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티나 - 김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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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스페셜_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

 

 

프레티나

 

 

김지인

 

 

    삐이이이
    – ..신호가 강해지고 있어!
    – ..전기…추가…이거…
    – 안 돼!…깨어나려고…있어…빨리 마취제…
    나는 여러 가지 소음을 들으며 깨어났다. 지독한 냄새가 났고, 온몸이 무거운 것이, 꼭 이미 죽은 몸에 영혼이 달랑달랑하게 매달린 느낌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으어어억!!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는 온통 사람이 아닌 이상한 괴물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온몸을 버둥거리며, 이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 어서 환자를 진정시켜!
    – 약물 투여가 잘못된 건가?
    – 호흡이 격해지고 있어, 이러다간 몸에 무리가 갈 거야!
    나는 온몸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머리가 아파 왔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버둥거림이 둔해지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어때, 정신이 좀 들어?”
    나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떴다. 아니, 사실 낯선 목소리였지만, 너무나도 다정한 목소리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여기가 어디죠?”
    나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눈앞에 괴물은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온몸은 다코야키처럼 노란빛이 도는 갈색이었고, 검은색 흰자에 흰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체격은 인간이랑 비슷했지만, 그 이외에는 공통점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사람 크기의 문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았다. 팔다리 모두 한 쌍씩 있긴 했지만, 마치 문어처럼 흐물거렸다. 제일 기괴한 점은, 사람이라면 목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이상한 촉수들이 빙 둘러서 징그럽게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아가미처럼, 그것은 그 괴물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쉴 때마다 올라갔다 내려갔는데, 정말이지 끔찍한 광경이었다. 나는 소리 지를 기운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맥없이 질문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도망가려고 하면, 전에처럼 기절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곳은 프레티나 행성의 병원이야. 블루, 너를 영영 보지 못하는 줄 알았어.”
    그는 마치 나를 당장이라도 와락 안을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당신은 누구신데요? 프레티나 행성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인간이고, 지구에서 왔어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집에 보내주세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자꾸 떨려 왔다. 내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자 괴물은 마치 상처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
    “블루, 너를 지구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애초에 너무 위험한 탐사 계획이었어, 기억 입력 장치가 우주선이 불시착하면서 망가졌나 봐, 원래는 위장 잠입을 위해 인간생활의 기본 정보만 집어넣었어야 하는데, 에러가 나서 네가 프레티나 행성에서 살았던 기억이 다 지워진 것 같아.”
    “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괴물을 쳐다보았다.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괴물은 말없이 내게 거울을 건네주었다. 나는 여전히 미심쩍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천천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으아아아아!”
    나는 하마터면 거울을 떨어뜨릴 뻔했다. 거울 안에는 방금 전의 괴물과 똑같이 생긴, 징그러운 촉수를 꿈틀거리는 이상한 생물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생겼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나 집에 갈래요. 집에 보내줘요!”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하고 누런 액체가 눈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손(손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으로 그 끈적끈적한 액체를 미친 듯이 닦아냈다. 머리가 아팠고, 역겨움에 자꾸 헛구역질이 나왔다. 괴물은 떨리는 내 어깨를 붙잡고 진정시키려 애썼다.
    “블루, 미안해, 지금 막 깨어난 환자한테 이렇게 충격을 주면 안 되는데, 네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게 너무 기뻐서 그만 급하게 와버렸어, 하지만 확실하게 말해 줄 게 있는데, 넌 인간이 아니라 프레티나인이야. 나랑 같이 지구탐사계획을 세우던 프레티나인이라고, 날 봐, 내가 누군지 정말 기억나지 않는 거야?”
    나는 한참을 그 프레티나인인지 뭔지 하는 외계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도 역시 누런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슬퍼 보였고 지쳐 보였다. 나는 그의 눈에서 진심을 보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기억의 제일 구석에도 그나, 이 프레티나라는 행성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미안해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나는 한결 진정된 말투로 그에게 대답했다. 그의 새하얀 눈동자는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래 괜찮아, 괜히 무리해서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다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어, 오늘은 이만 갈게, 푹 쉬어.”
    그는 침실 옆 서랍장 위에 놓인 휴지 곽에서 휴지를 몇 장 뽑아 나에게 주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니, 사실 걸어갔다기보다는 흐물거리는 다리로 미끄러져 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손잡이를 돌리던 그는, 갑자기 뒤를 돌아서 내게 말했다.
    “아, 그리고 존댓말 쓸 필요 없어.”
    나는 그의 목소리가 아주 슬프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가 떠난 뒤에도 나는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나는 그가 주고 간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은은한 들꽃 냄새가 풍겨 왔다. 프레티나라는 행성에도 들꽃이 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어찌나 눈을 세게 비볐는지, 눈꺼풀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가 사라진 후에 병실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침대 바로 왼편에는 진녹색 커튼이 쳐져 있고 오른편에는 창문이 있었지만, 날이 어두운 탓에 바깥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이불 위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수놓아져 있고, 휴지에서 나는 향과 비슷한 향이 났다. 침대 맡에는 조그만 가습기가 틀어져 있었다. 나는 이불을 바짝 당겨 코끝까지 덮었다. 가볍게 몸을 누르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병실은 너무 평온해서, 도저히 내가 지구에서 한참은 떨어져 있을 이상한 행성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외계인을 보았던 것도 마치 어릴 적 꿈처럼 아스라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이불이 코에 바짝 붙어 있어서 뽀송뽀송한 느낌이 났다. 천천히, 나는 잠이 들었다.
    퍽퍽.
    으윽.
    – 시발, 미친년아 죽어.
    퍽퍽.
    – 미안해, 흑흑.
    – 뭐? 큭큭 야 얘가 미안하댄다.
    – 개웃기네, 너 잘못한 거 없어.
    그냥 재밌어서 이러는 거야.
    헉.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나는 순간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잊어버리고 황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진녹색 커튼과 온통 새하얀 벽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침대 맡에 무릎을 꿇은 채 침대보에 머리를 묻고 자고 있는 외계인을 보고 나서야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처한 상황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내가 깨는 소리에 놀랐는지, 그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비틀거리며 다시 주저앉았다. 아마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서 다리가 저렸나 보다. 그는 침대를 붙잡고 마치 다리를 다친 사람이 휠체어에 타듯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났어?”
    그는 피곤해 보이는 목소리로 애써 밝게 말했다.
    “네.”
