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문구사 - 김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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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진흥문구사

 

 

김미월

 

 

 

 

    완구점이라는 단어는 사실 내게 그리 친숙한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변변한 병원 하나 없어 눈병이 생기든 팔이 부러지든 출산이 임박하든 충치가 생기든 무조건 읍내 하나뿐인 의원을 찾아야 했던 그런 궁벽한 곳에 언감생심 장난감 가게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제법 큰 도시에서 살게 되었을 때는 내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후라 장난감 가게가 있어도 갈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완구점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나는 마치 자주 드나들던 곳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렵지 않게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매장 안에는 밝고 경쾌한 노래가 울려 퍼지고, 눈 닿는 곳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금발 바비 인형과 진짜 집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의 집과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레일 위를 달리는 장난감 기차, 연주를 하면 건반에 색색의 불이 켜지는 피아노, 삼단 변신 로봇과 무선 조종 비행기, 앙증맞은 소꿉놀이세트 같은 것들이 진열된 곳.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어린이들은 행복한 얼굴로 장난감을 고르고, 점원들은 상냥하게 웃으며 바구니에 든 막대사탕을 나누어주는 곳. 아마 어린이들에게 천국은 그런 곳일 것이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미지였지만 나는 상상 속의 그 장난감 가게를 좋아했다. 왜 듣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들 있잖은가. 소풍이라든가, 크리스마스라든가, 네잎클로버, 첫눈, 생일선물, 여름방학 등등. 내게 완구점은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오정희 선생의 소설 ‘완구점 여인’을 읽어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해 봄을 기억한다. 얼뜨기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언행이 진중하고 문장이 유려하던 한 선배를 우러러보게 되었고, 우연히 그가 가진 책을 보고는 남몰래 학교 앞 서점에서 같은 책을 샀다. 그것이 바로 오정희 단편집이었다.
    그 책을 정독한 후의 충격과 경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할까. 높은 곳에서 갑자기 떠밀리듯 추락한 것 같다고 할까. 세상에 이런 소설도 있구나.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도 있구나. 아니, 이런 것이 문학이구나. 고등학교 졸업장 때문이 아니라 오정희 책 덕분에 비로소 성년이 된 것 같았다. 책에 수록된 다른 명편들에도 깊이 감하고 동했지만 나는 ‘완구점 여인’에서 특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화자인 ‘나’는 소아마비를 앓던 남동생을 사고로 잃는다. 그 후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고 가정부였던 여자는 어머니로 바뀐다. 나는 누구와도 교감할 수 없다는 소외감과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새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방황하다가 완구점에서 붉은 오뚝이를 사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완구점 여인과 동성애에 빠진 후 수치심과 그녀에 대한 그리움 사이에서 갈등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상이 ‘완구점 여인’의 줄거리이다. 줄거리 자체도 숨 막히게 암담하지만, 실제로 나를 숨 막히게 한 것은 줄거리라기보다 묘사였다.

 

    소아마비를 앓아 하루의 대부분을 휠체어에서 보내는 동생은 손이 닿는 높이의 흰 벽에 종일 그림을 그렸다. 이층에서 보이는 전도관 흰 건물의 종각과 머리를 곱슬곱슬 지져 붙인 가정부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의 손으로 벽화가 되었다. 더 그릴 것이 없자 동생은 옷을 벗고 자기의 몸 부분 부분을 세밀히 그렸다. 동생은 나의 옷도 벗을 것을 강요했다. 그래서 벽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남자와 여자가 가장 순수한 상태로 그려졌다. 오래지 않아 벽은 모두 띠를 두른 듯 일정한 높이에 그림으로 가득 차 버렸다. 가정부는 그것을 보고 킬킬거렸다. 투박한 손바닥으로 쓸어 보기도 했다. 동생은 그녀에게 마구 떼를 썼다. 아줌마도 그릴 테야 아줌마도 벗어. 가정부는 흉물스럽게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날 하루 종일 동생은 아줌마도 그리겠다고 아줌마도 벗으라고 울었다.

