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을 도는 여자들 - 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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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트랙을 도는 여자들

 

 

차현지

 

 

 

 

    303호가 나간대.
    요즘 머리숱이 빠져 큰일이라는 사장님의 정수리 부근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흘러나온 말이었다. 름이가 사는 빌라에서 한 블록을 지나쳐 왼쪽 모퉁이에 있는 지구인 슈퍼 앞에 나란히 서서 갈아 만든 배 주스를 마시던 중이었다. 햇살이 정수리 중앙보다 약간 비낀 채로 쏟아졌다. 사장님은 파라솔 안쪽으로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지만 름이는 괜찮다며 멀찌감치 서 있었다. 아이스크림 냉동고 팬 밖으로 내뱉는 뜨거운 바람이 계속 정강이를 달구었다. 일백 퍼센트 과즙이라는데, 그러기엔 너무 달지 않아? 내가 저녁마다 끼니를 챙기고 나면 무조건 배를 잘라 먹는데, 소화 잘 되라고, 근데 꼬박 일 년을 먹었는데도 이만큼 다디단 배를 물어 본 기억이 없어. 사장님의 말이 끝나자 진분홍 꽃잎이 그려진 양산을 들고 있던 아주머니가 손끝으로 사장님의 어깨를 툭 쳤다. 생 거 아니면 뭐가 들어 있는 게 당연하지. 름이의 어깨보다 폭이 좁은 양산을 들춰 쓴 아주머니는 이천년대 초반에 잠시 유행하다가 사라진, 프릴이 잔뜩 들어간 볼레로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안 그래도 짧은 상의가 팔뚝 살에 묻혀 더 작아 보였다.
    아주머니는 그날 일어난 사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싫은 눈치였다. 삼십 년을 넘게 살아 온 동네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그런 흉흉한 말이 나도는 걸 원치 않았다. 클로버 부동산 사장님 역시 매스컴에 노출되어 괜한 소란으로 집값이 떨어질까 염려했다. 별스러운 일도 아닌 거 갖고 야단이야. 딴 동네는 소리 소문 없이 주기적으로 생겨.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사장님 말로는 사람이 모여 사는데 죽이고 죽는 일들은 끊임없이 생기고, 그게 곧 사람 사는 모양새라는 것 같았다. 한껏 목을 뒤로 젖혀 주스를 탈탈 털어 넣더니 입가에 묻은 배즙을 단숨에 닦아낸 사장님은 어쨌거나 자기도 조심해, 라며 름이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여자 혼자 사는 게 뭐 쉬운 일인 줄 알아? 때 되면 시집가는 거 딱히 뭐 없어. 외로운 건 둘째치고 안전해야 할 거 아냐. 제 몸은 제가 챙겨야지. 방 보려면 얼른 와, 금세 빠지니까. 문단속 잘하고.
    사장님과 볼레로 아주머니는 다 마신 주스 병을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큰길 쪽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교차로 앞에서 무단횡단을 하기 위해 차들을 살피는 진분홍색 양산이 점차 멀어졌다. 내 몸은 나만이 지킬 수 있되, 안전을 위해서라면 혼자 살아서는 안 된다는 모순은 또 뭐야. 름이가 그들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철물점에서 키우는 개가 배를 보이고 드러누워 한적하게 볕을 쬐고 있었다. 주중의 한낮에는 그 개처럼 하릴없는 사람들이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간혹 계절을 알리는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번졌다. 지겨울 정도로 한적한 골목에서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건 꽤나 레어한 일이라고 름이는 생각했다. 그러다가는 살인 사건을 레어하다고 말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 고민했다. 얼마간 그런 생각에 빠져 있자 잠결에 들었던 여자의 비명이 환청처럼 귓속을 맴돌았다.
    비명과 외침이 뒤섞여 담벼락을 뚫고, 이중 새시를 뚫고, 자고 있던 름이의 귓가에 닿을 때까지 여자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소리를 내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분명 302호 부부가 또 싸우는 거라고, 아니 안 맞으면 애초에 찢어지든지 왜 다 큰 고등학생 자식들 앞에서 하루가 멀다고 야단인지 알 수가 없다고, 름이는 손바닥으로 귀 두 쪽을 막고서 한참을 뭉개고 있었다. 한데 계속 듣고 보니 어쩐지 비명 섞인 외침은 건물 내부가 아니라 바깥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소리의 출처를 유추하던 름이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는 조심스럽게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탓에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맞은편 가정주택 담벼락에 무언가가 있었다. 안경을 집어 들고 다시 창문 밖을 향했다. 무언가가 아니고, 사람이었다. 담벼락에 기대어 반쯤 쓰러진 여자가 보였다. 땅바닥에 닿은 옆구리 부근에서 물줄기가 길게 하수구 쪽으로 흘렀다. 그게 물줄기가 아니라 핏자국이라는 건 해가 뜨고 나서야 알았다. 얼마 안 있어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연달아 골목길을 가로막았다. SUV 한 대가 들어가기에도 버거울 만큼 좁은 골목길에는 신축 빌라 하나, 연립주택 넷, 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이층집과 카페로 개조한 삼층짜리 건물이 맞닿아 있었다. 름이가 사는 빌라만 하더라도 가구 수가 열넷,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은 서른여덟 명. 분명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지만, 골목길에 맞닿아 있는 건물에 사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바깥으로 나와 보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름이처럼 다들 창밖을 숨죽여 내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어슴푸레한 사위가 점점 볕으로 뒤덮이자 건너편 이층집 문이 빠끔히 열리고 할머니가 담벼락 너머를 내다보는 게 보였다. 출근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차를 빼야 하는데, 하며 난감한 표정을 띤 얼굴들이 보였다. 뒤이어 동일한 색의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골목을 헤집듯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점퍼 뒤에는 하얀색의 고딕체로 국립과학수사대라고 적혀 있었다. 바깥에서도 훤히 드러나 보이는 연립주택 층계참은 경찰, 구급대원, 국과수 요원 등으로 부산스러웠다. 름이는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층계참 정면에 보이는 현관문을 열고 나온 빡빡머리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별안간 름이는 변기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종종 골목길에서 마주치던 남자였다. 다부진 체격에 약간 험상궂은 인상이었지만, 직접 장을 보고 쓰레기도 제날짜에 버리고 가끔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업고 동네를 산책하는 평범한 이웃집 주민이었다. 그럼에도 름이는 그에게 굳이 자신의 거주지를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그의 성별이 남자라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