    나는 그가 내게 왜 이렇게 친절을 베풀까 궁금해 하며 대답했다.
    “악몽을 꾼 것 같던데.”
    “그냥, 지구에 있었을 때 꿈을 꿨어요.”
    나는 잠결에 경솔하게 말을 꺼낸 것에 대해 후회했다. 내게서 ‘지구’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호기심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눈빛은 너무 순식간에 걱정의 눈빛으로 되돌아와서, 나는 내가 착각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구?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모르네요.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은 이연지예요. 그쪽이 계속 블루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뭐 그게 편하면 그렇게 불러도 돼요.”
    나는 내 목소리가 자연스러웠기를 바라며 말했다.
    “아, 내 이름은 오렌지야, 줄여서 오니라고 불러도 되고.”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의 이름이 오렌지라니. 그리고 오렌지를 도대체 어떻게 줄이면 오니가 되는 거지? 게다가 오렌지 자체도 그렇게 긴 이름도 아닌데 왜 줄이는 거야? 순간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웃자 같이 싱긋 웃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크고 긴 치아들이 고르지 못하게 나 있어서, 마치 심해의 식인 물고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아침 먹으러 가자. 여기 온 뒤로 뭐 제대로 된 거 먹지도 못했을 텐데.”
    “그래요, 오니.”
    그가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혼자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제야 내가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옷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지만, 발은 맨발이었다. 발끝에는 마치 오징어나 낙지 발같이 빨판이 여러 개 있어서, 빨판을 빠르게 붙였다 뗐다 해서 바닥을 미끄러지는 것처럼 걸어야 했다. 그는 어색하게 손을 거두며 길을 안내했다. 잊고 있었던 허기가 떠올라 정신이 몽롱해졌다.
    “이게 뭐예요! 이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예요!”
    나는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 이상한 수프를 바라보았다.
    “왜? 네가 제일 좋아하던 건데?”
    오니는 새하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재잘거렸다. 수프는 아마존의 늪지 색깔이었고, 군데군데 굳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 건더기들이 떠다녔다.
    “이렇게 징그러운 걸 어떻게 먹어요!”
    나는 그릇을 저만치 멀리 밀어냈다. 그런데 그릇을 밀어내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방금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
    오니는 마치 5살짜리 꼬맹이처럼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즐겁담. 나는 못마땅해서 오니를 째려보다가, 황급히 그릇을 도로 가져와서 한 숟갈 떠보았다. 초록색 걸쭉한 액체가 부글거리며 숟가락 위에서 흘러내렸다. 나는 눈을 꼭 감고 그 끈적끈적한 수프를 삼켰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도망치고만 싶어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수프를 삼키자마자, 구슬픈 단조로 노fot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오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신기하지?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속마음을 노래하는 수프야. 이 수프를 먹으면 네가 제일 간절히 바라는 일이 뭔지 알 수 있지.”
    “하지만 이건 수프잖아요, 어떻게 맛이 아니라 노래로 들릴 수 있죠?”
    나는 너무나 신기해서 수프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수프는 따뜻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도망치고만 싶어요.
    괴로움에서 벗어나
    도망치고만 싶어요.
    단조롭지만 슬픈 멜로디가 귀 안에 가득 차올랐다. 오니는 내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는, 애써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마 오니에게는 이 노래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구에는 이런 수프 없었어? 고정관념을 좀 버려 봐, 여기는 다른 행성이라고, 여기서 당연히 여기는 게 지구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지구에서 당연히 여기는 게 여기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거지.”
    나는 오니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거 정말 멋진 일인데요?”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니는 나를 마주 보며 웃었다.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믿느냐야.”
    삐뚤빼뚤한 이빨이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느껴졌다. 마치 오래 전부터 오니를 알고 지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웃음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식당에는 우리 외에도 다른 외계인들이 바글바글했다. 마치 서양인들의 외모가 비슷해 보이는 것처럼, 수많은 외계인들이 다 오니처럼 보였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요리를 하는 오니, 앞치마를 두른 채 접시를 나르는 오니, 빈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오니.
    그리고 내 앞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오니.
    나는 한참을 말없이 노래하는 수프를 먹었다.
    식당은 병원 바로 밑에 층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바깥 풍경을 아직 보지 못했다. 수프를 먹고 몸 상태가 좀 나아진 나는, 오니에게 바깥 산책을 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제발요 오니, 어쩌면 바깥 풍경을 보다가 예전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나는 일부러 ‘예전 기억’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오니는 약간 흔들리는 표정이었다.
    “하여튼 예나지금이나 똑같다니까. 계속 너한테 이렇게 휘둘리면 안 된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으니 원, 그래 잠깐만 나갔다 오자.”
    “정말 고마워요, 오니!”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병실 안을 뛰어다녔다.(어지럼증에 금방 멈춰서긴 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병실에서만 몇 시간 있었더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오니는 그의 외투를 벗더니, 얇은 내 환자복 위에 걸쳐 주었다. 오니의 옷은 카키색에 뻣뻣한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나는 그 옷이 어떤 불쌍한 괴물을 가죽째 벗겨내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외투를 벗은 오니는 딱 달라붙는 검은색 티를 입고 있었는데, 옷 밖으로 튀어나온 갈비뼈들이 기괴했다. 그렇다고 딱히 말라서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새삼 그가 외계인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블루!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나는 흐려진 정신을 다시 돌려 오니를 쳐다봤다.
    “추우니까 딱 30분만 갔다 오자고, 알겠지?”
    나는 그의 눈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외계인에게 걱정을 받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어떤 사람한테도 받지 못했던 관심과 애정이었다. 나는 괜히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에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래요, 그러죠 뭐, 빨리 길이나 안내해 줘요.”
    오니는 커다란 손을 휘적거리며 앞장서 걸어갔다.
    “우와! 하늘이 다 오렌지빛이에요!”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사실 프레티나의 하늘은 오렌지색이라기에는 조금 붉었고, 딸기색이라기에는 조금 노랬고, 레몬색이라기에는 조금 어두웠다. 아무튼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오묘한 색이었다.
    “정말 예쁘지? 우리 엄마가 날 낳은 날, 하늘을 보면서 내 이름을 지었대.”
    “정말 신기해요.”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화창한 날이었고, 다홍빛 하늘에는 새빨간 태양이 두 개나 떠 있었다. 심지어 은색 빛 달도 하나 떠 있어서, 정말이지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나는 이 비현실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한참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오니, 괜찮아요?”
    내가 갑작스럽게 그 황홀한 기분에서 벗어난 건, 오니의 슬픈 눈 때문이었다. 오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오니 부모님은 분명 다 좋은 분들이겠죠?”
    내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하늘이 너무 예뻐서, 그 하늘색을 보며 아이의 이름을 지었을 부모에 대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고아야.”
    나는 오니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차가움을 느꼈다. 그동안의 자상함과 대비돼서, 그 차가움은 몇 배로 더 시리게 느껴졌다.
