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 박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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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제국의 위안부

 

 

박금산

 

 

    한 달 전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새 소식으로 올라온 글을 읽었다. 어떤 친구가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저자의 소식을 링크로 걸어 놓은 글이었다. 그는 ‘좋아요’를 눌렀다. 출간한 책 때문에 소송에 걸려서 고생을 하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니 저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었다. 책 내용이 무엇이든, 책의 내용 때문에 저자가 법정으로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얼마나 미개한 일인지 그는 문화적 원시성에 분개하면서 저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좋아요’를 누른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친구 요청’이 들어왔다. 프로필을 살피니 친구 요청을 보낸 사람은 그가 ‘좋아요’를 누른 소식의 당사자인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였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전화기를 계속 손에 들고 페이스북의 반응을 살피다가 ‘좋아요’가 반가워 곧장 친구 요청을 보낸 것 같았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불쑥 집으로 찾아와 초인종을 누른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요청이 신속했으므로 결정을 빨리 내려 줘야 할 것 같았다. 초인종이 울렸으니 집으로 들이든 방문을 거절하든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했다. 그는 수락과 거절 사이에서 망설였다. 그는 저자가 느끼고 있을 외로움과 절박함을 덜어 주고 싶었다. 그는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그는 친구가 되어 저자의 페이스북으로 들어갔다. 게시물은 대부분 책 때문에 겪은 고생의 흔적이었다.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으로 일본에서 큰 상을 받았는데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아홉 명으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 책 유통이 금지 당했고 아홉 명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며 명예훼손죄를 범한 것으로 실형을 구형받았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함은 검사가 구형한 3년의 징역형은 법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사가 판결을 한 것이었다. 저자의 페이스북에는 투쟁을 격려하는 친구들과 무죄 판결 이후에 축하하는 친구들의 글이 있었다. 저자는 억울한 처지를 알리면서 명예회복을 위해 국내외의 지인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누른 ‘좋아요’ 또한 선거로 따지면 저자의 당선을 지지하는 한 표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소를 당하고 2년 넘는 시간이 지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니 그간 고생이 얼마나 많았을까.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는 저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게시물을 읽었다. 글들을 읽다 보니 끝나지 않을 싸움임이 밝혀졌다. 무죄 판결이 났다고 해서 그대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언론의 기사를 링크해 놓고 있었다. 기사는 원고 측의 항소와 상고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죄 판결이 난 이후 새로이 <제국의 위안부>의 문제성을 지적하는 글이 저자의 페이스북에 답글의 형태로 달렸고 그것을 비판하는 글이 논쟁의 형태로 얽혀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은 재판의 내용은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써서 위안부 희생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는지의 여부가 중심이었다. 어떤 소장에서 원고들은 자신들의 명의를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라고 적은 것이 보였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의도적으로 소장에 이름을 적어 본인임을 내세운 원고들을 직접 거론하며 명예를 실추시킬 만한 내용을 실은 것이 아니고 위안부 문제 전체에 대해 기술한 개인의 의견으로 보이는데 그 의견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재판부에서 판단할 일이 아니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했다. 이전의 민사소송을 담당했던 판사가 저자와 출판사 대표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삭제해서 유통시킬 것을 명령했고 원고 아홉 명 각각에게 일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던 것과 달랐다.
    비명횡사한 죽음을 알리는 부고에도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이 몇 백 명 몇 천 명일 수 있는 것이 페이스북의 특성이며 슬퍼 죽겠다는 절망의 글에도 ‘좋아요’ 아이콘이 달리는 것이 페이스북의 생태이다.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사에도 ‘좋아요’가 붙고 테러 장면이 리얼하게 소개되는 영상에도 ‘좋아요’가 붙는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아이콘은 좋다는 뜻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는 ‘좋아요’를 눌러 놓고 침묵하고 있자니 기분이 꺼림칙했다.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로 살았던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를 일본의 전쟁 승리를 위해 일본군을 위안했던 애국 처녀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던 여성으로 표현했다고 비판받는 <제국의 위안부>의 논지에 찬성하는 일원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가 ‘좋아요’를 눌렀을 때는 진심으로 좋아서 그랬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존중이었고 그런 일로 문필가가 재판정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상식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좋았다. 책의 내용과 재판의 내용을 알지 못했을 때였다.
    <제국의 위안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주로 ‘동지적 관계’, ‘매춘적 강간 혹은 강간적 매춘’, ‘애국 처녀의 미소’ 등의 수사에 집중했다. 당시의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성관계는 ‘매춘적 강간 혹은 강간적 매춘’이었다고 설명해서 저자가 위안부 희생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위안부 희생자들은 당시에 일본군의 배려 아래에서 평화로운 웃음을 띠었을 때도 있었는데 저자가 그것을 애국심에서 기원한 미소라고 명명하는 것 역시 악의적인 왜곡이라는 것이었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일부 그런 사람이 있었음을 서술한 것이지 모두가 그렇다고 말한 적 없다고 항변했다. 일부 그런 사람의 증언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며 명백한 인권유린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자는 고소의 절차를 문제로 삼았다. 나이든 할머니들이 스스로 건 재판이 아니라 운동권 지원자들이 책 내용을 왜곡하여 전달한 후 할머니들의 분노를 부추겨서 재판에 부쳤으니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이제 책을 읽지도 못하는 분들이 어떻게 자신의 책에서 명예가 훼손될 만한 부분을 골라서 고소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도서관으로 갔다. <제국의 위안부>를 검색했다. <제국의 위안부>를 뽑으러 가니 곁에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제국의 거짓말과 ‘위안부’의 진실>이 있었다. <제국의 위안부>를 읽으면 나머지 두 책은 읽지 않고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법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이라는 부제가 논지를 집약하고 있었다. 제목에 작은따옴표가 쳐져서 인용된 화해라는 단어가 의아했으나 그 의아함을 해결하면 논지가 정리될 것이라 생각했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제국의 거짓말과 ‘위안부’의 진실>은 제목이 거칠어 읽어 보지 않고도 논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짓말’과 ‘진실’을 대립시키고 있으니 누군가는 악의 있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세 권의 책을 모두 대출했다.
