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보이는 일, 시를 쓴단 걸 보이는 일 - 박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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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스페셜_에세이]

 

 

시를 보이는 일, 시를 쓴단 걸 보이는 일

 

 

박재희

 

 

 

 

어쩌다 시를 쓰게 된 지 막 일 년 가량이 된 습작생에겐, 시평이 조금 간절해졌다. 그 간절함 안에는 뭔가 단점을 지적받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도 이정도면 칭찬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우쭐거림이 반쯤 뒤엉켜 있었을 테다. 그러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이 그 고민과 답변들 자체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어느 사이트에 올라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간절해진 시평이 그곳에서 가능하겠다는 것도 이내 곧 알게 되었다.

 

알게 된 직후 바로 시를 올린 것은 아니다. 시평이 간절해졌어도 막상 누군가의 앞에 시를 보이는 일이 조금 망설여지는 건 여전했기 때문이다. 아마 몇번의 퇴고를 거쳐 조금 쑥스러운 마음으로나마 좋아하게 된 내 자신의 시에서, 무수히 많은 티를 보고만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어떤 예감이 왔다. 하지만 그건 어차피 언젠가는 겪을 일이었다. 나 혼자만 볼 생각이었다면 아마 일기를 썼을 테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이게 내가 쓴 시이다, 하고 내보일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맨 처음 보인 건 그때로부터 일 년 가량 전인 사월 어느 날 처음 구상해서, 몇 차례 퇴고를 거친 시였다. 그리고 역시나, 시평을 받고 나니 내 둔한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흠집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예전처럼 그 시에 대해 하찮은 자부심이나마 갖는 게 힘들어졌다. 그리고 연달아 올린 다른 습작들에 대해서도 곧 그렇게 되었다.

 

나는 조바심에 그 달 처음 올린 시를 급하게 퇴고하여 다시 올렸다. 그때는 중간고사를 전후하고 있었고 시평이 올라온 날은 시험 첫 날이었다. 나는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시평을 확인했으나, 이번에도 영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다음날 과목을 준비해야 하는데 괜히 기운이 빠져서 화장실에 한참이나 혼자 앉아서 내 습작과 시평을 속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냥 이 정도 평을 받고도 이렇게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내가 너무 약한가, 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약하고 타인의 평에 민감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시평은 내가

 

그래도 다른 사람의 눈에 내 글이 어떻게 보였는지를 보게 됨으로써 나는 내 안에 전보다 객관적인 관찰자를 기르게 되었다. 분명 나의 눈 안에서는 한없이 명료한 의미를 가지는 표현이 혹시 다른 사람 앞에선 모호하지는 않는지, 또, 내 안에서 한없이 근사하고 독특한 표현이 다른 사람, 특히 나보다 다른 시를 많이 읽어온 사람의 눈에선 상투적이 되지는 않는지 한 번 더 멈춰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찰자에게 끼니를 챙겨주듯 꼬박꼬박 시집을 몇 권 찾아 읽고 또 내 또래 습작생들의 시를 읽고 그들이 어떤 시평을 받는지를 지켜보았다.

 

몇 편의 시와 그에 대한 평을 먹고 나서 더 성장한 관찰자는 어떤 식으로 시를 고쳐나가야 할지 약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너’를 시행에 호출할 땐 그게 누구인지 모호하진 않은지, 필요도 없는 어려운 한자어를 괜히 사용하고 있는지는 않는지, 다른 표현으로 바꿀 수 있을 때조차 직유를 너무 많이 쓰고 있는지는 않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또, 읽는 사람은 공감하지도 못하는데 나 혼자 목소리를 높여 주절대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고 목소리를 낮추는 때도 있었다.

 

그렇게 어쩌다 정말 괜찮은 평을 받게 된 어느 날,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기뻤다. 사실 나는 이공계통의 특목고에 재학중인3학년 학생이었고, 내 주변 누구도 내가 시를 쓴다는 일이 그닥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시를 쓰고 싶다고, 문창과 출신의 지인 한 분에게나마 더듬더듬 털어놓고 몇 권의 시집과 수업 때 있던 이야기를 듣곤 해왔다. 쓰면서도 이게 제대로 되어가는 일인지, 내가 계속 써도 괜찮은지에 대해 수십 차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시를 보임으로써, 시를 보여 어떤 평을 받음으로써, 또 그 평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나는 비로소 내가 시를 씀을 누군가에게 보이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조금 투명해지고 단순히 시를 쓰고 싶다는 털어놓았던 이야기들은 구체적으로 어디가 잘 되고 안 되는 것 같은지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었다. 첫 상금으로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시집을 가득 담았다. 학교 기숙사로 받은 커다란 택배 박스를 내가 들고 오는 걸 보며 웬 책을 그렇게 샀냐고 묻는 후배에게 시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를 쓰고 평을 받으며 짧은 환희와 절망을 반복하며 한 해를 보내고 스무 살이 되어 더 이상 같은 곳에서 시평을 받을 수 없어 합평이라도 할 수 있는 다른 자리를 찾아보던 무렵,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 해 간의 글을 모아 새로 받은 시평 안에 나의 담담한 목소리를 누군가 들었음을 안심했다. 그리고 시상식 날, 상을 받으러 앞으로 나가며 새삼 내가 시를 썼기에 이 자리에 있음을 생각했다.

 

상금의 일부를 써서 머리를 카키색으로 물들이고 시를 쓰는 일과 관련하여 많은 도움을 주신 그 지인분께 밥을 샀다. 머릿결은 많이 상했고 그간 받은 도움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함께한 저녁 식사에서는 수상을 축하한다며 도리어 선물을 받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일들을 노트 한 구석에 기록하고 괜찮은 문장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시평은 첫 상금으로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가득 담았던 시집들처럼, 어떤 식으로든 내 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지금에 와서는 시를 쓰고 있다, 연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부끄러움 없이. 어떤 가책 없이. 서점에서 망설임 없이 시집을 사고, 대학 동아리 박람회에서 문학 동아리 부스에 다가가 가입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또 정말 가까운 동생에게 정말 간절히 이루고 싶은 게 하나 있다면 시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 모든 일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비로소, 나는 시를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되었다.

 

 

 

 

 

 

 

 

 

 

작가소개 / 박재희

1999년생. 2016년도 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시 부문 수상자

 

   《문장웹진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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