    “네 부모님도, 내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잖아. 그래서 지구탐사 프로그램에서 우리를 받아 준 거고.”
    “오니…….”
    나는 지구에 있는 내 부모님을 떠올렸다. 아빠와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싸움이 잦다가, 작년에는 끝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아빠와 헤어진 뒤 엄마는 매일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았다. 나는 방 안에서 문을 잠근 채 엄마의 술에 젖은 고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곤 했다. 그런 부모님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해 왔는데, 나는 오니의 말에 깊게 밴 상처를 들으며, 예전에 했던 생각이 어쩌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 미안, 요즘 피곤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나 봐.”
    오니는 고개를 돌린 채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걷기만 했다. 오렌지빛 하늘과 은빛 나무들은, 시간이 멈춘 듯한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눈 끝을 스치는 풍경이 마치 벽 위에 그려진 그림 같았다. 그래서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쿵, 하고 머리가 벽에 부딪힐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풍경은 황홀했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반쯤 취한 기분으로 오니에게 말을 걸었다.
    “지구에 있었을 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어요.”
    나는 그 끔찍했던 생활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지구에서의 생활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스쳐지나간 영화 예고편처럼, 기억의 저편에서 점점 무뎌지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부터 사이가 안 좋으셨고, 저는 부모님의 고함소리를 잊으려 항상 옥상에 올라가 별을 봤어요, 새까만 하늘의 별들이 마치 수만 개의 눈 같았어요. 자세히 보면, 바람 때문에 별이 움직이거나 깜빡이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마치 그 별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나를 부르는 기분이었어요.”
    마치 한 입 가득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말을 이었다.]
    “외계인이나 천체물리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괴롭히기 아주 쉬워요. 내가 생각해도 나는 괴짜였고, 아이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 것도 원망하지 않아요. 그저 맞을 때 얼굴이랑 팔다리 부분에 멍이나 들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해 피했는데, 어느 날부터 얼굴에 멍이 늘어나기 시작했지 뭐예요. 근데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순간 너무 허무해졌어요. 나는 도대체 누가 날 걱정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엄마? 학교 선생님? 맞는 것보다 괴로운 건 무관심이었어요. 마치 매일 구역질을 하고 다시 삼키는 기분이었어요.”
    바람에 은회색 잎사귀들이 흔들리며 은방울이 흔들리는 것 같은 맑고 깨끗한 소리가 났다. 나는 잠시 그 소리에 귀 기울였다. 오니는 나보다 조금 앞에서 걷고 있어서, 나는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또 옥상이었어요. 매일 밤 올라가 별을 보곤 했으니 유난 떨 것도 없었지만, 그날따라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나는 천천히 난간을 향해 걸어갔어요. 바람이 찼고, 이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과, 침대로 달려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었어요. 사는 게 그만큼 귀찮았나 봐요, 별로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천천히 몸을 허공에…….”
    “그만!”
    오니가 너무 갑자기 뒤를 도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와 정면으로 부딪칠 뻔했다. 그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지구는 지식과 문명이 발달한 행성이잖아. 그들의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는걸. 학교에서도 그들만의 법률을 정해서 여러 가지 불합리한 것들을 개선한다고 나와 있었는데?”
    오니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나는 그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한두 걸음 뒷걸음질 친 후 말했다.
    “물론 학교폭력위원회니 뭐니 그런 것들이 있긴 하죠. 하지만 그런 제도들이 모두 제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프레티나에서도 그러지 않았나요…….”
    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오니가 갑자기 나를 안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깨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오히려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아아 블루, 내가 너한테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게 한 걸까. 애초에 네가 간다고 할 때 말렸어야 하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죽으려고까지 했어.”
    그의 눈물이 끈적끈적하게 옷에 젖었다. 바람에 나뭇잎들은 여전히 맑은 소리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오니의 등 뒤로 오렌지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오니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니. 이제 이렇게 프레티나로 돌아왔잖아요.”
    그런데 말하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나는 순간 끔찍한 상상을 하며 두려움에 잠긴 목소리로 오니에게 말했다.
    “그런데요 오니, 내가 죽으려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거죠?”
    “너 같은 경우에는 특파원이었기 때문에 일정고도에서 정찰 팀이 너를 계속 관찰하고 있다가, 뛰어내리려고 하니까 내려가서 우주선에 태운 것 같아. 어쩌면 인간위장장치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네 기억이 지워졌을 수도 있겠다.”
    오니는 마치 혼이 나간 것만 같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는 내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더니, 순간 손을 확 놓고 정신이 나간 것처럼 휘청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니!”
    “30분 지났어. 빨리 돌아가자, 블루.”
    오니는 성큼성큼 걸어와 거칠게 내 손을 잡고 뛰다시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질질 끌려가는 기분으로 같이 걸었다. 연주황빛이던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져 초코캐러멜색이 되었다.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왠지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그 지옥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엄마의 고함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오니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우리는 황급히 병원으로 돌아왔다.
    “블루, 난 네가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랑 기억을 공유하자, 블루.”
    침대에 들어가 막 이불을 덮을 때였다. 오니가 갑자기 너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처럼 깊은 목소리였다.
    “기억을 공유한다고요?”
    오니는 마치 지구가 자전하느냐는 당연한 질문을 들은 것처럼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이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니까 기억을 공유하는 건, 지구에서 혼결? 결혼? 아무튼 그 비슷한 관계를 맺는 것 같은 거야. 우리는 촉수를 통해서 서로의 기억을 공유해. 기억을 공유하는 상대는 평생에 한 명뿐이고, 만약 한쪽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억을 공유하면, 두 프레티나인의 뇌에 엄청난 자극이 가해져 둘 다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그러니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돼.”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결혼이라고? 나 방금 프로포즈 받은 건가?
    “하지만 오니, 굳이 기억을 공유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급하게는…….”
    나는 내 말이 완곡한 거절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프레티나가 좋았고, 오니가 좋았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와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면, 여지없이 오니일 것이다. 오니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처음 오니를 만났을 때도 오니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를 향한 연민이 차올랐다. 그는 오랫동안 상처를 받아 온 것 같았다.
