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과일청 외 1편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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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엄마의 과일청

 

 

이영주

 

 

    문을 열어놓아도 당신은 나올 줄을 모릅니다. 달큰한 과육을 꾹꾹 눌러놓은 돌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운 살들이 모두 녹아 없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긴 젓가락을 넣어 저어 보았지요. 함께 나갈까요, 끝나지 않는 질문을 흘리면서. 이곳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부패하지 않고 고스란히 네 입으로 흘러갈 거란다. 당신은 병 속에서 자신의 손발을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여서 썩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합니다. 울고 있는 순간에도 달짝지근한 눈물이 쏟아져 병 속의 당신이 핥을 수 있기를, 죽은 후에도 찻물을 부으면 다시 살점이 단단해지기를, 심장을 누르는 돌…… 뚜껑을 열어 놓아도 당신은 나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함께 나가자고 병의 입구에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아름다운 악취가 흘러나왔죠. 슬픔의 냄새란 병 속의 바람에서 퍼져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없어진 손발 대신 몸통으로 과육들을 빨아들이고 있네요. 나의 영혼에서 흘러나간 이 바람은 무엇인가요. 급속도로 모든 것이 썩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앉은뱅이처럼 병 속에서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어지러운 바람. 스무 살에 살던 방이었습니다. 나뒹구는 모든 병들이 썩고 있었습니다.

 

 

 

 

 

 

 

 

 

 

 

 

 

 

 

독서회

 

 

    읽을 수 없는 문장처럼 생긴 것들이 가득해. 그녀는 망토를 벗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손에 든 책을 술집 바닥에 집어던지고 발로 밟고 있었다. 고통 받지 말자. 읽고 토하자. 그녀는 곧 튀어나올 부호처럼 웃으며 내 발을 만졌다. 이렇게 엄지발가락이 튀어 오르니 맨발로 읽어야지. 발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나라에 가보지 않고 그 나라의 불을 피우는 예언자처럼 모든 글자가 타올랐다. 나는 술집 바닥에서 조금씩 커져가는 불길이 되는 중이었다. 형태가 없는 것도 녹아서 재가 될 수 있구나. 아무리 불타올라도 차가운 발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깊이 들어가면 뭐가 있을까. 불길 한가운데 가장 깊은 어둠속에 담겨 있는 투명한 얼음. 그 나라에는 얼음으로 불길을 퍼뜨리고 쓰다 만 문장들이 후드득 떨어진대. 울음의 시작일지도 모르지. 그녀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을 비비자 술집의 모든 울음들이 테이블에서 타올랐다. 누군가 그녀의 발을 잡고 엎드렸다. 이것은 어떤 이의 몸의 조각인가. 도끼가 필요해. 그을린 짐승들이 몸을 뒤틀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외딴 곳. 그 나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이영주
작가소개 / 이영주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이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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