 

    죽은 여자는 름이가 사는 빌라 303호에 거주하던 40대 여성이었다. 중학생 딸과 단둘이 살고 있던 여자는 괴한에게 오른쪽 뺨과 목덜미, 옆구리를 과도로 찔려 숨졌다. 구급차가 왔을 땐 이미 과잉 출혈로 의식을 잃은 후였다. 한동안 사람들의 낯빛은 굳어 있었다. 여자의 끈질긴 비명에도 뛰쳐나간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걸 서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웃으며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가볍게 묵례만 하고는 빠르게 눈길을 피했다.
    그러나 모종의 죄의식도 잠시였다. 지척에서 벌어진 묻지마 범죄였으므로 사람들의 경계심은 극에 달했다. 동네 아이들은 해가 지기 전까지만 밖에서 놀 수 있었다.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 아주머니는 잠이 덜 깬 남편의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와 함께 집을 나섰다. 밤늦게 회식을 마친 여자는 버스정류장에서 골목 근처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하이힐을 신은 채 뛰어야 했다.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고양이들의 추격에도 소스라치게 놀랐고, 바람에 비닐봉지가 날리는 소리에도 등골에 식은땀이 맺혔다. 공영방송과 종편 시사 프로그램 몇 군데에서 주민들의 인터뷰를 따겠다고 골목에 진을 쳤지만, 건너편 연립주택의 빡빡머리 남자를 제외하고는 다들 거절했다.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 어쩌면 골목 어귀에서 이 상황을 엿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403호에 거주하는 반상회장만은 달랐다. 빌라의 크고 작은 일을 맡고 있는 회장은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고 기꺼이 각종 인터뷰와 조사에 응했다. 회장은 골목에 사는 사람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 특히 담배 냄새에 민감해 종일 버려진 꽁초를 주우면서 본인 에너지의 일정량을 소비하곤 했다.
    한번은 죽은 303호 여자와 삿대질을 해가며 싸운 적도 있었다. 아래층에서부터 담배 냄새가 올라온다는 게 화근이었다. 303호 여자는 말도 안 된다, 회장님도 알다시피 여자 둘이 사는 집에서 담배가 웬 말이냐, 5층 아저씨가 골초인 거 모르느냐, 새벽 즈음에 동네 애들이 빌라 주차장에서 깡소주 마시는 거나 잡아서 혼을 내든지, 여자 혼자서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회장님이 아실 턱이 없겠지만, 보름에 하루 쉬는데도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반상회 참석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냐, 돈 벌어오는 남편 있다고 여유 부리면 뭐 하냐, 그래 봤자 회장님 너나 나나 좁아터진 집에서 꾸역꾸역 사는 판에, 한 번만 더 개소리 지껄이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내가…… 하며 쏘아붙였다. 그날 이후로 303호 여자는 반상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회장 또한 카톡 단체방이나 공지를 적어 두는 화이트보드에 더는 303호를 언급하지 않았다. 반년쯤 지나자 303호는 반상회에도 불참하고 회비도 내지 않는데 우리도 의무가 없는 거 아니냐고 하나둘씩 항의를 했고, 회장은 점점 어물거리다가는 이윽고 그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입술을 뚜우, 길게 빼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반상회는 열리지 않았다.
    여자 둘만 산다는 303호에는 남자들이 일정한 시기를 머물다가 사라졌다. 남자들의 등퇴장은 순차적이었다. 빌라에 사는 여자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맞은편 담장 너머에 사는 할머니조차 사라진 남자들의 수를 꿰고 있었다. 골목 귀퉁이에서 반상회장과 볼레로 아주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심각한 얼굴로 수군거리는 걸 보면 름이는 303호에 사는 중학생 딸이 오고 있지는 않을까 괜히 주변을 살폈다. 마트를 다녀왔는지 검은색 비닐봉지 꾸러미를 두 손에 잔뜩 쥐고는 골목길로 진입하는 모든 사람을 훑고,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침 뱉는 연습을 하는 여중생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진짜 무서운 쪽은 저들이었다.
    교복 셔츠가 누레지도록 입고 다니더라니까. 모녀가 방문을 꼭꼭 닫고 살 거란 말이지. 방 안에서 딸년이 담배를 피우든, 엄마가 생판 모르는 남자랑 놀아나든 전연 궁금해 하지 않는 거야. 주차장에서 담배 피우는 남자애들이랑 지분거리는 걸 봤어. 교복 입은 채로 자정 넘어 온 동네를 쏘다닌다니까. 엄마가 우스우니까 애도 빼뚜름하게 노는 거지, 뭐.
    그런 말은 카페 앞에서, 지구인 슈퍼 앞에서, 클로버 부동산 앞에서 잔기침처럼 불쑥 튀어나왔고 꼬리를 길게 빼듯 지난하게 이어졌다. 건널목에 서서, 철물점 개와 놀다 말고, 코너를 돌다가 그들과 맞닥뜨리면 름이는 잰걸음으로 빠르게 지나쳤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버리라는 대로 버리고, 달라는 대로 주고, 손을 많이 드는 쪽으로 손을 들 것. 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그들은 벽 너머에, 위층에, 담장 안쪽에서 시종 누군가를 흘겨보았다. 출퇴근하는지 안 하는지, 배달음식을 얼마나 자주 시켜먹는지, 새벽 서너 시가 되어도 두 눈을 말똥거리며 편의점을 가는지 일상의 루틴을 체크하고, 그걸 빌미로 말을 건다. 재활용 쓰레기를 체크하고, 여름과 겨울마다 전기요금을 체크하고, 대부업체에서 날아온 우편물로 대출금을 체크하고, 제집처럼 드나드는 남자를 보며 애인의 여부를 체크한다. 피로한 말들이 골목의 여중생들처럼 침을 튀기며 들러붙었다. 코를 찌를 듯한 악취를 풍기며 진물을 흘리는 쓰레기봉투, 그 위를 쉼 없이 도는 날파리 떼와 같이. 름이는 웬만하면 들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