    그는 연구실로 들어가서 <제국의 위안부>를 펼쳤다. 목차를 읽었다. 부드러운 평화주의자의 향취가 났다. 온건한 페미니스트의 눈길이 느껴졌다. 이런 책이 왜 형사소송에 걸렸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목차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보는 단락, 일본 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 등이 순차적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구조적 완결성이 느껴졌다.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면 그의 의식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라고 정리된 희생자들을 저자가 ‘조선인 위안부’라고 명명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에 이를 것을 촉구하고 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취지에서 책을 펴낸다는 저자의 희망에 동조하면서 서문을 읽은 후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의 길은 험난했다. 제목에서 말하는 ‘제국의 위안부’란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 ‘대만인 위안부’를 통칭하는 용어였다.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출신의 ‘위안부’였다. 그들은 일본제국으로부터 배려를 받은 존재임을 서술하기 위해 내세운 개념이었다. 저자는 ‘조선인’은 ‘일본인’과 달리 차별을 겪었으나 준일본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애국하는 존재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조선과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 속국이었기에 중국이나 아시아 기타 지역의 다른 나라에 비해 지위가 높았다고 한다.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와 비슷했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전장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젊은 군인들을 고향의 이미지로 위안할 수 있는 존재였다. 적국이나 점령지의 여성들이 강간을 당할 때에 조선인 위안부는 준일본인의 지위를 누리면서 군으로부터 관리를 받고 배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적국의 여성들이 무방비 상태로 강간을 당할 때에 조선인 위안부는 위안소라는 공간에서 군으로부터 성병 치료와 성병 감염 예방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그것은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좋아요’를 누른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누른 ‘좋아요’가 저자를 지원하는 에너지가 됐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찜찜했다.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위안부 희생자를 일본의 전쟁 승리를 위해 일본군을 위안했던 애국 처녀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던 여성으로 표현한 <제국의 위안부>의 논지에 찬성한다고 말을 해버린 결과가 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곳곳에서 그는 난관에 봉착했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많은 위안부가 있었고, 그중에서 특별히 강제로 연행되어 유린당한 소녀들은 극히 일부였는데 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는 위안부를 ‘강제로 끌려간 20만 명의 소녀들’이라고 말하느냐고 비판했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운동권 세력의 몰염치한 피해 과장 왜곡이었다. 저자는 어린 소녀를 피해자의 상징물로 조형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서도 기억의 왜곡을 적용했다. 소녀상 때문에 일본인들이 한국을 혐오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의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저자의 이력을 읽었다. 저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저자의 국적을 검색했다. 저자는 한국인이었다. 이민을 와서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검색해 보았으나 그런 정보는 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보면 저자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과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번역하여 한국에 알린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왜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에 겐자부로를 아는 저자가 왜 약자 중심의 미학 원리에 대해 무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를 보편으로 확대해서 다수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했던 문학의 창작 원리이다.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문학 전공자 누구나 금언으로 여기는 <시학>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런데 소녀상의 소녀는 극히 일부의 위안부였을 뿐이라고 여러 번 말한다. 당시의 평균 연령은 스물다섯 살이었다는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며 소녀상은 허위로 날조된 이미지라고 말한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평균이 전부를 대표한다고 믿는 것은 문학 하는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평균은 통계이지 상징이 아니다. 소녀상이 평균을 알리기 위해 조형된 것은 아니다. 저자가 그것까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상징을 평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소녀상의 상징은 평균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큰 고통을 알리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평화의 소녀상이 동상이라는 것 때문에 초등학교 화단에 있었던 이승복 동상과 유관순 동상을 떠올렸다. 지금은 날조된 일화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일화 속의 ‘이승복’을 두고 소년의 평균이라 말할 수는 없다. 삼일운동의 유관순 역시 독립운동 소녀의 평균이 아니었다. 평화의 소녀상 역시 상징이지 통계가 아니다. 그런데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통계학적으로 평화의 소녀상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평화의 소녀상이 동상이라는 것 때문에 이승복과 유관순을 떠올렸듯이 저자가 번역한 적 있다고 한, 장애아를 키우면서 소설 세계를 넓히고 인간의 본성에 천착한 작품을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오에 겐자부로 때문에 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마음을 생각했다. 자녀 중에 아픈 이가 있으면 부모는 아픈 딸이나 아들의 부모이지 자녀의 병의 크기를 평균내서, 평균값으로 아픈 자녀의 부모가 아니다.
    그는 저자가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에 속이 뒤틀리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저자는 ‘우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면서 ‘우리’가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딸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자라서 차별하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공동체에서 그녀들을 위안소로 추방하여 희생자로 만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했다. 그는 머리가 핑 돌았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 속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 모두가 들어가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이 아니었지만 한두 명이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불쾌감이 증폭했으나 저자의 말 모두가 기괴한 것이 아니었다. ‘강제로 끌려간 20만 명의 소녀’라는 수사는 틀린 말일 수 있었다. 저자는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자 위안부들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말 역시 일본의 만행을 과장하고 피해상황을 왜곡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일 수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에서 소녀의 헤어스타일이 숏컷인 것을 보면 소녀상의 소녀는 당시의, 교육받지 못했던 조선 소녀를 조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예리한 지적일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었다. 왜 이렇게 불쾌할까. 저자에게 왜 일본군은 다정한 오빠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 것일까. 그것을 한국인 저자가 썼기 때문일까. 그는 ‘강간적 매춘’, ‘매춘적 강간’이라는 표현을 대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다가 코를 풀었다. 코를 푼 휴지를 책상 위에 던졌다. 그는 눈물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국어사전에서 ‘매춘’을 검색했다. 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매춘’은 ‘매음’과 같은 말이고 ‘매음’은 ‘돈을 받고 몸을 팖’이라는 명사였다.
    그렇다면 ‘강간적 매춘’이라 하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강간이면서 매춘인 것. 그는 사전을 다시 펼쳤다. 혹시 ‘매춘’에 ‘돈을 내고 몸을 삼’도 있지 않을지, 그러니까 매춘(賣春)과 매춘(買春)을 통칭해서 매춘이라고 하지 않는지를 살폈다. 강간을 해놓고 ‘나는 너의 몸을 산 거야.’라고 말하면서 돈을 던져 준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말이어야 ‘강간적 매춘’이 성립했다. 그러나 사전에 몸을 산다는 뜻의 매춘(買春)은 없었다. 강간적 매춘, 매춘적 강간에서 매춘은 몸을 판다는 뜻이었다. 매춘의 주체는 위안부 여성이었다. ‘강간적 매춘’에서 매춘의 주체 역시 위안부 여성이었다.
    그는 여러 경로로 강간적 매춘을 해석해 보았다. ‘강제적 매춘’은 해석이 가능한데 ‘강간적 매춘’은 도저히 어떻게 해볼 길이 없었다. 도표를 그려서 역, 이, 대우 관계를 따진 결과 ‘강간적 매춘’은 ‘돈을 받기 위해 달려들어 상대를 겁탈하고서 돈을 요구하는 행위’로 해석되었다. 위안부가 군인을 겁탈해 놓고 돈을 요구한 것이 강간적 매춘이었다. 군인이 위안부를 겁탈한 것이 아니라 위안부가 군인을 겁탈한 것이었다. 강간은 원하지 않는 성행위를 강요한 것을 뜻한다. 저자는 위안부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군인이 원하지 않았는데 강제적으로 성행위를 했다. 어떻게 위안부를 그렇게 풀이할 수 있는가. 그는 인터넷에서 저자의 사진을 찾아 노려보았다. 저자는 강간적 매춘이 오해일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강간적 매춘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위안부들이 했던 행위는 ‘매춘적 강간’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매춘적 강간은 무엇인가. 몸을 팔고 싶은데 상대가 거절하자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서 강제로 겁탈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누구를? 위안부가 군인을? 돈을 바라고? 강간을 당해 놓고 돈을 원했으니 그것이 강간적 매춘이란 뜻인가? 저자는 항변하는 글에서 강간의 성격도 있었고 매춘의 성격도 있었음을 서술하기 위해 고안했다고 하는데 있을 수 없는, 4차원적인 한국어 조합이었다.

