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쇳물의 온도 -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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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물의 온도

 

 

 

이은선

 

 

삽화-쇳물의온도

 

    천석이요!
    두 손으로 의원의 눈을 열었다. 천남성을 섞은 막걸리 두 동이에 취한 뒤라 어지간해서는 일어나기 어려울 터였다. 약방을 드나들며 약초의 효능을 익혀 둔 것이 꽤나 요긴했다. 입때껏 맹인 행세를 해온 의원이 이제 진짜 맹인이 될 차례였다. 나는 지체 없이 의원의 눈에 쇳물을 부었다. 두 눈이 쇳물에 파이고 얼굴은 형체를 잃고 터졌다. 입이 있던 자리에도 꼼꼼하게 쇳물을 부었다. 눈은 나의 아들 귤(橘)이 대신, 입은 나와 문이의 몫이었다. 의원의 사지가 경련을 일으켰지만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없으므로, 천석.
    나는 서둘러 부엌으로 갔다. 쇳물이 끓는 솥을 지키던 문이가 일어나 자리를 내어 주었다. 부뚜막에 놓인 엽전과 은자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솥에 쏟았다. 아궁이에 장작을 더 넣었다. 한 무더기의 열기가 내 가슴에서 등 뒤로 넘어갔다. 거센 화기에 눈동자가 지져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았다. 내 새끼, 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었다. 이만한 열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사주전(私鑄錢)을 만든 것이 발각되어 역적이 된 서방에게 떠밀려 아이를 안고 도망치던 때로부터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주 긴 날들이 지났거나, 찰나가 줄지어 내 곁에 모여드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목 잘린 서방과 산속의 연못에서 의원에게 밟혀 배가 터져 죽은 내 새끼를 되살려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엽전 뭉치를 배에 묶은 뒤 아이를 안고 내달린 산길이었다. 더 멀리 달음박질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몸이 찢어지고 발이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 산을 넘었어야 했다. 뒤늦은 후회가 쇳물 속에서 들끓었다.
    산에서 의원에게 잡혀온 그날부터 나는 외부의 반응에 두어 걸음씩 늦게 반응하며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하루 혹은 사나흘 정도 더 기다리면 방법이 찾아지겠지, 생각이 떠오르겠지. 그러다 보게 된 것이 귤의 기포였다. 빈 솥에서 튀어 올라 눈앞에서 폭 하고 터지던 내 새끼 귤(橘). 신내가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서방이 탐라에 가서 푸릇한 귤을 구해다 주었을 때의 그 냄새였다. 오래 두어 익혀 먹던 노란 것의 기미였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끓는 물이 가득 담긴 솥과 아궁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아무리 많이 끓여도 부족하게만 보이는 쇳물에 다시 엽전 뭉치를 던져 넣으면서 나는 내 곁을 맴도는 귤에게 말을 건넸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따라갈게. 문이가 저한테 하는 말로 알아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왼쪽 귓바퀴쯤에서 다시 귤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과 마음이 기포처럼 터져버리기 전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이 타는 냄새가 부엌까지 흘러왔다. 새 장작을 머금고 화르륵 일어난 불이 아궁이 바깥으로 퍼져 나오며 그 냄새를 잡아챘다. 문이가 밖에서 장작을 더 날라 왔다. 아직 눈이 오는가. 문이의 머리에 쌓인 눈이 삽시간에 물방울로 바뀌었다. 이번에도 문이는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입을 봉했다. 나 역시 문이에게 주막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 따윈 하지 않았다. 눈길을 헤치고 찾아온 누군가 의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재빨리 뛰쳐나간 문이가 해결했다. 이렇게 하면, 이 밤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나는 화염이 깊어지고 쇠가 더 끓어오르면 그 속에서 내 아들 귤이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서방의 잘린 목이 몸에 붙기라도 하는 양 불을 지피는 일에만 열중했다. 불길이 조금이라도 약해질세라 조심하며 아궁이가 미어터지도록 장작을 밀어 넣었다. 불 앞에서는 큰 숨도 가려 쉬었다. 문이가 눈에 익은 보따리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노파의 방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산속의 연못에서 의원에게 빼앗겼던 내 보따리가 어째서 노파에게 가 있던 것일까.
    보퉁이를 가뿐히 받아들었지만 속에 든 것 때문에 내 손도 덩달아 아래로 축 처졌다. 서방이 내게 마지막으로 안겨 준 낡고 차가운 천 보퉁이에서 어렴풋하게 내 집의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이 귤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그러안았다. 의원에게 빼앗기기 전까지 내 몸에 두르고 다니던 것들이었다. 귤을 그 위에 눕히고 잠시 쉬기도 했고, 그것을 베고 잠든 적도 많았다. 봇짐장수가 된 서방과 함께 전국을 떠돌던 낡은 거적때기였다. 바라보기만 해도 어느 틈엔가 내가 살던 곳으로 데려가 줄 것만 같았다. 우리가 신접살림을 차린 집의 벽장에 은밀하게 매달린 채로, 내 배 속에서 점점 커가던 귤과 같이 몸집을 불렸다. 눈앞에서 봇짐을 메고 길을 떠나던 서방의 뒷모습이 어른거렸지만 눈물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손을 뻗어 눈물을 지우면 장작이 타는 아궁이가 보였고, 벌건 쇳물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을 그대로 두면 허공의 기포가 젖는 것만 같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럴 수도 없었다. 나날이 느는 살림이 흥에 겨워 더 큰 보따리를 장만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 적도 많았다. 내 서방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도 모르면서 점점 불러 오는 배에 손을 얹고 포근해 하던 시절이 아스라이 내 몸을 훑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보따리의 매듭을 풀어헤쳤다. 매듭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갓 태어난 귤의 배냇저고리를 갈아입힐 적에도 이렇게 손이 떨렸다. 해산 간을 해주던 이웃집 칠포 댁이 그때처럼 내 곁에서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냄새가 이토록 사무친 것인 줄도 모르고 살아갔겠지.
    겨우 흘러든 주막에서 젖에 갠 약을 간신히 아이에게 떠먹여 재운 밤에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사주전과 상평통보를 가려 둔 뭉칫돈이었다.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당장 닥쳐올 내일이 불안해 뒤척이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엽전들이었다. 옆방의 들병이가 밤일을 하는 소리에 잠시 넋을 놓았다가 얼른 체머리를 흔들었다. 서방이 이것을 만들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이가 갈렸다. 우리 귤이가 아비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것만 같았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찾았는데도 전혀 반갑지 않았다. 쇳물을 조금 더 끓일 수 있으리란 생각만 들었다. 더 지체할 것도 없이 사주전과 엽전 뭉치들을 무쇠 솥에 부었다. 들끓는 쇳물이 엽전을 머금다가 사방으로 튀었다. 문이의 다리와 내 팔뚝에도 쇳물이 들러붙었다. 문이가 제 몸에 물을 끼얹고 바깥에서 눈을 뭉쳐와 내 팔에 문질러 주었다. 나는 아픈 줄도 모르고 장작을 더 집어넣었다. 오늘 밤 안으로 이것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날이 밝기 전에 일을 끝마치리라 마음먹었다. 쇳물에 녹은 살점과 핏물이 팔꿈치를 타고 흘렀다. 몸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의원을 죽이는 일만 순조롭다면 이쯤이야. 나는 대장간에서 얻어 온 주물 국자로 쇳물을 퍼 올린 후에 의원이 편하게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벌건 쇳물이 차가운 공기와 맞닿아 흰 연기를 내뿜었다. 행여나 넘칠세라 마음과 손을 단속하며 의원에게 다가섰다.