 

    위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는 책에서 고개를 들면 눈앞에 정말로 휠체어를 탄 소년과 그가 그린 벽화가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환상에 잠시 몸을 떨기도 했다.
    그만큼 묘사가 너무 생생하여 섬뜩하거나 너무 아름다워 서글프거나 너무 음울하여 기운이 쭉 빠지는 순간들이 책 읽는 내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완구점에 대한 묘사는 책장을 덮은 후에도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득 늘어선 오뚜기들 너머로 휠체어에 앉은 여인이 보였다. 인형처럼 앉아 있는 여인을 보고 나는 잠시 정신이 혼란해짐을 느꼈었다. 현기증 탓만도 아니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베란다와, 침침한 팔조 다다미방과, 역시 휠체어의 바퀴를 굴리고 있는 사내아이와 벽에 가득한 그림들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내가 다시 눈을 비비며 유리문을 밀었을 때 나는 가게 구석에 세워진 두 개의 목발과 여인을 보았고 가득 들어찬 울긋불긋한 장난감들이 여인이 빚어내는 공기 속에서 괴괴하게 살아 있음을 보았다. 여인은 사십도 채 못 닿았을 나이에 얼굴에는 거뭇거뭇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세상에 이런 완구점도 있구나. 장난감 가게를 이렇게 묘사할 수도 있구나. 아니, 각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고독한 작중인물들이 서로 만나 그들만의 쓸쓸하고 괴이한 방식으로 소통하기 위해 완구점이란 필시 이래야 하겠구나.
    나는 설득당하는 줄도 모르고 설득당했다. 말하자면 사방에 밝고 경쾌한 노래가 울려 퍼지고 눈 닿는 곳마다 예쁜 인형과 앙증맞은 소꿉놀이세트와 장난감 기차와 변신 로봇이 진열된, 내가 늘 상상했던 완구점이 가짜 같았다. 붉은 오뚝이와 목발이 있고 휠체어에 탄 어두운 얼굴의 여인이 있고 그 여인과 비밀스러운 정사를 벌이는 소녀가 있는, 책 속의 완구점이 진짜 같았다. 전자는 내 유치한 상상 속에나 있겠지만 후자는 이 세상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할 것 같았다. 전자는 그것이 실재하든 아니든 그다지 가보고 싶지 않지만 후자는 일부러라도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세상 어느 후미진 동네의 초등학교 앞에 분명히 있을 것만 같은 그 진짜 완구점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가 아, 하고 나는 불현듯 뭔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돌아보니 내 유년에도 완구점이 존재했다는 사실이었다.

 