 

    그는 책을 읽고 생기는 메스꺼움의 정체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그는 책을 던져버렸다. 누군가에게는 얘기를 해야만 했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의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페이스북은 책과 다른 세상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지껄일 수 없는 것이 온라인 게시판이었다. 그는 게시물을 훑어보다가 저자의 페이스북에 들어 있는 자신의 자아 하나를 발견했다. 자기처럼 혐오감을 느끼고 <제국의 위안부>에 대하여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저자의 지원세력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저자의 지원자들은 전부를 읽고 이야기하라고, 기사에서 단장취의 하여 왜곡한 내용을 읽지 말고 <제국의 위안부> 전체를 읽고 말하라고 독서의 성실성을 요구했다.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비판하면서 저자와 지원자들의 입을 못 열게 하려면 <제국의 위안부> 책 본문뿐만이 아니라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읽고 인용한 자료를 모두 읽은 후 진위 여부를 가리고 가치 판단을 해야 한다. 저자가 읽은 자료에는 일본어 자료도 많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일본에서 공부를 했고, 일본학을 가르치고, 페이스북에서 일본어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는 게임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매춘적 강간 혹은 강간적 매춘이 들어 있는 부분을 다시 읽었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위안부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몸을 팔았던 매춘 여성이었고, 그 여성을 관리한 일본군의 위안소 제도는 일본에서는 합법이었던 공창제도에 기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일부 위안부 문제 부정론자의 견해를 반박하는 차원에서 매춘적 강간 혹은 강간적 매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은 ‘매춘’이라 부르고 ‘우리’는 강간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실정인데 위안소를 통해 돈을 벌어서 이익을 챙긴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것도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었다.

 

    그는 창문을 열고 침을 뱉었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한 번 누른 결과가 이렇게 불쾌한 상황을 초래했다.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될 줄 몰랐다. 그는 상식에 기대어서 <제국의 위안부>를 읽었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가 알고 있는 상식에 균열을 내기 위해 출간된 책이었다. 감정적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밤의 창가에서 가로등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왜 이 책을 보게 되었는가.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내는 아이들이 잠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방에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을 넣고 퇴근했다.

 

    그는 늦은 밥을 먹은 후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펼쳤다. 목차와 서문을 읽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다행이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어 자신을 위로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읽은 자료를 모두 섭렵하고 그것에 추가 자료를 제시하여 오류를 바로잡고 있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읽는 데에는 에너지가 크게 들지 않았다. <제국의 위안부>처럼 문장 문장을 의심하면서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논지가 일관되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는 사회학 공부에서 출발한 역사학자였다. 그 저자가 보기에 <제국의 위안부>는 문학을 전공한 역사학 아마추어가 논리적 증명 절차 없이 감상적인 추론에 기대어 자신의 기괴한 의견을 덧붙인 책이었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정대협에서 공개한 증언집을 자료로 삼아 놓고 정대협이 증언의 존재를 은폐하려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정반대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여 사실로 서술했으며 다양성을 말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본질을 오해했고, 일본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과거의 주장을 처음 있는 자신의 견해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제국의 위안부>는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사실을 이미지화해서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했는데 그가 보기에 그런 지적은 예리한 문체 분석까지 이루어내는 것으로 보였다. 승부 게임으로 따진다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의 압승이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에 의하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사실이 아닌 것을 인용하고 있었고, 증언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고, 법률 용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공창시설이 합법이었으므로 위안소에서 위안부를 성노예로 고용한 것은 법적인 잘못이 아니었다고 할 때, 매춘 행위를 인정하는 일본의 국내법과 전쟁범죄를 판단하는 국제법의 차이를 저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는 순식간에 마음의 불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반성했다. <제국의 위안부>를 읽으면서 나는 왜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이 말이 진짜일까’라고 묻지 못한 채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하면서 버럭 화부터 냈을까. 그는 자신이 못마땅했다.

