌입한다.
    메타톤은 공격이 먹히지 않는 로봇이라 약점을 찾아야 하는데, 등 뒤의 스위치를 누르면 인간 형태인 메타톤EX로 변하며 하트 모양의 핵이 드러난다. 알피스가 전화기에 심어 둔 총 기능을 이용하여 이것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것이 목표이다. 인간의 영혼으로 지상에 나가 스타가 되기 위해 주인공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메타톤. 게다가 이 ‘쇼’는 정말로 괴물들에게 방송되고 있기 때문에 시청률이라는 수치가 전투상에 존재한다. 전투는 이 시청률이 일정 수치를 달성해야 끝이 나며,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념하는 전화 이벤트가 열린다. 여기서 메타톤은 쇼의 마지막 화에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의 말을 듣고 괴물들을 위한 스타는 자신뿐이라며 지하에 남아 있겠다고 마음을 바꾼다. 지하 세계에 갇혀 있는 괴물들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메타톤은 이미 희망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어 주인공의 강함을 인정한 메타톤은 방전되며, 게임은 엔딩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왕의 성 입구에서 알피스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결계는 인간의 영혼만으로도 지나갈 수 없으며, 인간 하나와 괴물 하나의 영혼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고 싶다면 왕 아스고어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의 끝에는

 

    마침내 왕의 성에 도달한 플레이어는 토리엘의 집과 똑같은 모양의 집을 발견한다. 폐허를 빠져나가던 것과 같은 모양의 출구로 나가다 보면 괴물들이 지하에 맨 처음 떨어진 인간의 이야기를 해준다. 왕의 가족이 그 아이를 가족처럼 여기고 길렀지만, 큰 병에 걸린 아이는 결국 죽고 말았다. 자신이 살던 마을의 꽃을 보고 싶다는 아이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친구였던 왕자 아스리엘이 그 영혼을 흡수해 주검을 들고 마을까지 찾아가지만, 괴물이 아이를 죽였다고 오해하는 마을 주민들에게 공격당하다 돌아와 죽게 되었다. 순식간에 두 자식을 잃은 왕은 비통에 빠져 떨어지는 모든 인간을 죽이고 다시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 선포했다는 이야기. 왕이 인간을 죽여 영혼을 모으려 했던 이유 역시 인간이었던 사실을 깨달은 플레이어의 마음은 무겁다. 아무도 죽이지 않아 왔다면, 이번이 진짜 ‘싸움’이고 ‘살인’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게임’이기에, 플레이어는 역시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제 끝, 엔딩을 향해 가고 있지 않은가.
    왕을 만나기 전, 신비롭게 생긴 통로에서 플레이어는 뼈다귀 샌즈를 만난다. 늘 게으르고 엉뚱한 생각과 썰렁한 개그를 좋아하는 그가, 돌연 주인공을 막아서고 지금까지 얻은 EXP에 대한 ‘심판’을 행한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게임 시스템의 전말을 알게 된다. EXP는 처형 점수(EXecution Point)의 약자이고, LOVE는 폭력 수치(Level Of ViolencE)였던 것. 이어 샌즈는 남을 죽일수록 자신에게서 멀어지며, 자신에게서 멀어질수록 덜 상처받아 남을 해치기 쉬워진다고 말한다. 이후에는 주인공의 EXP와 LV에 따라 대화가 다르지만, LV가 19 미만인 경우 샌즈는 물러나며 이후 정원에서 아스고어를 만날 수 있게 된다.

 

LV 1 EXP 0의 심판

 

    제작자가 게임의 편견을 비틀면서 했던 생각이 이 심판의 과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레벨(LV)과 경험치(EXP)에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에 무게를 두었다고 해야 하나. 게임 도중 의아했던 샌즈의 행적이나 뜬금없는 심판, 그리고 이것에 담긴 의미 등은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고, 우리는 일단 우리의 엔딩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알현실이면서 동시에 정원인 곳에서 왕 아스고어는 꽃에 물을 주고 있다. 자신을 만나러 온 자가 인간임을 안 아스고어는 주인공을 결계로 이끈다. 이후에는 당연하게도 전투가 펼쳐지며, 시작과 동시에 아스고어는 전투 화면에서 ‘자비 버튼’을 부숴버린다.

 


자비가 부서지는 장면

 