 

       우지의 이름은 공원에서 알게 됐다. 우지가 다니는 중학교 후문과 맞물린 공원의 초입에는 혼자 앉기에는 약간 크고, 둘이 앉기에는 좀 애매하게 비좁은 벤치가 있었다. 공원 내 벤치의 공통된 규격과 꽤나 달라 보이는 벤치였다. 재료로 쓰인 목재도 다르고, 간간이 고르게 덧바르지 않아 뭉친 스테인 자국 같은 것도 보였다. 큰 나무에 가려져 벤치의 반 이상이 보이지 않아 잘 살피지 않으면 그곳에 벤치 따위가 있나 싶은, 한 마디로 이상한 모양새의 벤치였다.
    그곳에 우지가 앉아 있었다. 술래를 피해 숨은 아이처럼. 벤치를 감싸고 있는 우거진 이파리들 밑에서 아무런 기척도 없이. 주황빛 가로등이 점점이 제 몫을 내던 즈음이었다. 몹시 한적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름이는 이렇게까지 조용해도 되나 싶어 일부러 박수를 쳐보고, 아아, 하고 입을 벌려 소리를 냈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소리가 났다. 짝, 아아, 짝, 아아. 귀먹은 건 아니네, 하고 손바닥에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들었더니 우지가 보였다.
    반상회장의 말대로 우지는 밤이 되어서도 집 밖에 있었다. 그러나 우지의 곁에 침 뱉는 연습을 하거나, 오토바이를 끌고 동네 어귀를 헤매는 또래 애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새벽마다 빌라 주차장을 맴도는 교복 입은 무리 가운데 우지의 뾰족한 뺨이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슬쩍 봐서 그랬을 수도, 아니라면 름이가 볼 때만 없었을 수도 있었다. 물론 름이의 편견일지도 몰랐다. 우지가 풍기는 분위기. 아니, 름이가 느낀 우지의 분위기는 또래들과의 욕설 뽐내기나, 하릴없이 몰려다니며 행하는 우스운 짓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우지는 계단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에게는 푹 익은 콩나물처럼 머릴 숙였고, 집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늘 신통치 않던 애였다.
    정말 걷기 싫은데 억지로 걷는 듯한 걸음걸이는 평지에서도 여전했다. 름이를 발견하고는 깊게 한숨을 내쉰 우지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공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고요한 장면에 느닷없이 출몰한 트럭 장수의 요란한 목소리처럼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멋쩍게 서 있으려니까 허벅지 안쪽 근육이 저릿하게 땅겨 왔다. 운동장 트랙을 꽤나 걸은 탓이었다. 우지가 뜬 벤치에 자릴 잡았다. 앉아 있기가 힘들어 몸을 기대어 옆으로 누웠다. 벤치는 름이만 한 몸집의 사람이 웅크려 누워 있기 가장 적당한 사이즈였다.
    그 후로도 름이는 운동장 트랙을 돌고 나와 벤치에 누워 쉬었다. 아랫배에 무릎이 닿을 듯 옆으로 누워 등을 적신 땀이 식기를 기다렸다. 이따금 인접해 있는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야근을 마친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름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름이는 왠지 풍경의 한 소품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어쩌면 름이를 부랑자로 여겼을지 모른다. 아니라면 버려진 트렁크나, 숨이 멈춘 동물. 그때였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일어났더니 언제 와 있었는지 우지가 름이 앞에 서 있었다. 왜 남의 아지트에 침범했느냐는 얼굴이었다. 놀랬잖아, 소리도 없이. 그랬더니 우지가 검지를 양쪽 귀로 가져갔다. 이어폰을 꽂고 있는 건 름이 쪽이었다. 름이는 군말 없이 이어폰을 빼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 우두커니 서 있던 우지가 입을 뗐다.
    운동장이요. 안 뛰는 게 좋을걸요.
    왜?
    우레탄이요. 그거 몸에 안 좋대요. 그래서 요즘 실내 수업만 하는데.
    그럼 체육 시간에 운동 안 해?
    여름방학 때 공사한대요. 모래 깐다고.
    나 다닐 땐 원래 모래 운동장이었어.
    흙먼지 개싫은데.
    나도 싫었어. 체육 선생도 개싫고.
    풉.
    체육 선생 별명이 불독이었어. 하도 개같이 놀아서.
    별명 구리네. 불독이 뭐야.