 

    생각을 끊으면 되는 일일 텐데……. 그런데 왜일까. 그는 불이 사그라진 것이 아쉽고, 마음에 먼지가 자욱이 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에 따르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일본인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책을 펴냈다. 일본어판에서는 그 아부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한국어판에 없었던, 일본 정부는 꾸준히 사과해 왔고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개별 보상을 하려는 정책을 한국 정부가 가로막았으니 책임은 한국 정부에게 있다는 문장을 추가로 기술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어로 생활한다. 그가 일본어로 출간된 그 책을 읽었으니 일본어를 잘못 읽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바라보았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재일조선인 3세인 저자가 일본에서 일본어로 출간한 책이었다. <제국의 위안부>의 일본어판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일본에서 큰 상을 받은 것에 그는 반발하고 있었다. 그가 읽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한국인 번역자가 번역한 번역본이었다. 일본에서 출판한 책의 제목은 ‘망각을 위한 화해’였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번역자가 정한 제목일 것이다.
    그는 잠이 오지 않아서 연구실로 향했다. 벚꽃 핀 계절에 새벽길을 달려 학교로 들어갔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 연구실 바닥에 던졌던 <제국의 위안부>를 떠올렸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를 책상에 올려놓고 표지를 바라보았다.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책등에는 언뜻 보면 아이를 업은 것처럼 오해될 수 있는, 일본의 봇짐을 등에 진 조선으로 따지면 한복 같은 옷, 기모노를 입은 여자의 형상이 붉은색 계열의 이미지로 인쇄되어 있다. 앞표지에는 기모노 입은 여자의 이미지를 반등분하여 옆에서 본 사람의 얼굴을 위아래로 늘여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미지를 제목 ‘제국의’와 ‘위안부’ 사이에 배치해 놓고 있다. 그는 매춘적 강간과 강간적 매춘이라는 말이 떠올라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위안부였던 여성 중에는 일본군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 사람도 있었는데 정대협 같은 한국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는 피해자가 그런 기억을 노출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한다. 그것은 운동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사한 폭력이었으며 그것은 피해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였다는 말이 떠올라 손에서 땀이 난다.

 

    그는 다시 <제국의 위안부>를 읽는다. 일본군이 어린 소녀들을 유괴하는 업자들의 불법행위를 묵인한 것은 일본 군인들의 향수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라고 적힌 문장을 읽는다. 위안부들은 성적 위무를 포함하여 심리적 위안을 주는 역할을 국가로부터 부여받았다, 라고 적힌 문장을 읽는다. 그리고 ‘물론’을 읽는다. 저자는 ‘물론’ 그러한 역할은 국가가 임의로 부여한 역할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물론’ 전부가 다 그랬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 라고 적힌 문장을 읽는다. 젊고 가난한 여성들을 유괴하고 강제 연행한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민간인 업주나 포주였다, 라는 문장을 읽는다. 폭행을 한 것도, 아편을 주사한 것도 일본군이 아니라 업주나 포주였다, 라는 문장을 읽는다. 위안부가 된 소녀들을 공동체 바깥으로 내친 것은 우리들 자신이었다, 고 말하는 문장을 읽는다. 그리고 저자는 다정하고 배려 많은 일본군 몇 명의 회고담을 이야기한다. 위안부들은 하급 병사들의 고갈되지 않는 왕성한 욕망에 응해 주어야 했다고, 여성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위안부를 주어로 내세워 말하는 문장을 읽는다. 저자는 하급 병사들이 욕정을 배설했다고 말하지 않고 위안부들이 응했다고 기술한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모든 일본군이 짐승 같은 존재들이 아니었는데 왜 ‘우리’에게는 모두가 짐승의 이미지로 남아 있느냐고 묻는다. 강제 징용된 군인 중에는 위안부를 해방한 군인도 있었는데 왜 그들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읽는다. 언어와 이름을 잃은 채로 성과 생명을 국가를 위해 바쳐야 했던 조선의 여성들이라는 표현을 읽다가 책을 찢는다. 찢다가 던진다.
    그는 찢어서 던진 책으로 다가간다. 도서관 바코드가 눈에 들어온다. 구입한 책이 아니라 대출한 책이기에 원상태로 반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책을 발로 찬다. 그는 찢어 놓은 페이지를 손아귀에 넣고 구긴다. 그는 책상으로 다가간다. 식은 커피를 마신다.