 

    이천 석이요!
    두 번째 쇳물은 배에 부었다. 푹 파인 뱃구레에서 쇳물이 들끓었다. 토막 난 내장이 허공에서 타들어갔다. 방 안 곳곳에 의원이 몸부림친 흔적이 역력했다. 온갖 금은보화가 아무리 많이 쌓여도 부족하게만 느끼던 내장이, 막걸리를 아무리 들이부어도 다음날이면 또 그 짓을 하게끔 재생되던 간이, 콩팥과 심장이 한꺼번에 끓었다. 하나뿐인 내 새끼가 네 발에 터져 죽었으니, 네놈은 더 아프게 가야지. 나는 성심을 다하여 최대한 골고루 쇳물을 부었다. 방에까지 따라 들어온 귤이 그제야 기분 좋게 둥둥 떠다녔다. 귤의 기포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가로이 눈 구경이나 할 새가 없었다. 아직 의원의 발이 멀쩡하지 않은가. 저 발을 볼 때마다, 발이 내 몸을 스칠 때마다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던가 상기하며 나는 부엌에 있는 문이를 재촉했다. 주물 솥이 얼마나 더 쇳물을 버틸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이 급했다.
    대장간 주인은 이 솥이 여기서 가장 두꺼운 것이라고 자랑하며 쇳물도 거뜬하게 담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쇠바늘처럼 귓속에 박힌 그 말을 나는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쇳물을 넣어도 된다고요? 나는 의원의 심부름임을 강조하며 되물었다. 거듭 다그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주인이 말을 이었다. 아 진짜 쇳물을 녹여도 끄떡없다니까요! 오죽하면 저치들이 대장간에서 사주전을 다 만들었겠습니까?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 체하며 그가 가리킨 손끝을 따라가 보았다. 낡은 벽보가 보였다. 장터의 벽보판에 붙어 있던 것과 같았다. 사주전을 만들어 유포한 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그려진 종이였다. 교수형에 처해진 사실이 글 대신 그림으로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나는 익숙한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바라보다가 잠깐 중심을 잃었다. 하마터면 쇠 더미 위에 주저앉을 뻔했다. 정신없이 돌아 나오며 큰 솥과 작은 솥 두 개를 주문했다. 대장간 주인이 뒤따라 나오며 길고 짧은 쇠바늘 한 움큼이 담긴 죽통을 건넸다. 의원이 주문해 놓고 찾아가지 않은 것들이었다. 벽보에 그려진 서방의 얼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 부엌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손바닥으로 눈동자를 가렸다. 그때마다 귓가에서 폭폭폭폭 기포가 터졌다. 그것이 자꾸 흐르려는 눈물을 막아 주었다. 새 바늘을 찾는 의원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심부름을 하러 온 문이가 죽통을 들고 의원과 함께 주막으로 되짚어 갔다.
    첫눈이 오고 나서도 나는 장작을 구하러 다녔다. 굳은 어깨가 쇳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도 도끼를 질질 끌어다 나무를 패고 잔가지들을 그러모았다. 새로 온 사람이 일을 아주 잘한다며 병자를 데려왔던 이들이 의원에게 칭찬을 하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렸다. 눈이 먼 의원의 살림집이었다. 용하다고 소문났지만 괴팍한 성정 탓에 붙어 있는 몸종들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곳에 온 지 달포가량이 지나서야 의원은 내게 부엌 출입을 허락했다. 안살림을 도맡던 노파가 급작스레 비명횡사를 한 까닭이었다. 짠지는 잘 무쳤지. 얼결에 부엌일을 떠맡게 된 내가 술상을 차려 들어간 의원의 방에서 듣게 된 말이었다. 의원은 노파의 관에 넣으라며 엽전 닷 냥을 꺼내주었다. 사주전이었다. 오래 쓴 티를 급히 내느라 거친 빗금이 여기저기 나 있는, 단번에 서방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동그란 쇠였다. 나는 부엌으로 와서 가짜 동전을 부뚜막에 숨겨 둔 주물 그릇에 담았다. 의원에게 돈을 타내어 장에 갈 때마다 손끝으로 세심하게 구별해 두었던 상평통보 다섯 냥을 꺼냈다. 죽은 노파를 덮고 있던 거적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부슬비가 내린 모양이었다. 나는 등잔불을 밝히고 노파의 얼굴을 싸맨 천을 풀었다. 그리 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앙다문 입을 벌리자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내민 비상이 든 수정과를 마신 탓에 입술이 검었다. 장례라도 정성껏 치러 주고 싶었다. 탄 혀가 말려 들어간 입 속 가득 엽전과 흰쌀을 부었다. 노파의 홉뜬 눈과 입을 천으로 감쌌다. 염습을 마치고 나니 몸이 후들후들 떨려 왔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어디에다가 해야 노파가 들을 수 있는 것일까에 관하여 골똘해졌다.
