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위한 만찬 - 김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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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고양이를 위한 만찬

 

 

김경욱

 

 

    “발소리 안 났어요?”
    여자가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꽃무늬 원피스에 기름투성이 에이프런을 두르고 한 손에는 비닐장갑, 다른 손에는 국자를 쥔 채였다. 조리대 가득 새 접시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재작년 블랙프라이데이에 사들이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레녹스 디너 세트였다. 보타이 차림의 판매원은 반영구적이라고, 금혼식 전에 하자가 생기면 군말 없이 환불해 주겠노라 너스레를 떨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선득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왠지 모르게 진저리치면서도 여자는 금테 장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식사 도중 느닷없이 정전이 찾아와도 헛숟가락질 하는 일은 없을 거라더니, 금빛 테두리는 퇴창을 낮게 파고드는 막바지 햇살에 타오르듯 빛났다. 연중 해가 가장 긴 날이었다. 여자가 등지고 선 부엌의 맞은편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바람이었겠지.”
    언더셔츠 바람으로 식탁 앞에 웅크린 남자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얼굴은 눈에 띄게 불콰했다.
    “풍경소리는 못 들었는데…….”
    “팔 달린 놈이면 벨을 눌렀겠지.”
    남자는 위스키 잔 위로 양주병을 기울였다. 라벨에는 뿔이 탐스러운 순록 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벨은 대체 언제 바꿔 줄 거예요?”
    “멀쩡한 벨을 왜?”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몇 번이나 말해요? 오밤중에 파이어 알람이라도 울리는 것처럼 깜짝깜짝 놀란다고요.”
    여자가 손에 비닐장갑을 꿰려 애쓰며 말했다.
    손가락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자꾸 엇나갔다.
    “국자를 내려놓으면 되잖소.”
    “마음이 급해서 그래요. 잔소리 말고 불이나 좀 꺼줘요. 시금치 데치는 냄비.”
    “한창 주님을 영접 중인데…….”
    남자는 두 손으로 식탁을 짚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릎을 펴는 순간 입에서 ‘끙’ 하는 신음이 반사적으로 새어 나왔지만 부엌 한구석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가스레인지의 불꽃은 네 개. 냄비 뚜껑마다 쉭쉭 김이 뿜어져 나왔다. 남자는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는 불꽃을 죽였다.   
    “거기 말고 그 위.”
    남자는 가스레인지 레버를 거칠게 돌리고 허겁지겁 양주병 앞으로 돌아갔다.
    “옷 좀 제대로 걸쳐요.”
    “내 집에서 옷차림도 맘대로 못 하나?”
    “손님 오잖아요.”
    “내 손님인가?”
    “기억 안 나요? 입국한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너무 고단해서 파이어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는데도 곯아떨어져 있다 소방대원한테 끌려 나가다시피 했잖아요. 로비로 피신한 투숙객 중 속옷 바람은 우리뿐이었어요. 얼마나 창피하던지. 차라리 진짜 불이라도 났으면 싶었지 뭐예요.”
    여자가 시금치의 물기를 조물조물 짜내며 말했다.
    “알몸도 아니었는데 뭘.”
    “당신 팬티를 입고 있었잖아요. 별 무늬 트렁크 팬티.”
    “남의 팬티를 왜?”
    “내 옷가지가 담긴 트렁크가 이름도 생소한 남미의 웬 공항으로 새버리는 통에 한동안 당신 옷을 입고 다녔잖아요.”
    “새로 사 입지 않고서.”
    “며칠만 참으면 되는데 뭣 하러 헛돈을 써요?”
    “그깟 속옷 몇 푼이나 한다고. 청승맞게.”
