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들 - 나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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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스페셜_에세이]

 

 

마피아들

 

 

나하늘

 

 

 

    그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수상소감을 적어 왔다는 것이다. 정대훈 부장님은 ‘안 시켰으면 어쩔 뻔했어요.’라며 웃으셨다. 6년 전 이 자리에서 나의 수상소감을 듣던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발화에 집중하던, 처음 경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행사장에는 나 말고도 10대 때 글틴에서 활동했던 스태프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양선형 소설가가 사회를 맡았고, 뉴스페이퍼의 김상훈 기자가 취재를 하러 오셨다. 6년 전 열아홉에 수상을 하러 왔던 이곳에, 이제 학생이 아닌 어른(?) 중 한 명으로 참여하고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열린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마로니에 공원이 왠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햇살을 맞고 있었다. 볕도 바람도 좋은 토요일 낮의 풍경.

 

    수상자는 아니지만 함께해 준 글티너도 한 명 있었는데, 조용히 시상식을 보고 있는 그 학생은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 아이들은 왜 글을 쓸까. 나는 왜 글을 쓰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감히 아이들의 얼굴이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

    열아홉에 글틴 캠프에서 했던 ‘마피아 게임’을 종종 떠올린다. 처음 보는 글티너들과 마피아를 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생각해 보면 마피아는 슬픈 게임이다. 모두가 엎드려 있을 때 사회자에게 목 뒤를 손가락으로 찍힌 사람이 마피아가 된다. 나는 사회자가 나를 마피아로 고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무고한 시민이고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 목 뒤를 찍었고 나는 마피아가 되었다. 그 순간부터는 나를 찌른 것이 어떤 손가락인지도 모른 채 마피아로서의 연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마피아로 지목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내가 마피아가 되는 턴을 견디기 힘들었다. 시민이나 경찰이 되어서 그저 명민하고 정의롭게 마피아를 색출해 내고 싶을 뿐이었다. 내 존재를 숨겨야 함을 원망하며 사회자를 올려다보았다.

 

    체셔캣이라는 필명으로 글틴에 올렸던 시 <지하철>에 ‘말없는 꼬마애였던 내가 말없는 여학생이 되는 동안’이라는 구절이 있다. 10대 시절 나는 비밀이 많았고, 그래서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언니의 병이나 가정불화 같은 것에 대해 숨겨야 할 치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마피아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 존재를 숨긴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 ‘선생님, 쟤 벙어리예요?’ 하고 묻기도 했다.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비밀들을 처음 털어놓은 것은 다름 아닌 ‘글’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에게 소중했다.

 

*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시상식장의 아이들이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열아홉 캠프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던 친구들의 얼굴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 시간 그대로 나이 들지 않고 여기 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잊고 지내던 어떤 낡지 않는 세계를, 문득 다시 마주한 기분이었다.

 

    ‘밤이 되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무고한 시민 한 명이 죽었습니다.’
    ‘마피아가 죽었습니다.’

 

    마피아를 하다 보면 턴이 넘어가고 아침이 온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절을 지나왔다. 나는 스물여섯이 되었고, 경조사용 검정색 원피스를 갖게 되었다. 종종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타기도 하며, 그 옆얼굴을 보며 먼 타자처럼 느끼곤 한다.

 

    ‘개는 개이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대상 수상작인 구닐라의 <병렬>에 나오는 문장이다. 밤은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그 종결의 순간을 알며, 두려워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 순간은 미처 작별하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번의 낮과 밤이 교차하는 동안에도 어쩌면 낡지 않고 거기 남아 있는 것들은 분명 있는 것 같다, 고 나는 생각했다.

 

    이날 낭독극 형식으로 무대 위에 올려진 <병렬>을 보며, 새삼 이 공간이 아이들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사장 앞쪽 스크린에는 내내 학생들의 텍스트가 재생되고 있었고, 아이들이 돌아가며 준비해 온 수상소감을 말했다. 앞으로 작가로서든 아니든 ‘그냥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투또우의 표정이 계속 생각날 것 같다. 구닐라의 문장은 배우의 입을 통해 다시 말을 걸었고, 그렇게 그들의 말이 햇살 좋은 토요일 오후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세계에 나는 도착한 것이다.

 

 

 

 

 

 

 

 

 

 

나하늘
작가소개 / 나하늘

1992.4.21.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독립문예지 <베개>를 만들고 있습니다.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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