 

    끝까지 읽기로 한다. 그는 혀를 차면서 문장을 읽는다. 그는 저자와 자신이 동일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부분에서 놀란다. 일본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저자는 ‘부정론자’라고 부른다. 부정론자들은 위안부 문제를 합법적인 제도였다고 주장하며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조선인 위안부를 윤간하는 일본군을 예로 들면서 어떻게 그것이 범죄가 아닐 수 있느냐고 따진다. 그가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위안부 희생자들의 실상을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저자는 부정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성노동으로 지친 몸을 가지고 걸음도 못 걸으면서 피 묻은 붕대를 빨아야 했다고 고통을 이야기하는 위안부 희생자의 증언을 소개한다. 그는 무릎을 친다. 저자의 논리를 발견한 것이 기쁘다. 정대협을 비판할 때는 착한 일본인을 예로 들고, 부정론자를 비판할 때는 나쁜 일본인을 예로 드는 것이 저자의 논법이다.
    정대협을 비판할 때는 붕대 감는 법을 가르쳐주고 심지어는 총 쏘는 것까지 가르쳐준 일본군의 배려를 이야기하더니, 조선인 위안부들은 준일본인으로서 배려를 받고 군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빨래를 했다고 이야기하더니 부정론자를 비판할 때는 성노동으로 지친 몸을 가지고 걸음도 못 걸으면서 피 묻은 붕대를 빨아야 했다는 증언을 소개한다. 정대협을 비판할 때는 강제로 끌고 간 것은 군이 아니라 업자였다고, 업자의 잘못을 이야기하더니 부정론자를 반박할 때는 군이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고,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그 잘못과 책임은 군에 있다, 라고 말한다. 정대협을 비판할 때는 조선인 위안부가 준일본인으로서 대우를 받았다, 고 하더니 부정론자 비판장에서는 일본군이 식민지인에 대한 차별인식으로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를 학대했다고 말한다. 정대협을 비판할 때는 업자들을 폭행의 주체로 규정하면서 일본군을 비폭력 성구매자로 옹호하더니 부정론자를 비판할 때는 일본은 업자들에게 불법행위를 전담시켜 조선인 업자를 동족에 대한 가해자로 만들었다고, 업자를 피해자 쪽으로 정리하면서 일본을 악마적인 존재로 서술한다. 업자를 시켜서 강제적으로 연행한 것은 일본군이었는데 그것은 살인교사와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이제 알겠다. 왜 다 읽으라고 했는지. 왜 다 읽어야 오독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 이 부분을 예로 들면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자신이 진취적인 좌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론자를 비판하는 근거란 정대협이 일본의 책임을 따질 때에 앞세우는 근거가 아닌가. 저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받은 무죄 판결에 대하여 보수 언론에서는 자세히 다루어 주었는데 진보 언론에서는 보도해 주지 않아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말하는 것이 <제국의 위안부>의 논법이다. 결국 <제국의 위안부>에 새롭게 추가되어 남은 것이 있다면 착한 일본군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서를 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의 눈에 <제국의 위안부>는 아마추어가 쓴 감상적 에세이에 불과한 것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그는 카페로 나간다. 졸업하기 전에 대화를 많이 했던 제자와 만나기로 했다. 지난밤 페이스북 메신저에 활동 중인 것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메시지를 보냈다가 약속을 잡았다. 강간적 매춘이나 매춘적 강간이라는 말 너무 이상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제자는 밝을 때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는 제자가 먼저 만나자고 말해 준 것이 고마워서 약속 시각과 장소를 정해서 보내주었다. 약속 장소에는 제자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루 종일 불쾌하다. 강간적 매춘이 뭐니 도대체!”
    “<제국의 위안부>, 저도 알아요. 신문에서 봤어요.”
    “위안부들하고 일본군이 동지적 관계였다잖아. 나빴던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포주였다는 말을 들으니까 확 돌아버리겠더라고. 지주는 착했는데 마름이 나빴다는 식이지. 전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군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이야. 착한 일본군 얘기를 너무 많이 해. 남편이 일본 사람인가? 정영환이라는 사람이 쓴 책을 보니까 그 이상한 책은 이미 있었던 일본군 무죄론 여섯 가지를 조목조목 다 반복하는 논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
    “위안소는 공창시설이었으므로 합법이었다. 군은 위안부들을 좋은 방향으로 관리했다. 그들은 성노예가 아니었다. 군인들은 여자들을 강제로 연행하지 않았다. 국가 차원에서 한 잘못은 없었다. 전쟁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인데 나쁜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그런 내용이야.”
    “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으세요?”
    “알고 있어야 하니까.”
    “왜요?”
    “작가이니까.”
    “교수님이 작가이신 거 알아요. 그런데 왜요?”
    “왜가 어디 있니? 우리 역사인데?”
    “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시는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밤중에 메시지를 보내시고. 세상에는 여러 영역이 있는데.”
    그는 제자에게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 뒤에 생겼던 감정 기복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 제자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의 말을 듣는다.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말과 침을 참는다. 제자는 커피숍 조명을 왜 어둡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조명을 밝지 않게 하는 것은 상대의 말에 섞여 나오는 침을 가리기 위해서이다. 제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카페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다. 제자는 교수를 바라본다.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이야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얘기 들어줘서 고맙네.”