    “정말 기억 안 나요? 그 뒤론 밖에서 잘 일이 생기면 제일 좋은 속옷부터 챙기잖아요.”
    “벌써 22년 전이네.”
    “21년이거든요. 찜통 불이나 줄여 줘요.”
    “한 번에 시킬 것이지. 똥개 훈련도 아니고.”   
    남자가 구시렁거리며 재차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좀 더.”
    “에이, 너무 줄였네. 살짝 키워요.”
    여자가 불꽃에 시선을 두며 연이어 주문했다.
    “직접 하지 그래.”
    남자가 허리를 숙여 불꽃에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시금치 무치는 거 안 보여요?”
    “갈비찜이면 됐지 무슨 잡채까지…….”
    “그 사람, 잡채를 좋아한다니까요. 그나저나 정말로 발소리 안 났어요?”
    “아예 문 밖에 나가서 기다리지.”
    “도착하면 당연히 벨을 누르겠죠?”
    “벨을 떼버릴까 보다.”   
    “그러시든가. 풍경을 울리라고 써 붙이면 되겠네. 링 더 풍경, 플리즈.”
    “윈드벨이오.”
    “뭐라고요?”
    “여기 사람들 말로는 윈드벨이라고.”
    “옆집 여자한테는 풍경이라고 일러줬다고요. 불행을 멀리 쫓아내는 동양만의 전통이라며.”
    “케이트?”
    “이름도 알아요? 이사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잔디깎이가 고장 났다며 빌리러 왔더라고. 통성명도 없이 내줄 수야 없잖소, 이웃사촌끼리.”
    “걸리적거리니까 저리 좀 비켜요.”
    “좀 전에 불 줄여 달라던 분은 그새 어디 간 거요?”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식탁 쪽으로 걸음을 뗐다.   
    “그래서 이웃사촌 잔디도 손수 깎아 줬어요?”
    여자는 시금치 가닥을 입에 가져가며 물었다.
    “그 집 마당에는 그림자도 내비치지 않는 거 잘 알면서.”
    남자는 위스키 잔 앞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주인이 바뀌었잖아요.”
    “망할 영감쟁이가 심은 베고니아인지 뭔지는 그대로 있잖소. 한 발짝이라도 들이면 그냥 확 뽑아버릴 것 같아서 말이오.”
    “그 정도였어요?”
    “내가 앞마당의 메이플을 얼마나 아끼는지 안다면 그런 소리는 절대 입 밖에 못 내지. 시차에 적응도 안 된 몸으로 심은 거잖소. 이 땅에 보란 듯 뿌리내리겠노라고. 어떤 역경이 닥쳐도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러니 미친 영감쟁이가 마당을 침범했다며 가지를 멋대로 쳐버렸을 때 심정이 어땠겠소? 팔이라도 잘려 나간 기분이었단 말이오.”
    남자는 위스키 잔을 집어 들었다.
    “그늘이 져 화초가 시든다고 어필했을 때 눈 딱 감고 옮겨 심었으면 팔이 잘려 나가는 일은 없었을 거 아니에요. 송사까지 가지도 않았을 테고. 냉장고에서 돼지고기나 꺼내 줘요. 술은 작작 마시고.”
    “일부러 의자에 앉기만 기다리는 거요? 잡초 솎아내느라 마당에서 오후 내내 땀 흘리고 겨우 숨 좀 돌리는데 잠깐 엉덩이 붙이는 꼴을 못 보네.”
    남자는 구시렁거리며 느릿느릿 걸음을 뗐다. 목덜미가 뙤약볕 아래에서 구덩이라도 판 것처럼 벌겠다.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눈빛에는 무력감이 부추기는 습관적 분노의 빛이 불쑥 떠올랐다.
    “복마전이 따로 없네. 이것들은 대체 다 뭐람. 시신 토막이 나와도 놀랍지 않겠군.”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냉동실 말고 냉장실.”
    여자가 소리쳤다.
    “냉장실 어디?”
    남자도 언성을 높였다.
    이제 남자의 시선은 냉장실 안쪽을 더듬고 있었지만 길이라도 잃은 사람처럼 망연한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눈앞에 두고도 몰라요? 신선실에 있잖아요.”
    “신선실?”
    “베이컨이랑 소시지 담아 두는 중간의 투명한 서랍.”
    “잘려 나간 게 어디 팔뿐이었나. 가볍게 항의 좀 했더니 영감쟁이가 어떻게 나왔소? 마당 가장자리를 파헤치고서 뿌리를 툭툭 끊어버리지 않았소. 그땐 발목이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지. 분하고 원통해서 한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소. ‘내가 백인이었어도?’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면 꼼짝없이 뜬눈으로 다음날을 맞아야 했지.”