    노파를 보내고 들어선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한답시고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자리에 한 번도 앉지 않았다. 의원이 술을 더 청했을 때만 빼고는 한 번도 손에서 행주를 놓지 않았다. 닦은 데를 계속 닦으며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문 밖에서 의원을 찾는 사람이 온 것도 모르고 청소만 해댔다. 부엌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나를 부르고 서 있는 사람이 문이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켜던 의원이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눈빛을 흩뜨렸다. 그가 왜 사람들 앞에서만 맹인 행세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근방에서 그를 최고로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나와 귤이 잠시 묵었던 주막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의원을 찾아왔다. 외부인의 기척이 느껴지면 번뜩이는 눈으로 모아온 돈을 헤아리던 의원의 눈은 삽시간에 초점을 잃었다. 의원이 밖에 나갈 차비를 하는 동안 나는 그의 눈이 되어 줄 지팡이를 가져다주며 재빠르게 길을 트거나 문을 열어 주었다.
    주막에서 온 어린 들병이가 대문 앞에 서 있는 날이 잦았다. 얼마 전에 왔을 적에는 내가 먼저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누군가 제 이름을 묻는 것이 어색하다는 듯이 한동안 쭈뼛대던 그녀가 문(文)이라 했고, 나는 무늬로 들었다. 그러자 의원이 ‘글월문이 아니더냐’며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글자를 보고 말을 한 의원보다 내가 더 놀라 몸을 움츠리는 사이에 문이가 얼른 땅 위에 그려 놓은 제 이름을 두 손으로 박박 지웠다. 헛기침을 하며 지팡이를 더듬거리던 의원이 재빨리 고샅길을 벗어났다. 무늬 아니 문이가 내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에 의원을 따라갔다.
    얼마간 산속을 헤매다 앓는 아이를 안고 들어선 장터의 주막이었다. 그곳에서 문이를 만났다. 서로 얼굴을 익히자 문이는 내 아이의 이름도 귀한 한자라며 글자를 써주었다. 귤(橘). 양반들만 쓴다는 한자로 이름을 지어 부정을 탄 것일까. 부르기만 해도 툭 터질 것 같던 그 이름 때문이었을까. 차마 혀끝에 궁굴리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애를 끊듯이 아프게 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 뒤로도 문이는 자주 의원을 찾아왔다. 주모가 탈이 나서, 주막에서 누군가 싸움을 하고, 누군가가 배앓이를 한다는 이유를 대며 거의 매일 밤 의원의 집으로 올라왔다. 어느 때는 하루에 두 번이나 얼굴을 본 적도 있었다. 적막한 의원의 집에서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어린 문이가 나의 유일한 말벗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끝내 문이는 내 아이의 신상을 캐묻지 않았다. 주막에서 호시탐탐 내 보퉁이를 노리는 주모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뒷문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문이였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산으로 도망친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간혹 의원의 행방이나 비행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도 사려 깊은 문이가 내게 해주는 일이었다. 열 두엇쯤 되었을까. 나는 그 나이에 주막에 팔려와 있는 문이의 처지를, 문이는 나의 신산한 모습을 안쓰러워할 따름이었다.
    주막에서 병자를 보고 올 때면 의원은 내가 차려낸 술상에 한 움큼씩 엽전을 내려놓았다. 엽전을 세어 묶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서방의 기억에 함몰되었다. 눈을 두는 곳마다 엽전이 그려지고, 그 사이로 서방과 귤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엽전에 새겨진 네 개의 글자마다 서방의 목소리와 땀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과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아가야, 하는 다짐이 엽전 한가운데로 모이면 날이 밝았다. 나는 세고 또 센 엽전을 사주전과 가려 묶으며 밤새 품었던 마음을 눅였다.
    대장간에서 본 벽보가 한시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장간 주인은 벽보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죄인들은 모두 참수가 되었지만 아직도 누군가는 사주전을 만들고 있을 거라는 말을 던지듯 내뱉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나를 향해 하는 소리로 들었다. 사주전을 제조, 통용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는 그림에 대장간 주인의 말이 덧붙으니 눈 닿는 모든 곳이 형장처럼 느껴졌다. 서방을 죽게 한 것들이 그곳에 있었다. 풀무질을 하는 아궁이와 주물 솥, 주전 판을 제조할 수 있는 대장장이. 그리하여 대장간 담벼락에는 필히 그 벽보를 붙여야 한다고 했다. 벽에 붙은 채로 고스란히 비바람과 햇빛을 맞은 터라 서방의 얼굴은 가까운 이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낡고 바랜 채였다. 