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규 마라톤은 언젠가 숨을 자를 것 외 1편 - 최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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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언젠가 숨을 자를 것

 

 

 


최백규

 

 

 

 

    심장이 흐린 날이었다

 

    3월은 안단테, 나비가 수직으로 추락하고

 

    봄바람에도 녹지 않던 겨울이 빙산으로 무너지자
    넘어진 마라토너는 패자로 남았지만

 

    꽃송이가 가슴 뚫고 피어날 때마다 모노드라마처럼 말했지
    ― 봄이 다시 온다면 결승선 한 번 더 절단하자

 

 

    신발 끈 묶는 동안 돛대에 불 지르는 아버지

 

    찢긴 한숨이 암세포인 듯 퍼져 나가고 중요한 약속은 환풍기 소리로 집 안 가득 메웠다 월요일이 와도 일요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멀리 사라진 아버지의 화면 조정 시간
    반환점 옆 네모 반듯이 접혀 있었지

 

    허물어질 것 같아 조심스레 뜯어보니 혈관을 되감았던 시간들
    ― 이곳엔 나의 피가 돌고 있다!

 

 

    (아버지들은 하늘을 달리던 마라토너였다)

 

 

    어릴 적 스케치북 위 그린 구름 밟고 아버지처럼 뛰어올랐어
    공중으로 솟구치는 모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음 소거 된 TV 앞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미래의 마라톤 생방송 흘러나오고
    그 속에서 우리도 결승선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여름의 먼 곳

 

 

 

 

이 세계는 나에게 자폐를 앓고 있다
길가에 죽은 고양이 속에도 희망이 없다 내장 뜯는 쥐가 있다
아버지는 몇 달째 방 안에 누워 썩어만 가고
어머니는 문 열 때마다 숨소리 확인한다
그녀의 돌아앉은 등과 그의 남은 생 사이 간격마저 흐릿해지면
지구가 가진 모든 시간이 눈동자 위 멈추고
나는 이미 늙었다 꽃 피는 계절에
세상의 모든 고아들이 한 식탁에 모여 앉아 식은 밥알 씹듯
사람들은 한 아름의 치욕과 허탈을 삼킨다
주기적으로 상처가 벌어질 때마다 아득해지는 천국 그리고 이곳의 간극
밤에 나갔다가 낮에 쌀을 사 들고 돌아오는 골목에서 매일
바람이 죽어가는 것을 본다 햇살은 시끄러웠다

 

 

 

작가소개 / 최백규(시인)

1992년 대구 출생. 2014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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