    남자가 돼지고기가 담긴 플라스틱 팩을 여자에게 건넸다. 돼지고기는 잘게 손질되어 있었다.
    “꼬장꼬장하긴 해도 인종차별주의자 같지는 않던데.”
    “할로윈데이에 아이들 대하는 걸 유심히 지켜봤소. 문 두드리는 아이들 피부색에 따라 표정부터 달라지더군. 백인이면 입 꼬리에 미소를 머금고 과자를 듬뿍 쥐어 주었지만 유색인이면 돌 씹은 얼굴이 되었지. 내주는 것도 사탕 몇 개가 고작이고. 장담컨대 조상 중에 흑인 노예를 산 채로 땅에 묻은 자도 있었을 거요. 아끼는 화초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다시는 해와 염병할 화초 사이에 버티고 서 있지 못하도록.”
    “설마.”
    “당신은 모를 거야. 백인 수컷들이 동양인 수컷을 얼마나 업신여기는지. 한 동양 남자가 월마트에서 장을 보다 지나가던 백인 남자한테 물었소. 카트에 담은 쿠키 어디에 진열되어 있더냐고. 백인 남자가 일러준 대로 찾아갔더니 눈앞에 뭐가 있었는지 아오?”
    “내 정신 좀 봐. 고기에 밑간 하는 걸 깜박했네. 소금하고 후추 좀 줘요. 싱크대 맨 오른쪽 손잡이를 당기면 양념 통들이 줄줄이 보일 거예요.”
    “사료만 잔뜩 쌓여 있었소. 개 사료 말이오.”
    남자는 소금 통과 후추 통을 차례로 꺼내며 말했다.
    “말도 안 돼.”
    “그 동양인 수컷이 나였다는 말까지 해야 되겠소?”
    “진짜라고요?”
    “한번은 잔디를 깎다 누가 지켜보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미친 영감쟁이가 테라스 의자에 앉아 있지 뭐요. 손가락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해보이더라고. 내 그림자 머리를 겨냥해서.”
    “난 그저 세탁소 확장하는 일로 예민해져 저러나 보다 했는데……. 왜 그때 말하지 않았어요?”
    여자는 돼지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보나마나 교회에 끌고 갔겠지. 목사야 인종차별주의자의 가엾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자며 손을 붙들었을 테고.”
    “기도가 뭐 어때서요?”
    “당신이 우리 집 앞마당의 메이플이 하루아침에 반병신이 된 것은 나 몰라라 하면서 교회 화장실 비누 조각 크기에는 노심초사할 때도 그런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소. 기도가 나쁜 건 아니오. 세탁소에 가서 옷의 얼룩을 지우듯 교회에 가면 자세를 바로하고 두 손을 모아야겠지. 문제는 타이밍이오. 팔을 비틀어 뽑아내려는 놈한테 ‘시계가 참 멋지군요. 어디 겁니까?’ 하고 인사를 건넬 수야 없잖소. 불알을 걷어차 줘야지. 잘난 백인한테도 불알은 사타구니에 붙어 있고, 발길질당하면 하느님을 파는 불경한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줘야지. 갓뎀잇.”
    “취했어요?”
    “아직은 멀쩡해.”
    남자가 여자 쪽으로 훅, 하고 입김 부는 시늉을 했다.
    “어휴, 냄새. 대체 얼마나 퍼마신 거예요?”
    “묵은 죄를 다 씻어내려면 아직 멀었소. 빨래장이 주제에 귀한 뜻을 펼치는 분과 겸상이 가당키나 하오? 영혼이라도 깨끗이 세탁하면 모를까. 그렇다고 표백제를 목구멍에 들이부을 수야 없잖소. 누가 아오? 골수까지 씻다 보면 죄 많은 이 몸도 천국 문턱을 넘게 될지.”
    “가볼 마음은 있는 거예요?”
    “어디, 교회 말이오?”
    “목사님이 당신 그림에 관심이 많으세요. 웍 좀 내려 줘요.”
    “그림은 얼어 죽을…… 쓸데없는 얘기는 왜 해가지고…….”
    남자는 선반에 놓인 프라이팬을 집어 들었다.
    “그거 말고 볼이 우묵한 거 말이에요.”
    “처음부터 그리 말하면 어디 덧나나?”
    “어디서 들으셨는지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여자는 웍을 불에 올리고 달궈지기를 기다렸다.
    “요즘 목사들은 사람 뒤도 캐는 모양이구려.”
    “신도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줬으면 하는 눈치세요.”
    여자가 남자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이젠 붓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해.”
    “오 마이 갓!”
    여자가 달궈진 웍에 돼지고기를 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그림의 ‘그’자도 꺼내지 말라고.”