    선생 별명 짓는 데 창의력 써서 뭐 해.
    그건 맞는 듯.
    앉을래?
    아뇨.
    같이 들어갈래?
    아뇨.
    그럼?
    언니도 알죠? 그 칼 맞은 사람.
    아, 어.
    우리 엄마인 거, 것도 알죠?
    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갤 끄덕였다. 말을 나눠 본 적은 없었지만 이 년째 같은 계단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름이는 당연히 죽은 여자와 그녀의 딸인 우지를 알고 있었다. 모녀에 대한 듣기 거북한 루머도 들었다. 303호를 드나들던 남자들의 얼굴 또한 선명하다. 름이는 우지가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것에 약간 당황했다. 어딘가 모르게 매사에 주눅이 들었을 것 같다는 선입견은 금세 깨졌다. 름이는 차분하게 우지의 다음 액션을 기다렸다. 죽은 엄마에 대해 말할 것인가? 대화의 소재로 가족사를 들먹이는 건 가급적이면 고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구나, 쩜쩜쩜, 하며 숙연해질 차례였다.
    그날 아침,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우지가 베란다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안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쓰러져 있던 사람이 엄마라는 건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랬듯 해가 뜨고 나서야 알았다. 전날 밤에 손빨래하고 널어놓은 스타킹을 신으면서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고, 엄마가 보름에 한 번 꼴로 쉬는 날이었다. 쉬는 날에는 웬만하면 엄마를 깨우지 않고 등교를 했으므로 그날도 그렇게 했다. 엄마가 먼저 출근을 하거나 집을 비울 때도 우지는 집을 나서기 전에 신발을 신으며 인사를 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몇 해 전,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을 때의 일이었다. 한 달 사이에 네 집이 털렸다. 방범창을 자르고 창문으로 침입한 도둑은 온 집안의 물건을 들쑤셔 놓았지만, 돈이 될 만한 노트북이나 금팔찌 같은 건 훔쳐가지 않았다. 브래지어와 팬티를 넣어 둔 서랍만이 혀를 내밀고 텅 비어 있었다. 우지의 레몬색 침대 시트에는 남자 사이즈의 신발 자국이 도장처럼 꾹 찍혀 있었다. 도둑이 든 집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기 달랐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남자 없이 여자들만 산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지는 창문을 열지 않았다. 에어컨 없이 폭염을 견디기는 죽기보다 힘들었지만, 복도로 난 창문은 언제나 닫아 두었다. 이사를 와서도 거구의 남자가 창문을 박살내고는 자고 있는 우지를 들여다보는 악몽을 수도 없이 꿨다.
    우지는 엄마의 애인들이 집에 들락거리는 것이 싫지 않았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 모르는 남자라도 남자가 있다는 걸로 위안이 됐다. 반상회장은 303호에 머물던 엄마의 애인들을 모두 용의자로 지목했고, 경찰은 우지에게 그들의 신상정보와 엄마와의 이해관계, 억하심정이나 앙심, 이별의 전개가 어떠했는지를 물었다. 우지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의 실제 이름과 나이, 직업과 거주지는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들을 자기야, 또는 여보, 라고만 불렀다.
    우지가 말을 하고 읽고 쓰기 시작하기 이전부터 아빠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지는 아빠라는 단어의 용처를 몰라서 보이는 사물마다 아빠를 붙였다. 냉장고를 아빠로 부르고, 식탁을 아빠로 부르고, 갖고 놀던 인형을 아빠라고 불렀다. 미미나 쥬쥬처럼 아빠는 아빠였다. 미미야, 쥬쥬야, 라고 부르듯이 지나가는 개를 아빠야, 라고 불렀다. 소규모 피아노 연주회에 엄마가 데려온 남자(NO.3)를 두고 아빠야, 라고 불렀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엄마가 데려온 남자(NO.4)를 두고 아빠야, 라고 불렀다. 그건 엄마가 우지에게 애인을 소개할 때 쓰던 말투였다. 우지야, 아빠야. 인사해. 안녕?
