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 신라의 봄, 경주의 꽃 -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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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카페 유랑극장 참관후기]

 

 


신라의 봄, 경주의 꽃

― 경주문학관, 동리목원 문학관(하성란 소설가, 김동규 철학자)

 

이은선(소설가)

 

 

 

 

경주_이은선-1

 

    천년 고도로 들어서기 직전까지 차 안에서 대본을 고쳤습니다. 양 연출님은 스마트 폰과 노트북, 그리고 이미 나와 있는 대본을 번갈아가며 이 문장과 저 문장 사이를 오갔습니다. 아무래도 쉽게 여기고 갈 수 없는 시간이었지요. 「곰팡이 꽃」이라는 하성란 소설가의 단편 소설을 가지고 <잉여, 괴물의 관점 취하기>라는 제목의 행사를 하러 가던 차 안이었습니다. 양연식 연출님과 조연출이자 행사 진행자인 저, 그리고 영상 진행을 맡은 나미나 화가와 행정 총괄진행을 맡은 한정태 선생님이 함께 가던 참이었습니다.
    그 전날까지 지속된 대본과 행사에 관한 논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결국 행사는 행사대로 진행하되 모든 농담과 재미를 위한 코너는 삭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지요. 그것을 위하여 경주로 내려가는 내내 대본을 수정했습니다. 지난주에 진해에서 ‘서로 기다림’에 관한 행사를 한 지 오 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 행사의 지속에 관하여 여러 차례 회의를 하였으나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고, 부랴부랴 취소하자니 대관과 미리 약속된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 일도 난제였습니다. 결국 양연식 연출님은 달리는 차 안에서 하성란 소설가의 「별 모양의 얼룩」 전문을 새롭게 읽었고, 양 연출님의 부탁을 받은 전국 국어교사 모임의 회원이자 시인이신 이계윤 선생님은 학교 도서관에서 하성란 작가의 저작과 신문 기사들을 살피는 ‘이원 생중계 수정’을 강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경주에 계신 분들과 만나야 했습니다. 우리만 생각하고 취소나 연기를 논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웃거나, 다짜고짜 애도하는 마음만 내세울 수도 없어 여러 모로 난감했습니다. 그리하여 작가와 연출진은 소설 「곰팡이 꽃」과 「별 모양의 얼룩」을 함께 이야기하자는 것으로 차 안 회의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울에서 경주까지 내려오는 네 시간 반 동안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고,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이 땅의 안타까운 마음들과도 맞지 않겠느냐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에서 열린 행사였습니다. 예상 외로 많은 관객이 몰려와 준 까닭에 몇몇은 서거나 통로에 앉아 행사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도 보였고, 수업을 안 들어가고 왔다는 대학생들도 여럿이었습니다. 하성란 소설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한 남성은 맨 앞줄에 앉아 있었어요. 극단 창세 배우들이 소설 「곰팡이 꽃」을 주제로 한 낭독공연을 펼쳐주었습니다. 객석과 무대를 가리지 않고, 관객 사이를 오가며 열연을 펼쳐준 배우들 덕분에 다소 어둡게 시작했던 행사가 반짝, 밝아졌습니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웃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설의 내용과 배우의 몸짓이 우리를 조그맣게라도 웃게 했던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언제쯤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게 될까요. 아니 예전 같은 웃음을 절대로 웃지 못하게 될 분들을 생각하면 웃음도 삼가야 하는 게 아닐까, 내내 생각했습니다. 바뀐 대본 만큼이나 긴장했던 진행자였습니다. 하성란 소설가 역시 내내 굳은 표정으로 ‘엄마’와 ‘작가’의 눈으로 본 요즘의 일들, 마음 아픈 일들을 꼼꼼하게 짚어 주었습니다.
    엄마이자 소설가로, 아니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번 사태가 너무 뼈아프다는 그녀의 말이 자꾸 가슴에 맴돌았습니다.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소설가는 자꾸만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녀가 덧붙인 사회적인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의 태도에 관해서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이야기하려면 지금 일어난 사태에 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목이 메었지요. 그 일에 관하여 말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대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관하여 여쭙고 싶었습니다. 아마 저는 에둘러서 작가와 철학자에게 물어봤겠지요. 그러나 제대로 기억나질 않습니다. 다만 경주 선덕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리 앞에서 밝게 웃고 있던 것만이 계속 눈에 밟힙니다. 100초 토론을 하겠다고 학교를 조퇴하고 왔다고 했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대고 여기 온 거예요?”라고 농을 건넸겠지만, 이렇게 여기 와 주어 고맙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공부도 좋고, 모두 다 좋은데 가족들과 더 많이 웃고 모쪼록 건강하라는 당부가 뒤를 이었지요. 왜 자꾸 그들에게 시선이 가는 것인지, 교복이 어쩌면 그렇게 예쁘던지…….