    “당면을 불려 놨어야 하는데…… 불려 볶아야 쫄깃쫄깃한데…… 그냥 삶아야겠네.”
    여자는 돼지고기를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잡채씩이나 한다고.”
    “한국 음식 중 잡채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내 부엌에서는 누구나 페이버릿 푸드를 맛볼 권리가 있다고요.”
    “페이버릿 푸드는 무슨. 그맘때 나는 허기만 면한다면 개 사료도 오케이였는데…….”
    “자꾸 늙은이처럼 굴 거예요?”
    여자는 볶은 돼지고기를 접시에 담고 나서 양파를 썰기 시작했다.
    “어이쿠, 나이 들어 미안하구려. 젊은 놈이랑 한 집에 살게 됐으니 덜 미안해도 되려나? 당신보다 열 살이나 어리다고?”
    “일곱 살이요.”
    “일곱 살이면 문제없다는 거요?”
    “당신이 물었잖아요.”
    여자가 양파를 웍에 올리며 대꾸했다.
    “뭣 하러 번거롭게 따로따로 볶는 거요?”
    “모르면 잠자코 있어요. 따로 볶아야 서로 물이 안 든단 말이에요.”
    “나 같으면 다 썰어 놓고 볶을 텐데. 썰다가 볶다가, 볶다가 썰다가 도무지 체계가 없어. 냉장고 안이 저 모양인 이유를 이제 알겠네.”
    “한꺼번에 이것저것 다 하는 거 안 보여요?”
    “날마다 이 난리법석을 떨 건가?”
    “첫 디너잖아요. 달걀지단 부치게 아까 집었던 납작한 프라이팬이나 내려 줘요.”
    여자가 눈짓으로 선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귀 먹었어요?”
    여자가 남자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제야 남자는 선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젠장, 좀 치워 가며 요리를 하든가 말든가. 이놈의 물건을 내려놓을 데가 없네.”
    남자가 아일랜드 한 귀퉁이에 프라이팬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다 부술 작정이에요?”
    “두부전골에 갈비찜에 잡채까지, 젊은 백인 놈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겠군.”
    “싱겁다며 간장을 달라지는 않겠죠.”
    여자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건 또 뭔 소리요?”
    남자가 여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자는 끓는 물에 당면을 넣었다. 입은 꾹 다문 채였다.
    “무슨 소리냐니까?”
    남자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시선을 외면했다.
    “걔 말이에요.”
    “걔라니?”
    “몰라서 물어요?”
    여자가 남자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같은 극의 자석끼리 마주 보는 것처럼 공기가 팽팽해졌다.
    퇴창을 통과한 햇빛은 어느새 더 날카로워져 부엌 가장 깊은 곳까지 찌르고 들어왔다.   
    “당신이 데려왔던 아이.”
    마침내 여자가 입을 뗐다.
    “누구 말이오?”
    “밤이슬 피할 곳을 알아보는 동안만이라며 짐을 싸들고 왔던 유학생 말이에요.”
    “그 아이가 어쨌다는 거요?”
    “그 애와의 첫 식사 때도 잡채를 준비했는데 기억 안 나요?”
    “글쎄.”
    이번에는 남자가 여자의 시선을 피했다.
    “마켓 스트리트 끝에 있던 한인 그로서리까지 가서 장을 봐다 장만했는데 한입 집어먹자마자 너무 싱겁다며 간장을 달라지 않았겠어요. 소금 통이 손에 잡혀 밀어 줬더니 자기는 간장을 달랬다며 눈을 똑바로 뜨고 말하더군요. 음식을 잘못 내온 웨이트리스 대하듯. 의아했죠. 이 애는 뭐지? 남의 집에 얹혀살러 온 주제에 뭘 믿고 이토록 당당할 수 있지?”
    “언제 적 일을…….”
    “어떻게 잊어요. 지금도 이렇게 생생한데. 암상스러운 눈빛이며 앙칼스러운 말투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져요. 시카고까지 차를 몰고 가서 직접 고르고, 아침저녁으로 걸레질하고, 해마다 니스를 덧바른 의자에 삐뚜름하게 앉아서 ‘간장 달라고 했는데요.’ 하던 모습이. 진짜로 잊을 수 없는 건 따로 있죠. 그때 내가 뭐라고 했게요. ‘조선간장, 왜간장?’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에요.”
    “십 수 년도 더 된 일이잖소.”
    “13년이에요. 남의 집 부엌에서는 주는 대로 처먹는 거라고, 빈말이라도 잘 먹겠다는 인사를 빠뜨리는 거 아니라고 얘기해 줬어야 하는데.”