    “블루, 기억을 공유하면, 두 프레티나인은 서로 텔레파시가 가능해져.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그 외계인이 무얼 느끼는지, 어디 있는지, 무슨 생각하는지를 알게 되는 거지. 난 네가 지구에서 그 끔찍한 고통을 혼자 겪게 내버려뒀어.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 지구탐사 프로그램에서 언제 또 무슨 실험을 강요할지 몰라. 기억을 공유하기 전에 네가 또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난 내 자신을 절대 용서하지 못할 거야. 제발, 블루.”
    오니의 눈에는 간절함과 다급함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실에는 숨 막히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사실 골골대는 가습기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긴 했지만)
    “좋아요, 오니.”
    나는 오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날이 어두워 자세한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오니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고마워.”
    오니가 천천히 다가왔다. 꿈틀거리는 촉수가 더 이상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생각보다 불쾌하지 않았다. 마치 손을 잡는 느낌이었다. 촉수가 서로 엉겨 붙어 하나로 연결되었다. 오니는 눈을 감았고, 나도 오니를 따라 눈을 감았다. 발밑에 바닥이 사라지고,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캄캄하던 시야가 걷히고, 희미한 빛이 여러 갈래로 나타나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느다란 직선의 빛은 곡선으로, 면으로, 공간으로 바뀌었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블루!”
    저 멀리 오니가 보였다. 나는 반가움에 손을 흔들려 했지만, 오니를 향해 걸어온 다른 외계인 때문에 다시 손을 내려야 했다. 사방이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온갖 실험 비커와 서류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오니 옆에는 내가, 아니 블루가 서 있었다. 블루는 분명 오니가 거울로 보여주었던 내 모습이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꼭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블루는 두꺼운 서류 파일을 들고 있었고, 쌀쌀맞은 표정으로 오니를 째려보았다.
    “지금 바빠. 지구에 대한 자료를 아직 더 정리해야 한단 말이야.”
    “미안, 하지만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잖아. 점심 먹으러 가자!”
    “됐어, 너 먼저 먹으러 가.”
    “노래하는 수프 먹으러 갈 건대도?”
    “아, 정말 귀찮게 하네.”
    블루는 신경질적으로 파일을 집어던지고 뛰쳐나갔다.
    “같이 가!”
    오니는 해맑게 웃으며 문이 닫히기 직전 다시 문을 밀고 나갔다. 나는 오니가 지금보다 조금 젊어 보인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오니가 문을 닫자마자 공간은 마치 종이접기 하듯 쭈그러들더니, 공간에서 면으로, 면에서 선으로, 또다시 면으로, 또다시 공간으로 변했다. 어느새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고, 오니와 블루도 조금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
    커다랗고 동그란 테이블에 외계인들 열댓 명이 빙 둘러앉아 있었고, 각자 펜과 메모지를 가지고 있었다. 책상 한가운데는 간단한 다과(말린 곤충이나 운석 조각들)가 차려져 있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외계인들의 표정이 모두 심각한 것으로 보아, 무슨 회의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오니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오니 바로 왼쪽에는 블루가 앉아 있었다.
    “지구라는 행성에는 고지능의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체계화된 법과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문명과 과학기술이 뛰어납니다. 그들과의 교류는 우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며, 어쩌면 범죄와 전쟁으로 얼룩진 우리 행성을 구제해 줄지도 모릅니다.”
    오니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가장 권위가 높아 보이는 외계인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구에 잠입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혹여 잘못해서 정체가 탄로 나면 어떡합니까? 찾아보니까 인류는 이미 몇 십 년 전에 외계인의 시체를 해부한 적이 있다면서요?”
    “그건 다만 항간에 퍼져 있는 소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니는 손에 피가 나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합니다! 왜 하필 블루가 가야 하는 겁니까! 이건 그냥 외딴 행성에 가서 죽으라는 것밖에 더합니까?”
    “진정해, 오니.”
    “블루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우리 중에 제일 강한 프레티나인으로 검증됐습니다. 그녀가 지구에 가기를 원하기도 했고요. 우리는 그녀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오니는 새하얗게 질린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거짓말! 너넨 우리 목숨 파리새끼 한 마리보다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잖아! 고아들 길거리에서 빵 한 조각 주고 데려와 놓고선, 뭐? 너네는 이제부터 우리 소유니까 언제든 죽을 각오를 해? 그게 어린애들한테 할 소리야? 당신네들은 미쳤어! 죄다 거짓말이잖아!”
    오니의 얼굴은 거의 터질 것 같았다. 오니는 마치 경호원처럼 보이는 외계인 둘이 그의 양팔을 잡고 질질 끌고 갈 때까지 소리 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화면이 바뀌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 장소는 마치 우주선 내부 같았다. 어쩌면 예비 훈련장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블루, 꼭 가야 해?”
    오니는 꼭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블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난 빵 한 조각에 목숨을 판 지 오래야. 더 이상 이렇게 사는 아이가 늘게 해선 안 돼. 지구는 우리보다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법률을 가지고 있대,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그래. 그들의 과학기술은 우주공학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약하지만, 네트워크 기술은 우리보다 뛰어난 점도 부분 부분 있어. 지구는 우리 행성에 큰 발전을 가져올 거야.”
    블루는 조금 슬픈 표정으로 덧붙였다.
    “적어도 내 동생들은 그런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너 동생도 있었어?”
    오니가 놀랐다는 듯이 물었다.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흩어진 지 오래야. 보육원에서 도망쳐 나올 때 동생들은 차마 같이 데리고 나올 수 없었어.”
    블루의 표정은 조금 슬퍼 보였다.
    “블루, 나랑 기억 공유를 하자. 나도 너처럼 부모한테 버림받고, 여기서 별별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자라 왔어. 나보다 널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프레티나인은 없어.”
    “오니, 몇 번을 더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딱히 누구랑 기억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게다가 그들 말대로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몰라. 끔찍한 기억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만 가지고 있기도 벅찰 거야.”
    “하지만, 블루.”
    “그만, 그만 해.”
    블루는 오니를 차갑게 쏘아봤다. 오니는 블루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블루는 오니를 밀어내고 우주선의 문을 닫았다. 오니는 힘없이 뒤돌아서 걸어갔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우주선이 발사되는 굉음이 들려왔다. 땅이 흔들렸고, 풍경 전체가 흔들거렸다. 나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너 누구야!”
    나는 눈앞이 온통 흐릿해서 눈을 비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나 보다. 나는 쓰러진 상태에서 고개를 들어 오니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오니.”
    오니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는 블루가 아니야. 아무리 기억이 지워졌다고 해도, 무의식의 깊은 어느 부분에는 기억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네게는 전혀 프레티나에 대한 기억이 없어. 게다가 블루가 지구에 간 건 5년 전인데, 네게는 10여 년 전 기억도 아주 세세하게 남아 있어. 우리가 주입한 기본 정보 정도가 아니라, 직접 살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정보야. 너 도대체 누구야!”
    오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다.
    “오니! 오니!”
    나는 마구 소리를 질러댔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 없었다. 머리를 커다란 볼에 넣고 마구 흔드는 기분이었다. 내 주변에는 촉수들이 말라비틀어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 이래서 기억 공유를 한 프레티나인이랑밖에 못 한다는 거구나. 나는 바스러진 촉수들을 보며 마치 나 자신 같다고 느꼈다. 오니에게 한없이 배신감이 느껴졌다. 뺨에 차가운 바닥의 촉감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다.