 

    김동규 철학자가 말한 ‘잉여의 삶, 괴물의 시선’이 관통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사회의 잉여들은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잉여’이며 그들은 과연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소설 「곰팡이 꽃」 속에서 발견한 잉여와 괴물의 삶에 관하여 김동규 철학자는 “소비의 사회와 가볼러지 1)”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쓰레기를 뒤지는 삶과 쓰레기를 소비하는 삶 사이의 괴리감이 우리 사회를 잉여적인 시선과 괴물의 시선으로 나누는 것이라는 말이었지요. 「곰팡이 꽃」 속의 삶과 김동규 철학자가 자주 가서 강의를 한다는 부산의 반송시장의 노숙자들의 쉼터에 관한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괴물의 시선’이라는 말에 자꾸 마음이 쓸렸습니다. 누가 저 괴물을 만든 것이며, 그 괴물도 처음부터 괴물이었겠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김동규 철학자의 강연 원고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쓰레기는 늘 시선 바깥에 있다. 그(것)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존재로 부려진다. 그리고 기어이 매립이라는 단계를 거치고 만다. 그러나 그 바깥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부려진 의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오해를 이해로 전환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김동규, <잉여, 괴물의 관점 취하기> 중에서)
    시선과 소비에 관하여 그리고 잉여와 괴물에 관한 김동규 철학자의 강연이 끝났습니다. 관점과 시선의 차이, 소비에서 쓰레기까지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우리에게 다가왔고, 그 위에 살포시 소설 「곰팡이 꽃」이 얹혀 있었습니다. 철학자와 작가가 사회를 바라봐야 하는 태도와 시선에 관한 대화 끝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화성 씨랜드 참사를 그린 소설 「별 모양의 얼룩」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지요. 하성란 소설가의 또 다른 저작이었습니다. 저는 글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을 때의 작가의 목소리와, 평소에 엄마이자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생활을 할 때의 목소리가 많이 다른가에 관하여 질문을 했고, 작가는 성심 성의껏, ‘그렇지 않다’고도, ‘그렇다’고도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죽도록 일하고 죽도록 소비하는 삶,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놓지 않는 작가로서의 시선, 엄마와 한 여자로서의 삶이 혼재되어 있는 그녀의 말을 그곳에 모인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만 가만히 듣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녀의 말을 덧대어주어 철학자의 나붓나붓한 음성까지.

 

    1) 가볼러지(garbology): 쓰레기학을 뜻하는 새로운 용어로 쓰레기장을 조사해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실태를 알아보는 사회학의 한 수법이다. ‘garbage(쓰레기)’에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 ‘logy’를 붙여 만든 신어이다.(두산백과)

 

 

    소설 「별 모양의 얼룩」 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합니다.
일 년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건 아이의 좁은 보폭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이가 그 걸음으로 돌아오려면 아직도 수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하성란 소설, 「별 모양의 얼룩」 중에서)

 

    마지막에 저는 그 어떤 말보다 꼭 이 문장을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딱히 이때를 위한 소설의 문장은 아니었지만, 행사 전반에 걸친 어떤 감정들과 지금 이 상황들이 매우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문장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지난 리뷰에 이어, 클로징 멘트를 고스란히 옮겨 적습니다. 행사가 어땠고 느낌은 이러했다를 적기보다는, 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저희의 마음이 담긴 글귀이기 때문입니다.

 

 

클로징 멘트

 

   – 지난주 이 시간에 저는 진해에서 참 어렵게 이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행사 자체가 어려웠다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의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 후에 진행된 행사였고, 또 그들의 생사 자체를 알 수 없어 답답하던 차에 진행된 행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이제부터 우리의 종교는 기적이고 기다림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래도 사고는 사건이 되고 인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 그렇게 쉽게 버리는 거 아니지요. 우리는 아직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고 이 기다림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발견된 죽음 앞에서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간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현존하는 언어로 할 수 있는 모든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아주 많이 미안합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평온하세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경주_이은선-2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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