그러나 아무리 해지고 찢어졌어도 내 서방의 얼굴 하나 못 알아볼까. 차라리 알아보지 못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벽보를 눈으로 쭉 따라갔다. 죄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 똑똑히 보았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해 놓은 관아의 벽보였다. 마을을 단속하려는 고을 수령의 뜻이었지만 나에게는 서방의 마지막 얼굴이 담긴 유일한 볼거리였다. 차마 머리가 떨어져 있는 그림 쪽으로는 가지 못했다. 언제나 맨 처음 붙었을 것으로 보이는 수배 벽보에만 눈을 두었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난다면 더 궁핍하게 살더라도 이런 짓 하지 말고 오랫동안 같이 지내자고 몇 번이나 속으로 빌었다. 서방과 귤이 내 양쪽 어깨에 올라앉은 까닭에 의원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몸이 무거웠다. 옆구리에 찬 죽통에서 차락차락 쇳소리가 났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과 그 일의 맺음을 잊지 않았다. 죽통에서 쇠바늘이 부대끼는 소리가 멈추면 의원의 집이었다. 나는 의원의 방문 앞에 죽통을 내려놓았다. 죽통이 마당으로 굴러 떨어졌다. 바늘들이 튀어나와 오후의 해를 받았다. 크고 작은 쇠가 눈을 찌르는 것만 같아 그것을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벽보를 보고 돌아와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장을 보러 나가거나 나무를 하러 산에 가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맨 처음에 부엌으로 들어왔을 때처럼, 막 잡혀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마냥 굼떠졌다. 바보가 된 것처럼 몸을 둥그렇게 말고 앉아만 있었다. 누구의 붓질인지는 몰라도 툭 불거진 광대와 째진 눈매는 참 잘도 그려 놨다 싶었다. 사주전 일당 중에서 서방의 얼굴은 가장 끝에, 그러니까 두목의 얼굴 가까이에도 가지 못한 변방에 있었다. 아무리 졸개라 하더라도 참형은 피하지 못했다.
    대체 어쩌자고 엽전을 만든 것인가.
    너희들의 두목이 누구냐. 바른대로 대렷다?
    그것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나와 혼인하기 전이었을까, 아니면 그다음이던가.
    네 이놈! 네가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는가!
    그때 서방과 함께 도망칠 수는 없었을까.
    저놈들을 당장 군문 효수형에 처하라. 엽전을 위조한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잘라 온 고을 백성들이 돌려 보게 하라.
    나는 의문이 들 때마다 대장간 앞에 붙은 서방의 얼굴을 보러 갔다. 나를 쏘아보던 의원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진 뒤였다. 아무 말도 없이 벽보만 쳐다보는 나에게 대장간 주인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벽보를 바라보는 척하며 넌지시 대장간을 건너다보았다. 대장장이들이 쇠를 녹이고 쇳물을 옮기는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장작을 넣고 얼마나 기다려야 쇠가 달궈지고 쇳물이 되어 흐르는가에 관하여 자연스럽게 알게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대장간으로 갔다. 서방도 사주전 패거리들을 따라다니며 쇠를 녹이는 법을 배운 것일까. 벽장의 보따리에 엽전이 가득 들어찰 때마다 그의 눈이 멀어 갔던 것일까. 왜 내게는 단 한 마디의 언질도 주지 않은 것일까.
    나는 거의 매일 벽보판에 붙어 있었다. 장터에 다녀오는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둔 의원의 무심함도 한몫 거들었다. 때마침 주막에서 의원을 찾는 일이 잦았다. 새로운 바늘을 구하는 횟수도 그만큼 늘었다. 나는 대장간과 의원의 집을, 문이는 주막과 의원의 집을 쉴 새 없이 오갔다. 크고 작은 죽통을 챙겨 나갔던 의원은 새벽녘쯤 피 묻은 옷을 입고 돌아왔다. 나는 매일 핏자국을 지우는 빨래를 했다. 장에 간답시고 대장간 담장에 붙어 있다가 몇 번이나 문이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기를 수차례. 넋이 나간 듯 제 손에 이끌려오는 나를 문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꾸짖었다. 이러면 안 돼요. 장터에 보는 눈이 많아요, 언니.
    언니라고 부르는 문이의 입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귤이 내 젖을 빨려고 입을 벌리던 그 모양과도 같았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귤을 살려내어 내 젖을 빨릴 수만 있다면! 서방이 살아오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귤만은, 백일도 제대로 못 살고 배가 터져 죽은 내 새끼만은 되살려낼 재간이 있다면 지옥에라도 찾아가고 싶었다. 대장간의 쇳물에라도 젖을 담글 수 있을 것 같았다.
    되살릴 수 없다면 여한이라도 없애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은 이 어미의 몫이었다.
    내 손으로, 이천 석.