    돌아보니 그랬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조그만 가게가 하나 있었다. 진흥문구사. 주인 여자는 작고 통통한 체격에 표정이 온화한데 주인 남자는 기골이 장대하고 피부가 거무죽죽한 데다 콧수염까지 길러서 인상이 험상궂었다. 우리 초등학생들은 그 사내를 무서워했고 문구사 이름 ‘진흥’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달리 갈 데가 없었으므로 아침마다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 물체주머니며 피리며 각도기, 고무찰흙, 모눈종이 따위를 빨리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면 그곳은 대단히 한산했다. 주말이면 암자처럼 고요해서 문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나는 주말에 가끔 그곳을 찾았다. 당시 취미가 우표 수집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진흥문구사에는 읍내의 큰 문구사에도 없는 만화 캐릭터 우표 시리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캐릭터마다 우표 가격이 달라서 십 원짜리도 있고, 이십 원짜리나 삼십 원짜리도 있었다. 가장 비싼 것이 오십 원짜리였다. 그런데 액면가를 그대로 부르는 주인 여자와 달리 주인 사내는 무조건 백 원을 요구했다.
    아줌마는 여기 적힌 액수대로 받던데요?
    어느 날 내가 용기를 내어 사내에게 따지자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 여편네가 잘못 안 거야.
    하지만 그 후에도 주인 여자는 우표에 인쇄된 금액을 받았고 사내는 변함없이 백 원을 고집했다. 나는 사내가 무서워 더 따지지는 못하고 그저 내가 우표를 사러 가는 날 아줌마가 가게에 있기만을 바랐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우표를 사러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문구사까지 함께 갔다. 그런데 문이 열린 가게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한쪽 벽에 만화 캐릭터 우표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나는 스누피 우표를 가리키며 오늘은 저것을 살 예정이라고 친구에게 말하려 했다. 그런데 별안간 친구가 쉿 하며 검지를 제 입술에 가져다대는 게 아닌가.
    들었어?
    친구가 턱으로 가게 안쪽의 골방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짧고 새된 비명소리, 둔탁한 무엇인가가 부딪치는 소리, 고통을 참는 듯한 신음소리. 친구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아저씨가 아줌마를 때린다는 소문을 모르는 아이는 없었다. 친구와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소문의 실체를 현장에서 확인한 최초의 목격자가 된 것이었다.
    내가 경찰에 신고하고 올게.
    친구는 범인이 도망가면 안 되니 우리 중 한 사람은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만류할 틈도 없이 후닥닥 가게를 뛰쳐나갔다. 창졸간에 범인의 도주를 막아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혼자 남겨진 나는 어쩔 줄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내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친구인지 경찰인지 무엇인지 모를 대상을 막연히 기다리며 나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앞 선반에 놓인 조약돌처럼 생긴 캐러멜이 보였다. 모양뿐 아니라 경도도 조약돌 같아서 잘못 씹으면 이가 부러질 수도 있을 그것은 다섯 개에 백 원이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만지면 손끝에 색소가 묻을 것 같은 형광색 풍선껌이 보였다. 그 옆에 가짜 땅콩 알갱이가 박힌 알사탕이 보이고 그 위에 은박지로 허술하게 포장된 초콜릿과 설탕가루에 파묻힌 젤리가 보였다. 아, 이곳에 군것질거리가 이렇게 많았던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벽에 걸린 종이인형이 보였다. 그 아래 다섯 개씩 포장된 공깃돌이 보였다. 그 옆에 플라스틱 물총과 검정 고무줄이 보이고 형형색색의 바람개비와 딱지와 나무 팽이가 보였다. 출입문 쪽으로 시야를 넓히자 고무공이 가득 든 그물망과 유리구슬이 든 상자, 그리고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선반에 놓인 우주소년 아톰 인형과 부루마블 게임판도 눈에 띄었다. 아, 이곳에 장난감이 이렇게 많았던가.
    그간 숱하게 드나들었던 진흥문구사의 내부를 그렇게 천천히 샅샅이 살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곳은 간판명만 문구사지, 실은 이런저런 불량식품이며 장난감이 더 많은 과자 가게이자 장난감 가게였다. 내가 한참을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골방 미닫이문이 왈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주인 여자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나오다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왔어?
    깜짝 놀란 것은 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아아까요.
    여자의 머리는 산발이었다. 입술은 부르터 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슬리퍼를 신느라 잠깐 허리를 구부린 여자의 목덜미에서 나는 어쩐지 시퍼런 멍 자국을 본 것 같았다. 핏자국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오래 기다렸겠구나.
    괜찮아요.
    내가 아니라 아줌마가 괜찮은지 묻고 싶었다. 아저씨는 아직 방에 있나요? 친구가 경찰에 신고하러 갔으니 이제 안심하세요. 할 말이 많았다. 여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표 사러 왔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을 뻗어 스누피 우표를 가리켰다. 그것은 오십 원이었다. 주머니에서 백 원을 꺼냈다.
    그냥 가져.
    여자가 입술을 움직이는 듯 마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오래 기다렸잖아.
    고맙다고 머리를 숙였던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던가. 모르겠다. 다만 내가 그 가게를 나설 때까지도 친구가 돌아오지 않았고 경찰 또한 오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줌마가 나한테 우표를 공짜로 줬다고 아저씨한테 또 맞으면 어쩌나 하며 우표를 받은 것을 후회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학교 앞에 다른 문구사가 생겼다. 진흥문구사보다 더 크고 더 깨끗하며 진흥문구사보다 더 많은 불량식품과 더 많은 장난감을 갖춘 곳이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진흥문구사가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망하기 전에 서둘러 만화 캐릭터 우표를 다 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었으므로 그 후의 일은 알지 못한다.

 

    그해 봄 오정희 선생의 '완구점 여인'이 내게 준 정서적 충격과 그 여진은 그렇듯 내가 잊고 지냈던 유년의 학교 앞 풍경까지 되살려냈다.
    진흥문구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주인 부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나저나 그날 친구는 늦게라도 경찰을 데리고 왔던가. 그랬든 아니든 이튿날 친구의 무용담이 학교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을 텐데 어째서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긴 그러고 보니 친구의 이름도 잊었다. 자그마치 삼십 년 전의 일인 것이다. 그때 문구사 여자가 남편에게 맞긴 맞았는지, 친구와 내가 정말 그 사건의 현장에 있기는 했는지, 솔직히 이제는 그조차 확신할 수 없다.
    괜찮다. 아무려면 어떠랴. 어쨌든 '완구점 여인' 덕분에 내 유년의 완구점을 찾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완구점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다른 어떤 것도 상상하지 않는다. 상상할 수가 없다. 내게 완구점이란 붉은 오뚝이와 휠체어 여인이 있는 바로 그 완구점일 뿐이기 때문이다.
    '완구점 여인'은 그런 소설이다.

 

 

 

 

 

 

 

 

 

 

 

변웅필
4월 표지 ‘진흥문구사’ / 변웅필

변웅필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현재 강화도에서 강아지 만득이와 살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윤성희
작가소개 / 김미월

1977년 강릉 출생. 고려대 언어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 등 출간.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 수상.

 

   《문장웹진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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