    수백 년 된 나무의 뿌리. 산의 토양을 단단히 매어 잡고 있는 굵고 긴 그것. 글쓰기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친구의 글에 아빠는 뿌리로 묘사되었다. 밑동이 널찍하고, 도통 꺾이거나 쓰러질 일 없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 우지에게 세상은 그때부터 시시해져 버렸다. 있지도 않은 걸 쓰라고, 배우라고, 사랑하라고 하다니. 그딴 게 다 뭐야. 친구들이 진짜 아빠와 있었던 일을 과장하며 떠들고, 학교로 진짜 아빠가 찾아올 때마다 우지는 진짜 아빠는 딱 한 명이고, 진짜 아빠는 새 인형으로 갈아치우듯 자꾸 바뀌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건 고약했다. 아빠는 그냥 별명 같은 거 아니었어요?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씩씩거리며 따져 묻기 위해 기다렸다가도, 사개월간 사귄 아빠(NO.8)와 헤어진 엄마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울기라도 하면 우지도 그저 제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번번이 자신의 애인을 아빠, 라고 소개했다. 징그럽고 역겨운 버릇이었다. 아빠일 리가 없는 남자를 아빠라고 고집스럽게 명명하는 건 엄마가 허약해서 그런 거라고, 진짜 혈육인 외삼촌이 말해 줬다. 네 엄마는 고장이 난 거야. 너나 나 갖고는 안정이 안 돼. 사는 데는 지장 없어. 그렇지만 같이 사는 너는 좀 부담이겠지. 이상하게 보면 이상하게 보이는 거야. 그냥 보면 그렇게 보이는 거고. 세상 전부가 그래. 제대로 보는 게 그렇게 힘들어. 안 봐놓고 보는 척만 할 때가 더 많지. 그래도 어쩌겠어. 끝까지 보려고 해봐야지. 일 년에 두 번, 명절마다 찾아오던 외삼촌은 결혼하고 나서부터 연락이 뜸해졌다. 삼촌을 기다리는 건 언제나 우지였다. 엄마는 딱히 삼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가족으로도 메우지 못하는 불안의 깊이는 어디까지일까. 엄마의 뿌리는 우지가 아니라 아빠였다. 그러니까, 그 많은 ‘아빠’들. 애인이 떠난 자리는 신경안정제로 채워졌다. 우지는 엄마가 복용하는 신경안정제의 종류와 이름을 외웠고, 처방전에 쓰인 만큼만 알약을 꺼내 놓았다. 나머지는 책가방에 넣어 들고 다녔다. 엄마가 시켰기 때문이었지만, 엄마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우지는 엄마가 잔혹하게 피살당한 것치고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 바람에 함께 어울리던 몇 안 되는 친구들을 잃었다. 학교에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가 딱 세 명이었는데, 처음에는 우지보다 더 슬퍼하던 그들은 우지의 일관된 태도에 함께 차가워졌다. 어느덧 학교에서 우지의 별명은 사이코패스가 되어 있었다. 우지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소름이 돋은 팔뚝을 서로에게 내보이며 수군거렸다. 우지의 담임은 삼촌과 면담 일정을 잡았다. 상담이 끝나고 난 뒤, 우지는 삼촌의 집에서 살기로 했다.
    우지가 책가방 앞주머니에서 불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일곱 칸마다 색색의 알약이 담겨 있었다.
    이거 다 먹으면 죽죠?
    글쎄, 엄청 졸리기는 하던데.
    그래서 엄마가 만날 잤나.
    요즘에는 아빠 없었어?
    두 달 됐어요.
    안 피곤했니. 듣기만 해도 지친다.
    엄마는 나 키우려고 매일 나가서 돈 벌었잖아요. 이거 없으면 숨도 못 쉰다는데.
    우지가 약통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웃을 일이 아닌데 름이는 웃음이 났다. 우지도 따라 웃었다. 름이는 우지가 왜 자신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지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름이는 우지가 약간 걱정이 됐지만 부러 더 캐묻지 않았다. 우지는 오독오독 씹어 삼키고 있다. 이 모든 비현실적인 정황을. 다만 터져 나올 지경으로 차올라서 끝내 뱉어버린 것이다. 구름이 잔뜩 낀 밤하늘을 보며 북두칠성 타령을 하던 우지가 이윽고 름이를 바라보았다.
    언니는 좋겠다. 혼자 살아서.
    두 사람이 함께 앉은 벤치에는 얼마간 말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도 고안데.
    침묵을 깬 건 름이였다.