 

    삼천 석이요!
    쇳물을 더 떠왔다. 최대한 뜨겁게, 더 끓을 수 없을 지경까지 끓은 것으로 붓고 싶었다. 내 아이를 죽인 발이었다. 내 새끼가 저 발에 터져 죽었으니 저 발이야말로 그냥 둘 수가 없지 않은가. 쇳물에 뚝 끊어진 발이 모양을 잃고 요란하게 타들어갔다. 살타는 냄새가 구수했다. 덧창을 닫지 않은 까닭에 방으로 쉴 새 없이 눈이 들이쳤다. 눈발들이 방 안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부엌에서는 쇳물이 장국처럼 끓고 있었다. 쉬지 않고 장작을 집어넣어도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어느 순간이 되자 쇳덩이들이 솥 안에서 사정없이 허물어졌다. 나는 집 안의 모든 쇠가 녹아 흐를 때까지 불을 땔 작정이었다. 오늘을 위해 두 계절이 넘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작을 모았다.
    장터에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주막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주막에 가면 자연스레 내가 귤을 안고 빠져나오던 뒷문이, 문과 이어진 산을 오르던 그 밤이 언제나 내 곁을 스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날아온 귤이 내 몸에 닿아 터졌다. 그러자 숨을 쉬고 걸음을 걸을 때마다 아이를 안고 돌 위를 내달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무 뒤로 숨던 내가 보였다. 나뭇잎이 스칠 때마다 아이가 우는 것만 같아 귀를 닫고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살았다. 최대한 굼떠지는 것이 의원과 여러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바보가 되어 있는 내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어떤 마음이 들끓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의원이 나를 범하려 들었다. 그래, 마음껏 들어오오. 원하는 대로 갖고 노시오. 내게 양껏 몸을 풀어도 좋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오.
    의원이 취해 잠든 밤마다 나는 쥐새끼처럼 빠져나와 조용히 집 안 여기저기를 훑었다. 그가 내게서 빼앗아간 엽전, 내 서방의 보퉁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이런 욕지거리 나는 일쯤은 견딜 수 있었다.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추어 마당과 집 안의 모든 것을 뒤졌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허술해지는 의원도 돈에 관해서만큼은 꼼꼼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것들은 필요 없었다. 내 서방의 보따리, 내 아이의 체취가 담긴 것이면 됐다. 나는 그것만 가지면 되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골똘히 집을 뒤지던 때였다. 누군가 찾아왔다. 순간 몸이 굳어서 재빨리 굼떠지질 않았다.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을 하려고 애를 썼다.
    문이였다. 내 이웃, 내 은인, 내 동생 문이가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 애를 떠안고 부엌의 곁방으로 들어갔다. 등잔불을 켜려는 나를 문이가 만류했다.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지경이면서도 불심지를 당기려는 내 손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알았어, 알았다고. 왜 이런 거야? 문이는 내가 의원을 깨우러 가는 것도 결사적으로 막았다. 하는 수 없이 조용히 나가서 술상에 올라갈 두부를 데우고 남은 가마솥의 미지근한 물을 가져왔다. 벽장에 있던 깨끗한 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사타구니를 닦고 기저귀를 채워 주었다. 한 번도 남에게 이런 것을 해준 적이 없었지만 내 손은 이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익숙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거침이 없었다. 귤의 기저귀를 갈 때처럼 깨끗한 천으로 조심스럽게 문이의 엉덩이와 다리를 감쌌다. 문이는 홑겹의 적삼만 입고 있었다. 건넛방에서 이불을 가져다 덮어 주었다. 그래도 덜덜 떠는 문이를 꼭 안고 누웠다. 문이는 아이처럼 내 품으로 들어왔다. 덩달아 내 몸도 들썩거렸다.
    의원이 긴 쇠바늘로 거침없이 문이의 아랫도리를 후볐다고 했다. 지금 문대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꼬챙이로 쑤셔야 한다고 말한 것은 주모의 목소리였다. 문이가 저항하자 양쪽에서 다리를 잡고 놓아 주지 않은 것은 그때까지도 언니, 언니 하며 따랐던 같은 주막의 들병이들이었다. 모두가 한 번씩은 아니 앞으로도 계속 겪게 될 일들이라 말하며 문이를 차갑게 대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내 아랫도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느낌이었다. 귤이 태어났을 적에 내 몸에서 나오는 것들을 어쩌지 못해 당황하자 칠포 댁이 보드라운 천으로 그것을 다 받아 주었다. 이것들이 다 나와야 새댁이 건강해지는 거라며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이 무척 위로가 되었다. 그것과 문이의 상처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겠다고 버틴 문이가 안쓰러워서 새벽이 올 때까지 안아 주었다. 문이의 출혈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나는 더 큰 수건을 가져다 피가 흐르는 아랫도리를 막아 주었다. 동이 트기도 전에 주막에서 사람이 왔다. 작정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입에서는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말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세요? ……온 적 없는데요.
