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방, 닮은 사람 - 정이현
목록

[커버스토리]

 

 

닮은 방, 닮은 사람

-박완서와 아파트

 

 

정이현

 

 

 

 

    박완서 선생의 연보에는 1981년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엄마의 말뚝2>로 제 5회 이상 문학상 수상, <도둑맞은 가난> 출간. 20년 간 살던 보문동 한옥을 떠나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
    저 ‘강남의 아파트’는 잠실의 장미아파트이다. 1979년 완공되어 입주를 시작한 장미 1차 2차 아파트는 모두 3300세대가 넘는 대형 아파트단지가 되었다. 가끔 그 근처를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선생을 떠올리곤 한다. 저 똑같이 생긴 창문들 중 어디가 선생의 창이었을까. 거기서 내려다보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풍경은 지금 얼마나 바뀌었을까.

 

    내가 아파트라는 공간에 처음 매혹된 것도 1981년 무렵이다. 가까운 친척이 방배동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 집이 몇 동 몇 호였는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날 만큼 아파트라는 공간은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엘리베이터, 천천히 상승하던 그 네모난 상자가 갑자기 턱 멈추었을 때 숨이 멎을 뻔했다. 문이 열리자 나는 본능적으로 발밑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바닥과 땅바닥의 수평이 아주 조금 어긋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허공에 살짝 떠 있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입 밖에 뱉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낯선 공포였다.
    아파트의 내부는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거실과 주방은 트여 있었고, 크고 작은 방들은 네모반듯했다. 거실에는 베란다라는 것이 붙어 있었다. 베란다에 나가 아래를 내다보았다. 아득했다. 관점(觀點)의 의미를 인지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종일 거기 붙어 선 채, 땅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내가 모르는 생을 상상했다.

 

    박완서 선생은 ‘얻은 것과 잃은 것’이라는 제목의 산문에 이사 전후의 심경을 남겨 두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날 밤새도록 비가 왔다. 나는 내 초라한 이삿짐이 곤돌란가 뭔가 하는 괴물스러운 것에 매달려 비를 맞을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까지 비가 멎어 줬으면 조바심하며 듣는 빗소리는 보통 때 무심히 듣던 빗소리하곤 달리 여러 갈래의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중략) 앞으로 살게 될 11층 높이 아파트에선 빗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생생한 두려움을 더했다.’
    그러나 11층 높이에 살아 보니 짐작과 달리 빗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마른땅, 축축한 땅, 흠뻑 젖은 땅, 폭우로 범람하는 땅마다 차바퀴 소리가 완연히 다르게 들려왔다는 것이다. 지내보기 전엔 알지 못했을 것들. 나 역시 11층에 오래 살았기에 그 문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11층에는 11층의 방식이 있다. 이 산문을 펼칠 때마다 아래의 문장들을 반복해 읽는다.

 

    ‘사람 사는 일이 항용 그렇듯이 두려움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으로부터 왔다. 나는 쏟아 붓자마자 깊이 모를 깜깜한 나락으로 급전직하하는 고층의 쓰레기통이 그렇게 싫고 두려울 수가 없다. (…) 이 비인간적인 환경에 주민이 날로 늘어나는 것도 그런 편의시설 때문일 테고 나 역시 그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그중의 하나일 뿐, 이라는 의식이 박완서 문학의 근간인 것은 아닐까.

 

    내가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은 1986년부터였다. 나는 막 사춘기의 초입을 지나는 중이었다. 아파트로의 이사는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그러나 기록하고 싶은 밤은, 아파트에서의 첫 밤이 아니라 주택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여섯 살 때부터 살던 집의 작은 내 방. 내일 이삿짐 트럭과 함께 집을 나서면 이 공간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마지막에야 알게 된 것이다.
   아파트에서의 일상은 그저 덤덤했다. 다른 많은 꿈들처럼, 아파트살이라는 꿈도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리 있을 때만 반짝반짝 빛났다. 아파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심성이라는 낯선 태도를 숙지해야 했다. 해가 지면 집 안에서도 조심조심 걸어 다녀야 했고, 낯선 이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했다. 아파트 열쇠도 잊지 않고 꼭 챙겨야만 했다.
    어느 날 늦은 하굣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습관적으로 현관문을 열려는데 열쇠가 맞지 않았다. 아무리 애써도 열쇠가 구멍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안에서 문이 열렸다. 고개를 내민 것은,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다.
    “너는 누구니?”
    내가 누구인지, 누구라고 말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제야 문 위쪽에 붙은 숫자를 확인했다. 우리 집은 1101호인데 그 집은 1001호였다. 어떻게 된 셈인지, 엘리베이터가 나를 한 층 아래에 내려준 것이다. 나는 다만 눈을 끔벅끔벅했다. 이 건물의 모든 문들이 똑같다는 사실을 그 뒤로 잊은 적이 없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는 아파트가 많이 나온다. 아파트라는 형식을 한 ‘동일성의 연옥’에 대한 질문들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소설집 <기나긴 하루>에 재수록 된 단편 ‘닮은 방들’도 아파트를 배경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선생의 단편을 거의 다 읽은 줄 알았는데 이 작품은 여기서야 처음 읽게 되었다.
    주부인 ‘나’가 아파트 옆집 여자의 삶을 똑같이 따라하다 삶 자체에 환멸을 느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겨우 남과 닮기 위해 하루하루를 잃어버렸다.(중략)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속 깊숙이 염통 가까운데쯤, 미칠 듯한 희열을 감춘 듯이 살갗은 반들대고 눈은 번들댔다. 나는 당혹했다. 기분이 영 잡쳤다. 우리가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허구한 날 거울에서 낯익은 자기 얼굴이 아닌 전연 생소한 얼굴이 비친다거나 자기는 분명히 찡그렸을 터인데 거울 속에선 웃어 보인다거나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놀라고 기분이 나쁠 것인가.’ (239쪽)
    ‘나’는 옆집 여자가 혹시 몰래 간음이라도 하지 않나 의심한다. 그러나 옆집 여자를 달뜨게 한 것은 주택복권이었다. 옆집 여자가 복권에 당첨되어 그 아파트를 떠나게 되는 상상을 하며 ‘나’가 분노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런 짓은 내가 하려고 한 건데 그 여자가 모조리 훔쳐다가 마치 제 것처럼 써먹겠지.’
    타인이 내 은밀한 상상을 훔쳐가고 말리라는 은밀한 상상은 얼마나 부박하고 얼마나 절박한가. 그런데 그것을 누가 훔쳤나? ‘나’인가? 그 여자인가? 그 상상의 원본은 누구의 것인가? ‘나’인가? ‘당신’인가? 혼돈 속에서 우두커니, 그 섬뜩하게 닮은 방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한국 문학과 아파트’에 대해 말해야 할 때, 박완서 선생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끝

 

 

 

 

 

 

 

 

 

 

변웅필
5월 표지 ‘아파트’ / 변웅필

변웅필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현재 강화도에서 강아지 만득이와 살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윤성희
작가소개 / 정이현

1972년 서울 출생으로 성신여대 정외과 졸업, 동대학원 여성학과 수료,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수상,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 『타인의 고독』, 『삼풍백화점』,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목록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