    “고맙긴요. 그런데 교수님, 왜 여기서 보자고 하셨어요?”
    “연구실은 답답하니까. 넌 졸업했잖아 이제. 학교 지긋지긋하지 않니? 바깥에 나오니까 너랑 얘기가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좀 그렇죠. 저랑 있으면 얘기가 잘 통하긴 하죠. <제국의 위안부>…… 우리 시대에 책 내용을 가지고 다투면서 법정으로 가는 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진짜 아니지. 학문은 학문다워야지. 그런데 읽어 보니까 소송을 걸 만하더라고. 몰랐으면 넘어갔겠지만 알고 난 다음에는 가만히 있기 힘들게 생겼더라. 민사에서는 책을 거둬들이고 배상금을 내라고 했는데 형사 재판에서는 무죄로 판결했어. 판사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건데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자기가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 <제국의 위안부>에 있는 내용이 옳다는 뜻이 아닌 거야. 그런데 그 여자는 자기 말이 옳아서 무죄 판결이 난 줄로 아는 것 같아. 이상한 여자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받은 문장은 동그라미로 쳐서 비운 다음에 그 책을 다시 냈어.”
    “그 저자가 싫으세요?”
    “좋지는 않아.”
    “교수님…….”
    “응, 왜?”
    “교수님은 좀 아닌 것 같아요.”
    “뭐가?”
    “<제국의 위안부>를 남자가 썼어도 그렇게 나오실 거예요? 이상한 여자라뇨? 남편이 일본인인가라뇨? 남자가 썼어도 아내가 일본인인가라고 하실 거예요? 교수님께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라는 지위…… 좋은 소설가라면 그 저자가 왜 그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한 번 누른 게 그렇게 부담되세요? 누른 게 그렇게 싫으면 취소를 하세요. 그게 뭐 어렵나요? 그분이 싫으시면 친구 삭제를 하시면 되는 거고요. 자신 없으면 익명 게시판에 가서 그 저자를 욕하시든가요. 저한테는 밤중에 메시지 보내시면서. 매춘, 강간, 그런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도 진심이 있을 거잖아요. 소설가라면 그 내면을 좀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학생들한테 그렇게 가르치시잖아요.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 보라고.”
    “혹시 아는 관계니? 그분하고?”
    “아니요.”
    “들어 봐. 책 내용을 가지고 법정에 간 것은 분명 잘못된 거지. 그래도 너무했어.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남자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 너무 많은 거야. 젊은 군인들은 거의 강제로 징용됐겠지. 그렇다고 모두가 다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위안부와 관계를 맺지는 않았을 거잖아. 네 남자 친구도 군대에 갔지만 군부대 앞에 있는 술집에서 모든 병사들이 성욕을 해결하지는 않으니까. 성병이 무서워서 위안소에 출입 안 한 군인들도 많았을 거야. 그런 군인에 대해서는 왜 얘기 안 하는 거지? 문체를 분석하면 완전히 남성적 시각으로 쓰고 있어. 여자이면서. 위안부 희생자들을 천구백칠십년대 팔십년대 호스티스 문학의 여주인공쯤으로 보는 것 같아. 몸 팔아서 오빠 학비를 벌고, 애인 학비를 벌지만 끝내는 좌절하는 주인공들 말이다. 그 저자는 위안부를 학대하는 군인을 이야기할 때에도 윤리적으로 올바른 군인의 시선으로 범죄자 군인을 이야기한단 말이다. 진짜 군인은 안 그러는데 군법을 어긴 쓰레기 군인만 위안부를 노예 취급 했다는 거야. 그래서 올바른 군인들까지 오해를 받았다는 거야. 일본 측에서 들으면 좋을 말을 골라서 하고 있어.”
    “…….”
    “모두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야.”
    “그러면요?”
    “어떤 증언은 말이야. 일본군이 말을 태워 주고 해서 재미있게 논 적이 있고, 그때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한국에 들어올 때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버리고 왔다고 했어. 그런데 저자는 그걸 결정적인 증거라고 내세우면서 그런 기억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위안부 문제를 한일 간의 불화로 확대하는 운동권 세력들의 문제점이라는 거야. 좋았던 기억은 말해서는 안 된다, 희생성이 축소되는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강요를 했다는 거지.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사진을 버렸다는 말에서 문제라는 말이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는 거니? 네가 그런 상황이었다고 생각해 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그 사진을 버렸겠니? 귀환하면서 위안부였던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겠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공감능력이 안 보인다고 할까. 정영환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써서 조목조목 짚어 주었으니 천만 다행이지.”
    “그 책이 마음에 드시나 보네요.”
    “괜찮더라.”
    “뭔가 아닌 것 같아요, 교수님은.”
    “뭐가?”
    “<제국의 위안부>를 쓴 사람은 그 여자라고 부르고, 다른 책을 쓴 남자는 이름을 부르고……. 그것도 여자 혐오인 거 알아요?”
    “내가 무슨 여자를 혐오한다고 그래? 말도 안 된다. 그럴 만하니까 이름을 안 부르는 거야. 그런데 남자 친구는 계속 만나니?”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안 해도 되죠?”
    “교수가 제자한테 그런 것도 못 묻냐? 그런데 뭐가 아닌 것 같다는 거야, 내가?”
    “글쎄요. 저는 만날 취직 걱정이에요. 여자라서 어렵겠지만. 그런데 교수님. 저는 이제 졸업했고, 교수님 명령 안 들어도 되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용건 없으시면 만나자고 안 하시는 게 좋겠어요. 메시지도 좀 불편해요.”
    “밤에 메신저 보다가 활동 중이라는 표시가 있어서 보냈던 거야. 잠 안 자고 뭐 했어?”
    “자소서 썼어요.”
    “어디 알아보는데?”
    “출판사요.”
    “응, 그렇구나. 지난번 출판사 일은 그쪽에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취직이 어디 쉽게 되니?”
    “메신저에 활동 중이라고 뜨는 거 메시지 받을 수 있다는 표시 아니에요. 교수님도 컴퓨터 켜놓고 주무실 때 있으시잖아요.”
    “싫으면 확인 안 하면 되지 않겠니? 알림을 꺼놓거나.”
    “받고 싶은 메시지도 있으니까 알림을 일부러 꺼놓을 수는 없죠. 변호사한테 상담하니까 싫다는 표시를 분명히 하라고 하더라고요. 교수님, 이제 그러지 마세요.”
    “그래. 안 불편한 메시지는 괜찮겠지?”
    “불편하고 안 불편하고는 제가 느끼는 거죠. 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할까요?”
    “응, 바쁘면 일어나자. 내가 차로 데려다줄까? 어디로 가?”
    “아니에요. 도서관 가서 자소서 쓰려고요.”
    “그래. 또 연락하자. 얘기를 하고 나니까 속이 좀 풀리네.”
    그는 커피를 바닥까지 마신 후 계산을 하기 위해 계산대로 걸어갔다.