 

    *
    흡!
    나는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쑤시지 않는 데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려 했지만, 온몸이 묶여 있는 탓에 크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처음 프레티나에 와서 수술대에 묶여 있던 때 같았다. 지금은 지구일까 프레티나일까? 머리가 너무 아팠다.
    “블루.”
    나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 목소리에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해,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한 것 같아. 낯선 행성에 처음 와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넌 날 믿어 줬는데, 나는 그저 네가 블루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어.”
    오니는 내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너 엄청 괴롭게 살아왔더라. 말로만 들었을 때랑, 실제로 기억을 봤을 때랑은 차원이 달랐어. 오히려 넌 담담하게 말한 편이었지. 지구에서 몇 대 정도가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맞았던데?”
    “익숙해진 지 오래예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니는 한참을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깊은 슬픔과 체념이 담겨 있었다.
    “난 네가 나한테 친절하게 대하는 게 너무 좋았어, 예전에 블루는 눈길 한 번 쉽게 주는 법이 없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널 보내기가 더 싫어지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니?”
    “너는 블루가 아니야. 네가 사는 세상은 프레티나가 아니라 지구이고, 너의 영혼이 지구가 아닌 프레티나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면, 아마 지구로 돌려보내는 데 아마 좀 충격적인 일을 저질러야 할 거야. 웬만하면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오니는 또다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니에요 오니,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제발, 여기 계속 있게 해주세요.”
    “네가 블루의 몸에 들어온 거라면, 블루는 이미 죽었을 거야. 시체에 들어간 영혼이 며칠이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난 네가 행복하길 바라. 지구에 돌아가서도, 가끔 날 생각해 줄 거지?”
    오니는 무언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그는 커다란 칼을 들어올렸다.
    “안 돼, 오니! 제발, 제발 그만 해!”
    하지만 그는 결심을 굳힌 듯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는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는 맹수처럼 몸을 크게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내려왔다. 짧은 찰나였지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길게 느껴졌다.
    “흐으.”
    나는 충격과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제대로 된 비명도 내지 못한 채, 허파에 있는 공기를 한꺼번에 내뱉었다. 배에서 온통 뜨뜻한 피가 느껴졌다. 오니의 칼은 정확히 내 배 정중앙에 꽂혔고, 오니의 얼굴에는 내 피가 묻었다.
    “나 너무 혼란스러워. 마치 진짜로 블루를 죽인 것 같아. 하지만 넌 지구에 돌아가는 것일 뿐이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나는 흐려져 가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쓰며 말했다.