    주막 사람들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오니 문이가 일어나 있었다. 핏기가 가신 얼굴에 귤의 기포가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나는 집에서는 시력이 돌아오는 의원의 눈을 피해 문이를 숨기느라 바빠졌다. 밤마다 의원에게 약초 섞인 막걸리를 먹여 곯아떨어지게 만들었다. 의원은 매일 주막에 가서 주모의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문이가 제 집에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의원의 약방을 드나들며 어깨 너머로 약재의 효능을 익힌 것이 꽤나 요긴했다. 문이는 내가 달여 준 약초를 마시고 어느 정도 회복은 했지만 여전히 하혈을 하는 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밤 깨끗한 수건으로 문이의 아랫도리를 닦고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내 몸은 마치 귤을 어르던 때로 돌아간 듯이 기묘한 활기를 띠었다. 이 변화가, 피비린내 나는 뒤처리가 싫지 않았다. 살아 있었더라면 귤도 내게 하루에도 수차례 아랫도리를 맡기고는 여기저기 기어 다니고 걸음마를 했겠지. 문이는 나날이 수척해 갔지만 나는 의원의 눈속임을 하는 일이 급급해 더 이상 어떻게 해줄 방법을 찾지 못했다. 술상에 올라갈 고기를 떼어 죽을 쑤거나, 약방을 청소하다가 몸에 좋은 약재를 조금씩 빼돌렸다. 암죽을 끓여 아이를 먹이듯 세심하게 약을 달였다. 칠포 댁이 서방 없이 혼자 해산을 하고 누워 있던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주막에서 며칠을 묵을 때 문이가 귤에게 쑤어 주었던 미음같이 따뜻하기만 바랐다.
    일은 두 배로 늘어났지만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이곳에 와서 한시도 파국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문이가 있어 잠깐이나마 그 마음을 눅였던 것을 상기하며 죽을 쑤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누워 잠든 문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얼마간 정말이지 사는 것처럼, 누군가를 보살피며 외롭지 않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온기가 불러온 상념에 잠시 해야 할 일을 잊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날카로운 침이 내 가슴을 긁는 것 같아서 등을 꼿꼿하게 폈다.
    내 안색의 변화를 가장 먼저 살핀 것은 다름 아닌 의원이었다. 술 취해 잠든 줄 알고 등잔불을 끄려던 참이었다. 물끄러미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그만 숨이 막혔다. 평생을 남의 안색을 살피는 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던가. 맹인이라 하지만 진맥만으로는 살필 수 없는 환부가 있을 성싶었다. 비로소 나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왜, 왜 맹인 행세를 합니까? 의원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일갈했다. ……그래야 살아졌으니까.
    나는 가만히 불을 끄고 의원의 방을 나왔다. 이해를 해서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찬바람에 정신을 차리며 다시 의원에 대한 마음의 날을 세웠다. 이것은 모두 문이 때문이었다. 저 아이를 보듬어 주지만 않았어도 이런 마음을 알지 못했을 거였다. 그간 너무나 외로웠던 탓이라며 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허공에 떠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귤을 터질세라 조심하며 두 눈으로 감쌌다.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달이 대장간의 벽보도 환하게 비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차분해졌다. 낮에는 해에 빛나고 밤에는 달빛이 되쏘는 빛에 어른거릴 죄인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과 보름달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내 새끼 귤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환한 달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달을 뒤로 하고 부엌으로 돌아왔다. 부싯돌을 꺼내어 등잔에 불을 비추니 오도카니 앉아 있는 문이가 보였다. 품에 보따리를 안고 있었다. 서방의 것인 줄 알고 달려가 빼앗아 보니 문이의 누더기 옷가지가 담긴 보퉁이였다. 보퉁이를 내려놓으며 문이의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글을 욀 줄 아는 어린 들병이 문이의 곡절에 다시 한 번 마음이 메었다. 문이가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더 이상 주막 일 따윈 하기 싫다는 말을 할 적에는 울음이 목소리를 덮어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울지 않았다. 동이 터오는 대로 대장간에 가서 벽보를 일별한 뒤에 주물 솥을 구해 왔다. 그때가 지금이 될 줄 몰랐지만,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일이었다. 문이라면 손발을 맞춰 줄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밤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사이에 의원은 주막으로 두어 차례 왕진을 갔다. 의원이 진맥을 하러 갈 때마다 아이들 배가 터져 죽는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쉬지 않고 장작을 팼다. 도끼질을 하는 내 기세에 눌린 문이가 가만히 숨을 죽이고 곁방으로 돌아갔다. 주막에서 사람이 찾아왔으나 설마 의원의 집에 도망친 들병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맹인 의원이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까지 병자들이 찾아온 날이었다. 마당 가득 장작을 패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아궁이를 치우고 주물 솥을 내걸었다. 쇳물이 끓으려면 장작을 반나절가량 쉴 새 없이 밀어 넣어야 한다는 것은 대장간의 담 너머로 이미 익혀 두었다. 문이는 내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나를 도왔다. 계속된 하혈 탓에 핏기가 사라진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 주었다. 배시시 웃는 모습이 천생 어린애였다. 더 힘을 내어 장작을 팼다.
    그동안 집을 수색하며 보아 두었던 곳곳의 보물창고에서 엽전과 은자, 구리들을 싹 쓸어왔다. 가장 먼저 은자가 녹았다. 그 뒤를 이어 옥비녀가 녹고, 사주전이 가장 늦게까지 형태를 유지하다가 쇳물 속으로 사라졌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귤의 기포가 나와 문이 사이에 머물렀다. 말린 천남성을 섞어 거른 막걸리 두 동이에 취한 의원이 드디어 상 옆으로 널브러졌다. 귤의 기포가 터지는 것과 동시에 나는 죽통에서 크고 작은 쇠바늘을 모조리 꺼내들고 부엌으로 갔다.
    이 바늘에 터져 죽은 수많은 눈동자들 대신, 삼천 석.