 

    이상하게도 제자를 만난 후부터 뒤에 뭐가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시시티브이 카메라를 만나면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벚꽃이 만개한 계절이었다. 그는 벚나무 아래의 벤치에 앉아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저자에게는 동지들이 있었다. 그는 ‘좋아요’를 누른 사람의 목록을 살폈다. 이 중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성실하게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제자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제자는 카페에서 만났던 날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연한 말을 제자가 왜 하는지 의아했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동지’라는 말이 불쾌한 것은 저자가 그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지는 지향이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를 원했던 일본군과 전쟁광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몸을 착취당했던 위안부가 어떻게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겠는가.
    그는 제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좋아요’를 눌렀던데 혹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와 아는 관계냐고 물었다. 제자에게서는 답이 오지 않았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올린 게시물들을 읽었다. 저자를 옹호하는 사람의 글을 읽던 도중 답글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읽어 보시고 판단하시오‘라고 입력하려다 생각을 접었다. 싸움으로 치자면 한 발 물러선 셈이었다. 그는 자신이 왜 한 발 물러선 것인지 생각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연역적으로 다가가 찾은 책이 아니라 도서관 사서가 서가에 나란히 꽂아 놓았기에 생각 없이 뽑아 들었던 책이다. 그토록 대단한 책인가. 그는 표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일까.
    피해자 쪽에서 안타까워하는 게 진짜예요. 교수님은 뭘 위해서 분개하시는 거죠? 뭘 잃으신 게 있나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 생각하게 만들어서 기분이 나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 사람 논리에 끌려간 게 기분 나쁘신 것 같아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입장에서 바라보시면서 화를 내는 건, 적어도, 아니잖아요.
    그는 제자의 말을 생각하면서 불안에 빠졌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찜찜한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전화기를 꺼내어 정치학 전공 교수의 연구실에 전화를 걸었다. 정치학 교수는 휴게실에서 만나자고 얘기했다. 그는 다른 교수의 개입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자신의 연구실이나 정치학 교수의 연구실에서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치학 교수는 휴게실이 편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휴게실에서 정치학 교수와 만나기로 했다.
    휴게실은 비어 있었다. 그는 정치학 교수에게 그간의 경과를 이야기했다. 정치학 교수가 물었다.
    “박 교수님이 보시기에 그 저자는 왜 쓴 것 같아요?”
    “글쎄요. 그냥 일본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 학부부터 공부하고 학위 받은 다음에 돌아와서 한국에서 교수가 됐으니까. 젊은 시절을 보낸 곳에 대한 긍정이 있는 거겠죠. 만약 교수가 못 됐다면 어땠을까요? 성공했으니까 그렇게 나오는 것 아닐까요? 유학해서 실패한 사람들은 태도가 안 그렇잖아요.”
    “개인차가 있을 겁니다. 한국인들이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일본은 안정되어 있잖아요. 한국인들은 감정적이고. 박유하의 눈에는 그게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어요. 그 입장이 터무니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대한민국 정부가 너무 엉터리로 협약을 맺었거든요. 일본 정부가 전쟁 피해자들 개인에게 보상을 하겠다고 했을 때 한국 정부가 반대했거든요. 우리에게 주면 우리가 나누어주겠다고 했어요. 학생들한테 발표 시켜 보면 어떤 학생들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 개인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곤란하죠. 정부가 보상을 하자니 먼저 과거의 협상을 실수로 인정해야 하거든요. 첫 단추를 너무 형편없이 꿰었던 거예요.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가 진하게 남아 있는 거죠. 일본 정부한테도 할 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고노 담화 이후에는 일본에서 민간기금의 형태로 보상을 한 적이 있죠. 위로금을 받은 사람도 있고 거부한 사람도 있고. 정부 차원에서는 개인 보상을 할 수 없게 돼 있으니까요. 2015년에 있었던 합의에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은, 이제는 더 이상 논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일본으로서는 어쨌든 끝내고 싶은 거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에는 이제 더 얘기하지 말자, 라는 뜻이 들어 있었던 거죠.”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라는 책을 쓴 정영환은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일본에 아부하려고 쓴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더군요. <제국의 위안부>에는 민간기금도 일본 정부가 크게 기여해서 만들었으니 일본 정부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하고 주둔지에서 강간하고 살해하는 미군 얘기를 하면서 왜 미국에게는 따지지 못하면서 일본에게만 따지냐고 하더군요.”
    “정영환은 누구죠?”
    “재일조선인 3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 입국이 금지돼 있고요.”
    “조총련 계열? 그러면 진영 논리가 만들어지는 거네요. 진보좌파, 종북, 반국가 단체.”
    “그렇더군요. 노조를 뭉개뜨리려고 노조를 싫어하는 노동자들을 불러 모으고 외부 지원세력을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식하고 안 달라요.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정대협을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대협 때문에 일본의 사과가 안 받아들여지고 문제가 자꾸 커져 간다고, 정대협을 종북 단체로 몰면서 소녀상 세운 것을 비난합니다. 20년 동안 정대협이 운동해 온 결과를 집약한 게 소녀상이래요. 일본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쥔 반일 소녀가 대사관 앞에서 일본을 노려보고 있다는 거예요. 위안부 희생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녀들이 희생당했던 전쟁터의 위안소에다 상을 세울 것이지 왜 지금의 일본 정부를 겨냥하고 대사관 앞에다 세웠느냐고 꾸짖어요.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말하고 안 다르죠.”
    “종북으로 모는 건 한국에 고착화돼 있는 방식이죠.”
    “너무 화가 나서 <제국의 위안부> 저자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뭐라고 쓰려다가 혹시 물어뜯길까 봐 몸 사리게 되더군요. 나는 깨끗한가.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던데요. 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왜 싫어하는가. 자연스러운 민족주의의 결과인가. 촌스러운 민족주의인가. 그래서 이런 결정을 했습니다. 자기 검열은 확신이 없는 사람이 하는 행위이다. 자기 검열은 부동(浮動)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확신에 찬 사람은 스스로 검열하지 않는다. <제국의 위안부>는 자기 검열의 절차 없이 나온 책이 아닐까요?”
    “자기 검열이 없는 상태를 내면화됐다고 하는 거예요. 내면화된 것하고 신념을 가지는 것하고는 한 장 차이입니다. 알고서 외치면 신념이지만 모르는 사이에 확신이 생긴 것이라면 내면화된 결과라고 해야 하는 거겠죠.”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신념이 있는 걸까요, 내면화된 걸까요?”
    “그건 그렇고, 박 교수님도 조심하실 일이 있습니다. 제가 먼저 뵙자고 할까 하다가, 기회가 올 것 같아서 기다렸는데 오늘 연락 잘하셨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최근에 혹시 졸업생 제자 만나셨나요?”
    “그랬죠.”
    “그러면 이거 확인 좀 해주세요. 제가 양성평등센터 우리 단과대학 책임위원인데 제보가 들어와서요.”
    “성희롱 문제입니까? 우리 학과하고 관련되었나요?”
    정치학 교수가 그에게 자신의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전화기 화면에는 페이스북 게시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게시물을 읽었다. 그는 제자의 말투가 떠오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이 오지 않아서 페친들한테 하소연 삼아 올린다. 며칠 전 모 교수를 만났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에 <제국의 위안부>를 읽고 왔다. 내게 매춘과 성노예에 대해 얘기했다. 그 교수는 성담론을 지식상품으로 소비하는 남성의 우월의식에 빠져 <제국의 위안부>를 읽은 게 분명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 나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불쑥 나에게 남자 친구와 계속 만나느냐고 물었다. 나는 희롱당하는 느낌이었고 수치심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음부터는 용건 없이 만나자고 하지 말라고, 변호사한테 들은 가이드라인을 따라 싫다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전달했다. 그 교수는 변호사라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내가 화가 나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쪽팔려서 말하기 싫지만 내일의 나를 위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그 교수는 예전에 출판사 사람을 한번 연결해 준 적이 있다. 나는 취직에 목이 말라서 출판사 사람에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길게 얘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일이 잘 안 됐지만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희망이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교수가 취직자리 얘기 같은 걸 꺼낼 줄 알고 두 시간 걸려 약속 장소로 나갔다. 교수 연구실이 아니라 카페였다. 내가 고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교수는 모르고 있다. 취직자리 얘기 같은 걸 기대하고 갔던 내가 한심하니 이번에는 고소하지 않을 생각이다. 매춘, 강간 운운하는 내용으로 시작했던 메시지에서 무슨 취직자리 얘기를 기대한다는 건가! 쪽팔리다.
 하지만 다음에는 고소할 생각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다음부터 메시지 하지 말라고 분명히 표현했고 그 대화를 녹음해 놓았다. 권력을 가진 자가 행사하는 행동의 자유는 약자를 향한 폭력임을 그는 알지 못한다. 권력자가 가지는 부도덕한 자유는 폭력일 수밖에 없다. 행동의 자유가 없는 것이 권력에 부여된 윤리이다. 권력자가 외치는 자유라는 말 역겹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을 고소할 것이다. 이렇게 다짐해 놓지 않으면 내가 언제 또 취직자리 소개 같은 걸 바라면서 그의 메시지에 끌려 다니는 인간으로 변하게 될지 몰라서 페이스북에 남긴다. 공유 많이 해주삼. 봄밤인데! 페친 여러분 파이팅.