    “여보.”
    “멍청한 짓은 그뿐이 아니었어요. 누드화 주인공 얼굴에서 그 암상스러운 눈빛을 발견하고도 당신이 다시 이젤 앞에 앉게 되었다며 기뻐했지 뭐예요. 아, 목이버섯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반추상화였소.”
    남자가 변명조로 말했다.
    “목이버섯이 들어가야 딱인데. 망했어.”
    “저건 버섯 아니고 뭐요?”
    남자가 도마 위에 놓인 표고버섯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사람한테 목이버섯도 없는 잡채를 내놓으란 말이에요?”
    여자가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 버섯이나 들어가면 그만이지.”
    “내 말대로 메모해 갔으면 생뚱맞게 팽이버섯을 집어오는 일은 없었을 거 아니에요.”
    “목이버섯이 들어가면 잡채고 팽이버섯이 들어가면 잡탕이란 말이오?”
    “그 애한테 먹일 거였다면 당장 차를 몰고 달려갔겠죠. 애당초 깜박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추상화였다고 했잖소. 실물을 그린 게 아니란 말이오.”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설마 내 소녀 시절을 상상하며 그렸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 화가들은 결국 자신이 본 것을 그린답디다. 얼굴에 달린 눈이든 심장에 달린 눈이든.”
    여자가 식칼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런 해괴한 얘기는 어디서 들었소?”
    “그 사람이 그랬어요.”
    “노숙자들 공짜밥 먹이겠다고 기부금이나 뜯어내는 인간이 뭘 안다고.”
    “왕년에 미술사 공부도 했답니다.”
    “어련하시겠소.”
    “예술이란 아무리 고상한 말로 뭐라 뭐라 해도 결국 끌리는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네요. 수컷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펼치는 것처럼. 아담이 춤추거나 노래 부르지 않은 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이브는 처음부터 잡아 놓은 물고기였으니까.”
    여자가 표고버섯을 썰며 말했다.
    “활동가 나부랭이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최초의 만찬이 점점 기대되는구려. 모르는 게 없는 분의 입에서 또 어떤 금언이 쏟아져 나올지. 이것부터 물어봐야겠소. 젊은 활동가께서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예술적인 말씀을 늘어놓는지. 옳지, 이 대답도 들어야겠소. 노숙자들을 위한 선행은 누구의 환심을 사기 위함인지. 설마 잡채를 얻어먹으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이 놀라운 예술론의 요점은 대체 뭐요?”
    “그 애가 떠난 뒤로 당신이 뭐든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이것도 우연의 일치일까요?”
    “목사님께 여쭤 보시오.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 그분의 뒤도 캘 수 있다면 뭐라도 나올 테지. 향수도 뿌렸소? 못 맡아 본 냄새네. 혹시 노숙자들의 구세주께서 좋아하는 냄새요?”
    “여섯 달이나 신세를 졌으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어요. 하룻밤 묵은 호텔방에서 짐 빼듯 휙 나가버렸다고요.”
    “그럼, 코쟁이 손님께서도 반년 뒤면 딴 데를 알아보는 게요?”
    “진짜 끔찍한 건 이거예요. 멍청한 질문을 던지던 장면을 되새길 때마다 내 말을 못 알아들었기만 간절히 바라게 된다는 거. 근데 암만해도 말귀를 알아먹지 못한 것 같았죠. ‘조선간장은 뭐고 왜간장은 또 뭐람.’ 하는 표정이었으니까. 그만큼 새파랬다는 얘기죠. 그래서 더 끔찍한 기분에 빠져들게 돼요. 하루는 옆집 여자가 어디서 그런 예쁜 딸을 입양했느냐고 묻는데 간장 한 종지라도 들이켠 것처럼 속이 뒤집어졌죠.”
    여자의 칼질이 점점 빨라졌다.
    “그 집구석은 안팎으로 밉상이었구려.”