 

    만석이요!
    엽전이 아궁이 위에 가득 쌓여 있었다. 주막에서 그 일을 하는 대가로 대체 얼마를 그러모았나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약재보다 확실하게 아이를 지워 주는 의원을 찾는 것은 주모의 몫이었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맹인인 것이 더 신뢰가 갔던 것인가. 여인의 다리 속에 쇠바늘을 꽂아 넣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문이가 노파의 방을 뒤져서 가져온 보퉁이를 끌어안았다. 귤의 기포가 보퉁이 위에서 떨고 있었다. 의원의 쇠침을 막 솥에 넣었을 때였다. 주물 솥이 갈라져 장작불 위로 쇳물이 흘렀다. 아궁이에서 넘쳐 나온 불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장작에 들러붙었다. 나는 다시 엽전 뭉치를 허리에 차고, 서방의 보퉁이를 든 후에 문이의 손을 잡아끌고 집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산길로 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배를 정박한 곳이 어디쯤인지 오래전에 익혀 둔 터라 길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제대로 뛰지 못하는 문이가 걱정스러웠다. 떠나는 길에 약방에 들러 삼(蔘)을 한 움큼 집어 문이에게 안겨 주었다. 머지않아 집 쪽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내가 억지로 먹인 삼을 입에 물고 절룩거리는 문이를 앞뒤에서 끌고 밀며 나루로 갔다.
    문이가 숨을 헐떡이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흘린 짚신을 찾아 쥔 후에 내가 업었다. 문이가 귤처럼 가벼웠다. 숨 막힐 정도로 뛰고 있다고 여겼지만 마을로부터 얼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등 뒤에서 솟구친 불기둥이 보이지 않을 때쯤에서야 나는 문이를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산 중턱의 연못가에서 귤을 내려놓고 쉬다가 의원에게 붙잡혔던 것이 머리를 스쳤다. 불에 덴 듯 일어나 다시 문이의 손을 이끌고 나루가 있는 쪽으로 걷고 또 걸었다. 곧 혼절할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도 문이는 나를 잘 따라와 주었다. 우리 둘 다 쇳물에 데어 손과 발이 성치 않았다. 진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일단은 달아나는 것이 더 급했다.
    귤의 혼백이 이제 편안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기포로 어미 곁에 떠돌지 말고 죽은 이들의 길로 가만히 날아가기를 바랐다. 서방의 목과 몸이 덜렁대며 그 뒤를 따라 준다면야 더 바라는 것이 없을 황천길이 될 듯싶었다.
    뱃길이 열리려면 축시(丑時)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조금 이르게 도착했던 터라 나루에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루지기가 우리를 몹시 귀찮아하는 것이 역력했다. 나는 예전의 주막에서처럼 섣불리 엽전을 꺼내지 않았다. 더 비루해 보이기를, 더 불쌍해 보여서 우리를 거지처럼 여겨도 좋으니 달리 쳐다보지 않기만 바랐다. 눈치 빠른 문이가 내 오른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루지기가 성가시다는 투로 여기서 오 리쯤 올라가면 조금 일찍 출항하는 배가 있음을 일러주었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곳에서 바람이 잦아들지 않아 배를 출항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적에는 그만 주저앉아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누군가 피워 둔 불가에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와 문이는 주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불가로 갔다. 허공을 향해 날름거리는 장작불 빛이 의원의 집에서 일어난 불더미와는 달랐다. 얼었던 몸이 녹으니 잠이 쏟아졌다. 잠든 문이를 가만히 놓아두고 나는 진물이 흐르는 다리를 부여잡고 배가 뜨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걸어온 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래 나루터에서 우리처럼 바람을 맞은 사람들일까. 배가 뜨기만 한다면 이제 어디라도 갈 수 있겠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몸이 따뜻해진 탓이었다. 언젠가부터 귤의 기포도 보이지 않았다. 원풀이를 해주었으니 이제 갈 길로 갔는가. 내세에는 부디 좋은 부모를 만나 천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바라고 또 바랐다.