 

    펑! 그는 머리가 터지는 것 같았다. 그는 말없이 정치학 교수를 바라보았다. 제자의 게시물에는 이미 수백 개의 좋아요가 달려 있었다. 제자의 게시물이 자기에게 전달되어 오지 않았던 것은 제자가 자신을 친구 명단에서 삭제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정치학 교수의 얼굴을 바로 대하기 힘들었다. 정치학 교수는 양성평등센터의 책임위원이었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를 읽으면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좌절을 맞이했다.
    “아니, 교수님. 이런 것도 죄가 됩니까?”
    “거기에 나오는 교수가 박 교수님 맞으신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하실 게 아니라, 맞으면 그렇습니다, 라고 하셔야죠. 재판에 안 걸린 게 다행이네요. 요즘 애들은 거침이 없으니까. 조심하셔야죠.”
    “저는 그런 마음 먹은 적 없습니다.”
    “중요한 건 교수님 마음이 아니죠. 학생 입장에서 봐야겠죠. 용건이 있으셔서 만나셨어요?”
    “아니, 걔가 먼저 만나자고 했어요.”
    “교수님이 만나자고 하신 거 아니고요?”
    “내가 메신저로 말을 거니까 낮에 만나서 말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났죠.”
    “밤에 메시지를 보내셨군요. 그것도 성희롱입니다. 걸면 걸립니다. 이런 글을 쓴 걸 보면 바로 고소를 할 것 같지는 않아요.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재판에 가면 교수님이 지실 거예요.”
    “그런가요?”
    “백퍼센트.”
    “지면 어떻게 되죠?”
    “사직서 내셔야 될 거예요 아마.”
    정치학과 교수는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는 제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강간적 매춘이라니, 도대체 이게 뭐니? 남자 교수가 여자인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면? 딸이 교수로부터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면? 죽여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저자들은 과연 피해자의 입장에서 분노한 적이 있는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분노하는 것이 진짜라고 말하던 제자의 얼굴이 스쳤다. 성담론을 소비하는 남성의 입장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읽었다는 제자의 말이 그의 가슴을 치고 갔다. 제자와 함께 걷는 밤의 벚꽃 산책길을 상상하던 자신의 머리를 박살내고 싶었다.
    그는 정치학 교수와 헤어졌다.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의 책상 위에는 찢어진 <제국의 위안부>가 놓여 있었다.

 

 

 

 

 

 

 

 

 

 

박금산
작가소개 / 박금산

2001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소설집 『생일선물』,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연작소설 『바디페인팅』,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등이 있음. 2016년 제24회 오영수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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