 

*

 

    나 고안데. 처음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는 이윽고 숙연해졌다.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웃으며 눙치는 건 늘 름이였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미안해했다. 그러다가는 름이와 같은 지경에 놓인 자신의 지인을 들먹이면서 그들의 고단함을 읊고,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확실히 성숙하단 식의 품성 평가로 급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어쩔 줄 모르는 쪽은 름이도 마찬가지였다. 가급적 대화의 소재로 가족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놈이랑은 헤어지는 게 낫겠어, 이직보다는 잔류가 낫겠어, 따위의 대화라면 모를까. 사람들은 모쪼록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 조언하는 것을 좋아한다. 름이의 문제는 용인된 규격의 범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그렇구나, 쩜쩜쩜, 하며 그저 암담해지고 마는 그런 문제였다.
    그래서 름이는 그냥 먹었다. 기분이나 감정을 단숨에 삼켜버리듯이 음식물을 넣었다. 그러고는 절대로 뱉지 않았다. 뱉지 않았으므로 름이의 체격은 점점 불어났다.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아버지가 있었을 때도 간섭하거나 저지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비대하게 체중이 는 걸 보았다면 한마디쯤 했을지 모른다. 아니, 아마도 안 했을 것이다. 름이에게 아버지는 대체로 온화한 사람이었으니까.
    름이는 아버지에게 적당한 애정과 지지를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기본적인 훈육 외에는 름이의 희망사항을 대체로 실현해 주었다. 름이는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동시에 배우다가 석 달 만에 관두었고, 축구부에 들겠다고 떼를 썼다가 한 번 필드에 나가 볼을 차고는 다시는 구기 종목을 하지 않겠다며 수영부에 들었고, 물안경을 쓴 얼굴이 유난히 못생겨 보인다며 방구석에 틀어박혀 울었다. 그 수많은 징징거림과 엄살, 변덕은 모조리 아버지에게로 향했지만, 그는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방어했다. 울면 달랜다. 그때그때 원하는 걸 사주면서 칭얼거림을 막는다. 다만 사주는 거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 이를테면 학부모 참관 수업이라든가, 혹은 길고 먼 여행이라든가, 엄마를 내놓으라고 떼를 쓴다든가,    그럴 때엔 아버지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자리를 떴다. 름이가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 때까지, 배고픔을 못 견디고 제 스스로 음식을 찾을 때까지 름이에게서 벗어나 있었다. 아버지는 강한 어조로 화를 내거나, 름이를 방 모서리 끝으로 내몰며 생각의자 따위의 벌을 내리는 것이 싫었다. 다만 사라지는 것.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부재는 불편 없이 아이를 길들이는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름이에게 세상에는 착한 사람과 못된 사람이 있다는 건 가르쳤지만,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되도록 자식이 잘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분명 그에게도 있었겠지만, 잘난 사람의 행로를 택하기 위해 남들보다 빠르고 날렵하게 돌진해야 한다는 걸 애써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좋은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신념이 강해서라기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그런 식의 교육에 앞장서는 우스꽝스러운 속물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더욱이 꿈을 크게 가져라,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은 러닝화나 신용카드 광고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으므로 굳이 자신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아버지는 매양 그런 식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원하는 걸 뜻대로 다 할 수 있는 름이를 늘 부러워했다. 름이도 그건 좋았다. 그러나 정신없이 놀다가 늦게 들어간 친구의 등을 후려치는 손바닥, 그 맵고 따가운 손바닥은 름이에게 없었다. 부녀 관계의 비정함을 추상적으로나마 정의했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건 그 손바닥이었다. 맵고 따갑고 아픈 그것.
    그리고 이제는 영원히 없게 되었다. 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어정쩡한 대학에 들어가 적성에도 맞지 않는 프로덕트 디자인 실습 A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별로 말 섞고 싶지 않은 동기들과 학식을 먹으며 육즙이 다 빠진 미트볼을 젓가락으로 힘없이 건드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출장으로 이동 중에 돌연 심장마비로 죽었다. 름이가 스물두 살 때의 일이다. 제대로 된 선택과 결정이랄 게 도무지 없는, 뭘 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고 엉성하기만 한 그 시기에 하필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름이는 아버지가 오랜 당뇨 환자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로 인해 협심증을 앓기도 했으며 사망 두어 달 전에는 심근경색일지 모르는 심혈관 질환 증상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던 것 역시 몰랐다. 모르는 게 당연했다. 