 

    “오니…….”
    커튼은 내려졌고, 난 의식을 잃었다.
    삐삐삐삐.
    나는 또다시 깨어났다. 머리가 아팠지만,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주변에는 온갖 기계 장치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입에는 산소호흡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연지야.”
    내 눈앞에는 울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나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보았다. 어딘가에 묶여 있지 않았고, 피부는 매끈하고 창백했다. 온몸이 다코야키처럼 노란빛이 도는 갈색도 아니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지구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엄마…….”
    나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긴 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엄마…….”
    그러나 그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버리기도 전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가 미안해, 좀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네가 자살하려고 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
    나는 엄마의 작은 품에 머리를 기댄 채 끅끅대며 울었다.
    엄마, 나 돌아와 버렸어요. 이 지옥 같은 현실로, 쳇바퀴 돌듯 또다시…….
    오니가 미친 듯이 보고 싶었다.

 

    **
    “각오는 돼 있겠지?”
    오니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를 지금까지 키워 준 책임자가 서 있었다. 지구 탐사 프로젝트의 책임자.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무심했다. 오니는 그의 목을 부러트리고 싶었다.
    “당연하죠.”
    그 둘의 사이에는 블루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넌 끝까지 비이성적이구나. 그녀를 살려 뒀더라면 지구에 대한 자료를 훨씬 더 많이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오니는 그를 노려보았다. 병실 전체의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웃기지 마. 시체에 영혼을 담는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더라도 일주일 이상 못 가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애초에 누군가 기억 공유를 통해서 지구의 자료를 얻어냈어야 하는 거고, 그뒤에 불쌍한 인간의 영혼은 블루의 썩어 가는 시체 안에서 서서히 죽어 갔겠지. 난 블루도 잃었고, 이제 그 누구와도 기억 공유를 할 수 없어. 당신들이 내 삶을 망가트렸어!”
    “멍청한 놈.”
    책임자는 벌레라도 쳐다보듯 하는 오니의 시선을 똑같이 되받아쳤다. 오니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블루를 죽이고 그 불쌍한 여자애를 블루의 몸에 집어넣은 거지! 왜냐면 블루가 아니면 난 기억 공유를 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지구의 자료는 구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당신네들이 그럴 줄 알았어! 블루를 지구로 보내는 척하면서 실은 죽여 버린 거야! 당신네들도 지구에 누군가를 파견하기에는 겁이 났나 보지? 혹여 지구에 우리의 존재가 탄로 날까 봐 말이야!”
    “그녀는 블루가 맞아. 그저 우리가 프레티나에서의 기억을 잠시 떠오르지 못하게 한 것뿐이지.”
    “헛소리 집어치워!”
    “그녀의 뇌는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정보를 저장하지 못해. 견뎌내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기억을 마비시키고, 약효가 풀리면서 천천히 떠오르게 하려고 했어!”
    “하…… 하지만 그녀의 10년 전 지구에서의 기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세했다고, 그녀를 지구에 파견한 건 5년 전인데 말이야.”
    오니의 목소리는 마구 흔들렸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심한 놈, 우리가 입력한 기본 정보를 토대로 그녀의 뇌가 세부사항을 만들어 나간 거지. 그게 진짜 삶이었는지는 너도 모르는 거잖아. 10년 전의 기억들은 그녀의 삶이 아니라, 그녀의 뇌가 만들어낸 가짜 기억일 뿐이야!”
    “아니야……. 말도 안 돼.”
    오니는 무릎을 꿇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얼굴에 묻은 피와 땀이 눈물과 범벅돼 흘러내렸다.
    책임자는 차갑게 말했다.
    “너는 블루의 기억 중 지구에 관련된 내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는 걸로 블루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할 거야. 그게 블루의 마지막 소원이었을 테니까. 그뒤에는 물론 평생을 감옥에서 썩겠지.”
    말을 마친 그는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갔다. 오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한참을 울었다.

 

    ***
    “꼭 목숨을 걸 필요는 없어, 블루.”
    블루는 책임자의 목소리에 싱긋 웃었다. 그는 블루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블루의 지식과 재능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블루는 자꾸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요?”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 그럼 계획을 한 번 더 정리하죠. 지구에 자살한 사람 중 죽기 직전의 한 영혼을 빼와서 내 몸 속에 넣는 거예요. 그럼 그 ‘인간’은 오니와 기억 공유를 할 테고, 오니는 그 기억 공유로 얻은 지구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내가 죽어야겠죠? 역겨운 당신네 윗분들은, 지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 하긴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나, 인생의 한 번뿐인 기억 공유를 희생하기는 싫어하니까, 하는 수 없이 나와 오니가 희생해야 하는 거죠.”
    “잠깐, 어떻게 그 ‘인간’이 오니와 기억 공유를 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지? 그 인간이 꼭 오니와 사랑에 빠질 거라는 보장은 없는 거잖아.”
    “왜냐면 오니는 누구보다 좋은 프레티나인이니까요.”
    블루는 살짝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생활을 하지만 않았다면, 난 진작에 오니랑 기억 공유를 했을 거예요. 어쩌면 우리는 좋은 부부가 됐을지도 모르죠. 자살 직전의 괴로움에 빠져 있던 사람은, 아마 오니의 친절함 앞에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도 무너졌는데.”
    블루는 울컥하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사실 오니가 기억 공유를 하자고 할 때마다 블루는 흔들렸다. 가족을 잃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오니는 밝고 쾌활했다. 블루는 어쩌면, 어쩌면 그와 함께하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의 동생들이 떠오르곤 했다. 보육원에서 음식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가 기절 직전까지 맞은 블루는, 도망치기 전 한참이고 그녀의 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여 잊어버릴까,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을 기세로 닳고 또 닳도록 보았다. 둘째 동생의 속눈썹 수까지 아직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녀는 행복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지구에 대해 더 열심히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이 믿음이 온전히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일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믿은 이상, 옳아야만 했다. 지구에 인간들이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사회체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타락해 가는 그녀의 행성을 구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녀의 동생들을 거지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줘야만 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머리에 겨눴다.
    “아 맞다, 오니한테는 내가 자원해서 죽었다고 말하지 마요. 알겠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블루는 정말이지 뼛속까지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책임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오지 않으면 단 한 치의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전형적인,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프레티나인이었다.
    “만약 내가 자원해서 죽었다고 하면, 그는 그가 기억 공유를 ‘인간’이랑 하게 해서 지구의 자료를 빼내게 한 사람이 저라는 걸 알게 될 거고, 이용당했다는 배신감에 평생 저를 저주하며 살 거예요. 아니, 최악의 경우 그 자리에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죽어버릴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되면 지구에 대한 자료는 전부 물거품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길 바라시는 건 아니죠?”
    책임자는 굳은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영원할 것만 같은 침묵이 깨지고, 그가 대답했다.
    “알았네, 비밀은 지켜줄 테니 빨리 일을 실행해. 내가 옆에 있으면 불편할 테니 나가 있어 주겠네.”
    그는 나갔고, 금속성 문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하아.
    블루는 벌써 영혼이 반쯤 사라져 버린 기분으로 한숨을 쉬었다.
    “평생 동안 거짓말을 하며 살아왔는데 죽기 전에 진실을 말해 버리면, 나는 오니한테 거짓된 외계인으로 남을 테고, 만약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면, 진실로 남게 되겠지?”
    블루는 오니의 고백을, 고백할 때마다 지었던 어색한 거절의 표정들을 떠올렸다. 사실 누구보다도 기억 공유를 하고, 아픈 기억을 보여주고 싶은 그녀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오니는 그 진실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블루는 떨리는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소리는 로켓 발사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로켓은 이대로 지구에 도착하고, 인간의 영혼을 내 몸에 담게 되겠지? 블루는 고통에 몸부림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흉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제작된 총알은 아주 작지만 예리했다. 그것은 아마 블루의 두개골 한가운데에 박혀 블루가 블루였을 때의 기억을 지워내고, 블루를 죽일 것이다. 그녀는 서서히 무뎌지는 기억 속에서 마지막으로 그녀의 동생들을 떠올렸다.
    <에필로그>
    “오늘 기분은 어떠니?”
    연지는 하얀색 가운을 입은 정신과 상담의사를 무신경하게 바라보았다.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녀는 빨리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치료가 끝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자살시도 이후 연지의 엄마는 학교를 찾아가 조용히 전학 절차를 밟았다. 돈도, 권력도 없는 그녀가 연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 다행히도 연지는 전학 간 학교에서 잘 적응했고, 괜찮은 친구들도 여럿 사귀었다. 그녀의 엄마는 꼬박꼬박 심리 상담실에 연지를 집어넣었지만, 연지는 그런 엄마의 조바심이 영 성가셨다. 언제부터 그렇게 신경 써 줬다고.
    “아직도 외계인에 관련된 생각이 나니?”
    움찔, 연지는 잠시 흔들렸다. 희미하게 오니와 프레티나에 관련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도 잠깐뿐, 연지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어렸을 때 했던 철없는 상상일 뿐인걸요.”
    창밖에는 오렌지빛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 사실은 현상이지만 진실은 믿음이다. 따라서 진실은, 당신이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블루의 묘비 글 중) [끝]

