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 [기고] 2015 나주 도시인문학 콘서트 - 이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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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희노애락은 줄을 탄다

 

2015 나주 도시인문학 콘서트 나·이·테
– 나주 오일장터에서 놀이를 허하라!
(2015. 11. 15(일) 오후 2시~4시)

 

 

 

이송희(시인)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우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
    빈손의 설움 속에/ 어머니는 묻히시고// 열여섯 나이로// 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 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
    강물이 되는 숨죽인 슬픔/ 강으로 오는 눈물의 소금기는 쌓여/ 강심을 높이고/ 항시리 젓배는 곧 들지 않았다.//
    포구가 막히고부터/ 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 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는/ 죄가/ 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 누님은 오지 않았다/ 잔칫날도 큰 집의 제삿날도/ 누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들은 비워지고/ 강은 바람으로 들어찰 때/ 갈꽃이 쓰러진 젖은 창의/ 얼굴이었지/ 십 년 세월에 살며시 아버님을 뵙고/ 오래도록 소리 죽일 때/ 누님은 그냥 강물로 흐르는 것/ 같았지.//
    버려진 선창을 바라보며/ 누님은/ 남자와 살다가 그만 멀어졌다고/ 말했지.
    갈꽃이 쓰러진 얼굴로/ 영산강을 걷다가 누님은/ 어둠에 그냥 강물이 되었지,/ 강물이 되어 호남선을 오르며/ 파도처럼 산불처럼/ 흐느끼며 울었지.

  – 나해철, 「영산포 1」에서

 

 

    나주를 떠올리면, 지금의 홍어 거리 영산포를 노래한 나해철의 시가 먼저 떠오른다. 나주가 낳은 시인은 많고, 나주를 노래한 시들도 많지만 유독 이 시에는 곰삭은 슬픔의 냄새가 나주의 힘겨운 역사와 함께 온몸을 파고드는 것 같다.
    ‘나주의 중심에서 인문학을 외치다!’라는 구호 아래 진행된 인문학 콘서트, 마지막 공연은 11월 15일 2시부터 목사내아(牧使內衙) 앞 오일장터에서 열렸다. 이 인문학 콘서트는 나주의 역사와 인문학에 관련된 활동을 만들어 가는 가장 현대적인 의미의 공간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무엇보다 지역민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우선이다. (구)나주 역사에서 출발하여 금성관, 서성문, (구)잠사공장을 거쳐 마지막으로 오일장터에 이르는 길목에는 우리 삶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희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는 나·이·테(나주를 이야기하는 테이블)의 마지막 마당인 오일장터로 발길을 돌렸다. 옛 장터의 활기를 되살리고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축제 한마당이 흥겹게 펼쳐졌다.
    식전 공연으로 권원태 줄타기 연희단에 의해 진행된 남사당 줄타기는 불안하고 위태롭게 이어지는 소시민들의 희로애락을 은유하듯 보여준다. 또한 본 공연의 오프닝과 클로징 무대는 예술마당 ‘살판’이 모둠 북 공연으로 장식했다. 이들은 1991년 풍물 굿패로 창단하여 확장된 전통예술 단체다. 이 날 공연의 즐거움은 극단 사니너머의 ‘돌아온 박첨지’ 인형극이다. 실감 나는 인형들의 연기와 재치 있는 몸짓에서, 고단한 현대인의 일상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일상과 상상의 세계가 조화와 충돌을 이루어 삶과 예술의 순환을 위한 소통방식을 열어 가고자 하는 이들의 공연 취지가 한껏 반영되었다.
    야마카타 트위스터의 전자품바는 이 날 야외공연장의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민중이 우는 곳을 찾아가 춤과 노래로 위로해 주고 민중의 투쟁에 기름 부어 주는 22세기 전자품바인 그는 홍대 앞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며 시민들과 교감한다. 그의 춤과 노래에는 권력욕에만 치우쳐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정치인들과 그릇된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그의 노랫말에는 ‘대출이자’, ‘저질’ 등과 같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언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이단 옆차기’와 돈 세는 동작을 재현하는 모습에서는 현실 비판적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다음으로 진행된 플라멩코 공연은 아르떼 플라멩코와 여우 플라멩코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무대였다. 15세기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한 집시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악과 춤으로, 플라멩코는 저물녘의 분위기를 한층 달궜다.
    공연 후에는 시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여운이 담긴 이야기를 풀었다. 거리 곳곳에는 인문학 바람이 일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삶은 팍팍하다. 자본주의 시대의 노예가 되어 가는 우리에게 머리와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인문학 공연이야말로 따뜻한 위로가 아닐까. 진정한 소통과 공감을 이끌며 비로소 ‘숨’을 쉬게 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시간들이 바로 도심 속에서 잊혀 가는 나주의 곳곳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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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 이송희(시인)

–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봄의 계단〉으로 등단. 전남대 국문과 문학박사. 저서로는 시집으로 『환절기의 판화』, 『아포리아 숲』, 『이름의 고고학』, 평론집 『눈물로 읽는 사서함』, 『아달린의 방』, 『길 위의 문장』, 편저 및 공저로 『한국의 단시조 156편』, 『2015 올해의 좋은시조』, 『기형도』 등이 있음, 2010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지원금과 2013 아르코창작기금 받음, 2010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과 2009 오늘의시조시인상 등 수상.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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