름이가 중학생이 된 후로는 부녀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한 적이 손에 꼽았다. 름이의 사춘기가 지독해서였기도 했지만 실은 아버지가 집을 비운 날이 많아서였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사나흘은 집을 비웠다. 름이가 수능을 앞둔 고3 가을에는 아예 지방으로 적을 옮겼다. 회사 부지 이전으로 관리부서 직원들 전체가 타지로 생활반경을 바꾸어야 했고, 이는 임원급 대접을 받는 아버지에게도 해당했다. 태어나 한 번도 서울을 떠난 적 없는 름이에게는 제안을 하지도, 의사를 묻지도 않았다. 그건 배려였을까. 름이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는 밤늦게 짐이 모두 빠진 아버지의 텅 빈 방을 바라보며 조금 울었다. 섭섭함과 분노가 뒤섞인 울음이었다. 한 달 뒤에는 대입 시험을 치러야 했다. 시험장 교문 너머 서성이는 학부모들 사이에 아버지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안 했지만, 막상 정말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느닷없이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는 시험이 있는 주초 즈음에 계좌에 돈을 넣어 놨으니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질 좋은 패딩 점퍼도 사 입으라고 짤막하게나마 미안함을 드러내는 전화를 할 것이었다. 름이는 문득 아버지의 직업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업무를 담당하기에 야근과 출장이 잦아서 회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집에 얼굴도 못 비추는지가 궁금해졌다. 다행스러운 점은 아버지가 꽤 성실한 사람이었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시험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름이는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택시만 타면 돼. 대중교통 따위 개나 주라지. 물릴 때까지 비싼 음식을 먹고, 턱없이 먼 길이라도 택시를 탈 거야. 부산까지 가야지. 아무렴 어때.
    아버지가 죽고 팔 년이 지난 지금, 름이의 통장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으로 택시를 타고 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만이 남았다. 아마도 대전에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름이에게 남은 건 전세금이 전부. 스물두 살에는 마냥 많다고만 느껴졌던 액수가 해가 지날수록 점차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자릿수가 되어 손에 잡혔다. 특별한 일을 벌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돈은 금세 줄어들었다. 사는 일이란 게 그랬다. 세 번의 이사, 계약 때마다 오르는 전세금. 몇 번의 굵직한 해외여행과 아주 조금의 허영을 부렸다. 입금 내역이 없는 계좌는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가속도가 붙으며 쪼그라들었다.
    언제까지 칭얼댈 거니. 사는 게 만만하니. 사람들은 대놓고 묻지 않았지만 멀어짐으로써 간접적인 표현을 대신했다. 주기적으로 만나던 친구도, 애인도 이제는 름이에게서 저만치 벗어나 있다. 어정쩡한 대학을 꾸역꾸역 다니겠다고 방학 때마다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하던 A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어 삼 년째 결혼자금을 붓고 있는 B도, 아무리 약을 쳐도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끝없이 기어 나오는 자취방에 사는 C도 모두 멀어졌다. 름이는 그들 앞에서 이렇다 할 사치를 부린 적이 없었다. 다만 푸념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산다는 것에 대한 푸념. 애를 써도 불만족스럽기만 한 생활과 극도의 피로감, 갚고 메우고 채워야 하는 절박함. 언제부턴가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그런 것들에 대해 토로했고, 그것이 비단 자신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름이의 온도는 늘 일정했다. 름이에게는 눈 딱 감고 패버리고 싶은 상사가 있은 적도, 업무 과중으로 얻게 된 지병도 없었다. 단 한 번도 구직 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들이 그어 놓은 선 안쪽으로 속하지 못하게 된 가장 큰 결점이었다.
    그럼에도 름이는 그들이 겪는 문제에 작게나마 반응했다.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보기도 했다. 슬퍼하면 함께 슬퍼했고, 분노하면 함께 화를 냈다. 하지만 결국 그 많은 짐을 안고 홀로 집으로 되돌아가는 쪽은 그들이었다. 간간이 그들은 름이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넌 어떠니. 괜찮니. 그때마다 름이는 별일 없어, 로 일관했다. 되돌아오는 대답은 뾰족했다. 나도 별일 없이 살고 싶다 너처럼. 삼 년간 만났던 애인은 름이의 별일 없음에 진절머리를 내며 도망쳤다. 너랑 나는 사는 속도가 너무 달라. 나는 남들만큼 살겠다고 버둥거리며 시속 180으로 달리는데, 너는 시동도 안 켰어. 더 문제는 뭔지 알아? 넌 시동을 켤 의지조차 없다는 거야. 넌 깊은 도랑에 빠졌어. 헤어 나오려면 정말 안간힘을 써야 할 거야. 안간힘도 근육이랑 같아서 평소에 길러 두지 않으면 안 돼. 나중에 진짜 좆 되지 않으려면. 름이는 애인의 마지막 말을 깊숙한 곳에 박아 두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한없이 뇌까렸다. 안간힘. 써본 적 없는 근육이었다. 름이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진정 써본 적 없는 근육일까? 어금니를 짓이기듯 턱을 다무는 버릇이 생긴 지 이천구백오십칠일째. 천애고아가 된 지도 벌써 그렇게나 흘렀다. 름이는 나날이 번져 가는 좋지 않은 기분과 감정을 끊임없이 삼켰다. 그리고 절대 뱉지 않았다. 어느덧 름이에게도 늘어지는 살덩이가 짐처럼 쌓였다.