 

 


 

    □ 제목: 인간방패
    □ 작성자: 윤별

 

    우리는 인간방패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순간은 격렬한 진동과 함께 시작되었어요. 땅이 흔들렸고, 어머니는 나를 안고 허겁지겁 뛰었습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어머니의 품속에 고개를 묻으며 옷자락을 그러쥐었어요. 여자의 높은 비명을 시작으로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귀에 꽂혔어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불을 뿜었고, 채 피하지도 못할 속도에 사람들은 사방에서 픽픽 스러지고 있었어요.
    내가 조금 더 컸을 때는 그 광경을 생생하게 보아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동생 하나씩을 품에 안고 있었거든요. 아직 보송한 동생에게 젖을 물리며 어머니께서는 나긋한 목소리로 내가 태어난 나라가 스리랑카라고 알려주셨어요. 찬란히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라며 내 손을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내 눈에 보인 이곳은 빛은커녕 어둠으로 죽어 가고 있어요. 피가 빛을 삼키고 총이 사람을 삼키고 있어요. 그 이름은 어울리지 않아요, 라며 고개를 젓자 어머니께서는 곧 빛이 돌아올 거야, 라며 내 손을 더 꽉 잡았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적어도 어머니께서는 그 빛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어머니께서는 우리에게 나무를 껴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 여름날에도 아름다운 봄을 맛볼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나무에 올라갔어요. 나무 꼭대기에 맞닿으면 저 끝 어딘가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요. 그럼 우린 그것을 봄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그 바람에는 포근한 라일락과 묘한 향기가 함께 섞여 있었으니까요. 생경한 향기였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봄이라고 불렀어요. 어머니께서 밥 먹으라며 부르는 소리마저도 봄이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께서는 우리에게 봄을 껴안으라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절하게요.

 

    그날 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마을이 불길에 휩싸이던 그날 밤에도 우리 셋은 나무에 바싹 붙어 있었습니다.
    떼거리로 몰려온 사람들이 다른 쪽에서 밀려들어오는 군인들에게 총을 쏘아대더니, 마을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육탄전을 벌였습니다. 헬기가 투두두두, 투두두두 소리를 내며 위를 맴돌고 있었어요. 나는 내 동생들을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무서워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나무가 부디 셋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기만을 기도했어요. 내 눈에 보인 건 아버지였어요. 아무런 무기도 없이 무어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열댓 명이 모이자 헬기에서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어머니 쪽도 마찬가지였어요. 인간방패였습니다. 나는 그 애들의 머리를 내 품으로 끌어안았어요.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마저 죽을 것만 같아서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더 이상 봄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리고 어머니가 무참하게 폭격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보고선 나도 따라 죽으려고 했었습니다. 군인들이 떠난 우리의 마을은 온데간데없었고 널려 있는 사체만이 어젯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어요. 나는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서야 굳은 몸으로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남은 것이 죄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전부 타 버린 이 참혹한 광경 속에서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을 것만 같았어요. 나는 날붙이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칼을 발견했을 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세 살배기 여동생이었어요.
    울지도 못하고 잠긴 목소리로 내 이름만 리시아, 하고 부르고 있는 여동생 앨리를 보자마자 나는 그 아이를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습니다. 그 옆에선 겨우 일곱 살인 남동생 비가 내 옷자락을 잡았어요. 칼이 손에서 떨어졌고, 나는 울지 않으려고 다시 노력해야만 했어요. 내 손을 잡은 어린아이 둘이 내 마음마저 움켜쥐고는 놓아 주지를 않았어요. 내가 이제는 저 애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어요.