    “속에서 천불이 일었죠. 그래, 딸뻘이구나. 우리 애가 살아 있다면 그 또래이겠구나. 현장체험학습만 안 갔어도, 컨테이너에서 자고 있지만 않았어도, 소방차만 제때 도착했어도, 탈출하라는 안내만 있었어도, 저기 앉아서 내가 만들어준 잡채를 입 안 가득 넣고 오물오물하고 있겠구나. 오물오물하면서 엄지를 척 들어 보였겠구나. 그러면 ‘천천히 먹어, 내 새끼.’ 하고 말해 줬을 텐데. ‘조선간장, 왜간장?’ 이런 머저리 같은 말이 아니라.”   
    “피!”
    남자가 외쳤다.
    도마 위로 핏물이 물감처럼 번지고 있었다.
    “실반지만 해줬어도. 하나 사달랬을 때 들어줬으면 새까맣게 타죽었어도 금방 알아봤을 텐데. 어미라는 사람이 엉뚱한 시신을 붙들고 기절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생전 뭐 사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던 애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자기를 한눈에 찾아 달라는 거였어. 불지옥에서 한시라도 빨리 꺼내 달라고.”
    여자는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표고버섯 다음은 당근이었다.
    “여보, 제발.”
    남자가 여자의 팔을 붙들었다.
    여자는 남자의 손길을 완강하게 밀어냈다.
    “옷이 타들어가고 살갗이 녹아내릴 때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뜨거운 건 입에도 못 대는 애였는데. 라면이 불어터지도록 식기만 기다리던 애였는데. 그래도 엄마가 끓여 준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해 주던 애였는데. 밥상머리에서 간장 타령일랑은 입에 담아 본 적이 없던 애였는데.”
    여자가 울부짖듯 소리쳤다.
    남자는 식칼을 뺏으려 안간힘을 썼다. 여자도 팔을 거칠게 내저었다. 식칼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언제는 다 하느님 뜻이라며. 그분의 뜻은 나라마다 다르오? 거기서는 심사가 틀어졌지만 여기서는 풀리신 게요? 화마에 유린되던 아이들의 울부짖음에는 감감무소식이던 자애가 이 나라에서는 소방대원의 도끼질 한 번에 불려오는 것이오? 손도끼가 미제라서 그렇소? 우리 애는 소방도로도 확보되지 않은 가건물에, 소화기조차 비치되지 않은 곳에 잠들어 있다가, 그 모든 게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세상에 있다가 목숨을 잃은 거요. 높고 귀한 뜻은 개뿔.”
    “그때 죽었어야 했어요.”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였다.
    남자는 멈칫했다. 하지만 잠시뿐. 목선을 따라 곧추선 힘줄의 끝에서 뭔가가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격렬하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누가 할 소리. 소방대원이 문을 부수면서까지 구하러 왔을 때는 그만 허탈해지고 말았지. 파이어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투숙객 문에 도끼질하는 나라에 살고 있었다면 우리 애는 죽지 않았겠구나.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겠구나.”
    “실은 파이어 알람이 울렸을 때 깨어 있었어요. 당신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지만. 깨울까 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죠. 하나뿐인 자식을 그렇게 앞장세우고도 삶을 이어 가겠다고 태평양을 건너온 스스로가 견딜 수 없었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그대로 누운 채 불에 타든 연기에 질식하든 상관없겠다 싶었죠. 솔직히, 그러길 바랐어요. 아이 곁으로 갈 수 있겠구나 싶었으니까.”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소. 그 순간 당신만 깨어 있던 게 아니니까. 복도 저쪽에서부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급한 외침과 뒤섞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당신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지. 곧장 출입문으로 달려가더군. 이내 걸쇠 채우는 소리가 들려왔지. 문고리에 ‘방해하지 마시오.’ 팻말이라도 내걸듯.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어둠 속에 그대로 누워 있었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아니, 당신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거였지.”