 

*

 

    시간을 보니 자정이 가까웠다. 양손으로 가방끈을 꽉 잡은 우지가 먼저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봐도 맥이 쭉 빠지는 걸음걸이였다. 앞장서서 걷는 우지가 름이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담배는 창문 닫고 피워요. 안 그럼 4층 아줌마 또 지랄하니까.
    름이는 피식 웃으며 후드 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런데 주머니에 두었던 열쇠가 잡히지 않았다.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벤치 주변을 샅샅이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운동장에 떨어트린 것 같았다. 름이는 우지를 부르려다가 일행도 아닌데 굳이, 하며 학교 후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지가 지나간 쪽으로 돌아보니 어느새 버스정류장까지 멀어져 있었다. 름이는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연신 사방을 비췄지만 열쇠는 없었다. 열쇠 가게에 전화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지갑도 없이 트레이닝 차림으로 검게 꺼진 핸드폰 액정만 애꿎게 쳐다보았다.
    아, 시발 몰라. 름이는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운동장 한복판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러고는 우레탄으로 만들었다는 육상 트랙 위를 눈밭인 양 데구루루 굴렀다. 납중독이 약간 신경 쓰였지만, 집에도 못 들어가는 판에 그게 다 뭐냐는 심정이었다. 날도 선선한데 그냥 여기서 잘까. 름이는 등허리 위로 잔뜩 말려든 티셔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습기가 밴 바람이 동쪽에서부터 자장가처럼 불어왔다.
    언젠가 이 운동장에서도 우지와 죽은 여자를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다. 모녀가 함께 산책을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이 운동장을 찾아 트랙 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죽은 여자는 눈에 띄게 한숨을 쉬기도 했고, 초점을 잃은 눈길을 인조잔디에 떨어트리고는 하염없이 늘어져 있기도 했다. 우지는 엄마가 잠시 걸음을 멈추면 함께 멈추었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뒤이어 발을 뗐다. 그들은 나란히 걷지 않았다. 우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엄마의 뒤를 따랐다.
    트랙 위를 도는 여자들은 름이와 모녀 말고도 더 있었다. 생수병 두 개를 양손에 쥐고 경보하듯 빠른 걸음으로 도는 여자. 회사 엠블럼이 그려진 하계 워크숍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자. 처진 엉덩이로 느릿느릿 트랙 한 바퀴를 돌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년 여자. 간혹 교복 치마를 입은 여고생 둘이 스탠드에 앉아 종이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기도 했고, 어린 아들과 캐치볼을 하는 남자도 보였다. 걷는 데는 딱히 목적이 없었다. 살을 빼고 싶다면 전문 트레이너가 있는 헬스장에 가거나 요가 강습을 받았을 터. 트랙 위 여자들은 각기 다른 체형이었지만 다들 비슷한 보폭과 리듬으로 걸었다. 종종 200m 정도는 거뜬하게 달리는 여자도 있었지만, 그도 잠깐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슬렁슬렁 움직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일도 드물었다. 일상의 어느 한 시점에서 쉽게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 풍경 안에서 름이는 죽은 303호 여자와 함께 있었다. 함께, 였다고 하기에는 이상하지만 정말 그랬다. 름이는 죽은 여자를 떠올렸다. 버려진 트렁크처럼 담벼락에 쓰러져 있던 여자를. 그러고는 죽은 여자를 지우고 자신을 넣어 보았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운동장 트랙 위를 걷던 여자들을 한 명씩 대입해도 무방했다. 전혀 레어한 일이 아니었다. 우지와 말을 하고 나니 더욱 그랬다. 문득 누워 있는 름이에게로 방어할 새도 없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훅 끼쳐 왔다. 그것은 살아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 한동안 그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삶은 느닷없이 멈춘다. 그건 아버지에게도, 303호 여자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왔다. 다만 공평하지 않은 기울기와 속도가 두 죽음의 차이라면 차이였다. 름이는 집으로 돌아가면 노트북을 열어 구직사이트부터 들어가 보리라 생각했다. 아침이 되기 전에 안전하게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껏 안간힘이라는 근육을 보이지 않게 키워 왔다면, 이제는 그것의 윤곽을 드러내야 할 시기였다.

 

*

 

    클로버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올라간 303호는 한 층이 더 높을 뿐, 름이가 살고 있는 집과 다를 게 없었다. 현관 바로 앞에 작은 방과 화장실이 붙어 있는 것도, 부엌에서 안방으로 향하는 통로가 비좁은 것도 같았다. 거실 한쪽에 놓인 빨래건조대에는 언제 널었는지 모를 수건 몇 개가 이 빠진 톱니처럼 듬성듬성 걸려 있었다. 동일한 평수와 구조인 매물을 굳이 볼 필요는 없었지만, 사장님은 형식은 갖추는 것이 좋다며 계약 전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해 보라고 했다. 누수로 인한 곰팡이는 없는지, 수압은 적당한지, 도배나 장판을 새로 갈 필요는 없는지. 같은 빌라, 그것도 바로 위층인데 누수나 수압이 있었다면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도 문제가 생겼을 것이었다. 름이는 형식적으로 변기의 물을 내렸고, 샤워기를 틀어 뜨거운 물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사장님은 웬만하면 전세를 유지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집주인이 삼천을 더 적게 불렀는데, 본인이 천오백 정도는 더 빼야 사람이 들지 않겠냐며 설득했다는 것이다. 사천 오백이라면 당장 수입이 없더라도 한동안은 숨을 고르며 지낼 수 있다. 다달이 집세를 내는 것보다야 나은 선택이었다.
    한 층 더 올라가는 수고비로 사천 오백이면 손해는 아니지 뭐.
    사장님은 갈아 만든 배 주스를 빨대로 쭉 들이켜며 말했다. 그럼 누가 손해지. 운 나쁘게 피살당한 임차인을 계약 상대로 둔 집주인인가. 름이는 조금 불편해졌다. 사장님의 말대로라면 온전히 이익을 보는 쪽은 름이였다. 그때 도어록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린 문 바깥으로 이삿짐용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서 있는 우지가 보였다.
    사장님과 름이를 빤히 쳐다보던 우지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운동화를 벗어 가지런히 정리했다. 사장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알은체를 했다. 우지는 대답 없이 그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달칵, 하고 문이 잠겼다. 굳게 닫힌 문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름이는 사장님께 먼저 내려가 보겠다고 말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으려다 자신의 슬리퍼와 사장님의 구두만 빼고, 나머지 신발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 것이 눈에 띄었다. 한쪽만 굽이 닳은 구두와, 앞코가 찢어진 등산화. 고개를 들고 사위를 둘러보니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우지가 아직 살고 있었다. 엄마의 유품들 속에서 우지는 완전하게 혼자였다. 름이는 급히 도어록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잠금장치가 풀릴 때까지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여느 때와 같이 창문을 활짝 열고 담배를 물었다. 그러다가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창문을 닫았다. 걸쇠를 걸어 두고 커튼도 쳤다. 클로버 부동산 사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뒤이어 오늘 내로 확답을 달라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름이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우지의 이름을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름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냉동고에 먹다 남은 하프 갤런 아이스크림을 꺼내는 것이었다. 아래턱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차현지
   

   

작가소개 / 차현지

1987년 서울 출생. 201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 당선.

 

   《문장웹진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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