 

    우리는 지금 걷고 있습니다. 어디로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걷고 있어요. 함께 걷는 무리 속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 여럿입니다. 몇몇은 먹을 것이 없어서 아사하고, 몇몇은 총에 맞아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죽어요. 총탄이 우리 중 하나의 몸을 꿰뚫으면 우리는 허겁지겁 흩어져요. 풀숲으로 숨기도 하고, 개울로 뛰어가기도 해요. 나는 내 동생들의 손을 잡고 몸을 숨길 공간을 찾아요. 숨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인간방패가 됩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내 동생들을 껴안고만 있어요. 동생들의 눈을 가려요.
    죽음은, 어른들이 해주던 옛날이야기나 책에서 묘사된 것같이 영웅적이고 아름답지 않아요. 탕, 하고 소리가 한 번 나면 한 사람이 고꾸라집니다. 더 이상 움직이질 못해요. 그리고 쓰러진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야 말아요. 넘어지면 끝장이에요. 밟히고, 차이고, 말 그대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해요. 그게 다예요. 우리가 숭고하다고 배웠던 죽음과는 너무도 다른 마지막.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우리는 다시 모여듭니다. 어른들은 반군이니 정부군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둘의 차이점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양쪽 다 우리를 죽이려 드는데요.
    어젯밤에는 내 동생 비가 죽었어요. 비가 넘어졌고, 우리는 계속 달려야만 했어요. 일으켜 세워서 뛰고 있는데 비가 갑자기 중심을 잃더니 앞으로 고꾸라졌어요. 나는 다시 비를 일으켰어요. 비는 화살에 맞은 사슴마냥 자꾸만 비틀거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가 총에 맞은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비, 뛰어! 빨리! 나는 고함을 질렀고 비는 그 몸으로 악착같이 뛰었습니다. 숲 속에 도착해서야 비의 몸에 총탄이 박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총알이 나온 흔적이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것 또한 없었어요. 비는, 가쁜 숨을 계속해서 쉬었습니다. 아프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대체 무엇이 이 어린아이가 자신을 숨기도록 만들었을까, 하고 비의 손을 잡고 쉴 새 없이 도닥였습니다. 내가 눈을 들었을 때는, 이미 비는 고통 없는 곳으로 떠난 후였어요.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세 명의 사람을 차례로 잃었고, 그들은 잔인하게도 내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스러져 갔습니다.

 

    문득 겁이 나요. 죽음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겨우 열네 살인데, 내 나이보다 더 많은 죽음을 보았고, 내 나이보다 더 많은 전쟁을 겪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때에도 나의 부모님이 죽었을 때처럼, 그리고 어제처럼 죽을 만큼 슬퍼할까요. 아니면 그때쯤이면, 죽음을 너무도 많이 목격해서 무덤덤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나 스스로조차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서, 슬픈 감정조차 토하지 못할까요.
    이제 나의 세계에는 앨리와 나밖에 남지 않았어요. 공기는 앨리에게서 웃음을 앗아 갔습니다. 우리는 무리에 섞여 걸어갑니다. 나는 종종 울고 싶어지는 날에는 자고 있는 앨리를 꼭 안아요. 앨리는 뒤척이고, 나는 그런 앨리를 한참이나 쓰다듬다가 밖으로 나옵니다. 불침번을 서는 사람들이 바뀌고, 하늘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올 무렵까지도 나는 밤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요. 저 어딘가에는 어머니가, 아버지가 있을까 하고. 오늘 새벽에는 비가 무사히 올라가기를 기도했어요. 어머니 품에 안길 수 있기를.
    있잖아요, 나는 아무래도 우는 법을 잊은 것 같아요. 간밤에 슬프고 아프고 도무지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울고자 했는데도 나는 울 수 없었어요.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리 내어 울음을 토해 내려고 숨을 들이켜도 으으, 으으 하는 괴상한 소리만 나올 뿐 입 밖으로 울음이 터지질 않았어요. 뱉어내질 못했습니다. 사막에 있는 것만 같았어요. 주위가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어요. 황폐해요.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곳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고개를 들어, 환하게 빛나고 있는 북극성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어요. 그것은 시리도록 희어서, 어쩐지 나와 같이 외로워 보였거든요. 나처럼 홀로 아파 보였거든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도, 죽음을 피해 숨는 일도 없는 나라가 있다고 해요.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서 건너들은 이야기입니다. 찬란한 섬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상향과도 같은 세상에 대한 묘사가 넘쳐납니다. 그곳에는 봄이 있대요. 향기롭고 어여쁜 봄이 있대요. 작열하는 태양 아래를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우리는 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만물의 생명의 어머니인 봄에 대해서요.
    나는 아직도 나무 위에서 느끼던 봄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그 바람이 데려다주던 꽃향기와 따스한 기운을, 손을 넣어 헤집던 앨리의 머리카락을, 어머니께서 밥 먹으라고 부르던 소리를, 우리를 감싸 안던 산들바람을, 눈을 위로 올리면 보이던 파아란 하늘을. 나는 아직도 나무 위에서 쏟아지던 봄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내게 내리던 찬연한 빛을, 피와 총과 병과 모든 무기로부터 해방된 것만 같은 느낌을,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웃어 보이던 나무를, 나무껍질의 싱싱한 냄새를,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매미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봄을 보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작은 여자 아이에게 봄을 보여주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에게도 봄이 올까요? 밤마저도 따스한, 피비린내 대신 향긋한 꽃향기가 대지를 메우는 그런 봄이 올까요? 내가 글씨를 한 자 한 자 적고 있는 지금은 추운 여름밤이에요. 나는 언젠가, 봄바람이 불어오는 밤에 별을 볼 수 있을까요. 그 봄날 밤에는, 나도 기어이 울 수 있을까요. [끝]

 

 

 

 

 

 

 

 

 

 

작가소개 / 김지인(글틴 필명 : 투또우)

1998년생. 2016년도 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자
(위 작품은 2016년도 사이버문학광장 글틴 소설 게시판 2월 월장원 선정작으로 문장청소년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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