    이후 플레이어는 ‘자비가 없는’ 싸움과 맞닥뜨린다. 언다인과의 전투와 비슷하게, 아스고어가 싸움의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죽거나 아스고어가 죽어야만 게임이 끝난다. 게다가 이 싸움에는 자비 버튼이 부서졌기 때문에 도망친다는 선택지 또한 없다. 주인공이 죽으면 ‘게임 오버’이기에, 게임의 진행을 위해서 플레이어는 아스고어를 공격해야만 한다. 플레이어에게 이것이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첫 번째 싸움이라면 많은 고민을 하겠지만,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다른 괴물들과 다르게, 아스고어를 쓰러뜨리면 그는 죽지 않고 주저앉아 주인공에게 심경을 전한다. 인간과 괴물 사이의 관계에 희망적인 역할을 했던 아이와 자신의 아들이 죽어서, 괴물들의 희망을 위해 영혼을 모으고 전쟁을 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자신은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았다고. 아스고어는 자신이 결계를 넘어 인간을 죽이고 영혼을 모으려 하지도 않고, 그저 지하로 떨어진 인간의 영혼을 모으겠다고 했기에 아내인 왕비는 자신을 역겨워하며 떠났다고 한다. 자신을 죽이고 이곳을 떠나라는 그의 앞에, 다시 선택지가 나타난다. 여전한 공격과 금이 가 있는 자비. 전투의 주도권이 플레이어에게 넘어왔기에 이제야 자비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비를 선택하면 아스고어는 남아 있는 동안 자신이 가족처럼 주인공을 돌봐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 감동도 잠시, 갑자기 플라위가 나타나 아스고어를 죽이고, 세상은 ‘죽거나 죽이거나’라고 부르짖으며 그가 가지고 있던 여섯 인간의 영혼을 흡수한다. 그리고 게임이 난데없이 강제로 종료된다. 아스고어를 죽인다고 해도 똑같다. 왕의 영혼이 쪼개지려는 찰나 플라위가 한 번 더 공격을 가하고 상황이 이어진다.
    갑자기 꺼진 게임에 당황스러워하며 다시 게임을 켜면, 게임 프로그램의 이름이 ‘플라위테일’로 바뀌어 있고, 인트로 영상이 깨지면서 주인공의 세이브 파일이 삭제된다. 곧바로 플라위는 영혼을 흡수한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고,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리는 의지의 힘 – ‘저장하기’와 ‘불러오기’ – 을 빼앗긴 채로 싸워야 한다. 전투는 기존의 턴제 방식과 다르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기괴한 공격들을 피하며 흡수당한 여섯 인간의 영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플라위는 게임의 시간을 저장했다가 불시에 불러오는 식으로도 공격하는데, 게임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는 느낌까지 준다. 죽게 되면 의지를 다지자는 게임 오버 화면이 플라위의 조롱으로 변하며 게임이 또 종료되고, 재시작시에는 몇 번 죽여서는 성에 차지 않는다며 싸움이 이어진다. 모든 영혼에게 도움을 받게 되면 플라위의 방어력은 0이 되며, 공격이 유효해지고 쓰러뜨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플라위는 이전의 세이브 파일을 불러와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이후 플레이어를 공격해 죽이는 장면을 저장하고 불러오는 일을 반복하는 플라위. 플레이어는 순식간에 여러 번의 죽음을 겪고 마침내 폐허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피할 수 없는 총알에 둘러싸이지만, 여섯 영혼이 주인공을 위해 반항을 일으키면서 플라위는 자멸하고 만다.

 

 

 

어떤 엔딩

 

    이후에는 쓰러진 플라위 앞에 아스고어의 최후와 똑같은 선택지가 나타난다. 공격을 선택하면 플라위는 ‘그럴 속셈일 줄 알았다’며 평범한 꽃이 된다. 자비를 선택하면 교훈 같은 것은 얻지 않았다며 자신을 살려 준다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이라고 협박한다. 그럼에도 계속 자비를 선택한다면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플라위는 도망친다. 결국 결계도 나갈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주인공의 미래는 알 수 없는 채로 게임이 끝난다. 이후 샌즈에게 전화가 한 통 오는데, 주인공이 사라져 버린 이후 죽지 않은 괴물들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전달되는 것으로 게임은 정말로 엔딩을 맞이한다.

 


아무도 죽이지 않은 노말 엔딩

 

    게임의 마무리가 시원치 않다. 한 번의 플레이로 플레이어는 언더테일 세계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1회차 플레이에서 플레이어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게임의 개념들은 언더테일 속에 실재하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게임을 세이브해서 시간을 되돌리면 이를 세계가 감지하고 있고, 게임 오버에서 다시 죽음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것 역시 ‘의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기존의 게임들에게서 배워 온 개념들을 하나하나 재정립하는 과정이 1회차 플레이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플라위를 죽이지 않는다면 ‘더 나은 엔딩’을 위한 힌트를 얻게 되는데, 이 엔딩에는 기본적으로 아무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결국 언더테일 세계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2회차 플레이, 즉 반복이 필요한 셈이다. 이미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면 엔딩 이전의 파일을 불러오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언더테일 ‘플레이어의 시간’을 기억하고 회차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반복은 지루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해피엔딩을 위해 게임을 다시 진행한다. 나는 이 마음가짐을 ‘게이머의 자세’라고 부르고 싶다. 한번 시작한 게임의 끝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게임 캐릭터도 인격과 동등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언더테일의 매력과 얽혀 더욱 커진다. 게임 도중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의지를 다져 가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게이머의 힘은 여기에 있다. 물론 게임을 클리어하고 싶다는 욕구는 플레이어마다 제각각 다르다. 단순히 게임의 완전한 공략이 목적일 수도, 게임의 서사에 몰입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목적은 하나, 게임의 ‘어떤 엔딩’에 있다. 1회차 플레이인 ‘노말 엔딩’은 이러한 플레이어의 엔딩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이어서 다른 엔딩을 위한 플레이의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언더테일은, 이 힘을 ‘의지’라고 부르고 있다. 이 또 다른 엔딩인 불살 엔딩(평화 엔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작가소개 / 염성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국어국문학과
글을 쓰고 싶고, 음악을 하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습니다.

 

   《문장웹진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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