    눈을 떠보니 사내 두엇이 문의 양팔을 억세게 잡아 비틀고 있었다. 문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내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루로 올라온 이들이 주막에서 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끌려가는 문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보퉁이에 있던 엽전을 꺼내주었다. 그들의 눈이 대번에 달라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아이의 몸값을 초가 한 채 값으로 올리는 이들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말이 이어질수록 금액은 더 올라갔고 급기야는 내가 허리춤에 찬 엽전 뭉치까지 풀어 주어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주막의 사내들도 잠시 긴장을 놓고 엽전 보퉁이를 들여다보았다. 그 뒤로 막 배가 떠나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문의 손을 잡고 뛰었다.
    배 위로 내가 먼저 오른 것이 화근이었을까. 끝내 한쪽 다리를 붙잡힌 귤이 배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이쪽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배가 출발했다. 한동안 멍하게 주저앉아 있던 나는 거센 파도 탓에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뱃전으로 나가 나루를 쳐다보았지만 일렁이는 횃불 두어 개가 멀리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보였다. 들짐승의 안광과도 같은 그 빛도 곧 사라졌다. 해가 뜨고도 한참이나 배가 요동을 쳤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이 배 위를 굴러다녔다. 선장이 온 힘을 다해 노에 매달렸다. 닻을 고정시키려 애를 쓰는 사람도 보였으나 거개가 다 뱃전을 굴러다녔다.
    파도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닻은 쉴 새 없이 펄럭거렸다. 끝내 놓치고 만 문이의 손이, 내 몸에 가득 밴 문이의 비린내가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이대로 어디까지 흘러가야 목숨이 끝날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나는 허리춤에 묶어 둔 엽전 뭉치를 만졌다. 이것을 문이를 위해 쓰지 않았다는 자책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나 이것을 내어 준다 한들 문이를 구할 수 있었을까. 나는 파도가 더 세게 치기를, 뱃전이 이 풍랑에 산산조각 나기를 바라며 배의 난간을 붙들었다. 어디선가 귤의 기포가 날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납작 엎드렸지만 선미(船尾)는 아랑곳없이 솟구쳤다. 배의 모든 것들이 물 치는 소리에 뒤덮였다. 우레 혹은 들짐승이 우는 것보다 더 큰 소리였다. 뒤집히려던 배가 가까스로 내려앉았다. 두어 살쯤 보이는 아이가 배 밖으로 튕겨나갔다. 그 어미는 정신을 잃고 뱃전을 굴렀다. 차마 아이가 사라진 쪽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슴 깊이 박힌 단도가 배의 요동을 따라 내 몸을 헤집었다. 살이 튀고 뼈가 뜯어져도 헤어날 수 없는 단도의 중심 혹은 들끓는 물의 한가운데였다. 그 속에서 문이 우는 소리가 쇠바늘처럼 튀어 올랐다. 그 소리에 귤의 기포가 사정없이 바스라졌다.
    전보다 더 센 바람이 큰물을 몰아와 배를 뒤흔들었다. 사방팔방으로 떠밀리며 손으로 바닥을 긁었다. 손톱 두 개가 훌렁 뒤집혔다. 나는 배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며 뱃전을 밀고 들어온 바닷물이 손등을 덮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시 선미가 높이 올라갔다. 눈 속으로 한껏 날을 세운 너울이 밀려왔다. 몸에 찬 엽전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소리가 났다.
    만석.

 

 

작가소개 / 이은선(소설가)

–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발치카 No.9』(문학과지성사, 2014년)이 있다.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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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쇳물의 온도

댓글
  1. 잘 읽었습니다.
    여자가 문이와 도망치다가 주막에서 온 사람들에게 문이를 빼앗기는 장면의 첫 두문단에 '문이'라고 써야할 것을 '귤'이라고 잘못 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라면, 혹 여자가 문이를 귤이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의도하신 걸까요? 하지만 이어지는 문단에서 다시 문이로 표기되니 혼동이 옵니다.

    1. 이은선입니다. 잘 읽었다는 댓글 소중하게 잘 읽었습니다.
      수정을 거듭하다가 퇴고본을 보냈는데, 아직 반영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도'를 그렇게 분명하게 말할 '의도'는 없었고요, 혼동을 드릴 이유 역시 없었습니다.
      수정을 해달라고 요청 드렸었습니다…아직도 반영이 안 되었네요^^
      (혹시라도 마음에 걸리셨다면, 이 글을 쓴 작가로서 거듭 양해를 구합니다….!)
      이 목록에서라도 수정이 되지 않는다면, 다음번 제 책에 넣을때는 꼭 수정을 해서 넣겠습니다.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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