    “아아아!”
    여자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순간도 견디기 힘든 불길에 휩싸인 듯 사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여자를 붙든 남자의 손가락 마디마다 정맥이 파랗게 불거졌다. 바스라지는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것처럼.
    쨍.
    남자와 여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죽은 듯 동작을 멈췄다. 끔찍하도록 명쾌한 소리였다. 도끼질에 걸쇠가 날아가던 순간처럼.
    발치에서는 금빛 테두리가 두 동강 난 채 나뒹굴고 있었다. 볶은 돼지고기를 담아 둔 접시였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동시에 허리를 숙여 파열음의 근원으로 팔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달랐다. 남자는 접시 조각, 여자는 돼지고기였다.
    “앗!”
    남자는 신음을 삼키며 접시 조각에서 화들짝 손을 뗐다. 손가락에 핏방울이 맺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남자는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가 지나간 기분이었다. 여태 여자의 손에 들린 식칼의 미끈한 날이 가리키는 쪽 어딘가로, 주둥이가 활짝 열린 채 주인의 부름을 목 빼고 기다리는 양주병 너머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세상이 두 음계쯤 더 적막해진 듯했다.
    “무슨 소리 안 들리오?”
    남자가 쪽창 너머로 눈길을 던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글쎄요.”
    “그 녀석들 같소.”
    “아, 턱시도!”
    여자가 벽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눈이 빠져라 기다리겠소. 전에 한번은 초저녁잠을 자느라 깜박했더니 문 앞까지 와서 울고 있더군.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손님처럼.”
    “잠깐만요.”
    여자는 식기건조대에서 플라스틱 반찬통을 꺼내 바닥에 흩뿌려진 돼지고기를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그건 뭐 하게?”
    “기왕 이렇게 된 거, 녀석들이나 주려고요.”
    “야옹이가 돼지고기도 먹나?”
    “그래 봬도 호랑이랑 친척이잖아요.”
    “요리나 마저 해요.”
    남자가 반찬통을 낚아채며 말했다.
    남자는 한 손에 비닐장갑을 끼더니 사료를 두어 줌 더 얹었다. 사소하지만 오래된 습관이 그렇듯 더없이 무덤덤해 보이는 몸짓에는 어딘가 쓸쓸한 구석이 있었다. 남자가 익숙한 동작으로 고양이의 저녁거리를 챙기는 모습을 여자는 미동도 없이 지켜보았다. 움직이는 것은 시나브로 얇아지며 뒷걸음질 치는 햇빛뿐. 또 다른 하루가 접시 가장자리에서 금빛으로 저물고 있었다. 여자는 ‘금혼식’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같이 가요.”
    여자가 남자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손에는 어느새 물통이 들려 있었다.

 

 

 

 

 

 

 

 

 

 

 

김경욱
photo by 백다흠
작가소개 / 김경욱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소설집으로『위험한 독서』『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소년은 늙지 않는다』 장편소설로『동화처럼』『야구란 무엇인가』『개와 늑대의 시간』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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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고양이를 위한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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